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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음모"

작성자KWEASSA|작성시간05.07.18|조회수1,126 목록 댓글 16

안녕하세요.

"거대한 음모(The Great Conspiracy)"는 제정 로마 말기에 브리튼에서 일어났던 1년 전쟁입니다.


서기 367년,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지키던 로마군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북쪽의 픽트족들을 끌어들였습니다. 픽트족은 반란군의 도움으로 손쉽게 방벽을 통과해 로마화된 지역으로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히베르니아에서부터는 스코트족과 아타코티족이, 게르마니아에서는 색슨족이 브리튼에 상륙하여 역시 로마화된 지역으로 진격을 시작했습니다.

이들 원정군은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초토화 시키면서 진군했습니다. 브리튼 전역에서 파괴와 약살이 거듭되었으며 색슨족방면 방위사령관(comes litoris Saxonici)인 넥타리두스는 전사했고, 브리튼 총독(Dux Britanniarum) 풀로파우데스는 포로가 되었습니다. 브리튼 내에서 로마군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마지막 남은 병사들은 브리튼의 동남쪽 도시들에 틀어박혀 방어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로마군에는 '아레아니'(혹은 '아르카니')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현지의 주민이나 용병 등을 고용하여 이들을 비밀정보원으로 삼은 것이었습니다. -_-; RTW에서는 무슨 슈퍼암살자들 처럼 나오지만, 그냥 뭐, '쁘락치'내지는 '끄나풀' 정도에 불과한 사람들이었고요. 다만 보통 밀고자들 보다는 역시 좀 정보를 모으는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임시로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국가에서 주는 봉급을 받아먹는 엄연한 공무원들입니다. 즉, 오늘날의 CIA 스파이들 정도라고 보면 되겠죠.

브리튼에서의 아레아니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브리튼 섬 주변지역에서 정보를 모아, 혹시 야만족들이 원정함대를 구성하면 그 존재를 즉각 간파하여 브리튼에 주둔한 부대에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 AWACS 정도라고 할 수 있겠죠. -_-;;

그런데, 367년 경의 브리튼의 주둔군은 동, 서, 북쪽에서 침략해오는 야만족들에 대한 정보를 전혀 얻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자연히 로마군 내부에서는 의심이 일었고, 이를 조사한 결과 아레아니들이 모두 야만족들의 이중간첩이었다는 사실이 들어났습니다. 배신한거죠.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 북쪽 경계에서의 로마병사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
* 칼레도니아의 픽트족이 침략해온 것
* 서쪽의 히베르니아로부터 스코트족과 아타코티족이 쳐들어온 것
* 동쪽의 게르마니아로부터 색슨족이 쳐들어온 것
* 아레아니들이 야만족 원정함대의 출발을 알리지 않은 것

이것이, 모두 계획된 것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오늘날, 구체적으로 누가 이 "거대한 음모"를 시작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동쪽, 서쪽, 북쪽에서 각각 쳐들어온 야만족들이 모두 서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고, 침략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북쪽경계의 병사들 사이에서 반란을 사주하고, 브리튼 주둔군의 아레아니들을 매수한 것은 모두 치밀한 "대전략"아래 계획된 행동이었습니다.

이제까지 로마군에서는, 야만인들이 서로 계획된 공조를 이룬다든지, 치밀한 첩보공작 및 매수공작을 벌일 만한 능력이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사건은 로마군사관계자들의 일대 충격을 주었습니다. 군사적으로 밀리고는 있지만 항상 어느 면에서는 얕잡아보고 있던 야만인들이 치밀한 군사작전마저 실행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되니까요. 이제는 "야만족"들도 더 이상, 기원전 시대의 선조들처럼 웃통벗고 무작정 돌격해오는 무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발렌티누스 황제는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민정장관 세베루스, 기병장관 요비누스 등을 파견했으나 이들은 사태를 수습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야만족 침공 후 1년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368년 봄, 테오도시우스 사령관이 이끄는 원군이 브리튼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동남쪽에 상륙하여 이 부근에 집중된 대도시들을 향해 진격하며 차례대로 야만족들의 포위병력을 물리쳤습니다. 또, 브리튼 전역에 병영을 이탈한 병사들도 다시 집합하여 요새를 방어한다는 조건 아래에 용서한다는 포고문을 내려 이탈자들을 전선에 합류시킬 수 있었습니다.

결국 368년 말, 침략해온 야만족 병력은 모두 물리쳤고, 반란을 일으킨 병사들은 모조리 사형에 처해졌으며, 하드리아누스 방벽은 수복되었습니다. 아레아니들의 경우에는, 이들이 전체적으로 정보를 숨기고 있었다는 심증은 있었는데 확실한 물증을 잡을 수가 없었기에, 혐의사실이 완전히 드러난 극소수만이 사형을 당했고, 나머지 아레아니들은 모조리 해고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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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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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멀티하고파ㅜ.ㅠ | 작성시간 05.07.20 주변에 로마처럼 관료체제가 잘 잡힌 국가가 없었다는 것에도 로마의 생존을 도왔겠죠...
  • 작성자꿈틀이마왕 | 작성시간 05.07.22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 작성자강강훈 | 작성시간 05.07.25
  • 작성자북현무진 | 작성시간 05.08.02 하지만 결국은 브리튼의 토착반란세력들은 엄청난 양의 피를 보죠~
  • 작성자푸른숲 | 작성시간 10.09.08 헐퀴 이거 <눈속의 독수리>에 나오는 바로 그 사건!!! 이거 순도 100% 실화였군요... 헐퀴 나중 라인강 도강 이야기는 픽션이 많이 섞인거라 이것도 픽션이라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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