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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주필산전투의 의문. 당군의 나머지 병력은 어디갔어?

작성자고구려이야기|작성시간13.02.02|조회수1,554 목록 댓글 29

주필산전투에서 보면 고구려군 15만이라 나와있지만 이들이 다 전투병이 아니라 보급병을 포함한다고 하면 실제로 전장에 참여한 병력은 6~7만 정도 되었을 겁니다. 사상자가 1만이고 이후 항복병이 3만 6천, 도주한 병사까지 합치면 약 6~7만 정도겠죠.

그런데 이와 맞선 당군의 숫자는 정말 아리송합니다.

 

장손무기군

1만 1천

 

이세적군

1만 5천

 

당태종 중군

4천

 

당시 당나라 군대가 아무리 적은 수로 쳐들어왔다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합쳐서 3만밖에 안되는 군사로 7만이나 되는 고구려군을 상대하는 건 당태종이 허파에 바람이 심하게 들어 '나는 한니발의 환생이다!'라고 생각하던가 아니면 극도의 짜릿함을 즐기는 변태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거점방어작전을 수행한 이세적군과 후방기습을 수행한 장손무기군, 그리고 주필산에 올라서 팝콘 씹으면서 전투 상황 감상하고 있었던 당태종 중군 외에 나머지 당나라군은 어디있었을까요?

제가 확실히 아는지는 모르겠지만-당시 당나라군은 7군 편제, 육화진법을 따르고 있었으며 이때 중군을 다른 6군이 보호하는 형태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석적인 편제에서 중군은 4천이고 총 군사는 2만이죠.

당태종이 주필산에 끌고올라간 중군이 4천이란 것을 봐서 당군이 정말 정석편제를 따랐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 편제대로 보면 당군 총 병력은 2만이고 이는 말도 안되니까 아마 우군 후군 좌군 전군 등을 적절히 증가시켰을 것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그렇다 치고, 중군은 4천이고 나머지 6군중 이세적군을 제외한 나머지 군대는 어디 있을까요? 장손무기군을 7군 편제의 일원으로 봐도 중군, 장손무기군, 이세적군을 제외한 4군의 존재가 애매합니다.

설마 이들이 이세적군이 고구려군에게 삼면포위되어서 열심히 후드려맞는동안 멀뚱멀뚱 감상만 하고 있었을까요?

 

 '고구려가 주필산에서도 캐발리고 전체적으로 당나라 사상자 고당전쟁에서 2천명밖에 안됬음 ㅋ' 이라고 해놓은 자치통감을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가열차게 까면서 인용한 유공권의 소설(현대에서 말하는 소설개념은 아니라 합니다)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유공권(柳公權)의 소설에서는 "주필산전투(駐必山戰鬪)에서 고구려가 말갈과 더불어 군사를 합하니 그 군사가 40리나 뻗쳤으므로 태종이 바라보고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었다."고 했으며, 또 "황제가 친솔한 6군이 고구려 군사에게 제압되어 거의 위축되어 있을 때 척후병이 영공(瑩公; 李世勣)이 거느린 흑기군(黑騎軍)이 포위되었다고 고하니 황제가 크게 성을 냈다."고 했다. 비록 나중에 몸은 탈출했으나 그와 같이 겁을 냈는데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와 사마광(史馬光)의 통감(通鑑)에 이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자기 나라의 치욕을 감추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간단히 황제 6군이 고구려군 웃음꺼리가 되어 두들겨 맞고 있자 이세민이 '지금 이세적군 뭐함?'이라 묻자 척후가 '포위되어서 두들겨맞고 있습니다'라고 하자 당태종이 '이런 망할!'했다는 거죠.

 

음 확실히 전적으로 믿을만한 사료는 아니지만 일단 주필산전투에 6군이 참여했다는 점은 어느정도 사실인 듯 한데,

이들이 고구려군에게 전 전선에 걸쳐서 밀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군요.

 

그런데 자치통감 등의 중국 사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통해 본 주필산전투 전개과정은 이렇습니다.

 

 

 

 

 

고증따윈 개나줘버린 엉터리 지형입니다

 

 

대충 참전 병력과 부대 배치. 장손무기군은 고구려군 눈에 안보입니다

 

고구려군이 이세적군 병력 적은거보고 이세적군을 노림. 장손무기군은 몰래 협곡 따라 우회.

