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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1.07.10 일본 전국시대 후기가 되면 히데요시의 오사카나 이에야스의 하마마쓰처럼 평지에 대규모 성곽을 갖춘 [성곽도시]가 생겨납니다. 그 이전에는 호조의 오다와라성이 제일 크네 어쩌네 했죠...ㅋ 이러한 동향은 [병농분리]로 인해 토지와의 유착관계가 약화-단절된 무사층을 성 아래에 모으고, 이들을 위해 봉사할 직인이나 상인들이 모여듬으로 인해서 나타납니다. 이런 성 아래의 도시를 '조카마치(城下町)'이라고 하는데, 그 시초가 노부나가의 아즈치성입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 기록에 의하면 아즈치성 조카마치에는 무사 약 2000명과 상인 8000명 장도가 살았다고 하니, 그닥 큰 규모는 아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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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1.07.10 근데 이 당시에는 이것도 세인들이 놀랄만한 대도시였어요...^^; 그러나 이후 히데요시 시절에 지어진 오사카성을 보면 아즈치성은 쨉도 안됩니다...-_-; 제가 전에 어떤 분께 이런 동향을 설명하면서 일본 전국시대의 발전이 후기에 집중적으로나타난다는 얘길 한 적이 있었죠...ㅋ 말하자면 노부나가-히데요시(쇼쿠호 정권) 이전의 성곽은 그닥 크지 않다는 겁니다.
나중에 병농은 물론 [농상분리]까지 시행하면서 신분제를 확립한 에도시대가 되면, 무사는 영주로부터 녹을 받는 셀러리맨으로 전락하고, 거의 모든 무사층이 조카마치에 거주하게 됩니다. 여기에 농상분리로 인해 상인계층도 조카마치로 올라오게 되었고,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1.07.10 신분제적 차별에 의해 한 구획에 집단거주하게 되죠. 일본의 [유통경제 및 도시의 발달]은 이처럼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근대화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도시로의 인구집중"과 비교하면 구색이 안맞는 부분이 있고, 정작 근대화로의 혁명이 일어난 지역은 막부령의 대도시인 오사카-쿄토-에도가 아니었죠...^^; 특히 에도의 경우는 참근교대제가 폐지되자 급격히 쇠락한 것은 물론 지독한 불경기에 시달리게 됩니다. 즉 인위적으로 인구집중이 일어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