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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들

언제나 전반적인 면을 살펴봐야 합니다.

작성자zert|작성시간11.05.06|조회수816 목록 댓글 24

어느 역사나 일부분만 해석하다보면, 킹왕짱 국가가 될 수도 있고 허접안습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신라, 고구려, 고려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 바가 거의 없고 이미 다른 분들께서 말씀해 주셨으니 저는 나름대로 공부한 조선군과 조선시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허약한 조선군.

당연한 이야기지만, 조선군은 약하다는 선입견이 강합니다(편견이 아닙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임진왜란 개전 당시 한달도 채 못되서 수도가 함락되고 전 국토의 대부분을 빼앗기는 상황이 연출 됩니다. 병자호란 당시 역시 비슷하지요. 거기에 국토가 불타고죄 없는 백성들이 죽고, 여자들이 끌려가고 도자기 사업이 망하고...이러면 더더욱 조선군과 조선이라는 국가에 대한 혐오감이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위의 열거한 말들은 <분명한 사실>이지요.

 

그러나 저렇게 떼어놓고 볼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 및 주변 정세와 당시의 한계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합니다.

 

 

전국시대를 종결한 일본군? 한때 스페인 ㅡ.ㅡ과 비교될 정도로 뻥튀기가 되었습니다. 1세기 가까이 전쟁의 시대를 겪었으니 풍부한 장수들과 병사들을 갖춘 것은 물론이고, 일본의 전국시대의 "아기자기-_-'한 전투이지만 전쟁에 대한 경험도 풍부하지요.

 

비슷한 시대의 유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이 근현대적인 국가와 군대가 등장하는 것이 이 시기지요.

 

그럼 당시 일본 백성들 및 유럽 백성들의 생활은? 굳이 답변해드리지 않겠습니다 ㅡ.ㅡ;

 

반면에 조선은 개국 이후 200년 동안 내부적인 반란 및 자잘한 혹은 약간 규모가 큰 오랑캐의 침입을 제외하고는 나름의 태평성대와 중앙집권화된 관료국가로서 안정된 시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심심하면 조선시대 양반 / 백성들의 평균 식사량을 조사해 보세요. 잔칫집에서 수 그릇, 집에 와서 수 그릇 먹다가 배 터져 죽었다는 기록이 똑똑히 남아 있는게 조선시대입니다. 관찰사가 백성들이 밥 대신 치킨을 먹고 싶다고 보리밥을 싫어하고 쌀밥을 달라고 징징거려서 고민이다는 장계와 그에 따른 회의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에 남아있는 것도 조선입니다-_- 이런 경향은 국가 체제의 모순이 극대화된 구한말까지 계속-_- 됩니다.

 

그리고 조선이 단순히 수세적인 국가로 이해해서도 곤란합니다. 오랑캐가 좀 컸다 싶으면 경험치를 올리기 위해 북방의 안정화를 위하여 심심하면 여진족을 털어주던 국가가 조선이고, 그것은 심지어 임진왜란 <당시>와 임진왜란 <직후>에도 계속됩니다. 실록에 <노토>나 <여진>으로 검색해 보세요. 부락민이 전부 산으로 숨고 울부짖고, 잔인한 침략자 조선군은 곡식을 불태우고 가옥을 박살냅니다 ㅡ.ㅡ

 

심지어 <조광조 하앍하앍>거리던 시기, 그러니까 조광조를 정치적으로 제거하기 이전에 중종도 "오랑캐를 뒤치기하는 건 군자가 아니라능"이라는 조광조의 주장을 반대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치트공과 조선수군>에 대해서는 언급을 생략합니다. 모르는 사람도 없고...

 

반면, 그렇게 강한 조선수군이 나올 수 있는 배경에 대해서는 밑에서 언급하겠습니다.