당태종은 팝콘씹으며 주필산에서 전투 감상.

 

장손무기군이 고구려군 뒤로 돌아오자 당태종 중군에서 호각불고 쌩난리를 침.

고구려군 약간 당황. 그리고 당태종 중군이 고구려군 측면 공격 시작. 장손무기군에 신경 못쓰는도중

장손무기군은 열심히 고구려군 뒤로 기동

 

 

 

고구려군 장손무기군 보고 깜놀. 

                           병력 3개로 나누어 당태종군 장손무기군 상대하려 했다가 결국 개판되고 포위. 망함.

 

 

대충 이렇습니다.

그런데 일단 이렇게 되면 당태종은 3만으로 7만을 공격해 이겼단 것이 되고,

처음부터 돌궐기병을 이용해 유인작전을 펼치는 등을 한것을 보아 아예 3만으로 7만 상대해 보겠다! 라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태종이 실제로 이런 미친짓을 벌이진 않았을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당나라군 병력배치는 어땠을까?

 

 

유추하기 어렵고 또 사료도 없지만 그냥 허접하게 제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

우선 당태종은 중군 4천을 이끌고 올라간것은 맞지만 기타 군대들도 끌고 주필산위로 올라갑니다.

아마 이때 주필산 위에 있었던 당태종의 병력은 대략 4만 정도였을 겁니다.

 

 

당태종의 전략은 이렇습니다. "고구려군은 필시 수가 적은 이세적군을 노릴것임. 그리고 이세적군은 고구려군을 맞아싸워서 장손무기군이 고구려군 배후에 돌아올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면 됨. 그때가 되면 주필산 위에 진치고 있는 주력인 나의 군대와  함께 고구려군을 삼면 포위 한다"는 골자의 전술이죠. 보기엔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됩니다.

 

고구려군 7만이 무지막지한 기세로 돌격해오고, 이세적군과 고구려군 전위가 마침내 교전에 들어갑니다.

이때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이세적군은 고구려군 전위의 공세에 좀 밀립니다.

그리고 당태종은 느긋하게 주필산 위에서 홍차 한잔하며 싸움 전개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나 갑자기 뜬금없이 말갈기병 5천이 이세적군을 향해 달려가는척 하더니 급격히 방향을 틀어 주필산에 있는 당태종의 본진으로 짓쳐들어옵니다

(이건 당태종이 전투 끝나고 '말갈 너네가 감히 황제 진을 범하다니 니들 다 생매장임'이라 한 거에 대해 생각해본 것입니다. 말갈기병이 당태종의 진을 범했던 게 사실이라면, 적어도 중국측 사서의 기록에서 그러한 정황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당태종군은 장손무기군이 도착한 뒤에야 자신의 군대에 공격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미 그때는 사실상 당군이 승기를 잡았을 상황이고 말갈이 진을 범할 기회는 없었을 겁니다.)

선봉대인 말갈기병을 뒷따라 수만에 달하는 고구려군 후위가 대량으로 흙먼지를 일으키며 주필산으로 달려옵니다.

 

 

(대충 이러지 않았을까~라는 망상입니다)

 

당태종군은 크게 당황하고 (고구려군이 부대를 죄다 이세적군 공격에 투입할줄 알았지 자기에게 달려올줄은 몰랐겠죠) 말갈기병의 급습에 사기가 떨어져 당태종군이 갑자기 서서히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어 맹렬하게 고구려군 후위가 짓쳐들어오죠.

전 전선에 걸쳐 당나라군이 밀립니다.

당태종은 이때 '고구려군 본진이 혹시 이세적군 포기하고 나에게 덤벼드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척후를 보내 이세적군의 상황을 묻습니다.

만일 이세적군이 쌩쌩하다면 고구려군 측면을 쳐서 당태종군에 가해지는 압력을 좀 줄여볼 요량이었겠죠.

근데 고구려군 전위에 의해 이세적군이 포위되었단 말을 듣고 입에 거품을 뭅니다.

이대로 가다간 그냥 다 망할 상황이었죠.

 

이때 장손무기군이 고구려군 뒤쪽에 도착하자 당태종은 급히 호각과 기치를 들어 이쪽으로 와서 황제좀 도우라고 합니다.

