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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들

흠, 몽고군 최강설에 대해 제가 반론으로 쓴건데 내용이 어떤지 봐주세요.(+15 조공짤 포함)

작성자MadPanda|작성시간13.01.13|조회수1,667 목록 댓글 31

 

 

 

 

몽고가 유럽의 국가들에 비하여 전술적인 기동이나 유연성은 우위이지만, 유럽의 여러 국가들 또한 유럽에 특색에 맞게 조직된 군대를 가지고 있엇습니다.

 

몽고 처럼 끝없이 펼쳐진 대평야가 아닌 복잡한 해안선, 크고작은 구릉지대와 이미 개간되어 경기병의 기동이 제한된 평야지대이였는데, 훈족도 유럽으로 서진하면서 보병에 비율이 급증하는데 물론 게르만 족등을 유입시키는 이유도 크지만, 지형 때문에 전술, 보급상에 이유이기도 합니다.(보급은 뒤에 설명 됩니다.) 결국 몽고군도 유럽내에 본격적으로 진입한다면 저 멀리 중국에서 처럼, 보병 비율 급증은 피할수 없죠.

 

몽고가 상대한 유럽 국가 중에 하나인 폴란드는 13세기 당시만 해도 국가조직이 늦게 갖추어진 신생 왕국이었고, 서유럽에 비하여 미개척지가 많고, 울창한 산림으로 뒤덮힌 인구 밀도가 낮은 국가였습니다. 헝가리 왕국 또한 신생왕국으로 신성로마제국이나 프랑스 왕국과 같은 서유럽에 비해서 국가 역량이 많이 딸린건 사실이죠.

 

또 유럽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몽고가 첫 기마민족과의 조우가 아닙니다. 이미 수세기 전에 훈과 마자르족을 조우한적 있었고, 몽고가 유럽으로 서진하던 시기에는 헝가리 왕국 - 쿠만족의 분쟁도 겪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기마 민족을 상대하는 방법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겁니다.(헝가리 왕국의 주체도 마자르;;)

 

유럽의 국가들이 몽고에 비하여 전략적 기동성과 기동의 유연성이 낮추어 졌지만, 크고 작은 구릉과 복잡한 해안선과 강을 따라서 요새화된 거점이 즐비하였는데 사실 공성전은 공자 입장에서는 공성 기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성측이 외부에서의 병력 지원과 물자 지원을 막아야 하는 것이 중요한데, 대표적으로 원과 남명의 건곤일척 승부였던 번성 공방전의 경우 남송의 수비병력은 지속적으로 주변 거점과 장강 수운을 통한 병력과 물자 지원을 받으며 원의 엄척난 공세속에 2년을 버텼고, 원나라 입장에서는 정말 미쳐버릴 듯이 답답한 공방전이었져. 유럽의 전술이 투박한 대신에 전략은 꽤나 정교하였습니다. 이들은 오래전에 거점등을 요새화를 하여 마자르 족의 기동로를 제한되게 한 뒤에, 후방 거점에서 기동로를 차단 시킨 뒤에 이들을 섬멸시킨 사례도 있죠.

 

아무리 몽고군이라도, 만약에 몽고 군이 한 거점을 공략한다면, 수성측의 배후지 차단을 위해 병력을 분산시킬 것이고, 이는 전력 분산으로 이어집니다. 각개격파 될수 있는 상황이 연출될수 있고 또 반론 처럼 적의 거점을 포기하고, 몽고군의 강점인 기동력을 통하여 우회하여 상대의 배후지에 작은 촌락들을 약탈하며 진격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다른 거점이 앞을 막고, 기동로가 제한 되어지고 결국 그들의 기동도 둔화될 것 입니다. 또 적의 병력은 온전히 성벽 뒤에서 몽고군의 뒤를 밞을 준비를 할 것 입니다. 거점을 우회 기동한다면 포위될 확률이 높습니다.

 

정주국가들이 유목민족에 비하여 병력 동원과 경험많고 무자비한 기병을 구하기는 불리하였지만,(물론 후일 정부 조직력의 강화와 군사과학의 발달로 정주국가들이 인구대비로 엄척난 비율로 병력동원 가능 합니다.) 대신에 장기전을 할수 있는 국가적인 역량과 안정적인 후방 배후지, 조직적으로 연결된 군사 거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한다면 몽고가 많약 대규모의 유럽 원정을 시도한다면, 남송과 같이 공성에서 피를 말리는 혈전을 벌여야 만 했죠. 물론 당시 유럽국가들이 송나라의 국가적인 역량과 경제력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었지만요.

 

원이 남송과 40년 전쟁을 할수 있는 재원은, 황하 이북의 북 중국과 몽고라는 배후지가 있었지만, 유럽 전역에서는 이러한 점이 전무하였습니다. 공성측 입장에서 병력과 물자를 지원 받을 후방 배후지가 없이 공성을 벌인다는 것은 사실상 자살 행위 였습니다.

