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탄병들이 쉬고 있는 사이로 그들의 보급품을 적재한 마차(?)가 지나가고 있다
1945년 말 독일의 기계화된 사단의 수는 48개에 이르렀지만 독일 전체 사단의 16%정도 밖에 구성하지 못하였다. 나머지 대부분의 사단은 말 그대로 걸어서 행군하는 보병들로 이루어졌으며 가장 중요한 수송수단은 말이라고 알려진 동물이었다.
1930년대 독일군이 급격히 발달하였지만 많은 독일인(나중에 군인이 되는)들은 승용차나 트럭을 어떻게 운전해야 하는지 조차 몰랐으며 (미국은 5명중의 1명이 차를 소유했지만 독일은 89명중의 1명이 차를 소유했으며 이는 이탈리아를 제외한 서유럽국가 중 가장 낮은 수치였다.) 이 기간 동안 운전수를 훈련시키기 위한 광범위한 정책들이 시행되었지만 독일은 여전히 대규모의 차량화 부대나 기계화부대를 창설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문제는 독일 산업이 완전히 차량화 되고 현대화 군대를 가지기에 필요한 차량과 연료 그리고 소모품들을 공급할 여력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악화되어 갔다.
이런 상황속에서 말은 여전히 중요한 수송으로 사용될 수 밖에 없었다.
SS 기병대
말에 대한 약간의 정보 Some information about horses
세가지 종류의 말이 있다. 온혈종, 냉혈종,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섞인 종이 바로 그것이다. 온혈종은 다양한 사이즈를 지니며 일반적으로 활기차고 격한 성격을 갖고 있으며 최고의 경주마로 주로 기병용으로 사용된다. 냉혈종은 중세의 그레이트 호스(Great Horse)의 자손으로 끄는 힘이 강력하며 온순하다. 이 냉혈종은 그 크기와 강력한 견인력으로 주로 야포 같은 중장비를 견인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이 두 가지가 섞인 종의 경우 이 두 가지 성격을 복합적으로 가지지만 이 이야기에서 다룰 거리는 아니다.
군마에 결합되어 견인되는 leFH 10,5cm 곡사포
아무리 강인한 말이라 해도 최소한 하루에 12파운드(약 5.5kg)의 먹이가 필요하고 견인용 말은 하루에 20파운드(약 9kg)의 먹이가 필요하거나 8시간 정도 방목해 풀을 뜯게 해야했다. (가능하다면....) 그리고 말역시 밤에는 자야한다. 물론 이 수면습관을 바꿀 순 있지만 그렇다면 말들은 지금 자야만 한다. 또한 옴, 폐렴, 동상, 기타광범위한 질병 심지어 전염병에 걸리기도 한다.
또한 이 당시 말들은 농장에서 중요한 동력원이었으며 이 말들을 군대에서 징용해 감으로써 이 말들을 사용하는 농장들은 타격을 받게되었다.
독일의 군마 보유량 German Horse Numbers
1938년과 1939년 사이 독일군이 얼마나 많은 말을 보유했고 이용하였는지 예를 들자면 1939년 독일군은 400,000마리의 말을 징용했고 이 말들을 유지, 관리하기 위한 기반 시설들로서 제 10군은 541,542,543 군마 병원 (최대 550필)과 541 군마 요양원(Army Horse Park)과 540 군마 치료 요양원을 보유했으며 각 보병사단은 각자의 군마 병원(최대 500필)을 보유했다.
15cm 곡사포 견인중 잠시 쉬는 말들
바바로사 작전을 위해 독일군은 3백만의 병력, 6십만의 차량, 3,350대의 전차, 2,000여대의 항공기 그리고 600,000에서 750,000으로 추정되는 말을 동원했다. 말 한 마리당 4명이 필요했으며 이 말 한 마리는 하루에 6kg을 먹었고 전체적으로는 하루에 4,500톤의 먹이가 필요했다. 독일군이 러시아 영토 깊숙이 진격할수록 차량들은 고장나거나 버려졌으며 덕분에 독일군은 점차 보병사단(!)화 되어 가고 있었다.
말은 점점 중요한 수송 수단이 되고 있었다. 아래의 도표는 4문의 10.5cm 화포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군마의 수를 보여준다. (탄환 모양 1개=군마 1필)
바바로사 작전에서 독일군의 말에 대한 의존은 다수의 전략, 전술, 그리고 보급상의 문제를 초래했다.
전략적으로 기계화된 사단과 말에 의존하는 사단의 차이는 즉각적인 문제를 드러냈다.
보급면에서 말에 의존하는 사단에게서 보급을 받는 기계화 사단은 열악한 도로 사정 때문에 보급이 단절되었으며 또한 기계와 말의 속도 차이는 이 두 부대 사이를 엄청나게 분리 시켜 놓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술적으로는 말들은 공습에 취약했으며 이 문제는 독일군의 공중 우세 기간 동안에도 군마의 높은 상실률로 나타났다. 이에 더해 군마 병원은 러시아군에 의해 공격당해 고립당하기 일쑤였다.
