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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 멸망사 1. 강유 부각의 정치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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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벌써 반년여가 되가는 이전 글에서 우리는 간단히 한중막부가 어떻게 성립되었고, 통치의 주체는 누구인가에 대해 간단히 둘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보정대신'인 '나라의 제일가는 신하'가 막부를 세우고, 이를 통해 명목상의 주권자인 황제 대신 통치권을 행사하는 일은 후한 정치판에서 아주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조조가 한나라의 안에 위나라를 세워 한나라를 장악하고 통치하였듯이 제갈량은 촉나라의 안에 막부를 세워 촉의 제2 중심지인 한중과, 성도 인근 수도권, 우리로 따지면 인천+경기도 입지인 부현을 장악함으로써 촉을 통치한 것이지요. 조조와 제갈량을 동치시킨 점에 대해 당혹감 내지는, 좀 더 강한 감정인 불쾌감을 느낄 분이 계시겠습니다만은, 어쨌건 실제로 일어난 일은 그러하였습니다.
2. 앞선 글에서 살펴보았듯 한중 막부는 유비 휘하의 형주 출신 호족들이 주축이 되었습니다. 촉은 익주에 성립된 정권인데 왜 익주 출신이 배제되냐면, 그거야 당연하지요. 촉 자체가 유비라는 외래인이 외래 군사력을 끌고 들어와 익주인들을 쳐죽이며, 그 시체 위에 일궈낸 외래인 정권이니까요. 익주인들에게 윗자리를 내주자니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전 글에서 사용한 표를 다시 가져와 봅시다.
제갈량이 이엄을 실각시킬 때 이에 찬동한 인물들의 명단입니다. 군 지휘권을 가지고 북벌에 참여한 지휘관들이라 볼 수 있고, 이를 다시 러프하게 바꿔말하자면, 우리가 가진 정보 중 촉의 중앙군 지휘관 전체 명단에 가장 가까운 자료입니다. 이 중 익주 대성호족이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인물은 단 두명 뿐이고, 그나마도 한 명은 남중의 깡촌인 건령군 출신이지요. 나머지 한 명인 두의는 익주 호족이 아닐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즉 군 지휘권, 특히 상급 지휘권에서 기존 익주 세력의 배제가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3. 아니 뭐, 불명이라고 써넣은 사람들이 다 익주 출신일지도 모르지 않느냐, 라고 질문하실 수 있지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성은 익주 대성호족을 기록한 화양국지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 성입니다. 대성호족은 지역에서 가장 힘있는 호족들이라고 읽어 주시면 되는데, 촉은 북벌이라는 거대한 군사사업에 나서면서 이렇게 '힘 센 호족'들에게는 전혀 지휘권을 나눠주지 않았고, 비교적 세가 약한 익주인에게만, 중하위 직위에 한정해서, 전체 군 지휘관중 절반이 넘지 않게, 한정적인 지휘권만을 준 셈입니다. 높은 지위도 없고 비율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익주에서 본래 강성한 이들도 아니니 철저히 형주계에게 목줄이 잡혀 있는 셈이라 볼 수 있지요.
지난 글에서 하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느낌이 적잖이 듭니다만, 일단은 필요한 설명이라고 판단하니 마저 정리해봅시다. 촉의 정치에는 크게 네가지 파벌이 있으며 이는 다음의 표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 | 익주 토착 세력인가? | 특이 |
| 제갈량 휘하의 형주 호족 | X | 국가를 장악하고 모든 국정운영을 주도함. 군권의 핵심부를 독점. 막부를 세우고 한중과 부현 일대를 직할령으로 삼아 국가 안의 국가를 경영함. |
| 유비가 남긴 부곡(Warrior band) | X | 형주 이전부터 유비를 따라다니던 전사 집단 출신의 인물들. 위연이 대표적. 관우, 장비의 사망으로 인해 자연적 구심점을 잃고 유비 사후 정치 주도권 경쟁에서 일찍이 탈락함. 위연이나 마속의 사례에서 보이듯 형주 호족들에 의해 통제됨. |
| 유장 휘하의 동주병 세력 | X | 유장의 군사력 원천이었던 동주병 출신 인물들. 익주 외부에서 유입된 난민들이 기원. 익주에 토착 기반이 없었기에 마찬가지로 외래인인 유장과 결탁하여 그 통치의 근간 군사력이 됨. 이후 일부가 유비에게 편승하여 기존 지위를 이어나감. |
| 익주 토착 호족 | O | 정권의 고위직에 오른 기록이 거의 전무함. |
4. 그렇다면 이 글의 본론, 형주 호족들과 나머지로 구성된 이 막부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살펴봅시다.
