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위화도회군때의 요동정벌은 갔다가는 다 전멸이었다고 이야기들을 하지요. 실제로 원정군이 개경에서 출발해서 느릿느릿 가고 있을때 남옥이 북원에서 한창 승리하고 있기도 해서 갔다가는 정말로 떼죽음을 당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후 정도전의 요동정벌에 대해서는 일단 공격은 성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있더군요. 영락제가 즉위 이후 그냥 안뒀을것이다 라는 의견은 지배적이기는 한데, 단기적으로 당시 전투가 벌어졌을 때에는 위화도 회군때와는 다르게 조선의 단기 점거가 일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긴 한 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의견에 매우 회의적입니다.
조선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이 주로 미는 것 중에하나가 홍무제의 건강악화와 대숙청으로 인하여 신경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막연히 이야기들을 하는데(드라마 정도전에서도 언급이 되지요)
홍무제가 한창 내부단속에 집중하고 있기는 했지만, 결코 조선 단속에 신경 안 쓰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영락제 시기처럼 대놓고 확장정책을 펴지는 않았지만 여진 부락과 조선의 통교에 대해서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면서 조선을 견제 하면서 대외 정보수집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선 군의 숫자에 대해서도 매우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군적(軍籍)을 만들어 올리게 되니, 경기 좌우도와 양광도 ·경상도·전라도·서해도(西海道)·교주도(交州道)·강릉도(江陵道) 등 8도에 마병(馬兵)·보병(步兵)과 기선군(騎船軍)이 합계 20만 8백여 명이고, 자제들과 향리(鄕吏)·역리(驛吏)와 여러 유역자(有役者)가 10만 5백여 명이었다.
태조실록 3권, 태조 2년 5월 26일 庚午 3번째기사 1393년 명 홍무(洪武) 26년
이게 조선이 개국한지 얼마안되어서 전체 군사를 점고한 수인데, 다 모으면 20만 정도가 된다고 하지요, 근데 2년뒤 명나라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近者高麗表奏,言多不實,朕已命有司究之.聞彼自國中至鴨綠江,凡衝要處,所儲軍粮每驛有一萬,二萬石,或七,八萬,十数萬石.東寧女直皆使人誘之入境,此其意必有深謀.朕觀高麗自古常與中國爭戰,昔漢唐時遼東地方皆為所有,直抵永平之境;恃遠不臣,時時弄兵,自古無狀如此......使高麗出二十萬人以相驚,諸軍何以應之.今營繕造作暫宜停止,且令立營屋以居,十年之後再為之.古人有言:人勞乃易亂之源,深可念也.
....근자에 고려(조선)이 표를 올려 주청하였는데, 말은 많으나 실체가 없어, 짐이 이미 관청에서 처리하게 하였다. 듣기로 그들(조선)은 나라안에서 압록강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충한 곳에, 매 역마다 저축한 군량이 1만, 2만석, 혹은 7,8만, 수십만석이라 한다. 동녕여진에 대해서도 모두 사람을 시켜 꾀어서 입경하니, 이는 그 뜻에 반드시 깊은 음모가 있는 것이다. 짐이 보기에 고려(조선)은 예전부터 항상 중국과 싸웠고, 예전에 한, 당때에는 요동지방을 소유했으니, 곧 영평의 경계에 해당한다. (조선은) 먼 것을 믿고 신복하지 않으며, 때때로 군사를 움직이니, 자고로 함부로 구는 것이 이와 같다..... 고려(조선)으로 하여금 20만명이 나오게 하여 서로 놀라게 되면, 모든 군사는 어떻게 대응 할 것인가?
지금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은 잠시 멈추고, 마땅히 영옥을 새워 거하게 하고, 10년 뒤에나 다시 이르라. 옛 사람이 말하기를:"사람의 노고는 난이 쉬워지는 근원이라, 깊이 생각하여야 한다" 고 하였다.
太祖高皇帝實錄 卷二百三十八 洪武二十八年 四月 八日 2번째기사 1395년
명실록의 내용은 조선이 쳐들어 올 수도 있으니까 요동에 왕궁을 짓는 건 멈추라는 건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20만이라는 숫자죠.
10만도 아니고 어떻게 '20만' 이라는 숫자가 나왔을까요? 명나라도 위화도 회군의 일을 알고 있었기에 그 정도 군세를 생각하고 5만이건 10만이건 언급했다고 한다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쉽게 넘어갈 수 있지만, 조선이 군사 점고 하고 난 뒤, 그리고 조선과 마찰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에 조선이 점고한 수 20만이라는 숫자가 나왔다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서 조선군 숫자까지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예측할 수 있으면 뭐다? 판찬님 표현을 빌리자면 통제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죠.
만약 조선군이 북벌했다면 아마 명나라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통제' 되었을 가능성이 아주아주 높았을 거라고 예측합니다.(애초에 20만이 다 갈 수도 없고). 물론 치열한 전투가 전개 되었을 가능성은 있는데, 드라마같은데서 나온 것 처럼 빠르게 요양의 도지휘사를 점거하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거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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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배달의 민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2.03.09 조선 : 이성계 건강 문제 없음 왕자의 난 일어나지 않음. 명나라 : 홍무제 사망 후 주체와의 건문제 내전 발생으로 요동군이 상당수 강남쪽으로 투입
이런 상황을 가정한다면 요양 도지휘사 일시 점거 정도는 가능하긴 했겠죠 ㅎㅎ 물론 뒷 감당은......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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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도시의유목민 작성시간 22.03.09 배달의 민족 그런데 만약... 그 조건에서 연왕주체가 패하고 건문제가 승리했는데 양패구상격으로 피해가 심대하고 건문제가 지방군벌에 대해 불신이 심해졌(이괄의 난 이후 인조 처럼)다면...??!!!!!
If 격이긴 해도.. 이러면 고씨 고려처럼 방어라인 형성할 시간 벌어줄것도 같은데 말이죠오...
명 수도가 남경이면 수도 방어 필요하다고 요동에 매달리지도 않을테니..
게다가 명이 요동을 점유한 이후 에도 한동안은 요동을 한족의 고유영역으로 여기지 않고 거기 사는 사람들도 고려의 별종이다 운운하는거 보면... 흠...
원정올래도 북경에서 오는것과 장안에서 오는것 남경에서 출발하는거 생각하면.. 원정 리스크도 더더욱 커질테고요..
갠적으로 요동지배 100년이면 방어라인 형성하고 행정체계 도입하는데에는 충분하다고 봅니다아...
뭐.. 그렇게 됬다면 세종대왕이 즉위하셨어도 그 풍성한 문화유산은 구경하기 힘들었을테지만요... 한글은 혼자만드신거니 있었을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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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배달의 민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2.03.09 도시의유목민 근데 제 if 상황이면 세자 방석이 안정적으로 왕위 승계하는 거라서 아마 충녕대군이 왕이 못 될..... ㅜㅜ 그럼 한글은 충녕대군 신분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보급이 안 되었을 가능성이 높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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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무장공비 작성시간 22.03.09 단기점령은 가능해도 의미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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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로봇비행기 작성시간 22.03.17 현재 우리 군사력으로 중국의 요동 정벌 가능할 까요???
미국의 군사위성의 도움을 받아 f-35로 중국의 핵시설을 선제 타격해서 제압하고....... 60만 국군 중 10만은 북한군 제압하고 10만은 일본의 침략 방어하고 40만 국군으로 중국의 랴오닝(요동) 정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