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나라 마지막 충신 위연, 그러나 역사의 장난으로 반역자가 되버린 비운의 충신.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주인을 위해 죽는다. 반평생 중원을 떠돌아 주군을 만났고,이제 그를 위해 죽는다. 후회가 있을게 무엇이고, 미망이 있을게 무엇이것냐만은, 허도의 흙을 주군의 토봉에 뿌리지 못하고 가야하는 것이 진정 아프다. - 위문장(文長) -
위연에 대해서 명예 회복을 시켜주자는 중국 사학자들을 의견이 드디어 위연은 촉나라를 배반한 역적에서 촉의 충신으로 다시 올려놓았습니다.네이버 지식인을 비롯한 많은 인터넷 자료와 책등에서 배반자로 몰리고사람들에게 욕을 얻어먹은 위연 그는 진정한 충신 이었습니다.....
위연 자는 문장(文長) 그는 배반자가 아니었습니다. 촉나라 유비에 대한 충성과 그에 대한 동경으로 젊은 시절 죽을 뻔했었고 촉나라 유비의 명을 지켜 위나라를 토벌하려고 끝까지 추진하다가 억울하게 마대의 급습에 당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맹장이었습니다. 그의 얼굴이 반골의 상이라고 하여 위연을 경계했던 제갈량. 어디를 보아 위연의 반골의 상이란 말일까요? 다른 이와는 달리 제갈량이 잘못한 점은 지적하고 언제나 제갈량의 의견에 반대할 줄 아는 그런 용기를 가진 인물. 촉나라엔 관우,장비를 제외하고는 그리고 유비가 죽은 후로는 위연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제갈량과 같이 북벌을 할때 장안을 급습하자는 자오곡 계책을 안전을 중시한 병법만을 구사하는 제갈량이 이용하였더라면 위나라의 수도 장안을 점령하고 촉나라가 삼국을 통일했을 것을.....
유비가 젊어서 조조에게 쫓겨 올 때 유장의 처남 채모가 받아주지 않아유비와 그의 군사 백성이 죽을 위기에 놓이자 성안에서 분연히 채모 일당과 싸웠던 그러나 패하고 도망친 젊은 무장 후에 황충을 그의 군주가 죽이려 하자 황충을 감싸고 싸워 황충을 살린 위연 그가 정말 비겁한 성격의 소유자 인지.....
어떻게 보면 라이벌 의식을 느껴 관우를 사지의 땅 형주로 보내 위나라와 오나라를 견재하라고 하면서 죽기를 바란 제갈량을 비웃듯 언제나 제갈량에게 도전하고 핀잔도 주었던 그가 제갈량이 싫어했다고 제갈량을 반대했다고 그가 촉나라를 반역한 역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군대를 일으킨 것은 문관인 양의가 총 사령관이 되어봤자 용병술이 없기에 북벌을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 합리적인 판단이었으며 이에서 비롯된 지휘권을 다시 재탈환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반역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위연이 반역자라고 몰아부치고 위연을 죽이게 한 양의는 곧 자신이 승상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비위가 그 자리에 오르자 위나라에 갔으면 이런 푸대접을 받지는 않았을거라 말했으니 진정한 역적은 양의라 그는 곳 그의 나쁜 심성 때문에 촉황제 유선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다가 벼슬만 박탈당하고 또 그사실에 부끄러워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위연 그가 남겼던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주인을 위해 죽는다. 반평생 중원을 떠돌아 주군을 만났고,이제 그를 위해 죽는다. 후회가 있을게 무엇이고, 미망이 있을게 무엇이것냐만은, 허도의 흙을 주군의 토봉에 뿌리지 못하고 가야하는 것이 진정 아프다.
이 어찌 제갈량의 출사표만 못한 말이란 말입니까? 이 말이 촉나라를 배반한 자가 할 수 있는 말입니까? 그의 평생동안 간직한 주군 유비에 대한 충정 그리고 삼국을 평정한 그의 용맹 그리고 의를 위해서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분연히 일어섰던 촉나라 한중태수 위문장 그는 정령 촉나라를 끝까지 지키려했던 유비의 대업을 이어받아 삼국을 통일하려 했던 장군 그러나 끝내 모함을 받아 역적의 누명을 받아 슬픈 죽음을 맞이한 현대의 롬멜과 같은 장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진정한 충성은 잘못된 것에 굴하지 않는 용기를 가진 것이다.
그에대한 재평가 부탁합니다. -출저 naver지식in-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주인을 위해 죽는다. 반평생 중원을 떠돌아 주군을 만났고,이제 그를 위해 죽는다. 후회가 있을게 무엇이고, 미망이 있을게 무엇이것냐만은, 허도의 흙을 주군의 토봉에 뿌리지 못하고 가야하는 것이 진정 아프다. - 위문장(文長) -
위연에 대해서 명예 회복을 시켜주자는 중국 사학자들을 의견이 드디어 위연은 촉나라를 배반한 역적에서 촉의 충신으로 다시 올려놓았습니다.네이버 지식인을 비롯한 많은 인터넷 자료와 책등에서 배반자로 몰리고사람들에게 욕을 얻어먹은 위연 그는 진정한 충신 이었습니다.....
