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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조선시대때 멧돼지만큼 호랑이가 많았다고하네요

작성자청계천거대쥐전설|작성시간13.02.01|조회수1,564 목록 댓글 27

진도섬에도 대략열마리정도가 100년전에 서식했다고 하네요 아무도 안 믿었는데 1900년대 초엽 진도에서 사냥한 기록이 나오네요

 

우리나라 살만한곳이 못되었데요 호랑이 떄문에 난리가 난데요 서울 시내에도 호랑이 활보하고 쳐내려오고 궁궐에도 몇번이나 내려왔다고 하네요

 

지금 기록보면 우리나라가 임진왜란 이후농경지 개간하면서 호랑이랑 정면충돌했다고하네요 호랑이는 산에서 쳐벅혀 사는 놈들이 아니라 사실은 습지대 분지 나즈막한 야산 요런데 사는 놈들인데 억지로 산으로 쫒겨가서 막판에서 섬까지 헤엄쳐간다고하네요

 

조선전기까지만 상주 이런데가 발전했는 이유가 습지개발을 못했는데 중선중기이후에 미친듯이 개간해서 호랑들이 내몰린거래요 그래서 호환을 일으켰다고하네요

 

 영정조시대떄는 호랑이가 사람을 하도 물어가서 마을이 해체될 지경에 이른곳도 있었다고 그 이후로 엄청나게 잡아서 고종때에 이를러서 거의 보기 드물어졌고 일제시대떄 역으로 총포사용금지했더니 호랑이 늑대 창궐해서 순사잡아먹고해서 부략부략 포수고용해서 집단사냥해고요 그리고 독립군들 상당수가 호랑이 포수꾼들 출신이래요 일본놈들이 총포사용금지에 여기에 분개해서 의병전쟁참가한분들도 꽤있다고 하네요 대표적으로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부대가 죄다 호랑이사냥꾼 포수꾼이라고하네요 ㄷㄷㄷㄷㄷㄷㄷㄷ

 

여튼 우리나라는 호랑이에 대한 트리우마가 상당해요 고종시때조차 진도섬에도 호랑이가 서식한다는 사실이 ㄷㄷㄷ 최대 열마리가 진도 섬에만해도 이정도니 경상도는 호환천지래요 호환무덤이 호식총도 아직까지 산 곳곳에 남아있다는게 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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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블라디미르 대공 | 작성시간 13.02.03 참. 지금에 와서 민족 감정 내세워서 일제가 호랑이 박멸했다고 욕하고 백두산 호랑이 기상이니 뭐니 헛소리 하는 사람들은 그 시절에 살아보면 절대 그런 말이 안나오겠죠. 당장에 옆집에 사나운 맹견이 목줄만 풀려도 거품물고 항의할 사람들이...

    이 좁은 땅덩이에 그렇게 많은 상위 포식자가 우글거리면서 인간과 공존을 했으니... 1913년인가 총독부 통계보면 늑대에게 물려간 사람만 113명이었던가. 그것도 공식적인 기록이니 비공식으로 따지면...
  • 답댓글 작성자드미트리대공 | 작성시간 13.02.06 근데 의외로 여우도 아기들을 물고 갔다는.....밭을 메려고 잠깐 아이를 두었는데 여우가 아이를 물고 10리나 도망갔지만 추격해서 아이를 찾아온적이 있답니다....그 아이가 우리 막내 외삼촌.....
  • 답댓글 작성자블라디미르 대공 | 작성시간 13.02.06 여우가 아이를 물고가기엔 너무 작지 않나요? 늑대와 혼동한건 아닌지. 여우는 크기가 딱 너구리 정도 밖에 안되거든요. 대신 늑대(순수 한국산 아종)는 다른 늑대와는 달리 매우 작은 편인데, 갓난아이를 물어간 사례가 아주 허다하죠.
  • 답댓글 작성자드미트리대공 | 작성시간 13.02.06 저도 의외여서 재차 물어봤죠 여우 맞았냐고, 근데 하시는 말씀이 자기 몸집하고 비슷한 크기도 거뜬히 물고다닌다네요......
  • 답댓글 작성자블라디미르 대공 | 작성시간 13.02.06 오. 놀랍군요. -_-;;;; 전래동화에 여우가 무서운 동물들 중 하나로 나오는 이유가 있었군요. 검색해보니 붉은 여우는 몸길이가 70cm나 되네요. 물론 체중은 6~9킬로로 가볍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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