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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harment 작성시간12.02.26 상황에 따라 다르죠. 애초에 전근대시대에 관료제라는건 현대와 같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이를테면 현대에 의회와 대통령 사이의 권한 분쟁은 국가의 근간에 이르는 중대한 문제가 되지만, 그 이전, 특히 귀족정치가 극한으로 이루어지던 헤이안 시대라면 애초에 관직이 모든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관직에 딸린 권한보다도 중요한건 그 관직을 통해 볼 수 있는 귀족간 위계서열이 되지요. 길게 이야기했찌만 요약하면, 그냥 태정대신이나 관백이라는 직위는 그 자체만으로는 생각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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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Charment 작성시간12.02.26 정이대장군 역시 마찬가지인데, 본래 초기 정이대장군은 동쪽의 오랑캐(?)를 토벌하기 위해 만든 직위입니다. 초기 일본 정권은 관서(현 쿄토)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동북지역까지는 통제력이 닿지 않았고, 그쪽에는 조정에 복종하지 않는 집단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들을 조지-_-려고 한 것이지요. 초기까진 큐슈 남부에도 그런 세력이 있었고, 때문에 정이대장군 외에도 다른 직위들도 존재했던 겁니다. 다만 이 시기의 정이대장군은 지역의 군사령관에 가까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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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Charment 작성시간12.02.26 이것이 말씀하신 만큼 중요한 직위가 된 것은 가마쿠라 이후로 무가정권이 발생해서 그렇습니다. 천황 조정으로부터 분리된 정권으로서의 막부가 설립되면서 정이대장군이 그만큼 중요해진거죠. 요컨데 정이대장군의 직위 그 자체보단, 그 정이대장군이라는 직위가 무가정권과 연계되면서 중시된것으로 보시는게 맞을 거 같습니다. 조정 내에서의 관위로는 정이대장군이 관백이나 태정대신보다 낮지만 말이죠. 다만 무가정권이 생기기 전인 헤이안 시대라면야 당연히 정이대장군은 조정의 주요 관직에 비해선 중요성이 낮은 존재가 되는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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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2.02.26 1. 섭정-관백은 [영외(令外)의 관]입니다. 즉 율령에서 규정한 이외의 관직이라는 얘기... 뭐 영외관의 종류도 가지가지지만, 섭정-관백은 기존 율령에서 규정한 최고직인 '태정대신'의 윗자리로 만들어 집니다. 또한 전근대의 관직체계는 명확한 임무분정이 안되었습니다. 따라서 국정을 총괄하는 '재상부'에 해당하는 태정관이나 그 윗전인 섭관-내람 등의 고관들은 사실상 모든 국정에 간여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짬이 높은 관백이 태정대신보다 더 쌔다는 거...ㅋ
첨언해서 아츠히메 시대, 즉 에도시대의 조정은 그저 제사나 지내고 국가의전을 시행하는 기구에 불과했습니다. 아츠히메를 보신다니, 이후 서양과의 조약체결 -
작성자 Charment 작성시간12.02.26 뭐.. 첨언하자면 일본의 관직에 대해 이해하려면 관료제로 이해하기보단 귀족제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치루어진 과거제도와 같은 것이 일본의 관료 채용에선 결코 중요한 것이 되지 못했고, 신라시대의 골품제가 그렇듯이 출신에 따라서 철저하게 신분이 제한되었거든요. 섭관에 해당하는 자리까지 오르려면 후지와라 씨족에서 갈라져나온 다섯 가문(오섭관)출신만이 가능했죠. 밑에는 역시 후지와라 씨족에서 갈라져나온 청화가가 있고.. 이런 식으로 철저하계 품계와 신분이 연계되는 현상을 보입니다. 고려 전기를 두고 관료제냐 귀족제냐 논란은 가능해도 일본의 조정 관직은 관료제라고 보기 굉장히 힘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