 

결국 한니발이 야전에서 연승을 하였지만 본국으로 부터의 병력과 물자 지원이 불가능하여 로마를 공략은 실현조차 하지 못한 사례도 있고, 바투가 벨라 4세를 사조강에서 격파한 뒤에 남하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사조강 전투 같은 경우에도 헝가리 군이 2~3만, 몽고군이 4만으로 추정되는데, 수보타이의 별동대가 도하작전을 하여 우회 기동을 시도하기 전에 헝가리의 군대가 숫적인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기동이 제한된 사조강에서 바투 본대를 분쇄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습니다. 당시 바투의 가신단 30명이 넘게 전사하는 등 대위기였죠.)

 

몽고군이 건조된 음식을 먹으며 보급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결국 교전을 벌인다면 갑주, 병기의 분실, 파손등과 화살의 소모가 엄척날터인데, 화살은 재활용하긴 하지만 수거되는 양은 얼마 없죠. 또한 전투 장비 이외에도 각종 생필품도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게 엄척난 양의 마초가 필요한데, 중앙 아시아 고원은 대규모 마초지가 되어 매우 쉬었지만, 유럽은 마초를 공급할 땅이 제한 된 곳이었습니다. 1차 대전 때 까지 마초가 가장 많이 소모되는 보급품이었습니다.

 

 

 


 

 

1. 쓰다가 귀찮아서 않쓴건 함정,(쓰다가 튕겨서 다시 쓰는데 어디가 어딘지 햇갈림요;;)

2. 오늘 토렌토 않돌리고 있었던거 함정

3. 태상황의 진상품을 찾고 있다가 몽고군 무적에 대해 반론하는거 쓴거 함정

4. 대충 참고한건 오스프리 몽고랑 인터넷 여러글 짜집기,

5. 하라는 배포는 않하고

5. 태상황께서 윤허해 주신다면 제가 조사가 되어 아바타 거병을 하겠습니다.

 

 

제가 틱 장애도 있고, 평소에 책도 하나 않 읽어서 그런지(진짜 태어나서 본 소설 책도 삼국지, 초한지가 다 입니다, 자기계발서적 같은건 아예 읽지도 않고 활자 자체만 봐도 토할거 같음요. 요새 몇달 동안 만화책도 않 읽어보고요;; 겨울에는 뜨듯하게 데운 방바닥에 이불깔아서 그안에서 귤까먹으며 만화책 보는게 별미인디;;) 맞춤법이나 글의 요지 같은걸 아예 틀리게 쓰는데 이런거 수정하려면 어떤게 좋을까요?

 

 

 

 

 

아래는 조공,

 

 

 

 

 

 

난 이런 거유보단,

 

 

빈유가 좋은디 결국 둘다 않생겨요.(타도 거유 타도 모에)

 

 

 

편식하지 않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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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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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델카이저 | 작성시간 13.01.14 그리고 몽골군단의 최대의 적은 자기 자신들이죠..-_-;; 일칸국이 바이바르스에게 털리고 설욕을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머리 위에 킵차크의 칸 베르케 때문이었으니까요.. 대개 이유는 비슷합니다. 장기왕조에게 털리고 되갚아 줘야 하는데 쿠빌라이와 붙는다던가.. 바투가 헝가리 원정에서 벨라 4세를 털어주고 주력을 회군시킨 가장 큰 이유는 쿠릴타이 때문이었으니까요.. 이거 없었으면 최소한 헝가리가 몽골 침략에서 회생할 가능성은 별로 없었죠..

    더욱이 대칸을 쿠빌라이가 먹으면서 몽골제국의 중심은 중원지역으로 이동했고 더더욱 서유럽에 대한 매리트가 떨어집니다. 이동네 칸들은 대체적으로 중원의 대칸에 대해서 반항적이거나
  • 답댓글 작성자델카이저 | 작성시간 13.01.14 관망세여서요...-_-;;;

    물론 서유럽의 군사기계의 강력함은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매우 조밀한 방어체계도 몽골군이 공략하는데 큰 장벽이 되었을테죠.. 하지만 1차적으로 몽골군의 침입을 피한 것은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몽골제국 자체가 팽창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데스사이즈 | 작성시간 13.01.14 몽골이 어떤 식으로 보급을 해결했는가 궁금했었는데 델카이저 님이 잘 설명해주셨네요. 좋은 거 배워갑니다.
  • 작성자타메를랑 | 작성시간 13.01.14 게시물 성격상, 서양사 게시판으로 이동시켰으니 양해 바랍니다.
  • 작성자썩은얼음 | 작성시간 13.01.14 간단히 이야기 하면 너무 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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