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좋은 글들

중세의 기사와 갑옷담당종자

작성자고어핀드|작성시간06.05.15|조회수1,376 목록 댓글 17

* 게이볼그 님의 백년전쟁사를 보다 보니 기사들이 어떻게 살았을까에 대해서 코멘트하고 싶어서, 짧은 글 하나 올립니다.

* 새로운 짤방의 도를 양해하세요.

 


우리는 중세라고 생각하면 반짝이는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전사들을 떠올립니다만 이런 멋진 모습을 위해서는 갑옷 손질이라는, 지저분하고 힘든 "삽질" 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개삽질이 고귀한 기사가 할 일은 아니니 당연히 누군가에게 떠맡겨졌는데, 역사는 이들을 "갑옷담당종자(Arming Squire)"라 부릅니다. 요즘 F1 레이싱을 보면 한 명의 레이서가 탄 차에 열 명이 넘는 정비원들이 달려들어 자동차를 정비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당시 기사들도 이 점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중세 기사의 정비원"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이 바로 이 갑옷담당종자였습니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중세의 전쟁은 몇 분 정도만에 끝나는 간단한 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 전쟁은 요즘처럼 며칠에 걸쳐 작전을 전개하거나, 대포와 같은 대량 살상 병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천 명이 동원되는 대규모 전투라도 한 번 벌어지면 새벽부터 저녁까지 열 시간도 넘게 싸우는 것은 예사였습니다.

 

그 긴 시간동안 격전 한 판 벌이고, 잠깐 돌아와서 물 좀 마시고, 또 싸우고... 만 반복하는 겁니다. 문제는, 중세 기사의 갑옷이란 안전한 대신 무지 벗기가 힘든 물건이라는 거죠. 볼일 좀 보려고 이것 벗었다 입었다 할 시간은 없으니까, 당연히 싸우면서 그 자리에 싸는 겁니다. 기사가 겁에 질리면(?) 더했겠죠.

 

<아이 배고파.>

 

전투 환경도 하등 나을 바가 없어서, 진흙탕에서 말과 사람이 뒤엉켜서 싸우니 엉망인 것은 당연했고, 전투가 여름에 벌어지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 오랜 시간 뛰어다니면 흘린 땀도 미칠 지경이었습니다.(가만히 서 있어도 흐르는 땀에 죽을 판인데 -_-..)

 

결국 기사의 갑옷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반짝반짝한 물건이 아니라, 전투 한 판 치르면서 제구실을 하고 나면 땀, 진흙, 오물이 뒤범벅이 된 무지막지한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갑옷담당 종자는 이 엉망진창인 갑옷을 깨끗하게 닦아 정비하고, 관리하고 전투 직전에는 주인에게 입히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갑옷 닦는 일이 뭐가 힘드냐구요? 마실 물도 귀한 전쟁터이다보니 물로 못 닦고 모래, 식초 그리고 약간의 오줌을 섞어서 만든 연마제로 갑옷을 닦는 겁니다.

 


<휴우 냄새...>

* 갑옷에 묻은 오물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만 보입니다.

 

여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니, 종자는 주인의 말도 관리해야 했고 식사 시중도 들어야 했습니다.(이 과정에서 귀족들의 에티켓을 배우는 것이겠죠?) 기사가 끌고 온 하인들과 몇몇 병정들을 감독해서 천막을 치고, 기사가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무보수 매니저죠.

 


<노르망디 공 윌리엄의 잉글랜드 정복을 다룬 바이외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에 묘사된 장면들 중 하나. 잉글랜드 침공을 준비중인 윌리엄의 군대가 물자를 배에 싣고 있다. 사진의 한가운데 포도주통을 들고 가는 병정이 보인다. 이런 물자들은 전쟁터에서 기사들의 만찬에 쓰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혐오스럽고 힘든 직업을 평생 할 필요는 없었다는 겁니다. 이 일은 기사 계급에서 가장 신분이 낮은 견습인 어린 소년들에게 맡겨진 일이었거든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카이사르씨 | 작성시간 06.05.16 상상하려 하시지 말고... 냄새를 떠올려 보세요. ㅎㅎ
  • 작성자Mesura | 작성시간 06.05.16 그나저나 전투중에 그냥 싸버린다는건 좀...충격이...내가 말이었으면 참 기분 드러웠겠다는 생각이 드네요...등짝 위에 뭔가 뜻뜨 미지근한것이 주룩 흐른다면...개중에 건데기도 가끔씩....-_-; 설마 응가야 따로 햇을거 같지만...-_ㅡ;
  • 작성자눈부신재 | 작성시간 06.05.19 건데기가 있다면 말은 고마워 해야겠죠. 설X면 ㅡ,.ㅡ..... ㅎㅎㅎ;;;
  • 작성자태사문중 | 작성시간 06.05.20 으윽....기사에 대한 환상이..!!! 백마탄 기사님은 냄새가 났었더라는...!!!
  • 작성자Sinsigel | 작성시간 06.05.20 전투 중에 화장실 문제를 생각하는 기사는 무척이나 여유로운 기사이겠지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