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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0.03.22 참고로 은하면 조선도 빠질 수는 없는데, 조선의 주력상품인 '인삼'을 통해 벌어들이는 은의 양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17~18세기 한창 끗발날리던 시절에 '동지사(冬至使)'의 사행 한번에 유입되는 은의 양은 [약3톤]에 달했으며~ 이런 비슷한 사행이 일년에 여러차례 이어졌고, 인삼 밀무역을 통해 유입되는 은의 양은 또한 상당히 많았습니다. 한편, 대마도를 매개로한 일본과의 인삼거래로 벌어들이는 은의 양은 매년 [약5.3톤]에 달했으며~ 여기에도 밀무역을 통한 은의 유입을 고려하면 조선도 꽤 많은 은을 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죠...ㅎㅎ;;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괜히 '조선인삼 국산화'를 장려한 것이 아니었다는...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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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오로쿠트 작성시간10.03.23 다만 불확실한 연구긴 하지만 갑오개혁 이전 3개년간의 연 조세 수입이 평균 1280만냥 정도였다고 합니다. 물론 현물세까지 합친, 전체수입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 중국의 은량과 조선의 량이 동등한 단위였는지가 의문인데, 당시 조선의 세수입인 1280만량을 세곡으로 역산하면 84만석 가량으로, 15량당 1석으로 환산됩니다. 그런데 청의 경우 전귀은천(錢貴銀賤)이었던 18세기에도 1냥당 1~2석 가량으로 환산되었고, 그 이후 아편유입으로 인해 은이 귀해졌던 시기는 물론, 동치중흥 시기 은이 상당량 유입되었음을 감안해도 15냥당 쌀 1석의 가치로 떨어졌다고는 생각하기 힘듭니다. 따라서 조선의 저 수치는 중국 기준으로 환산하면 상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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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0.03.23 제가 조선의 은유입을 논한 것은, 조선도 세계적인 '은 블랙홀'인 중국과 세계 1-2위를 달리던 '은 생산국'인 일본 사이에서 나름의 "은의 흐름"으로써 역할을 했다는 것을 말하려한 것이지, 뭔 "은을 이만큼 끌어들였으니까 킹왕짱!"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ㅡㅡ; 동아시아 경제사에서 조선이 단순한 일본의 은과 중국의 생사를 매개로하는 [중계무역]으로써의 참여인지, 아니면 적극적인 은 유치국이었는지는 자세한 전모가 밝혀진 바는 없으나~ 조선도 세계적인 "귀금속 무역의 흐름"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다는 얘기죠...ㅎㅎ;; 그리고 물론 조선의 재정상태가 다른 두나라에 비해서 열악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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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0.03.23 그러나 "정부의 재정상태"를 기반으로한 비교는 사실 조선의 상황으로 미루어 매우 불합리한 점이 있습니다. 조선은 후기로 갈수록 조세수취의 규모가 점점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는데다, 신분제의 교란으로 안정적인 조세수입을 뒤엎는 양반나부랭이들(면세 특권층)이 늘어나 재정규모가 상당히 작아집니다! 중국이야 원체 나라가 크니 비교불가이고, 일본의 무사계급은 양반처럼 비율이 기형적으로 늘어나 '면세혜택'을 누리는 특권층이 다수를 점하지도 않았잖습니까? 게다가 일본의 경우는 시간이 갈수록 조세의 세율이 살인적으로 높아지죠...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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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앨런비 작성시간10.03.23 조선인삼 국산화는 솔직히 필요했던것은 사실이나, 그당시 인삼의 무역비율은 20%임다. 대부분 중국산 생사던가, 직물인가 까리한데, 그거 판매로 60%임다. 20%도 솔직히 상당한 수치지만 중계무역의 비율과 비교하면-_-;;; 뭐 인삼의 재배가 본격화되지 않은 17세기 후반 기준이니 18세기는 또 다르겠죠. 인삼은 베트남에도 건너가서 황제께서 성은(?)을 베푸는(?) 수단중 하나로 활용된 센스. 인삼도 그냥 인삼이 아닌 고려인삼으로-_-;; 인삼무역은 생각보다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