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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조감도

작성자한 뚝배기 하실레예| 작성시간10.03.21| 조회수1772| 댓글 48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 신격카이사르 작성시간10.03.22 주변 생활권 다 합쳐서 100만이라면 생각될 까말까인데 성안에 100만명은 오바죠.
  • 답댓글 작성자 한 뚝배기 하실레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3.22 근데 그나마 가장 신빙성 있는 100만명의 로마의 경우 거대 인구를 수용할수 있는 수도교같은 위생시설이나 기반시설이 잘 되어 있음에도 온갖 오물때문에 홍역을 치렀던건 유며하진 않나요? 그런데 그런 곳보다도 환경문제를 개인에게 전적으로 맡겼던 서라벌에서 100만의 인구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 답댓글 작성자 드미트리대공 작성시간10.03.22 그나저나 프랑스 사람들도 파리인구가 주변을 위성도시들을 다합친 게념으로 이해하고 있더군요.....시대에 따라서 행정구역의 개념이 바뀌었으니......지금 경주를 보면서 저기 100만이 살았다고? 라고 의아해 하는것도 좀 무리가 있는듯
  • 답댓글 작성자 hon11 작성시간10.03.22 최전성기 서라벌의 영역이 포항.울산에까지 이르렀다고 했는데, 지금의 서울보다 큰 면적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서울과 비교해서 1/10도 안되는 한양의 인구가 1428년(세종10년)에 10만3328명이었고,그중에서 4대문안 도성에 살고 있는 사람이 9만 7284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양을 서라벌에 대입해 보아도 최소 10배크기인데,100만도 가능합니다. 환경문제같은 경우 지금도 그렇지만 백퍼센트해결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그 당시에 방치야 했겠습니까.일반적인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면 연기난다고, 숯을 연료로 사용하던 서라벌사람들인데요...
    삼국유사에는 서라벌호수가 17만 8936호라고 기록되어있더군요.
  • 답댓글 작성자 hon11 작성시간10.03.22 서라벌유적발굴한것을 보면 서라벌이 대단히 계획된도시임을 알수있습니다.
    일단 도시자체가 바둑판식으로 정리되어 있고, 도로도 인도와 마차가 다니는 차도로 구분될뿐더러 규격별로 나뉘었습니다. 주소찾기도 몇번째골목,몇번째집하는식으로 매우 쉽게 되었습니다. 배수시설도 잘 정비되어있고, 일정한 거리마다 우물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모두 역사스페셜에 나왔던 내용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hon11 작성시간10.03.22 많은 분들이 옛날기록들을 불신하는건 잘알지만,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전쟁에서의 병력수같은 건 과장이 많겠지만, 호구조사같은 건 정확하다고 보면 됩니다. 왜냐하면 호구조사는 심하게 말하면 지배층의 피지배층착취를 위한 수단입니다. 현재의 인구조사나 주민등록보다도 훨씬 철저하게 조사합니다.
    일본정창원에서 발견된 신라민정문서 또는 정창원문서를 검색해 살펴보시면 아시게 될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 낙양 작성시간10.03.24 삼국유사의 호구조사 기록은 굉장히 신뢰하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한양과 서라벌의 크기를
    비교하시면서 인구 100만이 가능하다 하시는데
    조선과 신라의 인구차이를 감안하셔야죠...
  • 답댓글 작성자 낙양 작성시간10.03.24 우선 삼국유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전성기에 55리(里), 360방(防)이었으며 17만 8936호가 살았다고 되어있습니다. 일단 호는 제쳐두고 면적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1방은 신라시대 기준으로 약 6천평의 토지였고 그렇게 되면 한 호(戶)당 점유면적이 겨우 12평에 불과하고 평균 5명이라 감안하면 한명당 겨우 2.4평의 면적을 점유하는 셈이 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낙양 작성시간10.03.24 현대의 1인당 주거면적이 7평을 넘는걸 감안하면
    도저히 말도 안되는 수치라고 볼수있죠. 그러나
    호(戶)를 구(口)로 변환해서 계산하면 1인당 점유면적이
    12평으로 그시대 치고는 조밀하지만 가능한 계산이 나옵니다.
