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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일본 전국시대 간단한 정리

작성자폼페이우스|작성시간12.04.02|조회수9,647 목록 댓글 13

전에 제가 네이버 신장카페에서 쓴 글을 여기에 올렸었는데 사진이 차단된다고 하시고 또 너무 길어 요약이 안될것도 같아

사진과 함께 간단히 요약해봅니다 ^^;

1. 센고쿠시대의 소국경계입니다. 이해를 돕자면 조선의 군단위가 국단위라는것이죠.  근데 조선의 군면적보다 3~4배가 크니 조선의 3~4개군이 합쳐진게 1개국이라고 보시면 쉽게 이해하실것 같습니다. 위에는 각지방 경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일본은 서쪽부터 규슈(구주), 시코쿠(서국), 주코쿠(중국), 긴키(수도권지방), 주부(중부지방), 도호쿠(동북지방)으로 분류합니다. 지금의 훗카이도(에조)까지 합치면 8도?라고 볼수도 있겠죠. 여하튼 한국의 영남호남중부관서관동지방이렇게 부르는것처럼 일본의 지방구분입니다. 소국들이 현재의 일본현체제의 경계선에 뿌리가 되었죠. ★도호쿠지방은 2개국밖에 없지만 현재의 현의 수는 인구증가때문인지 5개현으로 분리되었습니다. 도호쿠지방에 2개국밖에 없다고 해서 다툼이 적었던것은 아니고 규슈지방만큼이나  여러가문들이 세력을 다투었습니다.

 

 

신장의 야망을 해보신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간단히 지역별 대표가문을 정리하자면..

 

규슈지방: 시마즈(임진왜란 중국에도 악명을 떨친가문입니다. 조선인의 귀와 코를 제일 많이 벤)VS 류조지(소니의 하위가문)VS 오토모  

 

 ※규슈삼국지라고들 하죠. 오토모가 먼져 세를 과시하다 소니가를 장악?한 류조지가가 오토모가를 맞서 일어나다 시마즈가가 오토모가의 일부지방만 남겨두고 규슈통일을 목전에 둔 순간 오토모가의 하소연에 명문을 얻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벌에 1번째는 물리쳤지만 2번째에는 대군을 투입하였기에 항복하고 규슈남부의 일부지역만 차지하게 됩니다. 이후 조선출정과 유구왕국(오키나와)를 정복하기도 합니다.

 

 

주고쿠지방: 모리(오우치가의 하위가문) VS 아마코 ,외에 우라카미 ,이마나등의 중소가문 ※모리가는 오우치(백제계)의 하위가문으로 오우치가문은 미요시가와 오다가전에 중앙정계진출을 했던 강력한 가문이었으나 모반으로 쇠퇴하고 결국 하위가문이던 모리가에게 그 위치를 내주었습니다. 모리가는 오우치와 협력을 통해 강력했던 아마코가문을 물리치고 주군이던 오우치가도 물리치고 주코쿠의 패권과 시코쿠의 이요일부 또 규슈의 일부를 차지하고 오다가의 패권에 대항하다가 오다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으로 아케치 마쓰히데에게 죽자 대모리방면 사령관이던 도요토미히데요시는 모리가와 협정을 맺고 회군하여 가문내 2인자이던 에치젠방면사령관 시바타 가쓰이에를 물리치고 오다가 내분에 개입하려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마져 회유하면서 오다 노부나가의 3형제 역시 차례로 굴복시키고 오다가를 장악하게 되는데 모리가는 히데요시가 동진하여 정권을 잡은이후 오다가와 투쟁노선을 급선회하여 도요토미히데요시의 가장 충실한 가문이 됩니다.(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에 맞설때 모리가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도 서군에 포함되었고 명목상 서군 총사령관이 모리가였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고 모리가는 쇠퇴하긴 했지만 시마즈가보다는 형편이 좋았던것 같습니다.)

 

 

시코쿠지방:미요시(소고가역시 미요시가에서 양자를 들여와 소고가의 적통을 이었습니다.), 초소카베

※미요시가문은 시코쿠의 대가문이던 소고가를 먹어치구오 아와지국과 셋추국을 포함하는 긴키지방의 요지를 장악하여 어쩌면 시코쿠지방의 가문 분류하기도 애매한 가문입니다. 하지만 오다 노부나가 전에 쇼군을 주물럭거리던 대가문이었습니다. 이후 노부나가 포위망에 꾸준히 참여하다가 결국 미요시가는 시코쿠에서 소고가의 성을 쓰는 세력만 남게되었는데 초소카베의 시코쿠 통일전에 오다가에서 도요토미가로 정권이 바뀌자 도요토미가 모리가와 함께 시코쿠를 정복할때 참가하게 됩니다. 시코쿠통일을 목전에 두었던 초소카베가문은 항복하여 토사국의 지배만을 인정받게 되죠.

