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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고구려이야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2.02 뭐 대충 이런 기사였던 것으로 아는데... "동쪽 계곡으로 나와 길이 합쳐지는 곳에서 적의 뒤쪽을 막아 그 목을 잡되 그 귀로를 좀 틔어 줘라."
어딘지 기억이 안나네요. 전당문인가?
그리고 통주 전투에서도 고려군 30만이 성종군과 회전벌일때 10%에 불과한 3만이 전사했는데도 전투불능 되어서 뿔뿔히 흩어진 거 보면 군대의 절반만 피해가 생기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은 됩니다. 통주전투땐 중군이 돌파되었고 사령관이 사로잡히는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뒤에 고려 요새가 있어서인지 요군이 추격전을 열심히 벌이지 않아 사상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작성자 Dondegiri 작성시간13.02.03 제가 보기엔 숫자가 문제라기 보다는 김부식도 지적했듯이 중국측 사서가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는지가 문제겠죠. 주필산 싸움도 그렇고, 1차 여당전쟁의 당 진격도 중국측이나 삼국사기에 곧대로 기록된 것처럼 수월하고 당의 연승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라 추측만 하고 있는데 지금은 딱히 뒷받침할만한 사료가 없습니다;
다만 김부식이 사론을 단 것과 지금껏 군을 쪼개고 파죽지세로 전격전을 펼치던 당군이 안시성 싸움을 앞두고는 신성을 함락하지 못했다며 신중해 하는 부분을 보아 아마 당군 본대도 주필산 싸움에서 만만찮은 피해를 입었고, 신성을 압박하고 공격하던 당군도 공격에 힘을 잃었다고 볼수 있지 않겠습니까? -
답댓글 작성자 Dondegiri 작성시간13.02.03 그러니까 사족을 다시 풀어 말해서 애초에 당군에 택한 전략은 요동방어선을 일시에 공격해 성을 함락시키거나 (신성의 경우처럼) 고립시키거나 해서 요동성-안시성-건안성-평양 이런 식으로 일종의 통로(Corridor)를 만들어 돌파를 꾀했던 것이라는 것을 본다면, 당군이 요동 상류의 신성이 지키는 수월한 길로 철수하지 않고 요택을 통해 철수한 건 그때까지 신성이 당시 동진하던 당군에게 만만찮은 위협을 가해 당군의 통로가 열려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신성을 공격하던 당군이 반격으로 인해 요하 하류까지 무너져 내렸을 가능성도 있겠죠. 애초에 사서에 나온 당군 숫자는 상대적으로 좀 적은 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