제갈량이 만들어낸 이 막부 체제는 견고함이라거나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막부의 수장으로서 제갈량은 모든 신상필벌과 군권, 인사권, 행정권, 외교권을 장악하였고, 성도는 단지 황제라는 권력의 원천, 제사장이 존재하는 장소로 격하되었습니다. 즉 이 시점에서 국가의 모든 권력은 한중막부의 수장이 휘두를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작 이토록 막대한 권력을 독점한 막부의 수장이 죽었을 때, 그 후임에 대한 승계 과정은 어떻게 진행할지, 혹은 기존의 권력을 어떻게 다른 기관들에게 위임할지에 대해선, 말 그대로 아무런 의미있는 고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많은 문제의 씨앗이 될 수 있었지요. 권력의 승계절차가 규정되어있지 않다는 말은 누구든 그 공백을 찌르고 들어가 권력을 찬탈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5. 후한 정계에서 막부라는 현상은, 중앙 권력이 중앙에 진출한 지방 세력에게 패배했음을 의미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유교 국가에서 황제는 주권의 원천이며, 그 단일로서 행정 사법 입법을 아우르는 국가기구이기도 합니다. 한 인간에게 보장된 무한한 권력. 황제정은 그 탓에 마치 절대적인 중앙집권을 용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외부로부터 침탈당하기 너무나 용이한 나약하기 짝이 없는 구조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에 누군가 황제가 되어 권력을 독점하려 든다면, 그 자는 한없이 쪼개진 권력을 일제히 제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 개개인들에게 있으니까요. 우리가 만약 최면 빔으로 대통령을 세뇌했다고 생각해보죠. 우리는 행정부의 수장을 손에 쥐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아직 법을 만들수도 없고, 법을 폐지할 수도 없고, 판결에 관여할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를 구속하라고 명령할수도 없습니다. 입법권을 통제하려거든 수백 명의 국회의원에게 최면 빔을 쏴야 할 겁니다. 그들 하나하나가 입법기구니까요. 그럼에도 아직 우리는 누군가를 사살하라는 명령은 커녕 구속 명령조차 내릴 수 없습니다. 이렇듯 분산된 권력은 침투 시도에 아주 강인합니다. 권력의 극히 일부만 손에 넣으려고 해도 필요한 물리력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외부 세력이 권력에 침투하려고 들어도, 다른 부분이 침투 사실을 알아내고 대응할 충분한 시간이 있지요.
하지만 황제정과 같이 권력이 일점에 집중된 체제에서는 이야기가 전혀 다릅니다. 황제는 사법부이자, 입법부이자, 행정부입니다. 만약 우리가 위에서 가정한 최면 빔을 황제에게 쏜다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에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길 가는 사람을 때려죽이더라도, 국가 예산을 제멋대로 농단하더라도, 법을 만들더라도, 법을 폐지하더라도, 그건 모두 당신의 자유입니다.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주권은 언제나 황제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가정되기 때문에,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란 없습니다.