 

 

긴키지방: 아시카가(쇼군),  하타케야마->미요시->오다(정권 힘의 이동),

※긴키지방은 수도권으로 즉 한국의 경기도라고 볼수 있습니다. 때문인지 중앙을 장악한 가문이 긴키지방의 중소가문을 복속하는 형태였기때문에 자잘한 가문은 생략하였습니다. 하타케야마는 쇼군토탈워2에서 처럼 여러지방으로 나뉘었지만 쇼군토탈워2처럼 한정치세력이 통일되게 통치한것이 아니고 각지역별로 성씨와 뿌리만 같을뿐 각각 다르게 세와 외교를 하였습니다.  사실상 명복만 남은 아시카가 쇼군처럼 명목만... 하타케야마 주가가 분가나 하위가문에게 허수아비처럼 조종을 당하게 됩니다. 

 

 

주부지방: 오다가, 도쿠가와가, 다케다가, 이마가와가, 호조가, 나가오가(우에스기가), 잇코잇키(혼간지)

※주부지방의 형세는 오다+도쿠가와 VS 다케다+이마가와+호조 VS 우에스기 로 초기엔 오다가와 우에스기가 호위적 협력상태를 유지했었습니다.

기본적 형태는 대오다가 1차 포위망이 다케다 신겐 주도로 오다 노부나가가 굴복하는 형세였지만 행운의 여신이 오다가의 손을 들어주며 신겐의 사망으로 포위망은 서서히 무너집니다. (이마가와는 오다가 침공전에서 기습을 당해 주군이 사망하면서 도쿠가와가의 독립을 맞게 되며 이후 도쿠가와가가 이마가와가를 서서히 잠식해 세가 급속도로 약화됩니다.)

그다음엔 다케다 신겐과 피터지게 싸우고 그전에 호조가를 정복하러 가기도 했던 우에스기(나가오) 겐신이 대오다가 2차 포위망을 주도하면서 방면사령관 시바타 가쓰이에가 대패하기도 하는데 이번에도..      우에스기 겐신의 급사로.... 포위망은 서서히 무너지고 1차2차포위망의 서쪽을 주도했던 모리가만 힘겹게 대항하는 형국이 됩니다. 물론 혼간지세력은 끈질기게 저항합니다.

도쿠가와가는 처음엔 동맹이었지만 오다가의 세가 강력해져감에따라 아들까지 오다가에 죽음을 당하는 굴욕적인 꼬붕이되지만

오다가의 방면사령관처럼 다케다가를 견제하는 방면사령관역활을 하게 됩니다.

 

 

간토지방: 아시카와, 우에스기가, 호조가, 사토미가, 사타케가,

※간토지방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현재의 일본의 수도권지방으로 아랍으로 치면 우야미아왕조가 아바스왕조를 피해 이베리아반도에 제2의 우야미아왕조를 세운것 같은 형세랄까요?... 아마도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남다른 중요한 지방이었던것 같습니다. (지방 자체는 작지만 일본영토내에서도 드문 드넓은 평야지대이므로) 과거 아시카와 쇼군가가 분열하여 2개의 쇼군이 난립하게 되었을때 생긴것 같습니다. 잘기억은 안나니 찾아보세요..

여하튼  그러한 상징적인 아시카와쇼군지부??에 간토관령이라는 간토지방 짱이라는 관직을 가지고 있던 간토의 대가문이었던 우에스기가와 분가 우에스기가, 아시카와 3파전양상을 띠우다. 호조가가 삼국동맹을 맺고 동진하자 서로 싸우던 3세력은 서로 손잡고 호조가에 대항하여 대군을 이끌고 호조가를 공격하지만 소수의 군사로 호조가가 대승하여 간토지방의 패권은 호조가에게 넘어가고 세력이 분쇄된 우에스기가는 에치고국의 나가오가에 몸을 의탁하고 간토관령이란 관직과 가문의 성까지 넘겨주어 나가오가는 우에스기가문이 됩니다. 명문을 얻은 우에스기 겐신은 간토지방에 군을 일으켜 호조가를 맹렬히 위협하기도 했지만 굳건한 수성에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이후 간토지방의 대부분을 장악한 호조가는 주변가문을 압박하면서 오다가와 동맹을 맺고 신겐이 죽은 다케다가의 멸망에 일익을 담당하지만 도쿠가와처럼 영토를 받지는 못합니다. 이후 빌미를 살피던 도요토미에게 결국 정복당하여 호조가는 아주 작은 가문으로 몰락하고 도요토미의 견제에 의해 도쿠가와가 기존의 땅은 반납하고 호조가의 간토지방의 땅을 얻게됩니다. 도쿠가와는 간토지방을 기반으로 도요토미사후 패권을 장악하여 아시카와쇼군이후의 3대이자 마지막 쇼군가문이 됩니다. 