 

 

2. 조선이라는 국가

조선시대는 당시 국제사회에서 몇 안되는 중앙집권형 관료국가였습니다. <중앙집권>이라는 말과 <관료국가>라는 말에 주목해 주십시오. 이것을 대단찮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주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중앙집권을 한다는 것은 곧 중세 봉권적인 호족/귀족체제가 붕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 당연히 계급으로서 양반(귀족)은 남아있었죠. 하지만 그네들이 장원(영지)을 소유하거나 개인적인 사병을 보유하는, 서양사적인 의미의 귀족은 태종 이방원 때 이미 착착 정리가 됩니다.

 

힘 없는(?) 양반들은 결국 철밥그릇 공무원이 될 수밖에 없죠. 아, 그렇다고 소작농 체제는 뭐냐! 라고 말하시면 곤란합니다. 왕이 파견한 사또나 토지를 소유한 양반이 행패를 부리는 것과, 그 지역에서 실질적으로 왕으로 군림하는 귀족이나 기사가 행패를 부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어쨌든 중앙집권적인 모습을 갖춘 나라는 <당연히> 정부에서 통제하는 정부군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는 서양의 국민군대와는 조금 뉘앙스가 다르죠.

 

아무튼, 조선군은 <그 당시 치고는> 나름의 비슷한 무기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말이나 무기나 갑옷을 일정 수준 이상은 병사가 부담해야한다는 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으니 태클 거시면 곤란.

 

하여튼 간에 그 대표적인 예가 <조선수군>입니다. 동아시아 최강의 수군으로 군림했던 조선 수군은, 철저히 서양의 기준으로도 근현대적인 해군입니다. <국가가 소유 및 유지>하는 <선박 / 군인>에 <국가에서 경영>하고 <일정 거점을 기준으로 활동>하는 해군은 당시 조선이 유일했습니다.

 

판옥선(그 이전에는 맹선, 대맹선 등등)이라는 일정한 규격을 갖춘 전함과 전문적인 직업 군인(당시 육/해군 간부 구별은 없었음)을 갖춘 나라는 몇 안됩니다. 거의 조선이 유일할 정도 ㅡ.ㅡ

 

스페인 아르마다와 드레이크 제독의 영국해군? 네덜란드 해군? 차후 나폴레옹과 붙게 되는 넬슨 제독 시기는 좀 와야 국가에서 배를 만들고 해군을 양성합니다. 그 이전에는 거의 대부분의 국가가 상선을 징발하거나 필요하면 마을을 덮쳐서 노숙자나 청년들을 끌고가는 실정입니다 ㅡ.ㅡ;

 

아, 가장 중요한 <원거리 사격>을 뺴먹었군요.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원거리 함포 사격은 1~2회나 최소한으로 그치고 선상백병전은 결국 존재했을 것이다라는 것으로 귀결되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 교리면으로 원거리 함포 사격을 채택한 나라는 다섯 손가락으로도 꼽을 겁니다.

 

반면에 일본은 중앙집권형 국가도 아니여서, 해전(?)의 경험이 많은 왜구가 고니시 휘하의 장수로 속해서 육지-_-에서 열심히-_- 싸우는 결과가 초래되고, 일본수군+일본해적+일본육군수송함대가 조선수군에게 처절하게 개박살-_-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리고 당시 세계사적으로, 해적+수군(선상백병전^^)+육군수송함대가 뒤섞인 것을 수군이라고 불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추가로 선박들의 규격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무기체계도 서로 다른 건 뭐 말할 필요 없겠죠.

 

참고로 한산대첩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음과 같은 단편명령을 내립니다.

 

"이세 신궁을 제외한 모든 산을 벌목^^"

"선박을 만들 SCV들을 진급히 섭외^^"

"모든 토목 공사 ALL STOP^^"

"(그나마 배수량이 큰) 안택선의 도면 긴급 제출^^"

 

임진년 중기만 가면, 티거+판터 만난 셔먼이 GG 치듯 일본해상세력은 줄줄이 배를 버리고 육지로 숨습니다 ㅡ.ㅡ

 

 

3. 맺음말 & 기타

어쩌다 보니 조선에 대한 일방적인 옹호 ㅡㅡ가 되어 버렸는데 나름의 역사적 사실과 공부한 사실들 + 인터넷 고수님들의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정 못 믿으시겠다면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 보세요.