이렇듯 한 명의 인간에게 국가의 모든 권력과 주권이 집중된다는 점은, 역으로 그 단 한 명의 인간만 확보할 수 있으면 무한한 권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행정부"나 "사법부", "입법부"나 혹은 "주권제민하의 국민"과 다르게, 이 모든 존재들의 총합인 황제는 가두고 고문하고 회유하고 죽일 수 있는 한낱 개인에 불과합니다. 한 번도 궁정 밖을 제 발로 걸어보지 못한 어리고 살찐 얼간이가, 지방의 정치 싸움에서 성장하여 중앙까지 진출한 잔뼈굵은 정치인들에게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그 얼간이가 사는 담벼락만 내 물리력으로 확보할 수 있으면, 제국은 나의 것이요 내게 반기를 든 놈들은 모조리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황제가 절대권력자임은 사실 아니냐, 그냥 죽이라고 명령하면 되느냐, 그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장성한 황제들은 그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황제는 언젠가 죽고 그 자리를 아직 어린 후임에게 넘겨줘야 합니다. 어리고, 아직 아무런 정치적 기반이 없는 후임들에게 말이죠. 그리고 수도에 갇힌 어린 황제는 언제든 근위대를 장악한 신하에 의해 도장 찍는 기계로 전락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후한 역사의 절반을 넘는 시기가 막부에 의해 통치되었습니다. 권력이 황제 1점에 집중되고 황제가 시간이 지나면 죽는 인간인 한에는, 승계시에 반드시 발생하는 이 위험을 막을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후한은 이 딜레마에 의미있는 구조적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었고, 이 헛점을 구조적 개혁 없이 사적 관계로 해결하려 들었습니다. 후대 황제를 보필해달라고 황제에게 부탁받은 신하인 보정대신이 정치판에 출현한 계기이지요. 그러나 전임 황제들이 얼마나 간절하였던간에, 이러한 사적 관계를 통한 해결 시도는 당연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보정대신들은 "통치에 부적합한 황제를 보필하기 위하여" 막부를 세우고 정무를 독점하였으며, 황제를 갈아치우기도 했고, 여전히 충신으로 불렸습니다. 지방 사족 세력은 "무능한 황제를 대리하여 국가를 통치하는 유능한 자신들"이라는 개념에 매혹되었고 이를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성장한 황제들은 궁 안의 환관들을 근위대로 삼아 친위 쿠데타로 정권을 잡곤 했지만, 이러한 시도에 성공한 황제조차 곧바로 "사악한 환관을 처벌하고 원래 정치로 돌아가자"는 압박을 당했습니다. 황제는 중앙에 진출한 지방세력에게 통치 정당성을 공급할 뿐, 직접 통치해서는 안 되는 존재, 그저 제사를 올릴 뿐인 의례적 존재로 변모하고 있었습니다. 제갈량과 조조는 모든 면에서 이러한 흐름의 직계 후손이었죠.
6. 막부 체제의 문제는 이념적 정당화와 구조적 개선이 아주 미흡했다는 점입니다. 후한의 막부 체제는 후한 황제정이 우습고 불안정하며 유아적인 만큼이나 마찬가지로 우습고 불안정하며 유아적이었습니다. 막부의 통치가 성공적으로 세습된 역사는 없었고 막부는 자주 황제의 친위쿠데타에 의해 뒤집혀 사라졌습니다. 막부가 오래 지속하지 못했기에 막부를 통한 2대 이상의 장기적인 통치가 실험되거나 이념적으로 정당화될 기회 역시 없었습니다.
막부가 이념적으로 정당화될 기회가 없었다는 말은, 막부가 후한의 뉴노멀이 되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여전히 "부적합한 황제를 보필하기 위한 임시조치"에 머물렀다는 뜻입니다. 결국 막부의 수장은 실질적인 지위와는 별개로 명목상으로는 황제의 신하였고, 신하가 가진 자리는 본래 세습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명목상 황제에겐 임명권이 있습니다. 이는 즉, 막부의 빈 수장 자리를 자신이 원하는 인물로 채워넣거나, 혹은 막부를 해체할 권한이 있다는 뜻입니다.
막부는 의례를 담당하는 황제- 성직자 계층과 정치 집단을 분리할 가능성을 품고 있었지만, 후한의 혼란한 정치 상황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조조 이전 막부의 수장들은 세습을 시도했지만 황제의 친위쿠데타로 인해 단명했습니다. 막부는 여전히 임시조치였고 제대로 정의되거나 발전하지 못한 채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막부를 통해 전권을 잡은 조조와 제갈량에게, 이런 안전성의 부재는 결코 멀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7. 조조는 막부정의 나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한나라 안에 위나라를 세우고 자신이 위왕에 등극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위왕, 즉 왕 작위는 자신의 후계자에게 물려줄 수 있지요. 막부정의 수장 세습을 정당화할 정치 논리를 찾기보다 그편이 쉬웠을 터입니다. 조비는 나아가 "덕을 다한 황조가 다음 황조에게 자리를 물려준다"는 고사를 찾아 천명의 순환, 즉 선양을 정치 행위로 창조해냈습니다. 선양은 비폭력적인 정권 교체를 이념적으로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중국 정치사의 일대 사건이습니다.