 

 

 

도호쿠지방: 다테가, 모가미가,  난부가, 쓰가루가외 중소가문.

※도후쿠 남부에선 다테가문의 합스부르크식 혼인외교로 세력을 확장하였고 모가미가역시 다테가의 혼인을 맺었 협력또는 견제하면서 동반성장하는 모습이라면 도호쿠북부에선 난부가에서 지부장즘되던 쓰가루가가 독립하여 다투는 형세입니다.

쇼군 토탈워2에서 다테가문의 위치가 하테케야마의 도호쿠영지던데 이건 잘못된것이고... 다테의 위치에 난부가문이 있어야 합니다.  이중 다테카문은 주변가문들과 혼인외교로 복속 또는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리며 또 아버지와 아들의 내분으로 갈리기도 하지만 결국 다테가는 세를 확장해 동서군 대립때 도쿠가와의 동군에 참여해 서군의 우에스기군을 괴롭혔고 지금은 원자력 피폭으로 폐허가된 센다이지방을 풍요로운곳으로 개발시킵니다. 다테가문은 도쿠가와쇼군시대에 그나마 줄을 잘슨 가문입니다.

 

 

 

미요시가문의 패권시대 류조지VS오토모  모리VS아마코  다케다+이마가와+호조동맹VS 우에스기+오다 

노부나가 1차포위망 오다+도쿠가와 VS 모리+미요시잔당+아자이아사쿠라동맹+혼간지+다케다

※이때 도쿠가와가는 대부분의 영지를 다케다신겐에게 내주게됩니다. 오다가 역시 동쪽의 영지를 상당부분 잃게 됩니다.

규슈에선 규슈삼국지가 일어났고 시코쿠에선 초소카베가 통일목전이며 주코쿠의 모리가가 오다가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대립중이고 시바타 가쓰이에가 우에스기가 방면? 사령관으로 견제중이며  오다가 4대 장군의 하나인 다키가와 가즈마쓰가 노부나가의 장남과 도쿠가와가 호조가와 함꼐 다케가를 정복한 이후입니다.  다테가에 거의 먹혔던 아시나가는 독립하여 다테가와 맞설정도로 세를 과시하던 상황...

도요토미 히데요시 패권하에 시마즈 정벌전의 모습입니다.

이후 도요토미는 규슈의 시마즈 정벌후 간토의 호조가 북도호쿠의 난부가 순으로 정복하며 일본전토를 복속시키며 통일하게 됩니다. 남도호쿠의 다테가가 살아남은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중제의 힘이 컸다고 합니다. 때문에 동서군으로 나뉠때 다테가는 이에야스의 동군에 서게 됩니다. 도요토미시대의 수혜자는 모리가이며.. 도쿠가와 시대에는 수혜자라고 할만한 가문은 없겠지만 그나마 다테가라고 할수있습니다. 시마즈 가문은 도쿠가와도 함부로 건들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각지방의 세력을 완전히 멸한건 호조가뿐입니다. 각 지방제후들의 세력은 약화되었지만 건재했기때문에 이들의 세를 약화시키려고 또 대륙진출을 꿈꾸던 노부나가의 부하로써의 영향인지 임진왜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 히데요시는 6대로라는 가신정책으로 전국에 난립하던 억누르기 어렵던 세가 큰가문들... 모리가문의 2명 도쿠가와 우에스기, 우키타, 마에다(오다가신으로 히데요시의 정권획득에 가담)의 가문들이 6대로라 불리우며 히데요시의 일본통치를 보완하는 장치였습니다. 하지만 히데요시 사후 6대로들은 조선출정을 그만두고 조선과 화친하였고 히데요시라는 우두머리원숭이가 없어진 6대로들 사이에서 도쿠가와파(무단파) VS 마에다파(문치파)가 대립하였으나 도요토미세력의 결집역활을 하던 마에다 토시이에가 사망하자 기세는 도쿠가와가 대세로 떠오르게 됩니다. 히데요시의 충실한 꼬붕인 문치파의 거두격이던 이시다 미쓰나리는 이에 반발해 군사를 일으켰고 이것이 세키가하라 합전이 되어 동서군이 싸워 결국 동군인 이에야스가 승리하였고 후에 히데요시도 관백에 만족했지만 이에야스는 쇼군에 취임하고 일본의 중심지를 자신의 본거지 간토지방으로 옮깁니다.

