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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의 용병제도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작성자미드나잇| 작성시간10.06.21| 조회수1161|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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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드미트리대공 작성시간10.06.22 용병의 개념을 셋으로 나누자면 자국민이 자국의 왕에 대에 충성을 매개로 하지 아니하고 금전적인 계약의 관계에 있는것, 두번째로는 국가가 없는 민족이나 국가의 정규군에 편입할수 없는 사정에 있는 무장집단이 돈을 받고 고용주에게 고용되는것, 또하는 한 국가내의 피지배민족이 지배민족과 적대적인 관계의 국가에게 고용되어 금전적이득과 민족의 독립 두가지를 도모하는것, 중세시대의 용병들은 이런형태가 있었던거 같네요, 어떤 용병의 형태냐에 따라서 욕을먹고 안먹고 했을듯
  • 작성자 백숙의왕 작성시간10.06.22 대국굴기 독일편을 보면 프로이센을 제외한 독일의 군주들은 자기의 군대를 용병처럼 다루었다고 하네요. 꼭 돈을 받고서가 아니라 자국의 이익이 보장되면 빌려주기도 했는것 같습니다.
  • 작성자 미드나잇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6.22 타국에 있던 자국용병때문에 전쟁이 났던 기록은 없는지 궁금하네요
  • 작성자 메디치 작성시간10.06.22 학생님 글을 찾아보시길..ㅎㅎ
  • 작성자 델카이저 작성시간10.06.22 1. 봉토가 없는 무장 귀족, 훅은 준귀족들이 밥벌이 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알바 뛰는 경우가 많다고 보시면 됩니다. 기본적으로 기사의 봉공은 40일이기 때문에 이 이상 봉공을 받으려면 돈 줘야 하는데, 영주들이 딱 40일만 돌린다고 하면 땅이 없는 귀족의 경우 아예 수입이 없죠..-_-;; 그러니 여기저기 전쟁 뛰고 먹고 사는 거죠.. 이 케이스가 가장 많았습니다.

    2. 이렇게 여기저기 봉공하는 경우 아예 집단으로 봉공을 하는 케이스가 생겼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용병입니다. 칼잡이들이 모이면 나름 발언권이 강해지고 대표가 교섭하고 하는지라..(고대 그리스의 용병들도 뭐 대충 비슷했습니다. )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 작성자 델카이저 작성시간10.06.22 용병단이란게 생겼죠..

    3. 그럼 아무렇게나 여기저기 붙을 수 있느냐.. 절대 아닙니다. -_-;; 자기가 봉공하는 귀족에 대해서 적대하는 것은 절대 안되었고..(당연하지만..)용병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돈 안주면 안싸우지만 그렇다고 배신해서 돈주는 상대 영주에 붙어버리느는 소위 개막장 짓으로 욕먹었지요..

