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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도펠졸트너와 츠바이핸더: 허구와 진실

작성자KWEASSA|작성시간08.08.06|조회수3,404 목록 댓글 12

인터넷을 돌다가 주의깊게 읽어보게 된 글입니다. =_=; 전 중세후기와 근세초기의 전쟁사부문에 대해서는 지식이 일천하므로, 이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이제까지 흔히 들어오던 "도펠졸트너", "츠바이핸더".. 등에 대한 얘기와는 좀 다른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다는 생각에서 퍼와서 번역을 해봅니다.

 

부분 부분 칼라강조/하이라이트는, 제가 특히 흥미롭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임의로 함 꼽아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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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저는 예의바르게, 그러나 분명하게, 데이빗씨의 의견에 동조할 수 없음을 밝힙니다.

 

두 개의 주제 모두 자주 떠오르는 편에 속하기 때문에,  저는 이 문제와 관련된 사실을 정립하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따라서, 늘 이러한 주제를 마음에 염두해두고 있는 편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밝혀두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우선, 저는 제 주장이 틀린 것으로 밝혀진다고 해도 100%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상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선 의견들은 영화매체라든지, 리인액터 집단이라든지, 근거없는 소문에 의지한 것들이 태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찰스 오만, 한스 델브룩과 같은 서술가들에 의해 전해오는 사료들은 물론, 수 많은 미술품들을 검토해왔습니다.


물론, 제게도 약점은 있습니다. 저는 르네상스시기 전쟁사와 관련된 광범위 정보를 갖고 있으며, 특히 군대의 편제 및 무장, 배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보의 대부분은 당대의 영국 고문서를 통해 얻은 것입니다. 그러한 사료들은 주로 영국과 네덜란드의 양상을 다루고 있고, 일부는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의 양상에 대한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전쟁터의 관찰자의 입장에서 기술된 것도 있고, 다른 것들은 당대의 외국 서적을 자국어로 번역한 것들입니다. 이 사료 대부분은 16세기의 마지막 25년 동안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츠바이핸더나 비덴핸더의 전성기에 직접적으로 해당하는 시기의 사료들은 검토할 수 없었습니다. (즉, 영국어로 번역된 서적이 없습니다.) 영국은 본격적으로 양손검을 사용하지 않았으니까요. 적어도, 정규적으로는 말이죠.

 

그것이 저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부디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일단 여기까지 하고,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이제 얘기해볼까 합니다.

 

양손검의 등장과 쇠퇴는 폴암(polearm)으로 무장한 병과가 "공세적" 역할을 맡고 있던 시대와 일치합니다 (대략 1450년 - 1530년 사이). 폴암병과, 특히 장창병은 이후 150년 동안 더 사용되었지만, 그 역할은 초기 스위스 장창방진과 같은 "무적전진"의 형태에서부터 보다 방어적인 형태로 바뀌어가게 됩니다. 특히, 총병을 보호하는 역할을 자주 맡게 되었으며, 16세기 후반에 들어서면 익히 알려진대로 "버텨서는 모루"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


이 초기 "폴암공세"의 시대에 영국은 전란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럽 본토에서 벌어진 전쟁의 대부분은 이탈리아 반도 내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벌어졌습니다. 또, 이 시대에는 적의 밀집대형을 격파하기 위해 아직도 웨일즈식 장궁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오늘날 전해지는 대부분의 양손검들이 이탈리아제나 독일제인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죠. 영국이 드디어 스페인, 북해연안 국가들, 그리고 아일랜드와의 전쟁에 뛰어든 시점(1560년대)이면, 밀집대형을 격파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미 칼리버와 아퀘부스가 활을 완전히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양손검 단계는 통째로 넘어갔고 말이죠).

