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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한국사]고려의 서경과 발해의 서경 중 어느 쪽이 천험의 지리를 갖추었을까?

작성자치우천|작성시간04.12.13|조회수322 목록 댓글 6
*태백일사 대진국본기

대진국(발해)의 남경인 남해부는 본래 남옥저의 옛 땅이다. 지금의 해성현이 그것이다. 서경인 압록부는 본래 고리국이요, 지금의 임황이다. 지금의 서요하는 곧 옛날의 서압록하였다. 고로 옛 책에서의 안민현은 동쪽에 있으며, 그 서는 임황현이다. 임황은 뒤에 요나라의 상경 임황부가 된다. 곧 옛날의 서안평이다.

(임승국 선생의 주해 - 임황: 열하성 임서현林西縣에 있어 황수潢水를 굽어본다. 한때 황수를 서압록이라 부른 듯하다.)

*요나라의 정사인 '요사' 지리지

동경 요양부는 본래 조선의 땅이었다(...)위 태무제(재위423-425)가 사신을 보내 그곳 평양성에 머물렀는데, 요나라의 동경은 본래 이곳을 말한다. 당 고종이 고구려를 평정하고 이곳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으며, 후에 발해의 대씨가 차지하였다.

해주에 남해군 절도사를 두었는데 이곳은 본래 옥저국의 땅이었다. 고구려는 사비성을 두었는데, 일찍이 당나라 장수 이세적이 공략한 곳이다. 발해는 남경 남해부라 불렀으며, 돌을 쌓아 성을 만들었다.

*청나라의 만주 일대 지리서인 '성경통지'(누르하치가 심양으로 천도하여 성경이라 개칭)

해성현은 옛날의 남옥저국이다.(...) 고구려는 사비성이라 했고 발해는 남해부를 두었으며(...) 요나라는 해주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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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숙적인 거란(요나라)은 동진하여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를 거의 다 차지했고, 중원으로 남하하여 연운 16주까지 취했습니다.

이렇게 광대한 영토를 차지한 만큼 서울도 상경(上京)임황부, 중경(中京)대경부, 동경(東京)요양부, 남경(南京)석진부, 서경(西京)대동부 등 다섯 군데를 두었습니다.

그 중 동경 요양부는 현재 요녕성 요양이며, 이곳이 본래 단군조선의 땅으로 고구려의 마지막 평양성이 있던 곳입니다.

거란은 처음에 요양을 남경(南京)이라고 하다가, 하북 지방으로 남하해 지금의 북경(베이징) 일대에 남경 석진부를 세운 후부터 요양은 동경(東京)이라고 고쳐 불렀습니다.

요녕성 해성현은 동경 요양부 남쪽에 있는데, 발해가 남경(南京)을 두었고, 본래 남옥저국의 땅이었다고 합니다.

호동왕자가 낙랑국왕 최리를 만날 때 유람했던 옥저도 이곳이었다고 합니다.

내몽골 지역에 있는 고리국은 고조선 제후국 중 하나, 열국 시대에 독립했고, 북부여와 고구려의 모체가 되는 나라입니다. 발해가 이 곳에 서경을 두었습니다.

고리국 동쪽에 있는 길림성에 '부여'라는 지명이 있지만, 이곳은 북부여가 아닌 동부여의 수도였던 것 같습니다.

거란은 발해의 서경 압록부를 점령한 후 요나라의 황도로 삼아 상경 임황부라고 불렀습니다.

임황(臨潢)은 현재 '임동(林東)'과 '임서(林西)'라는 두 지명으로 표기되어 있고, 내몽골 지역에 속해 있습니다.

참고로 박지원의 열하일기로 잘 알려진 열하성은 청나라 때 세운 것으로 '직례성'이라고도 합니다.

중국에 공산정권이 세워진 후 열하성은 내몽골 자치구, 하북성, 요녕성로 각각 편입되어 지금은 지도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식민사학자들은 발해의 서경이 지금의 압록강 북쪽에 있는 길림성 통구라고 보고 있지만..

발해의 서경 압록부가 만주와 몽골(내몽골자치구 포함)의 국경지대에 자리잡았다면 북방 민족들을 포섭해 강력한 기마 군대를 양성할 수 있겠군요.

그러나 기마 민족들이 동맹을 깨고 서쪽에서 쳐들어 온다면 발해가 '해동성국'이라 해도 고전을 면치 못할 것 같습니다.