  • 답댓글 작성자 낙양 작성시간10.03.24 삼국유사의 백제편 기록을 살펴보자면
    "백제는 전성시대에 15만 2300호였다." (기이편 변한백제조)
    그리고 고구려편 기록을 살펴보자면
    "고구려는 전성시대에 22만 580호였다." (기이편 고구려조)
    라고 나옵니다. 서라벌 한도시의 호가 17만호인것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낮은 수치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낙양 작성시간10.03.24 횡설수설한 면이 있는데 결론을 짓자면
    삼국유사의 서라벌 관련 호구조사는 심각한
    계산상의 오류를 띠고 있거나 내지는 단위 입력상의
    오류로 보여지며, 또한 당시 신라의 인구나 발전상등을
    봤을때에도 100만 인구가 한 도시에 모여산다는건 불가능
    하다고 추측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hon11 작성시간10.03.24 조선과 신라의인구차이는 별상관이 없습니다.인구가 100만이더라도 수도에 10만이 살수도 50만이 살수도 있는 법입니다. 시대상황에 따라 틀린법이죠. 그리고 삼국유사의 고구려,백제인구기록은 저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당의 고구려.백제멸망으로 많은 기록들이 소실되었기때문에 기록이 부실합니다.. 하지만 서라벌은 후삼국시대를 제외하곤 전란도 별로 없었고, 후삼국시대에도 견훤의 순간의 점령이외에는 무사했습니다. 따라서 고구려.백제와는 비교할수없을 정도로 많은 기록들이 고려시대까지 남아있었다는 추정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도대체 왜 서라벌의 영역이 포항,울산까지 확대된걸까요. 도시가 확대되는 이유는 단 하나
  • 답댓글 작성자 hon11 작성시간10.03.24 인구집중밖에는 없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서라벌이 확대된걸까요. 역사스페셜에 소개된 발굴내용도 주거지의 확대였습니다. 신라360방이야기는 제가 지식이 짧아서 모르겠지만 원래의 행정구역과 확대된 서라벌권역과의 차이로 설명할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서울과 최전성기의 서라벌의 크기가 같다고 본다면 서울이 약 605제곱킬로미터, 1제곱킬로미터가 오늘날의 평수로 30만2500평이니 약1억8천만평입니다. 180,000,000평을 서라벌호구수 18만호로 나누면 1호당 1천평이란 결론이 나옵니다. 현재의 평수와 신라시대의 평수차이는 모르겠지만 낙양님이 계산하신 1호당 12평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hon11 작성시간10.03.24 그리고 360방도 일률적으로 크기를 6000평으로 획일화 할수있을까요. 서라벌이 바둑판식으로 배열되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중심부 이른바 왕경에 해당하는 지역에 한하고, 확대된 지역은 구체적 상황에 따라 방의 크기를달리 하지않았을까요? 지형적인 문제같은 것도 고려해서요...
  • 답댓글 작성자 hon11 작성시간10.03.24 로마도 인구먹여살리느라 허덕였는데 서라벌이 100만을 먹여살릴수 있냐고 하는 분도 계셨는데, 예를 잘못드셨습니다. 로마가 허덕였던건, 동방정복후 이탈리아반도내에서의 식량자급계획을 포기했기때문입니다. 특히 이집트를 영토로 삼은 후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졌죠. 서라벌의 경우 영역이 확대되면서 바다와 직접 면하게 되고 서쪽으로는 낙동강도 접하게 되면서 경남과 지류를 통해서는 호남까지도 연결됩니다. 호남과 경남의 풍부한 물산을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경남은 가야연맹의 통일을 불가능할정도로 각지역의 물산이 풍부합니다
    그리고 서라벌의 도시생산성도 무시못합니다. 조선초기의 낙후한 상공업의 인구10만의
  • 답댓글 작성자 hon11 작성시간10.03.24 한양의 도시생산성과 서라벌의 생산성을 비교할때 어느 쪽이 더 높을까요?
    당연히 아랍상인들까지 와서 교역했던 서라벌이 훨씬 높을 겁니다.
    통일신라자체를 비교해보아도 식량을 제외한 생산성은 서라벌이 타지역보다 높았을것입니다. 저도 서라벌인구가 100만이다라고 확정짓는것은 아닙니다만, 일단 기록이 있고 그걸 뒷받침할수있는 유물도 나오고 면적대비 1호당 평수도 계산도 해보니 삼국유사기록이 진실에 가까운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 hon11 작성시간10.03.24 참고로 현재 서울과 경주시를 비교하면 서울이 605.52제곱킬로미터,경주시가 1323.7키로제곱미터로 경주시가 2배이상 큽니다. 만약 지금의 경주시크기를 서라벌면적으로 보면 약 4억평이고 18만호로 나누면 1호당 약 2200평이 나옵니다. 물론 단순 계산이지요. 사람이 실제 거주할수있는 지역을 고려하면 훨씬 줄어들겠지만요...
  • 답댓글 작성자 hon11 작성시간10.03.24 낙양/ 낙양님이 잘못 알고 계시더라고요.
    삼국유사에는 방의 수가 1360방이라고 나왔습니다. 360방은 삼국사기기록이고요. 방의 평수도 1985년부터 진행된 신라왕경조사에 의하면 8000평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1360방의 총평수는 10,880,000평이고 1호당 60평이 나옵니다. 1호당 5명으로 계산하면 1인당 점유면적 12평이 나옵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팽창전의 것이고 삼국유사기록은 최전성기의 서라벌기록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 Arius 작성시간10.03.24 아랍상인에서 웃음나오네여; 콘스탄티노플에는 아랍인들을 위한 모스크까지 있었습니다. 버젓이 말이지요. 콘스탄티노플의 인구는 40~50만사이가 정확하다고 보면될것입니다. 시공디스커버리의 비잔틴제국이란 서적에서ㅡ 40~50만을 잡더군요
  • 답댓글 작성자 hon11 작성시간10.03.24 콘스탄티노플과 비교하면 안되죠. 바로 옆동네와 인도양을 거쳐 동남아시아를 경유해 중국,서라벌까지 온 아랍상인을 비교하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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