이때 고연수는 실책을 범해 고구려군 후위의 방향을 돌려 장손무기군을 향해 공세를 하려 하는데 이때 혼선이 빚어지면서 고구려군 부대편제가 이리저리 뒤섞입니다. 아무래도 한창 주필산으로 신나게 쳐들어가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도중이었으니 단숨에 방향전환하는 것은 심각하게 무리였겠죠.

그리고 말갈기병은 너무 깊이 들어가서 방향 전환이 불가능해서 그대로 포로.

삼선짬뽕마냥 부대편제가 뭉그러져서 노수와 궁수, 부월수와 기병 등등이 이러저리 뒤섞인 고구려군은 앞뒤에서 장손무기군과 태종군의 공세를 맞고 그대로 붕괴. 고연수는 튑니다.

이세적군 몰아붙이던 고구려군은 이거보고 가우가멜라에서 다리우스 도망가는 거 본 페르시아군마냥 헐ㅋ 하면서 그냥 튀어버립니다.

 

 

음 나름 생각해 봤는데 너무 고구려에 유리하게 썼군요.

그래도 이렇게 안 하면 도저히 전투에 참여안한 나머지 5군(장손무기군을 7군편제의 일원으로 치면 4군)의 존재를 설명 못할것 같습니다.

다른분들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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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고구려이야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2.03 당장 패한 병력을 가지고 퇴로를 뚫는 것은 그리 현명한 행동이 아니라 보이는데요. 언제 당군이 추격해올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먼 거리를 행군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게다가 고연수군은 선봉대이며 후발대와 꽤나 거리가 떨어져있는 상황이 아닌가요?
    안시성에는 들어갈수가 없고요.
    사실상 고립 상태에서 취한 제대로 된 판단으로 보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유문기 | 작성시간 13.02.03 우선은 신당서나 자치통감이나 삼국사기나 구당서나 퇴로를 열어주었다, 포위망이 약했다라는 기사는 없습니다. 장손무기의 공격 때문에 병력을 나누어 방어하려다가 제대로 하지 못하고 3만명이 죽은 것으로 되어 있지요. 애초에 퇴로가 뚫려있다면 3만명이나 죽고 3만 6천명이 항복하는 그런 사태가 벌어질 수 없지요.
  • 작성자Dondegiri | 작성시간 13.02.03 제가 보기엔 숫자가 문제라기 보다는 김부식도 지적했듯이 중국측 사서가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는지가 문제겠죠. 주필산 싸움도 그렇고, 1차 여당전쟁의 당 진격도 중국측이나 삼국사기에 곧대로 기록된 것처럼 수월하고 당의 연승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라 추측만 하고 있는데 지금은 딱히 뒷받침할만한 사료가 없습니다;

    다만 김부식이 사론을 단 것과 지금껏 군을 쪼개고 파죽지세로 전격전을 펼치던 당군이 안시성 싸움을 앞두고는 신성을 함락하지 못했다며 신중해 하는 부분을 보아 아마 당군 본대도 주필산 싸움에서 만만찮은 피해를 입었고, 신성을 압박하고 공격하던 당군도 공격에 힘을 잃었다고 볼수 있지 않겠습니까?
  • 답댓글 작성자Dondegiri | 작성시간 13.02.03 그러니까 사족을 다시 풀어 말해서 애초에 당군에 택한 전략은 요동방어선을 일시에 공격해 성을 함락시키거나 (신성의 경우처럼) 고립시키거나 해서 요동성-안시성-건안성-평양 이런 식으로 일종의 통로(Corridor)를 만들어 돌파를 꾀했던 것이라는 것을 본다면, 당군이 요동 상류의 신성이 지키는 수월한 길로 철수하지 않고 요택을 통해 철수한 건 그때까지 신성이 당시 동진하던 당군에게 만만찮은 위협을 가해 당군의 통로가 열려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신성을 공격하던 당군이 반격으로 인해 요하 하류까지 무너져 내렸을 가능성도 있겠죠. 애초에 사서에 나온 당군 숫자는 상대적으로 좀 적은 편이니까요..
  • 작성자Dondegiri | 작성시간 13.02.03 덧붙여서 서영교 교수는 여당전쟁에 대해 쓸때 전당문(全唐文)을 자주 인용하던데 이거이 이너넷에서는 구할 길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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