이중 6대로 정책은 절반은 성공했다고 볼수 있는것은 모리가 우에스기 우키타 마에다(두아들은 동서군으로 나뉨)등의 대가문이 서군에서 활약했다는 점입니다.

시마즈가문이 합전에서 싸울맘이 없었던것은 바로 6대로에도 끼지도 못한 도요토미파도 도쿠가와파도 아닌 시마즈파?들이었단겁니다.

히데요시 시대에 히데요시가 어떻게 하면 호조가처럼 씨를 말려버릴까 하며 빌미를 살피던 다테가는 동군의 동쪽 전선에서 서군의 우에스기가를 괴롭힙니다. 사실 세기가하라전투는 세기가하라에서만 벌어진게 아니고 동서군으로 나뉜 영주들끼리의 다툼으로도 일어났습니다.

 

임진왜란으로 유명한 고니시 유키나카는 문치파였고 서군이었습니다. 히데요시의 친척이던 가토 기요마사는 고니시때문인지는 무단파라 그런건지.. 동군에 서게 됩니다. 

 

일본에서 유명한말은 노부나가가 떡칠방망이를 만들고 히데요시가 떡을 치고 이에야스가 그 떡을 먹었다라는 식의 말이 있답니다.

 

ps쇼군토탈워 확장팩이 지금 몰락으로 나왔는데..

명 청 조선 유구 필리핀의 스페인 이런 세력들이 나오는 확장팩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신장의 야망에서는 주코쿠 2~3개국이 1개지역으로 전락하여 주코쿠지방의 재미가 반감되었는데 쇼군2에선 주코쿠지방이 밀도가 가장높은편이죠.. 다만.. 도호쿠지방의 밀도와 시코쿠의 밀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할까요. 땅따먹는 묘미가 이지역들은 반감되더군요. 또.. 시나노는 북남으로 그대로 나눈데 반해 무역문화의 수혜자 지방이던 주고쿠 규수지방중 규슈지방은 8개지역이긴 하지만3개지역이 더 나왔었음 했었고.. 이키섬과 대마도의 지방영주들도 나왔으면 좀더 재밌는 게임이었을껄 하네요.

엽기적인게 군량미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네요.. 병사들이 성박에 있을때 또 영외 전투하러갈때 소진되는 시스템이라면 불만이 없겠지만.. 건물이 군량미를 잡아먹는 시스템이라 내가 개발은 안한다쳐도 천천히 개발후 땅따먹는 식으로 게임하는 사람에겐 cpu가 다 개발해놓고 지들이 적자로 망하는 ... 또 내가 정복하더라도 군량미 적자보는 시스템엔 정말 실망이 큽니다.  

잡솔 그만할게요.. 그냥 바로바로 쓰고 나중에 글씨만 색깔넣어준 대충글이라 글내용이 오류나 관점이 에러일 경우가 많은 제멋대로 요약글이니 자세한 내용은 제가 전에 쓴 글을 찾아보시면 그건 그대로 정리해놓은 글이니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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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jyni | 작성시간 12.04.03 카게카스의 가로인 나오에 가네쓰쿠를 주인공으로한 천지인이 몇년전에 방영되었죠.
    우에스기가문이 마지막에 정착한 곳이 요네자와번인데, 여기가 원래 다테가의 본거지였죠.
    정확히는 히데요시가 다테에게 빼앗아서 가네쓰쿠에게 준걸 세키가하라이후 다시 주군에게 양도한 형태죠.
  • 작성자배달민족 | 작성시간 12.04.03 저기나오는 가문들이 대부분 관동 출신가문(솔직히 가문이라기 보다는 조폭집단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림)들이라 하더군요....... 겐페이 갓센(源平合戦)이후 겐지씨가 지방에 자기네 사람들로 대량방출
  • 답댓글 작성자★海東天子☆ | 작성시간 12.04.03 솔까말 족보 따지면 겐지와 연결되는 가문이 몇이나 되겠음..-_-;
  • 작성자el5311 | 작성시간 12.04.03 오오 정말 이런글을 찾아왔는데 감사합니다
  • 작성자폼페이우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4.03 리플이 많이 달려 ^^; 기분이 좋네요~ 살짝 내용 추가했는데 자세한 사항을 궁금하시면 ps에 썻던것처럼 제가 썻던글을 찾아보시면 그림은 막혔지만 잘나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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