발해 서경 압록부 남쪽에는 서압록하(서요하)가 흐르고 있고, 서쪽은 대흥안령 산맥이 있습니다.

근데, 대흥안령 산맥은 험준하지 않고 경사가 아주 완만해서 기마부대가 이동하는 데 방벽이 아니라 고속도로가 됩니다.

고구려의 유명한 철갑기병도 쉽게 넘었을 정도입니다.


만주고려설에 따르면 고려의 서경은 한반도 평양이 아닌 요동반도에 있다고 하는데,

요동반도를 서남쪽으로 가르는 천산(千山,중국인 발음으로는 첸산) 산맥이 있습니다.

한반도처럼 산세가 험하여 방어하기에 아주 용이한 곳입니다.

저는 오래동안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로마 제국의 라인 강이나 도나우 강처럼 방어선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근데 오래전에 TV에서 압록강인가 두만강인지 확실히 모르겠고, 탈북자들이 밤중에 건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탈북자도 건널 수 있다는 건 결국 중국인도 건널 수 있다는 애기...

압록강에서 적의 칩입을 허용하면 한반도 전체가 전쟁터가 되버리고, 최악의 경우 태백 산맥을 방어선으로 구축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고대 로마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라인 강을 방어선으로 삼았지만,

한국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북쪽의 장백산맥을 방어선으로 삼아야 안보에 만전을 기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이렇게 중요한 장백 산맥은 남서쪽으로 요동 반도의 천산 산맥과 이어집니다.

천산 산맥은 병자호란 이후부터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전 조선과 명나라의 국경은 난하와 서요하 사이에 있는 강, 대능하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능하 강변에 의주(義州)가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명나라와 조선의 관문이었고,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신했던 곳이죠.

의주의 서쪽에는 산해관에서 올라오는 고구려 천리장성이 인접해 있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영토가 줄어 들면서 압록강 어귀에 '새로운'의주를 세운 곳이 지금의 신의주(新義州)였던 것 같습니다.

천산 산맥을 확보해야만 신의주로 통하는 길목을 차단할 수 있을 겁니다.

고려는 고구려처럼 전쟁이 일어나면 항상 평지성을 버리고 산성으로 옮겨 전시태세를 갖춥니다.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기병대가 성 밖으로 나와 식량 부대를 공격하거나,

적이 퇴각하면 단번에 추격하여 일망타진해 버립니다.

천산산맥 앞쪽에 요하가 '동북 평원'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회전에 능숙한 로마군이라면 요하 가까이에 군사 수도를 세웠을지도 모르지만..

서경은 고려의 전술 타입으로 보건대 요하보다 천산 산맥 가까이에 있었지 않았나 그런 추측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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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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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치우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12.12 혼란이 생기는 건 당연합니다. 만주 땅의 주인이 자주 바뀌었으니 복잡할 수 밖에..그리고 강단학계의 사관이 바로서야 우리 역사가 명쾌해질텐데, 아깝습니다. 만주를 차지하는 나라가 동북아를 제패한다..이게 환단고기의 요점이라고 봅니다.
  • 작성자치우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12.12 우리 역사는 한문으로 기록되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많죠. 하긴 서양인들이 어려워하는 라틴어도 따지고 보면 '유럽의 한문'이지만..저도 옥편을 가지고 한자와 씨름하느라 고생합니다. 처음에 힘들었으나 많이 익숙해져서 오히려 '한자'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 작성자치우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12.12 한자..이게 바로 중화 문명의 흡수력이죠. 전 사대주의에 빠진 근세조선의 역사를 좋아하지 않지만, 세종이 재창제한 한글이 조선왕조의 최대 업적이라고 인정함. 한글이 없었다면 중국에 동화되었을 것..흠..쇄국정책도 순수한 피를 보존해 지나족에게 동화되는 걸 막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발전에 장애가 되지만..
  • 작성자knightclub | 작성시간 04.12.13 음! 쇄국정책이 지나족도 막았나요?
  • 작성자치우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12.13 대륙과 이어진 조선은 중국과는 대결을 피하고, 오직 사대 외교를 통해 안보를 보장받았습니다. 사신과 함께 중국으로 가는 상인들만 빼고 모든 백성들은 농업에만 전념했죠. 조공 무역만 빼고는 빗장을 걸어 잠그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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