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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농민 '개인의' 곡식 생산량(=인구부양력)이 어떻게 됩니까?

작성자ohs519627| 작성시간12.03.16| 조회수1266|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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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제국의명장 작성시간12.03.16 이에 대해서는 전국적으로 정확히 통계를 낸 자료는 잘 모르지만 1799년 연암 박지원이 충남 면천군(지금의 당진군 면천면)의 토지와 인구를 바탕으로 1집의 평균 경작지와 수확량을 계산한 [과농소초]라는 글이 있습니다. 일단 1)문제는 질문이 잘못된 듯 합니다. 만약 개인 소유 토지 한계를 묻는 질문이라면 답은 제한없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개인(또는 한 집안)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땅의 넓이를 묻는 질문이라면 1집안 생존에 필요한 토지면적은 평균적인 토질의 땅으로 기준하여 1결(1헥타르)의 면적이 필요했습니다. 2)의 식량의 양의 경우, 6~9등전의 질 나쁜 토지 1.46결에서 한해 평균 약 40석 정도 수확되었습니다.
  • 작성자 제국의명장 작성시간12.03.22 1등전의 1결의 경우 6~9등전에서 1결로 치는 면적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2)의 답을 알려면 농민이 좋은 조건에서 어느 면적의 땅을 경작하는지 제시해야 가능합니다.
    3)구체적인 기준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농민1명이 도시민 몇명을 부양하는 것인지, 아니면 조선 농민 전체가 조선 도시민을 최대 몇명까지 부양가능한지 말입니다.
  • 작성자 jyni 작성시간12.03.16 저희 집이 논이 4마지기 (약 800평)가 조금 안되었고, 밭이 1200평정도되는 80년대 농촌 평균경작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걸 할머니, 할아버지 두분께서 경작하셨습니다. 물론, 쟁기질이나 탈곡같은 힘든일은 소나 경운기의 도움을 받긴 했고, 모내기, 벼베기 등은 품앗이로 동네사람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해결했는데, 기계의 도움없이 장정이라도 여기서 몇배이상은 경작하기 힘들겁니다. 즉, 2천~4천평 (1~2헥타르) 정도가 최대치일겁니다.
    그리고, 4마지기의 논에서 평균 12섬의 쌀을 생산했는데, 이건 비닐의 도움으로 모내기시기를 한달정도 앞당기고 극만생종을 심은 결과이므로 ,조선시대의 대풍년수준으로 보면 될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 jyni 작성시간12.03.16 쌀한섬이 성인남자가 1년정도 먹을정도 양이니깐 대풍년에는 장정 1명이 10명이상, 수십명분의 식량생산이 가능하다고 볼수 있지만, 현대의 치수시설과 비닐 등의 도움없이는 기후에 따라서 작황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므로 실제로는 그보다 작을 수 밖에 없을겁니다. 조선시대이전에 흉년에 대비해서 정부차원에서 구휼미를 관리한게 괜히 그런건 아니겠죠.
  • 작성자 그린하늘 작성시간12.03.16 광복후 우리나라 농지개혁의 기준이 1호당 3정보였습니다 이 기준이 그냥 나온것이 아닌 자영농기준(호당 농사지을수있는노동력)으로 나온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선후기나 광복후의 농사기술이 발전 안했다는 전제하에 1호당 농사지을수 있는 면적은 약 4.5마지기 입니다
  • 작성자 쓰~! 작성시간12.03.18 농업생산에 대해 한말씀!
    1) 개인이 경작할 수 있는 토지의 넓이는 농사 방식에 따라 면적이 달라집니다.
    직파법으로 하느냐 이앙법(모내기)으로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직파법에 비해 이앙법으로 농사 짓는 경우 경작 가능한 토지 면적은 4~8배 가량 넓어집니다. 그리고 그때의 면적은 위의 jyni님 말씀처럼 2~4천평 정도가 최대일 겁니다.
    2) 전근대 시대 토지 1결은 평년작일 경우 쌀 20섬을 생산할 수 있는 면적을 말합니다. 조선 시대 토지대장에 올라와있는 농경지의 최대치가 150만결입니다.(국사 교과서에 나옵니다.) 1등전 1결이나 6등전 1결이나 면적은 다르지만 생산량은 같습니다.
  • 작성자 쓰~! 작성시간12.03.18 2) 계속. 그러므로 조선시대 농업 최대 생산량은 3천만섬이 되지요. 단 이때는 1년 1작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이앙법으로 농사를 지으면 1년 2모작이 가능하므로 식량 생산량은 토지 1결당 쌀 20섬 + 보리 20~30섬 정도 되겠지요. 이앙법이 적용되면 조선왕조의 식량생산은 6천만~6천 5백만섬 정도 될겁니다. (은결은 제외)
    3) 요즘 일반 성인 남자 1명이 1달 동안 먹는 식량은 20kg이 안되지만 전근대시기는 거의 모든 영양소를 밥에 의존하고 뱃속에 기생충도 있기에 섭식량은 지금보다도 월등히 많습니다. 거기다 쌀을 팔아서 물건들도 사야하니.....농민 1가족(5인 기준)의 1년 식량 최저치는 최소한 15섬은 잡아야 할 겁니다.
  • 작성자 쓰~! 작성시간12.03.18 3) 계속. 농민 1가족이 1결의 토지를 소유할 경우(이앙법으로 농사짓는 것으로 가정) 농민 자신이 먹고 쓰는 것을 제외하면 쌀+보리해서 25섬 정도가 여유가 되어 도시민에게 공급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 경우는 농민이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전제이므로 실제 조선시대 상황과는 좀 다릅니다.
    조선 전~중기를 기점으로 지주전호제가 보편화 되었으므로 상당수의 농민은 토지가 영세하거나 없습니다. 양반지주에게서 빌려서 소작했지요. 이때 지대(병작반수제 적용)가 생산량의 1/2 정도이고 지주의 세금이나 종자, 기타 비용을 농민에게 전가시켰으니 실제 농민의 1년 수입은 겨우 연명할 수 있을 정도가 될 겁니다.
  • 작성자 쓰~! 작성시간12.03.18 3) 부연설명.
    18c 조선의 인구가 1200만~1400만 정도이고, 이때 이앙법도 보급이 되었으므로 조선의 최대 식량 생산이 가능했던 시기입니다. 즉 조선의 최대 식량 생산(6500만섬)/조선 시대 인구(1200만~1400만) 하면 답이 나오겠지요. 식량생산을 6천만섬. 인구를 1천5백만으로 잡으면 인구 1인당 4섬이 되네요.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전국민이 굶주리지는 않고 살 수 있겠습니다만 현실이 시궁창이니(위 1)~3)까지 세금은 전부 제외시켰습니다-계산의 편의를 위해- 세금까지 넣어버리면 아주복잡해지지요!).....이만 잡설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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