파비아 전투(1525년)이 아마 츠바이핸더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560년대에 들어서면 이미 대부분, 전장에서는 사라지고 장식용으로만 남아있게 되었으며, 비슷한 부류의 다른 양손검들도 대체로 이 시기에 쇠퇴하게 됩니다. (츠바이핸더는 주로 특정한 형태의 양손검 - 리카소 윗편에 플루크가 배치된 형태, 보다 뚜렷한 키용과 포트링 - 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투배치의 측면에서 츠바이핸더는 물론 대개의 양손검이 어느 위치에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 얘기해보자면, 많은 란츠크네히트 리인액터들은 츠바이핸더로 무장한 도펠졸트너를 "충격부대"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닌 듯 합니다.

도펠졸트너는 대개 할버디어들과 함께 군기와 기수를 지키는 역할을 맡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진형의 중간에 위치하게 되며, 사령관과 군기를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을 이루게 됩니다. 흔히 묘사되는 역할(즉, 장창방진을 격파하는 돌격대)을 실제로 취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도펠졸트너는 전체 병력의 0.5% ~ 1% 만을 차지합니다. 단언컨데, 그러한 병력상황으로 선봉돌격이 그들의 주된 역할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츠바이핸더의 전성기에 직접 해당되는 시기의 사료가 부족한 관계로, 이런저런 사료들에 조금씩 언급된 것과 그림을 통해 묘사된 것을 바탕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만, 일단 몇가지 언급을 해보자면;

 

"손잡이가 두텁고 십자형태의 (가드가 검신에 붙은) 오늘날의 양손검은, 내가 앞서 언급한 여느 무기 못지 않다. 수 많은 갤리선 가운데 있는 갈레온과 마찬가지로, 그 하나로 여러 자루의 검이나 다른 무기를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쟁터에서는 기수나 군기를 지키기 위해서 사용된다. 그 하나로 여러 적을 막아낼 수 있기 때문에 역할에 적합하다."


 

 

지아코모 디그라시, "진정한 방어의 예술', (1594), 번역 I.G.

 

(신성로마제국군의 양상에 대해 언급을 하며)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의무로 독일의 위대한 영주들이 전쟁을 나설 때면, 일부는 자신의 영지에서 기병을, 다른 사람들은 보병을 모집한다. 이들은 500 명 단위로 부대를 편성하여 군기를 배치하는데, 이 부대는 아퀘뷔지어, 장창병, 할버디어는 물론이고, 소수의 바구니검을 두어 기수를 보호한다..."

 

('바구니검(Slath sword)'이라는 것은 양손검의 별명이다. 60년대에 출판된 란데스하우스 그라츠 카탈로그에 따르면, 기재되어 있는 두 자루의 양손검을 '슬라터슈베르트(slather schwert)'로 기록하고 있다.)


죤 스미스 경, "무기의 형태와 효과에 대한 담론", (1590)

 

(역주: 즉, 독어 'slather schwert'의 'slath'를 따와서 영어로 'slath sword'라고 부르다보니까, 중세영어로는 'slath'가 '바구니 밑바닥'을 뜻하기 때문에 '바구니검'이 된 것)

 

 

츠바이핸더의 실제 사용법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전통적인 검법에 비한다면 오히려 폴암에 가까운 형태로 사용됩니다. 리카소 위에 위치한 플루크, 혹은 앞쪽의 키용 부근은 안전하게 손으로 쥘 수 있으며, 이 곳을 붙잡고 검을 위나 아래로 향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자세로 장창병들 사이에 배치됩니다. (양쪽 대형이 만나서) 공격의 순간이 다가오면, 이들은 (아군) 장창병들 사이로 미끄러지듯이 전진하면서 우선 몇 개의 (적군) 창날과 마주치게 됩니다. 이렇게 양손으로 검을 잡은 상태에서는 굉장히 훌륭한 지렛대가 되기 때문에 한 자루의 츠바이핸더가 한 번에 5~6 자루의 장창을 밀어젖힐 수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장창을 한 방향으로 밀어젖히면 아군 병사들이 그 틈새로 돌격해 들어가는 것이죠. 그러나, 그 상태로는 츠바이핸더를 사용하는 사람이 다른 장창의 공격에 대해 무방비가 됩니다. 따라서, 한쪽으로 장창을 밀어젖힌 상태에서 그대로 창대를 따라 돌격하면 1미터 20 센티짜리 검을 쥔 채로, 거의 5미터 앞에 창날을 두고 있는 창병들에게 돌진할 수 있습니다.