위연 자는 문장(文長) 그는 배반자가 아니었습니다. 촉나라 유비에 대한 충성과 그에 대한 동경으로 젊은 시절 죽을 뻔했었고 촉나라 유비의 명을 지켜 위나라를 토벌하려고 끝까지 추진하다가 억울하게 마대의 급습에 당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맹장이었습니다. 그의 얼굴이 반골의 상이라고 하여 위연을 경계했던 제갈량. 어디를 보아 위연의 반골의 상이란 말일까요? 다른 이와는 달리 제갈량이 잘못한 점은 지적하고 언제나 제갈량의 의견에 반대할 줄 아는 그런 용기를 가진 인물. 촉나라엔 관우,장비를 제외하고는 그리고 유비가 죽은 후로는 위연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제갈량과 같이 북벌을 할때 장안을 급습하자는 자오곡 계책을 안전을 중시한 병법만을 구사하는 제갈량이 이용하였더라면 위나라의 수도 장안을 점령하고 촉나라가 삼국을 통일했을 것을.....
유비가 젊어서 조조에게 쫓겨 올 때 유장의 처남 채모가 받아주지 않아유비와 그의 군사 백성이 죽을 위기에 놓이자 성안에서 분연히 채모 일당과 싸웠던 그러나 패하고 도망친 젊은 무장 후에 황충을 그의 군주가 죽이려 하자 황충을 감싸고 싸워 황충을 살린 위연 그가 정말 비겁한 성격의 소유자 인지.....
어떻게 보면 라이벌 의식을 느껴 관우를 사지의 땅 형주로 보내 위나라와 오나라를 견재하라고 하면서 죽기를 바란 제갈량을 비웃듯 언제나 제갈량에게 도전하고 핀잔도 주었던 그가 제갈량이 싫어했다고 제갈량을 반대했다고 그가 촉나라를 반역한 역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군대를 일으킨 것은 문관인 양의가 총 사령관이 되어봤자 용병술이 없기에 북벌을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 합리적인 판단이었으며 이에서 비롯된 지휘권을 다시 재탈환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반역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위연이 반역자라고 몰아부치고 위연을 죽이게 한 양의는 곧 자신이 승상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비위가 그 자리에 오르자 위나라에 갔으면 이런 푸대접을 받지는 않았을거라 말했으니 진정한 역적은 양의라 그는 곳 그의 나쁜 심성 때문에 촉황제 유선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다가 벼슬만 박탈당하고 또 그사실에 부끄러워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위연 그가 남겼던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주인을 위해 죽는다. 반평생 중원을 떠돌아 주군을 만났고,이제 그를 위해 죽는다. 후회가 있을게 무엇이고, 미망이 있을게 무엇이것냐만은, 허도의 흙을 주군의 토봉에 뿌리지 못하고 가야하는 것이 진정 아프다.
이 어찌 제갈량의 출사표만 못한 말이란 말입니까? 이 말이 촉나라를 배반한 자가 할 수 있는 말입니까? 그의 평생동안 간직한 주군 유비에 대한 충정 그리고 삼국을 평정한 그의 용맹 그리고 의를 위해서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분연히 일어섰던 촉나라 한중태수 위문장 그는 정령 촉나라를 끝까지 지키려했던 유비의 대업을 이어받아 삼국을 통일하려 했던 장군 그러나 끝내 모함을 받아 역적의 누명을 받아 슬픈 죽음을 맞이한 현대의 롬멜과 같은 장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진정한 충성은 잘못된 것에 굴하지 않는 용기를 가진 것이다.
그에대한 재평가 부탁합니다. -출저 naver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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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나기 작성시간 04.07.22 관우는 219년에 유비가 한중왕이 된 후 오나라의 여몽에게 죽습니다. 법정은 219년에 유비가 한중왕이 되는 결정적인 기여를 한 정군산 전투에서 황충과 함께 가장 큰 공을 세웁니다. 정군산 전투의 승리로 인해 촉의 북쪽 경계가 안정감을 가지게 되고 조조는 요충지인 한중을 잃게되고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입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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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나기 작성시간 04.07.22 촉나라 전체의 입장에서는 한중이나 형주나 모두 중요한 곳입니다. 제갈량의 관우 견제는 사실이겠지만 그런 알력다툼은 어느 정치집단에서나 공통적으로 생기는 문제입니다. 처음부터 유비의 촉 공략전 초기에 방통이 죽지 않았다면 제갈량이 중심에서 유비를 보좌하고 법정이나 방통이 각각 한중이나 형주방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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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나기 작성시간 04.07.22 책임질 수 있었다면 유비에게는 정말 가장 좋은 일이었겠지만, 방통이 죽은 후에 인재배분을 그리 할 수 밖에 없었던 제갈량에게 관우의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책임이 있다는 논리는 방통을 처음부터 계산에 넣지않는 너무 심한 비약입니다. 연의에서 제갈량의 능력을 과대포장한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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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나기 작성시간 04.07.22 하지만 연의에 나오는 제갈량의 능력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관우가 형주에서 허무하게 죽었다면 형주공략을 위해서 그리 공을 들인 여몽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해야 된다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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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멀티하고파ㅜ.ㅠ 작성시간 04.07.23 그것보다는 삼국지연의의 모든 내용을 그대로 믿어버린다는 것에 함정이 있지 않을까요? 마카오에서 온 제 중국인 친구는 관우가 사실 지략이 밝지 않는 장비 스타일의 장수였을 거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