반면 제갈량은 막부의 승계에 뒤따를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했습니다. 어쩌면 그의 자식이 아직 자신의 자리를 승계할 만큼 장성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릅니다. 몇몇 분들께선 처음부터 승계할 작정이 없던 건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가 신하임에도 죽기 전 후임을 지명한 사례로 볼 때(전형적인 월권행위입니다.) 별로 그랬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갈량의 무관심의 결과로, 한중막부는 스스로를 구성하고 유지하고 이어나갈 방식을 체계화하지 않았습니다. 제갈량은 그 스스로는 일에 중독된 워커홀릭이었을지 모르나, 그의 안목은 단기적이었고 자신이 만들어낸 체제의 유지 가능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막부는 후한 대의 황제정이 그러하였듯이 그 구성원간의 사적인 합의를 통해 운영되었으며, 위연의 사례에서 보이듯, 그나마도 제대로 조율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대로 조율되지 않은 권력이양 프로세스는 유비 부곡집단의 마지막 잔향이었던 위연과 형주계파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대립을 야기했습니다. 제갈량의 사후 군대의 최고 책임자는 위연이었음에도, 희안하게 위연만 제갈량의 철수 명령을 듣지 못했지요. (즉 누가 쿠데타를 벌였나 하는 점에선 사실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반역자가 '된' 쪽은, 형주계파와 달리 성도에서 자신을 변호해줄 사람이 없던 위연이었고, 그는 목이 날아갑니다. 그 다음은 그와 대립한 양의의 목이 날아가지요. 이 모든 과정은 아주 원색적인 정치적 대립이었으며 한정된 인적자원을 아주 효과적으로 소모시켰습니다. 초보적이고 조율되지 않은 승계. 우리는 다음 화에서 이 승계에 체계라는 것을 도입하고자 했던 장완의 노력을 보게 될 터입니다.
[출처] 촉 멸망사 2. 막부의 의의와 한중막부의 한계 (【부흥】네이버 대표 역사 카페) | 작성자 황제펭귄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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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마법의활 작성시간 23.08.09 Histotius 단순 용어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델카이저님의 댓글을 한번더 정독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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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무장공비 작성시간 23.08.09 松永久秀 일본식 막부라는건 결국 율령제와 조용조를 근반으로하는 동아시아 표준체계에서 특수목적으로 설치 된(일본의 경우는 에미시의 난...) 군부가 거대화 되고 세습화 되서 군사조직의 우두머리가 사실상 통수권과 행정권을 가져가는건데, 여기는 봉건제의 쌍방의무적 계약관계(애당초 장군의 시작은 군대를 동원하는 봉건영주들에 대한 통솔권을 천황이 위임하는걸로 시작...)와 세습이 중요 한거라. 단순히 제갈량이 북벌과 한실 수복이라는 기치를 걸고 통수권과 행정권을 장악했다고 해서 막부라고 부르는건 에바지요.
제갈량과 같은 사람은 전통적으로 부르는 용어는 있긴 합니다. "권신"이라고...... -
답댓글 작성자마법의활 작성시간 23.08.09 ▦무장공비 착한 권신도 있는데 대가리 단순한 놈들은 권신이니 제갈량이나 조조나 똑같은 놈들이었다고 주절대더군요. 사마의나 위나라조차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도요. 하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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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무장공비 작성시간 23.08.09 마법의활 권신이라는건 결국 왕(또는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행사하는 신하를 말하는건데.
이건 가치 중립적인 단어긴 하지요 원래는. (물론 그 뉘앙스가 대단히 부정적인게 현실 입니다만-.-;; ) -
답댓글 작성자▦무장공비 작성시간 23.08.09 마법의활 여튼 권신은 그 권력의 근거가 왕 또는 황제가 부여하는 권위이다보니 총애또는 쓸모가 다하면 쉽게 제거되는 경우도 많았지요. 위충현이나 김안로 같은 케이스가 대표적.
제갈량 조차도 유선이 트롤링 하자 골치 아픈 상황에 바로 빠졌고.
이걸 봉건 영주의 통솔권을 장악함으로 통수권과 행정권을 장악하고 봉건적 계약 관계속에서 세습으로 이어가는 일본식 바쿠후라고 보는건 춈.......
애당초 막부라는 단어 자체도 지휘본부를 가리키는 가치중립적 단어란 말입니다.
그걸 일본애들이 이상하게 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