 

즉, 플루크와 키용을 사용하여 창대를 검신에 걸듯이 한 상태에서 안전을 확보하여, 그대로 밀어젖히면서 창대를 따라 미끄러져 나가는 것이 가장 개연성이 있는 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손검의 훈련방법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현존하는 대부분의 전투지침서나 검술서적은 16세기 말에 저술되었습니다. 즉, 그 대부분이 양손검의 전성시대가 지난지 50년은 족히 되는 시점에서 저술된 것이죠. 물론, 리히테나우어 등의 독일 검술서들은 그 이전에 저술되었지만, 이 경우에는 오히려 양손검의 전성시대 훨씬 이전에 저술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양손검이 최고의 활약을 하던 시대상황에 걸맞는 검술서는 아칠레 마로초의 '오페라 노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이 거의 없고 대부분 문자로 되어 있는 이 서적은 16세기 토스카나에서 고유의 이탈리아 방언으로 저술되었습니다. 이 서적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며, 주로 묘사되어 있는 아름다운 버클러들과 관련해서만 언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http://jan.ucc.nau.edu/~wew/fencing/manuals.html

아쉽게도, 아직은 완역판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토블러씨가 빨리 완역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양손검과 관련된 삽화들은 모두 앞서 제가 기술한 방식으로 장창병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1) 즉, 방어자세 대부분이 중단 자세에서 검을 수평으로 하고 있습니다. 
2) 공격자세의 삽화는 네 장, 그러나 방어자세의 삽화는 15장이나 됩니다. 억측일 수도 있으나, 보다 방어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편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 그 15장의 삽화 중에서 여섯은 검을 아래로 향하고 있고, 셋은 위로, 셋은 수평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뭔가 경향성이 감지된다고 할 수 있겠죠.

이번에는, 미술작품들의 얘기를 해봅시다. 이 경우에는 우리의 "1%의 병사들"에 대해서 얘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하 언급되는 대부분의 화가들은 기록화로 유명한 사람들이 아닐뿐더러, 그들의 작품은 인터넷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자비를 들여 직접 책을 사서 보거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제가 스캐너를 준비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도펠졸트너가 등장하는) 미술작품들 대부분은 파비아의 전투로 그들이 영광의 정점에 도달한 막시밀리안대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에서 의미심장한 부분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스 홀바인 2세: 궁정화로 유명합니다. (우리 영국인들 대부분은 헨리8세의 초상을 통해서 그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 중 두 점에는 "보병전투"라는 간단한 제목이 붙어있는데, 거기에서 두 명의 양손검병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장창병과 할버디어들이 맞붙은 한 가운데에서 힘차게 내려치는 모습입니다. 온라인상에서는 찾기 힘든 작품이고, 런던 리즈 콜렉션 소장품이며 오스프레이사의 "Battle of Pavia" (~$14.00)에 실려있습니다.


베르나르트 판 오를레이: 파비아 타페스트리로 유명합니다. 파비아 전투와 관련된 당대의 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오스프레이사의 책에는 타페스트리의 사진이 몇 장 실려있지만 모두 작은 흑백사진입니다. 원본은 이탈리아의 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사진들은 반코 토스카노에서 출판한 "지오반니 델레 반데 네레"라는 책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으며, 지오반니 데 메디치에 대한 다양한 에세이들의 모음집입니다 ($35.00) 파비아 타페스트리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은 아니지만, 타페스트리의 부분부분을 촬영한 멋진 사진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부러진 창대를 쥐고 있는 장창병(혹은 할버디어)을 공격하려는 도펠졸트너의 모습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창대를 베어낸다"는 신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림에 묘사되어 있는 검은 분명하게 츠바이핸더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츠바이핸더를 든 도펠졸트너가 등장하는 장면이 몇 군데 더 있는데, 모두 장창방진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활약상"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지오르지오 바사리: 미켈란젤로와 그의 건축에 대한 저술로 유명하지만, 그 자신도 꽤 인정받는 프레스코 화가였습니다. 그의 작품 또한 "지오반니 델레 반데 네레"에 소개되어 있는데, 팔라초 베치오의 "살라 데 지오반니 델레 반데 네레"의 벽화입니다. 이탈리아어로 된 제목은, "산탄젤로 다리 위에서 벌어진 지오반니와 오르시니의 싸움"입니다. .