    4. 영국 용병이 프랑스 지원하면 영국이 싫어질 수는 있겠는데.. 영국왕이 대놓고 프랑스에 군대를 지원한게 아니라면(즉 동원력을 발동하여 자기 기사들을 보낸게 아니라면.. 프랑스 왕이 영국 용병을 고용한 건데 영국에 뭐라할 건 아니죠..)
  • 답댓글 작성자 타마누님 작성시간10.06.22 가나에 고용되어 조국을 발라버린 세르비아인 감독을 생각해 봅니다 ㅇㅁㅇ
  • 작성자 팔랑기테스 작성시간10.06.23 중세...용병들이 본격적으로 나오는건 대략 11세기 금광과 은광의 확대로 화폐경제가 등장하면서 부터입니다. 그 이전에는? - 닥치고 봉건제 계약 군대입지요. 물론 그 이전 봉건제 계약군대도 계약기간 40일에 활동구역까지 세세히 정해져있는터라(프로방스지역 기사는 닥치고 프로방스에서만 일해염. 그 이상 넘어가면 추가계약 ㄱㄱ~) 활동구역과 계약 기간이상으로 일하면 추가 비용을 받는식으로 용병질(?) 비슷한 알바를 하긴 했지요.
  • 작성자 팔랑기테스 작성시간10.06.23 금광과 은광의 수입이 늘어 화폐경제가 등장하기 시작한 11세기경 이 용병질 아닌 용병질을 하던 봉건제 군대와 기사들은 슬슬 돈맛을 보더니 이쯤부터 아예 대놓고 용병질을 하기 시작합니다. 화폐경제 발달로 토지를 기반으로한 장원제가 경제적으로 쇠퇴하여 기사들이 토지수입으로만 먹고살기 힘들어지는데다 전쟁이 소규모,단기전에서 점차 대규모,장기전으로 변모함에 따라 봉건제에 의한 군역이 서서희 소멸하고 대신 돈받고 일해주는 용병제가 확립되어 간것이지요. 고용주인 영주나 국왕의 입장에서도 제약이 많은 봉건제 군대보다 돈만 있으면 멋대로 부릴수있는 용병들을 선호했고 용병제가 고용주와 고용인 둘다에게 입맛이 맞는지라
  • 작성자 팔랑기테스 작성시간10.06.23 12세기 부터는 아예 용병일만 생업으로 삼는 용병기사단까지 생깁니다.(독일의 브라반트단이라던가 스페인의 아라곤단,나바라단같은..) 이쯤되면 11세기까지만해도 대략 용병일을 하긴 하지만 봉건제에 의한 사회제도가 없어진게 아니어서 아무리 용병일을 해도 어디까지나 알바의 개념(?)으로 하던 기사들이 아예 용병일을 주업으로 삼기시작합니다. 이러면서 유럽각지에 각종 용병들이 오후죽순으로 생기지요. 이러한 용병단은 조국에 대한 충성심이나 영주나 국왕에 대한 충성심같은건 그지 발싸개로 쓸래도 없었습니다. 닥치고 돈에 대한 충성만 있었을 뿐. 12세기 독일에는 무려 44명의 영주와 계약을 맺은걸 자랑스러워한
  • 작성자 팔랑기테스 작성시간10.06.22 용병기사까지 발생하니 머...... 13세기쯤부터는 봉건 징집제가 슬슬 폐지 됨에 따라 유럽의 군대는 용병으로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백년전쟁,십자군전쟁,이탈리아 전쟁등을 거치며 용병은 유럽의 표준 군대가 되어버리지요. 정리하면 용병제는 봉건 징집제가 화페경제의 발달+전쟁의 대규모,장기화로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그 대안으로 생성,발전되었으며 10,11세기 부터 발생, 12,13세기쯤 발전되어 14,15세기 확립되었다고 보시면 됩디다. 10,11세기 유럽군대->봉건 징집 군대가 대부분이며 소수의 용병군 12,13세기 유럽군대->봉건 징집 군+용병군의 혼용. 점차 용병군의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함. 14,15세기 유럽군대->봉건 징집제가 붕괴됨에
  • 작성자 팔랑기테스 작성시간10.06.22 따라 대부분 용병군으로 채워짐. 유명한 이탈리아 용병군,스위스 용병군,독일 란츠크네흐트등의 유명 용병대가 이쯤 생성되었으며 전쟁 기업가라 할수있는 용병대장에 의한 용병제가 확립.이라 볼수있겟습니다.
  • 작성자 팔랑기테스 작성시간10.06.23 2. 용병은 하나의 국가와는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했었나요?-> 상황에 따라 좀 변수의 케이스가 있기는 합니다만 대체로 용병들은 국가와 별반 관계도 없고 국가에 대한 충성도 없었습니다. 물론 시대에 따라 국가에 따라 다르긴합니다만 대체로는 그렇습니다. 11세기까지만 해도 봉건제의 제약에 묶여있던 용병군대가 시대가 흐르며 봉건제에 의한 제약에 풀린이후는 머..돈 주고 고용되면 끝이지요. 대표적인 용병대인 제노바 석궁병대나 스위스 장창병대나 란츠크네흐트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돈받고 고용되면 그만인지라..
  • 작성자 오로쿠트 작성시간10.06.23 애초에 중세엔 근대와 같은 국민국가 개념이 별로 없었습니다. 어디 사람, 이라는 소속감이 있긴 했지만 봉건제의 특성상 그리 큰게 아님.
  • 작성자 십하드 작성시간10.08.03 아뇨 용병은 애초에 국가에 많은 귀속을 받지않는 군단입니다.그 예로 13세기경 프리드리히 2세의 지휘아래 신성로마제국과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쌈박질을 벌일때 프로이센 지방에서는 웃기게도 서로 피터지게 싸우던 독일의 귀족기사들과 제노바의 용병단이 튜튼기사단의 지휘아래에 함께 동료로써 싸우는 상황까지 벌어집니다.
  • 작성자 십하드 작성시간10.08.03 게다가 부빈전투에서는 프랑스군에 고용된 노르만 기사들이 신성로마제국군으로써 참전한 영국의 솔즈베리 백작 윌리엄 롱소드의 노르만인들과 동족상잔까지 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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