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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장공비 작성시간13.03.20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하야스단이야 말로 정통 페르시아의 후계입니다.
헬라머글 폰토스, 북방 오랑캐 팔라바는 꺼졍!
Hayasdan iz da best!! Waaaaaaaagh!! -
작성자 코쟁이24 작성시간13.03.20 1. 일단 페르시아나 파르티아나 둘 다 다종족-다문화로 구성된 제국을 건설한 지배 종족(?)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흔히 그 제국 전체를 가리켜 페르시아니, 파르티아니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페르시아인은 파르스 지역에 정착한 아리안 부족 집단이고, 파르티아는 아르사케스를 중심으로 파르타바 지역에 정착한 아리안 유목민 집단이죠. 그러므로 파르티아인들은 당연히 페르시아인들과는 다른 사람들이고, "이란인의 국가"라는 개념을 국가적으로 밀었던 사산제국 시대에도 "페르시아인"과 "파르티아인"의 구분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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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쟁이24 작성시간13.03.20 2. 아르사케스 왕조의 확장 과정을 보면 직접적인 군사적 정복 뿐 아니라, 원래 셀루시드 속국이었다가 파르티아가 셀루시드를 쳐바르니까 그냥 파르티아로 줄 바꿔 잡은 "속국"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페르시스도 그 중 하나였구요. 셀루시드/아르사시드 지배자들과 이 속국들의 관계는 그냥 "세금 내고 종주권 인정할 테니 서로 건드리지 말자"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지역/종족 차별과는 조금 다른 문제라고 봐야 할 것 같네요. 물론 AD 1세기쯤 해서 이 지역 왕조들을 파르티아계로 갈아치우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이 문제는 좀 더 알아봐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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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쟁이24 작성시간13.03.20 3. 도시에 안 들어가고 옆에 천막 치고 살았다는 얘기는 아마 셀레우키아와 크테시폰의 예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다른 지역에서도 그런 현상들이 보편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사실 셀레우키아는 헬레니즘-메소포타미아 문화권 도시였지 페르시아 도시라고 보기는 어렵구요.
그리고 소위 "일곱 귀족 가문"의 문제는 아르사케스 시절 귀족가문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거죠... 사산제국 시대까지 살아남는 수렌, 카렌, 메흐란 셋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정보는 아주 찾아보기 힘듭니다. 파르티아 시대의 기록이 워낙 없으니 -.- -
작성자 코쟁이24 작성시간13.03.20 하여튼 Parvaneh Pourshariati라는 양반은 사산제국 내 페르시아계와 파르티아계 귀족들 간의 알력이 사산제국 말기 급속한 붕괴의 한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걸 보면 양자의 관계가 어땠는지는 흥미로운 떡밥입니다. 저 책을 아직 안 읽어봤는데 나중에 한번 정리해 보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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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데미르 카라한 작성시간13.03.20 파르티아인들이 초기에 옛 페르시아 지역을 점령할 때 자기네는 따로 유목민 관습처럼
막사 지어놓은 다음 거기서 살고 나머지 피정복민들은 도시에 살게 했다고 하더군요. <- 의 경우는 초기 오스만에서도 보이는 모습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최하늘 작성시간13.03.22 몽골 제국 내부의 울루스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카안 울루스(원조)의 황제들만 해도 궁궐은 지었지만 막상 생활, 회의 따위의 일은 모두 궁궐 정원에 세워놓은 거대한 막사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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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무장공비 작성시간13.03.22 훨씬 후대에 청 러시아 중개무역으로 재산을 모으던 사하족도 마찬가지
요즘에 구리세공으로 돈좀 만졌다는 한 집시일족도 마찬가지
확실히 뭔가 공통분모가 있긴 합니다-_-;;;;; -
답댓글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3.22 어쨌든 결론은 하나입니다. 파르티아는 페르시아가 아니고, 하카마니시야 제국의 중추를 이뤘던 파르스인들은 파흘라바를 결국은 타자로 여겼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