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이 활을 대체한다거나, 또는 대포가 성을 대체한다거나 하는 역사적인 변화들은
사실 하루아침에 번쩍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동안 무기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총의 경우에는 서유럽보다는 동유럽에서 먼저 활발히 쓰였습니다.
14세기에 이미 헝가리에서는 아퀘버스 보병대를 대량으로 운용하고 있었지만,
서유럽에서 총병이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건 16세기에 이르러서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황을 급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사건은 있게 마련입니다.
총의 역사에서는 파비아 전투가 그런 사례입니다.
< 사진출처 : 영문위키 >
합스부르크 왕가와 프랑스가 중부유럽 패권을 두고 맞붙은 전투이고,
란쯔크네히트, 스위스 용병, 프랑스 장다르메 등등 당대 서유럽 최고 병종들이 격돌한 올스타 전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투의 프리마돈나는 다름아닌 화승총이었죠.
https://mirror.enha.kr/wiki/%ED%8C%8C%EB%B9%84%EC%95%84%20%EC%A0%84%ED%88%AC
개략적인 상황은 위의 엔하위키 미러를 참조하시고,
여기에서는 전투 상황을 조금 디테일하게 적어보겠습니다.
< 그림 및 내용 출처 : http://www.oocities.org/aow1617/Pavia2.html >
1. 전투 개시 전의 상황
1524년 프로방스 침공에 실패한 프랑수아 1세의 프랑스군은
같은 해 10월, 신성로마 제국이 점유하고 있던 파비아 시에 대한 공세를 개시했습니다.
파비아 시에는 6000-8000 가량의 제국군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 주둔군을 구원하기 위해 페스카라 공작은 12000의 란쯔크네히트를 파견, 이 지원군은 이듬해 봄에 전장에 당도합니다.
지원군에 힘입어 반격에 나선 제국군은 프랑스군 진지를 향해 약 3주에 걸친 쓸모없는 포격을 가한 뒤
정면공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미라벨로 성채에 위치한 프랑스 사령부의 배후를 급습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합니다.
1525년 2월24일 새벽, 야음을 틈타 도합 22000의 제국 군대는 프랑스 방어선을 크게 우회해 미라벨로 진지를 급습.
마침 파비아 일대는 짙은 안개로 뒤덮여 야습을 가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청색 : 프랑스 군
1) 프랑수아 1세 : 기병 3600(장다르메 1000), 보병 6000, 포병대
2) 플로렌스군 : 기병 1000, 보병 4000
3) 몽모랑스 군 : 스위스 용병대 3000 및 포병대
4) 알랑숑 공작 : 기병 1000, 보병 3000 및 포병대
5) 남부군 : 기병 500, 보병 1000
홍색 : 신성로마 제국군 (합스부르크 왕가)
1) 페스카라 공작, 총병력 22000 (기병 3500, 보병 18000)
2) 제국군 물자 및 포병 1000명
3) 파비아 주둔군 총병력 6000 - 8000
2. 전투의 전개 양상
2시간 동안 진행된 전투 결과 프랑스 군은 완전히 분쇄. 스위스 용병을 포함한 소수만이 전장을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프랑수와 1세를 포함, 몽모랑스 공, 플로랑스 공 등 다수의 귀족들이 포로로 잡히게 되죠.
이 예상치 못한 승리로, 스페인의 샤를 1세는 타이틀 수집 목록에 롬바르디아 공작을 하나 더 얹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승총에게 최고의 중기병대가 무참히 학살당했다는 사실에 서유럽 전체가 주목하게 되죠.
< 요런 귀하신 분들이.... >
< 요런 껄렁껄렁한 애들한테 털린 거임. >
그 결과 총기 보급과 개발 속도가 엄청나게 올라감.
덧) 사실 전투 전개 양상을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 상황이라면 총이 아니라 석궁이나 돌팔매였어도 프랑스 기병대를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역사란 뭐... 그런 거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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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뉴타잎 작성시간 14.09.03 소용이 없심....그 양반은 자기가 원하는 환타지가 이미 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이 어떠하고 뭐 이런건 자신에게 중요한게 아님.
중요한건 그 말도 안되는 환타지가 실제로는 불가능 하더라도 그게 수많은 우연 끝에 확율상으로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람들의 인정 그 자체임.
그러니 뭐를 제시하고 읽히건 간에 돌아서면 열통 터지는 소릴 또 꺼냄. -
답댓글 작성자마법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9.03 음.. 딱히 누구 보라고 올리는 글은 아닙니다. ^^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저 전투에서 화승총이 압도적인 전과를 거둔 건 전적으로 주변 상황 덕분이었죠. 총의 성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전투로 총병들이 주목을 받게 됐고 수년 뒤인 1534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이태리에 병력을 파견할 때
보병대 주축을 화승총병이 차지하는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 이태리 파견군의 명칭은 테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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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swordfish 작성시간 14.09.03 솔직히 성능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저 같아도 총 쓰겠습니다. 당장 활은 숙달 되는데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리고 솔직히 매주 일요일 평민들 활 쏘는지 안쏘는지 감시하면서 축구 못하게 하는 건 통치 비용적으로도 그리 좋지 못하죠. 그냥 껄렁한 아해들 필요하면 고용해서 대충 총에 탄 넣고 화약 넣고 불당기는 거 훈련시키면 되고 말이죠.그렇게 해도 전투력 면에서 대등 혹은 우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