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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 살이도 쉽지 않습니다.txt

작성자델카이저|작성시간11.01.21|조회수1,665 목록 댓글 16

블로그에 올렸던 글인데....


뭐 간단한 책 소개기도 합니다. 요는 왕의 정부 = 악녀 공식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 대개의 경우 왕의 아랫도리 욕망의 희생물인 경우가 많다는 거 정도죠..


아래 앙투와네트 이야기가 나와서 과거 읽었었던 책이 기억나서 올리는 겁니다.


약간 잘못 아시는 분들이 좀 있는데요.. 루이 15세는 루이 16세의 할배입니다. -_-;; 이 노친네가 좀 오래 사셔서;;; 루이 14세는 루이 15세의 증조부죠;;;; 루이 14세가 어린 나이(5세..)에 왕위에 오른데다가 재위기간도 아주..아주 기셔서 아들도 손자도 고령으로 사망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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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정부
엘리노어 허먼 지음, 박아람 옮김 / 생각의나무
나의 점수 : ★★★★

중세-근대의 왕의 정부에 대한 이야기..

흔히 앙시앵레짐 시대를 통한 왕의 정부 = 부도덕의 사악한 화신의 공식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중세 아키텐의 엘레오놀부터 영국의 찰스 왕세자의 카밀라 파커 불스에 이르는 왕의 정부들에 대한 이야기다.(뭐 아키텐의 엘레오놀은여왕이긴 했지만 이혼했다가 헨리 2세와 결혼한 중세에서는 굉장히 드문 케이스인 여걸임..) 사실 유럽이라고 해서 왕이 세컨드 끼고 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중국이나 조선 처럼 아예 법제화된 왕의 측실들이 없었다 뿐이지 실질적으로 왕의 정부가 하나의 공식 관직이나 다름 없었고 16~17세기에는 이러한 왕의 정부를 갖는 행위 자체가 왕가의 의무로 구분될 정도였다. 

뭐 패미니스트들에게는 구역질날 정도로 화가나는 일이긴 하겠지만;;; 우선 그런 일을 제껴두고 순수하게 당시 정부가 어떤 것이었는지살펴보면.. 우선 가장 대표적인 왕의 정부로는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마담 퐁파드가 있는데 이 양반의 삶을 보면;;;;;



- 우선 왕을 위해서(왕의 총애를 위해서가 아니다!!!) 미모를 유지해야 했고 그 때문에 살이 쪄서는 안되니까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승마를 해야 했다.(나는 잘 모르지만 승마는 운동이 굉장히 많이 되는 모냥이다.)

- 왕이 바라면 언제 어디서나 성관계에 응해줘야 했다. 루이 15세는 그녀에게 정신적으로 심하게 의존하는 부분이 많았고(...) 심지어 살롱이나 방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는 퐁파드 부인을 찾아서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그나마 다행;;) 방 안에서 성관계를 하는경우까지 있었다..

- 퐁파드 부인은 왕비가 하기 힘든(왕비는 폴란드 사람..) 프랑스 국내 귀부인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퐁파드 부인 스스로도 다양한 사업과 문화 예술의 후원자여야 했기 때문에 이일을 관장해야 했다. 

- 루이 15세에는 많은 무도회가 있었는 거기에 빠짐없이 출석해야 했다. 당시 드레서는 지금의 정장과는 차원이 달랐다. 코르셋으로허리를 심하게 졸라메고 몇 시간씩 왕이 있는 곳에 따라다녀야만 했다. 왕의 사냥, 지방 순시에도 예외는 아니었었다. 

