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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역사촙오 작성시간12.07.04 진이 있는 위수상류에서 관중-하남으로 통하지 않고 황하 상류를 건너서 바로 하북으로 가는 코스는 본디 전략적으로 기피되는 코스인데요. 장평대전도 본디는 조가 가만히 수비만해도 진이 몰리는 것을 조괄이 병신같이 진격해 들어갔기에 생긴 일입니다. 진에서 상당으로해서 조로 통하는 코스는 병참은 긴반면, 취락은 부족하니까요. 염파가 조를 공략한 코스는 삼국지에 비유하자면 마초가 장안을 넘보고 허도를 도모하는 대신 북쪽으로 군대를 돌려서 내몽골서쪽을 통해 업으로 바로 들어가서 화북을 노리는 것쯤에 비유될 만한 일이며, 그쪽으로 쳐발리는 것은 한쪽이 어지간히 병크를 터뜨리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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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raka 작성시간12.07.04 기본적으로 인구 & 영토... 저게 안 되면 아무리 굇수가 설치고 법제가 좋아도 패권국의 반열에 끼질 못합니다. 나머지는 굇수의 유무와 법제의 정비인데, 법제가 정비되지 못하면 굇수가 설칠 환경이 펼쳐지질 못하죠.
춘추시대에는 아직 총력전 체제가 없었고 국가 안에서도 제후와 경대부의 다툼이 치열해 강국이 순식간에 조각나고 엎어지는 경우가 제법 있었습니다만, 전국시대 들어선 후에는 법제의 정비와 중앙 집권화가 차이를 갈랐던 것 같습니다. 오기의 개혁이 실패한 초, 무령왕이 후계 처리 잘못해서 꼬인 조, 먼치킨 신릉군을 갖고서도 활용을 못한 위 같은 나라들이 진보다 총체적인 국력이 떨어지진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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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하스페르츠 작성시간12.07.05 답변들의 핀트가 좀 다른 것 같은데... 그 시대에 국력을 가늠하는데 쓰이는 척도, 그러니까 단위를 물어보신 것 같은데 말이죠. ㅎㅎ
춘추시대에는 전차의 대수인 "승"이 국력을 가늠하는 "단위"로 사용되었습니다. 전차 1대당 졸병이 10~100명(시대별로 좀 다름)이 동원되는 구조죠. 보통 춘추시대 이전의 주나라가 만승지국, 그러니까 명목상으로는 100만 명을 동원할 수 있다고 일컬어졌고, 제후국 중에서도 대국이 천승지국(10만 명)이었습니다. 물론 현실은 시궁창이었지만요.
전국시대에 이르면 승은 단위로 잘 안쓰이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써오던 전통이 있어서 종종 쓰이곤 했습니다. 전국시대의 승은 거의 1승=100명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