독일과 러시아의 철로 규격의 차이, 트럭과 수송열차의 부족 등으로 병참문제는 매우 빨리 일어났다. 이런 문제들로 전선으로 향하는 보급품들은 점차 말로 전달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군마는 냉혈종으로서 공습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보았으며 또한 러시아의 극단적인 온도변화에 매우 민감했다. 더 많은 먹이와 물이 필요했으나 공세 기간중에 그것은 무리한 요구였다. 1941년 11월에 이르자 군마의 손실은 총 102,910필이 전사(?)하였고 33,000필의 군마가 질병에 걸리거나 작전에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부교를 통과하는 leFH18화포 역시 말이 견인하고 있다
1944년 3월 독일군 OB West는 160만의 병력과 110만의 군마를 보유하고 있었다.
독일군은 1944년에만 400,000필의 추가 공급을 요구했으나 달성하지 못했고 특히 냉혈종의 수급은 큰 차질을 빚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동안 군마에 의존하는 사단의 중요한 문제점이 부각된다. 그것은 차량화 사단보다 도로 용적을 더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1939년 독일군 보병사단은 17,734명의 장교와 병사들로 구성되었으며 이를 지원하기 위해 48개의 화포(12x15cm and 36x10.5cm)가 배치되었다. 사단의 운송수단은 약 615대의 트럭과 말이 견인하는 919대의 수레였으며 3개 연대에 각각 196대가 할당되었고(총 588대) 240대는 사단포병에 속하였으며 총 4,842마리의 말이 요구되었다.
말이 끄는 수레 옆으로 행군하는 보병들
1944년의 사단은 이론적으로는 12,772명의 장교와 병사들로 구성되었다. 화포는 39문으로 (30x10.5 and 9x15) 감편되었으며 트럭은 370대로 줄었다.(약 40% 감소) 군마는 3,177필로 감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 견인하는 수레는 무려 30%나 증가한 1,375대에 이르렀다.
여기서 다시한번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는 말이 끄는 차량은 트럭보다 더 많은 도로 용적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단의 후방에 위치한 부대는 공습에 매우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말과 차량의 또 하나의 치명적인 차이는 조그마한 피해라도 입는다면 그 기능에 있어 매우 다른 결과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즉 말이 죽거나 움직일 수 없다면 말이 끄는 수레역시 상실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이후 후퇴하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구식 leFH16 10cm곡사포를 6마리의 말이 견인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트럭 생산량 이었다. 독일의 트럭 생산은 1943년의 109,000대 였으며 여기서 절반이 약간 넘는 트럭이 군대로 보내졌다. 1944년 1월과 8월 단 7개월 사이에 이 트럭들과 맞먹는 트럭이 상실되었다. 이런한 결과,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독일군은 순수하게 상업용으로 제작되거나 군작전에 부적합한 트럭들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1945년 2월 유럽에서 전쟁이 끝날무렵 독일 국방군은 총 1,198,724필의 말을 보유하고 있었다. (육군 1,060,106필, 공군 37,072필, 해군 1,566필) 가장 현대화되고 기계화된 군대의 대명사인 독일군은 전쟁의 막바지까지 귀리(말 사료로 쓰이는 곡물) 없이는 작전이 불가능 했던 것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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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last-charisma 작성시간 07.09.19 글에도 나왔지만... 말들은 공습에도 취약했고... 보급유지도 문제가 되고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죠. 특히나 동부전선 우선배치때문에 않그래도 부족하던 서부방면에 배치되었던 독일군들의 차량들... 팔레즈 포켓에서 엄청난 수를 상실하죠. 캐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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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민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7.09.19 눈물의 팔레즈 포켓 비트만도 여기서 전사했죠.ㅠㅠ 그리고 한국전에서도 기병이 쓰였었죠. 한국군이 기병을 운영하면서 잘 써먹었다는데 중반 이후 기록이 없는 걸 봐선 도중에 해체되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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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가스가겐고로 작성시간 07.09.21 한국전때 활약한 기병대 얘기를 들은적이 있는데...결국엔 해체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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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last-charisma 작성시간 07.09.21 '장철부'기병대장님을 말씀하시는거군요. 이분 대단하셨죠. 제가 알기론 한강방어전 등지에서 기병대를 이끌고 맹활약을 펼치신걸로 압니다. 북한군에게 포위된 아군을 구출하기도 하셨구요. 그뒤에도 계속 작전하시면서 미군을 구출하거나 북한군대열을 습격하거나 하면서 활약하셨다고 합니다. 해체... 이미 군마를 유지할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해서 해체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제가 가지고 있는 사진엔 평양에 입성한 국군장교들이 말을 타고 사진을 찍으셨더군요. 이걸로 봐선 어느정도 군마가 유지되긴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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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당스니 작성시간 07.09.26 1945년 뉘렌 베르크 법정에서 검사들이 괴링에게 "독일군이 동부전선에서 독가스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하고 묻자 괴링왈"사람은 방독면을 쓸수가 있지만 말에게는 방독면을 씌울수 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