그림에는 몇 명의 양손검병들이 한 무리의 장창병을 상대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로초가 자신의 저술에서 "가르디아 데 코다 룽가 에트 알타 (높은 긴 꼬리의 방어자세)"라고 부른 자세와 거의 흡사한 형태로 서있습니다. 마로초의 방어자세는 오른 손으로 키용 부위를 잡고 왼손은 폼멜에 두며, 검은 수평으로 몸의 우측, 가슴 높이에 둡니다.  그림 속의 자세는 왼손이 키용, 오른 손이 폼멜에 가 있으며, 검신이 수평이 아니라 배꼽방향으로 살짝 쳐져있을 뿐, 기본적으로는 마로초의 자세와 완전히 동일합니다. 그들은 이 자세로 창병들과 맞서면서, 검날을 방패로 삼아 (창대에 걸쳐두고) 검의 끝을 상대에게 향한 채 그대로 창대를 따라 미끄러지며 돌격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양손검을 멧돼지의 어금니라고 상상하시면 됩니다.

그 외에도, 오스프레이사의 서적들에 (작고 조잡한 화질이지만) 여러 사진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대부분은 작자미상이고, 간단하게 "파비아 전투", "튀니지 함락" 정도의 제목만 달고 있습니다.

 

종합하자면, 현존하는 츠바이핸더에 대한 묘사에서는 대부분, 그들의 위치를 할버디어와 함께 기수 옆에 두고 있습니다. 비율로 따진다면 한 부대 내에 할버디어/미늘창병이 20% 정도 되고, 이제까지 제가 검토해본 모든 미술작품들에는 항상 아래와 같은 비율로 병종들이 등장합니다:

1. 군기 하나 당, 한 명이나 두 명의 도펠졸트너가 붙어 있다
2. 도펠졸트너 한 명이 있을 때, 할버디어/미늘창병은 항상 20~30명이 있다.

 

이제 거의 마지막입니다.

 

양손검으로 마필의 다리를 벤다는 것은 왠지 브레이브하트를 연상하게 만드는군요.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대로 실제로 양손검병은 대개는 방진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게 됩니다. 하지만, 데이빗씨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문제가 있습니다.

1. 말은 빠르다

2. 말은 영리하다

3. 말은 덩치가 크다

4. 말은 성격이 더럽다 (그렇게 훈련받은 경우)

5. 말은 비싼데다가, 포획하면 쓸모가 많다

 


기본적으로 "말을 노리기 보다는 기사를 잡아라" 입니다. 게다가, 기사를 말에서 떨구기 위해서는 양손검을 쓰느니, 할버디어나 미늘창을 쓰는 것이 몇 배는 더 효과적이니까요.

자, 제가 정론을 말한 것이 아니라면, 아마 반박을 당하겠죠. 하지만 적어도 제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당대의 독일/스위스쪽 사료들을 손에 넣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관련된 자료라면 무엇이든 환영합니다. 혹시 그라츠 부근에 거주하는 분들이 있다면 자료조사를 부탁드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 매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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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것처럼, 이쪽 분야는 전혀 모르는 편이라 그냥 줏어듣는대로 "그런가 보다.." 생각을 하는데, 만약 위의 매튜라는 분의 말이 사실이라면 꽤 쇼킹한데요?