- 무도회 뿐 아니라 만찬도 많았는데 루이 15세는 퐁파드 부인이 항상 자기 근처에서 식사하기를 요구했다. 그녀는 그녀의 위에 허용하는 양에 관계없이 먹어야만 했다. 왕이 그것을 요구했으니까.. 기름지고 고기 위주의 식단은 그녀에게는 꽤나 괴로운 것이었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만찬 자리에서는 억지로 다 먹어 치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사실 퐁파드 부인 입장에서는 문화부 장관이나 하는 일을 하는 중노동의 와중에서;;; 왕의 성욕이란 성욕은 모두 감당하면서 만찬이나, 무도회에 빠짐없이 나가고 그 시간을 쪼개서 미모를 유지하기 위한 운동까지 해야 했다.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 살면 병이 안날 수가;;; 게다가 여자도 너무 힘들어서 성관계를 하기 싫은 날이 적지 않은데 그런 날도 예외없이 왕의 상대가 되주어야 했다. 나중에 뚜쟁이(...)로도 악명을 날렸는데 왕이 요구하는 어린 처녀를 그녀가 대령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걸 좋아할 여자가 어디 있겠나 왕이요구하니까 대주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항상 왕에게 순종적인 자세를 유지했는데 그녀가 화를 낸 적은 딱 두 번 있었고 두 번다 왕의 공식 정부자리를 노리를 사람들 때문이었다. 하나는 동생이었고;; 다른 하나는 13살짜리 어린애.. 

얼마나 화가났는지 대놓고 소리치며 난리를 친 모냥인데 루이 15세는 그녀가 화를 낼 때마다 모두 들어주었다고.. 그렇다고 착각하지 마시기를.. 대부분 이렇게 이야기 하면 퐁파드 부인이 왕을 치마폭에 휘어잡았다고 생각하고 실제 앙시앵레짐 시대의 선전물은 그렇게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정부는 엄연히 정부였다. -_-;; 왕이 정신적으로 약해져서 의논상대는 될 수 있을지언정 실제 정치에 간섭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적었다. 실제로 모든 판단은 루이 15세가 담당했으며, 그녀는 처음 만나는 사람을 불편해 했던 왕의 비서 역할, 대화를 부드럽게 이끌 수 있는 도우미 정도로 일해야 했다.(그녀의 바쁜 삶의 또 다른 과중한 업무였을 것이다. -_-;; 왕이 하루에 만나는 사람이 한 둘 도아니고;;;)

보통 문화-예술 후원에 대해 오해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녀의 사비를 털어서 이루어 졌다고 한다. 뭐 왕의 정부니가 이런저런 이권도 많이 챙길 수 있었고 사업에서도 비교도 되지 않은 신용과 유리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사업들 자체도 그녀가 챙기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심하게 몸이 망가져서 40넘어서는 몸이 꽤나 약해진 상태였고 폐렴으로 죽는다. -_-;; 아내 이상으로 프랑스의 실질적인 왕비 역할과 부인 역할을 담당해야 했고 아무데서나 X를 놀리는 왕 때문에 맘고생도 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저렇게 여색을 즐기시면 빠짐없이 따라오는 것이 성병이고 왕에게 성병이 옮아서 굉장히 고생한 거 같다. 

왕의 정부가 되어서 부귀영화 누린 거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글세;;; 이미 왕의 공식 정부 자리 자체는 원래가 비공식적인 데다가 워낙 말이 많은 자리고 보장이 되지 않는 자리기도 했다. 좀 난감하긴 하지만 이런 왕의 공식 정부 자리는 그냥 왕에게 여성이 봉사하는 관료적인 관점의 일부였고 성관계는 남-여라고 하는 특수한 공직관계의 부수적 업무에 일환이기도 했다.(왕의 자식은 사생아긴 해도 왕위 계승권을 갖는 등 왕실 안정에 도움을 주니까;;) 

오히려 이렇게 정부를 두지 않으면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혹은 왕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는자로 비난받기 쉬웠다. 



제임스 2세 같은 경우는 정말 본인은 원치 않는데 왕의 의무상 정부를 둔 케이스로 사실 궁정 내에서는 둘이서 종종 한 방에서 카드 게임이나 할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_-;; 실제 둘이 성관계가 있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대개는 없었던 것이 중론이고 왕의 정부와 왕비가 매우 친한 친구사이라는 것이 이런 이야기에 힘을 실리게 했다. 뭐 셋이서 한 방에서 문 잠구고 카드 게임이나 했다던가;;(원조 묵사마?)