 

아, 조선왕조실록이 있었죠.

 

한글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기록 시스템입니다. 요즘 현대인들도 기록을 남기기 꺼려하는데 무려 근세 시대에 <왕이 쓰지 말라고 했다>는 기록을 남긴 국가입니다.

 

제가 봤을 때 국보 1호는 훈민정음, 2호는 조선왕조실록으로 바꿔야합니다 ㅡㅡ;

 

 

어쨌든 나름 반박아닌 반박을 했습니다. 왜 조선이 임란 당시까지, <군대가 무너지게된 대표적인 원인>이 된 <제승방략>을 선호했는지, 병자호란 당시 시간을 조금만 더 끌었으면 오히려 청 태종이 인질로 잡힐 뻔했다는 사실 등등도 있지만 일단 1차적으로 위의 상황만 적습니다.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욤(기왕이면 임진왜란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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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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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zert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5.07 어떠한 체제나 모순이 존재하면, 그 모순이 <어떻게, 그리고 왜> 존재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어느 정도 질질끌면서 유지해야 했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뉴타잎님 스스로도 위의 글에서 밝히셨듯, 뉴질랜드와 캐나다 사람들이 어리석고 불쌍해서 군사력을 약하게 하고 있는게 아니니까요.
  • 답댓글 작성자Rothschild | 작성시간 11.05.08 고려시대에 일어난 무신난크리만 보아도 봉건제의 문제점이 확연히드러나는것이고 외적의 침입보다 내부의 분열이 훨씬 더위험하거든요. 당나라 절도사만 보아도 --;;; 중국은 이미 송이후부터 그런 문제점때문에 조선과 비슷한 군제도를 실행하였고 말이지요.
  • 답댓글 작성자델카이저 | 작성시간 11.05.08 1. 조선의 제1 주적은 여진족과 왜구인데.. 둘 다 규모는 크지 않아서 일종의 선방어 개념으로 진관체제가 유지됩니다.

    2. 중종 때 삼포왜란이 터졌는데 이때 동원된 왜구는 무려 5000명 수준이었습니다. 기존의 진관체제하의 선방어 개념으로는 대응할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도입된 것이 제승방략이었습니다. 중앙에서 지휘관이 오면 인근 부대를 규합하여 격파하는 거죠..(실제로 삼포왜란 당시 이런 식으로 처리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승방략 넘기고 이런 대규모 왜군의 내습은 또 없었습니다. -_-;;
  • 답댓글 작성자델카이저 | 작성시간 11.05.08 3. 사실 고위 지휘관을 지방에 상주시키면 될 문제긴 한데..(정치장교 형태로 대간을 감시로 붙이면 되긴 하고..) 군사 소요가 워낙 없다 보니까 이런 대비 자체를 가지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일부 병마사들은 성쌓고(...) 훈련한다고 대간들이 탄핵하는 수준이었으니까요;;(그런데 장교 없는 조선군이라 이런 훈련 과정 자체는 개판이라;;)

    4. 반란을 두려워 했던 것은 맞고 그 때문에 구조적으로 아예 군 기동을 못하게 막아버린 것은 분명합니다. 위수지역에 대한 관리가 지독하게 철저했죠.. 그래도 송보단 좀 낫고..(중앙에서 내려간 고위 지휘관에 의해서 기동 자체는 일단 되니까..) 의도적으로 간부진 양성을 피한 것도 맞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델카이저 | 작성시간 11.05.08 마지막으로 뉴타잎님 생각보다는 조선군은 의외로 실전 경험이 많았습니다. 문제는 국가간 총력전을 경험해본 적이 전혀 없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죠.. 일본군은 내전 막바지에 이런 경험이 풍부했습니다. 히데요시가 말년에 일본 통일한다고 큐슈에 20만 대군 돌린 적이 있었는데.. 이 자체로 굉장한 경험입니다. 실례로 일본군에는 1만 이상을 지휘한 경험을 가진 지휘관(사단장급..)이 20명은 너끈히 나오겠지만 조선에서 이 정도 규모를 지휘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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