 

일단,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대로 엄청난 기세로 검을 휘두르며 창대를 픽픽 잘라내는 것은 확실히 아니라고는 해도, 그래도 대충은.. 검을 꼬나쥐고 두터운 갑주에 의지하여 어떻게든 창대 사이로 몸을 들이민 후에 호쾌하고 검을 휘둘러대는 것을 상상했는데..

 

위에서 묘사된 것은...

 

* 애초에 "검"처럼 쥐는 것도 아니고, 일종의 하프소딩 비슷한 방식으로 "창"처럼 쥔 후에

* 슬금슬금 창날 맨 끝부분에서 눈치를 보다가

* 기회를 틈타 그 "츠바이핸더 창"을 양손에 쥔 상태로 창대 하나를 가드에 걸어서

* 그대로 힘을 줘서 옆으로 밀어 젖히면서 한 5~6개 쯤 창대를 봉쇄하고

* 창대가 가드에 걸린 채로 칼끝을 적으로 향한 채 쭈욱~ 미끌어지면서 그대로 찔러넣기...

 

이것도 꽤 다이나믹 하군요. -_-; 다른 분들은 다 알고 있던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오늘 처음 들어봤군요..

 

 

 

게다가.. 애초에 도펠졸트너 자체가 "돌격대"가 아니라, 엘리트 호위병이라는 것도 쇼킹..

 

 

 ..

 

윗 글의 출처는:

 

http://www.myarmoury.com/talk/viewtopic.php?t=4221

 

아시는 분은 아시는.. 마이아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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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KWEASSA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8.07 ==; 속으로는 내심 도펠졸트너/란츠크네히트/츠바이핸더 지지자들이 들고 일어나서 큰 논쟁이 벌어질 기대했는데..
  • 작성자게이볼그 | 작성시간 08.08.07 아악 나의 도펠찡은 그렇지 않아!!!...라곤 해도 사실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중세 서양전쟁사 자료는 거의 한정되있으니 본좌분들 한마디를 굽덕굽덕하고 받아먹는 수 밖에요;; 개인적으론 선봉이나 측면에서 충격부대가 아니었나 생각했었는데, 전체 비중의 0.5-1%라면, 그것도 기병도 아니고 보병이라면 사실상 충격력이 가져다줄 수 있는 효과가 거의 없겠군요. ...하긴 뭐, 폴암의 명수들인 갤로 글라스도 파이크 앞에선 이뭐병 취급당했는데, 아무리 정예라곤 해도 보병 갑주에 한계가 있으니 도펠졸트너들이 정말로 파이크벽을 밀어 쓰러트리기는 어렵겠군요.
  • 작성자음유시인 미스트 | 작성시간 08.08.08 사실, 이전부터 도펠졸트너에 대한 정설은 깃발을 수비하거나 창병들 사이에서 근접전에 대비하는 것이었지 선두에서 돌격하는 요원은 아니었죠. 쯔바이핸더의 특징적인 방어용 갈고리parrierhaken 같은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고..... 1500년대 초반의 파울루스 요비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양손으로 쓰는 대형 검은 스위스 병사들이 장창의 창대를 자르기 위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파이크 창대를 자르는 것이 파비아 테피스트리에서 시작된 신화인가 하는건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을 듯.
  • 작성자음유시인 미스트 | 작성시간 08.08.08 그리고 본문의 검술서에 대한 부분에서는, 유명한 검술서적 "Goliath"는 16세기 초(1510~1520년 경)에 쓰여졌으므로 참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파울루스 칼이나 한스 탈호퍼, 피터 폰 단찌히 등의 검술 서적은 1400년대 중반에 쓰여 졌으며, 이것들에서 거론되는 롱소드 검술들 역시 참고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투 핸더가 등장했고 사용되었다고 확고하게 선을 긋기가 어려우니까요.
  • 작성자음유시인 미스트 | 작성시간 08.08.08 아차,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여기저기 퍼오신 분들 글이 보였는데 여기가 원출처라길래 성지순례겸 찾아왔습니다. 헷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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