저런 사고 방식이 지배하는 유럽 왕가와 정부의 관계는 21세기에 와서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보아야 한다. 찰스 왕태자의 경우 아버지도 정부가 있었고 이런 것이 당연한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까 다이애나 말고도 카밀라를 만나는게 당연했지만 평민 출신 다이애나는 이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고..-_-;; 사실 왕의 정부란 것도 그들 내부에서 바람피우기 위한 핑계에 가까운 것이.. 카밀라 파커 불스와의 스캔들이 나자 불스의 아버지(해군 장교였다고)가 찰스에게 처들어가서 내 딸의 명예를 더렵혔다고 따지고 다는게;;(16세기만 해도 왕이 어떤 귀족집안 부인을 정식으로 정부로 삼고자 하면 알아서 이혼하는 것이 관례였다. 뭐 남펴닝 허락안하는 케이스도 왕왕있는데;; 이 경우 왕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지워지곤 했다. 참고로 루이 14세는 몽테스팡 부인의 남편인 몽테스팡 후작을 귀양보내버린다.)


물론 왕에게 접근하여 돈을 뜯어내고 흔히 알려진 악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왕의 정부로서의 위치는 좀 더 정치적인 경우가 많았다.(이건 조선도 예외는 아니다. 명은 좀 사안이 다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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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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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Clampshade | 작성시간 11.01.22 동양적인 일부다처제 하에서의 왕의 첩은, 조선의 경우 내명부 관작을 받아 공식적인 지위를 얻고 그 자식들도 공식적인 계승권을 얻습니다. 이런 점에서 서양과 완전히 다르죠. 공식적인 첩과 비공식적인 첩의 차이. 또한 서양 왕들의 정부는 비공식적인 지위라 총애가 식으면 그걸로 완전히 끝나서 버림받습니다만, 동양에선 버림받아도 뭔가 일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일단 공식적인 지위는 그대로 남죠. 이렇게 완전히 다릅니다. 엄청난 차이죠.
  • 답댓글 작성자델카이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1.23 지적해 주신 내용은 매우 적절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서양에서는 사생아에게는 근본적으로 상속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환경의 차이가 있죠.. 머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 없는게 그 때문에 왕비들은 왕의 정부에게 대해는 것이 꽤 편했습니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까 왕이 정부를 두는 건 어쩔 수 없었고 그냥 외국에서 와서 다 그런거지 뭐 하는 식으로 이해해주는 경우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루이 14세의 정부인 몽테스팡 부인만 해도 악녀 급인데.. 막상 루이 14세의 왕비와 루이 14세 간의 금술은 좋은 편이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델카이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1.23 특히 동양에서 왕의 첩은 차등적이긴 합니다만 모두 계승권을 가진 경우이기 때문에 그런 왕위 승계를 놓고 엄청난 권력투쟁, 정치적 암투가 벌어졌다는 점도 존재합니다. 투르크 같은 경우는 왕위 승계를 못한 형제들을 죽이는 관습까지 있어서 이 문제를 심화시켰죠..

    서양에서는 그런 정치적 암투에서는 꽤 자유로왔습니다. 아예 정치에 관심 없는 정부들이 훨씬 많았죠.. 남자에게 잘보인다 -> 결과로 보석을 받는다. 뭐 이런 정도..
  • 작성자ilmonde | 작성시간 11.01.23 학교 도서고나에서 빌려봤던거로군요. 여러 정부들이 소개되던데 팔자 좋게 여생을 보낸 정부도 있고 패가방신한 정부도 있고 무엇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엄청난 고연봉 직업이죠. ^^
  • 작성자히스토리아 | 작성시간 11.04.04 하여간 저 퐁파두르 부인이 죽고 좀 텀을 두고 루이 15세의 정부가 된게 베르사유의 장미에 나오는 두바리 부인이죠. 베르사유의 장미에서는 굉장히 악역으로 그려지지만 실제로 성품은 인정도 많고 착한 편이었습니다. 머리가 좀 나쁜게 문제여서 결국 재산 챙긴다고 혁명 프랑스에 돌아왔다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지만요. 마리 앙투와네트와의 기싸움도 사실 본인이 원한 것도 아니었고 본인은 그냥 넘어가고 싶어하는 걸 주변 사람들이 싸움을 만들어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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