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영릉, 무릉,계양, 장사 4군을 점령함으로서 모든형주지역은
다 장악한줄알았는데 아닌것 같더군요..관우가 번성을 공격을 한것을 보면
번성이랑 양양은 조조군 지역이었던거 같고. 거기에 강하, 장사, 계양은 손권한테로
반환한 상태였고. 그럼 고작 관우의 형주는 강릉과 무릉이었던가요?
애초에 적벽전투이후도 신야와 양양일대 형주북부는 계속 조조군이 점령한 상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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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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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가람 작성시간 12.03.05 남양(완)군은 조위의 세력 하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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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데스사이즈 작성시간 12.03.06 장강 이북은 조조군 지역이고 장강 이남은 유비군 지역이었던 걸로 기억하네요. 상용만 유비군이 먹었고. 적벽대전 이후에 유비군하고 주유의 손권군이 형주 점령에 나섰는데 장강 이북은 조인이 수비를 잘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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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광신교주 작성시간 12.03.06 유비는 강릉과 무릉, 영릉지역과 상용 지역을 점거하고 있었죠
손제리는 강하와 장사, 장사, 계양등을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조조는 완, 신야, 양양등인데 청니대치때 강릉 바로 윗동네까지 밀어붙입니다.
그러나 곧 관우의 욱일승천기세에 양양은 털리고 7군은 소멸됬고 번성은 물에 잠겨버리죠. -
작성자광신교주 작성시간 12.03.06 다만 조인의 번성 수비가 굳건했고 곧 서황이 관우의 군을 격파하면서 차질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사이 여몽은 뒷치기를 하고 공안쪽을 수비하던 미방과 사인은 그대로 항복을... -
작성자광신교주 작성시간 12.03.06 개인적 소견으로는 그리빠는 형주의 함락은 성도수뇌부서도 예상치 못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뒤 이릉전투에서는 결국......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