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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답글]알레시아 공방전.

작성자크롬|작성시간06.01.29|조회수497 목록 댓글 10

 



 알레시아 공방전은 그림과 같이 만두비족의 도읍인 알레시아에서  베르킨게토릭스가 농성전을 벌이면서부터 시작됩니다.

 

  먼저 병력을 살펴보면 베르킨게토릭스는 대부분 기마병을 다른부족에게 지원요청을 보내고 순수 보병병력이 8만에 알레시아에 살고 있던 주민까지 있었습니다.

 

 반면에 카이사르는 10개군단에 게르만계 기마병과 소수의 갈리아 기병대 1천기정도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10개군단이라면 정원이 6만명에 육박하겠지만 잦은 전투로 정원을 훨씬 밑도는 4만 5천에서 5만사이로 보는것이 좋을것입니다.

 

 여기서 각자의 전략구도를 살펴보자면 베르킨게토릭스는  알레시아에서 농성을 벌이면서(식략은 한달정도치가 있었다고 합니다.) 각 부족 갈리아인들의 지원을 기다린다.

  카이사르는 알레시아를 포위하고 있다가, 각 방면에 나타난 갈리아 지원군과 전투를 벌이면 알레시아에서 뛰어나가 양측에서 포위 및 섬멸하는 전략.

 

 예상 지원병력이 18~23만정도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베르킨게토릭스는 충분히 이길수 있다라고 생각을 한것 같습니다.

 

 이것을 예측이라도 하고 있었던 듯 카이사르는 대대적인 포위망구축과 함께 대규모 진지를 구축합니다.

     (알레시아 공방전 참호)

 로마군 진지 사이 양측으로 참호를 파고 다시 그옆에 4.5미터가량의 참호를 파서 강물을 끌어들입니다.  그다음 참호에는 뾰족하게 깎은 나무를 구덩이에 묻고 다시 말뚝을 박은 참호를 파고, 마지막으로 U 모양의 6미터의 참호를 구축합니다.

 (저희집에 스캐너가 고장나서 참고그림을 올리지 못하는 점이 아쉽네요..)

 

이것을 알레시아측과 지원군과 맞서 싸울 반대쪽에도 구축하게 됩니다.

 

즉 카이사르의 전략은 알레시아 를 철저히 고립시키면서, 지원군과도 완벽히 방어전을 펼친다.

곧 알레시아의 식량이 고갈되면, 승리는 나에게 있다 라고 생각한것 같습니다.

 

 한달간에 거친 포위망이 완성되고, 카이사르는 한달치의 식량을 준비해 놓습니다.

이모든것이 완성되어 갈쯤, 베르킨게토릭스의 작전대로 25만의 갈리아 구원군이 도착.

 

 카이사르의 최대의 위기이자 최대의 영광인 알레시아 공방전은 그 서막을 열기 시작합니다.

 

알레시아측 8만과 지원군 25만. 즉 33만의 갈리아 군과 5만명도 안되는 로마군.

시작은 먼저 지원군측에서 기병과 궁병을 내보내 평원에서 소규모 접전을 벌이지만, 카이사르측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이튿날 공성병기를 준비한 갈리아 구원군은 밤이 되어 북을 울리며 공격을 개시합니다.

하지만 미리 준비를 하고 있던 카이사르의 정예휘하병사들은 각자 제위치에서 수비를 훌륭하게 해냅니다. 또한 위험지역에는 유격대를 조직하여 지원하면서까지 새벽까지 이른 공방전을 승리로 이끌어 냅니다.

 

 지원군측과 알레시아측 양반면에서 두번이나 패배한 갈리아인들은 막대한 인명피해를 내고 그제서야 정공법으로는 힘들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포위망의 가장취약한 곳을 찾아서 공략하려는 작적을 세웁니다.

 

 마침 현지주민의 도움으로 알레시아의 북쪽을 흐르는 강 건너편, 즉 알레시아의 배후에 잇는 언덕이였죠. 그 언덕은 포위망으로 둘러싸기에는 너무 넓어서, 카이사르도 어쩔수 없이 전략적으로 불리한 언덕 중턱에 보루를 쌓아 지키고 있었습니다.

 

 갈리아군은 그곳에 다음 3차공격을 집중시키기로 결정합니다.

 

물론 카이사르도 그곳이 가장취약한것을 알고, 2개군단 1만명의 병력. 즉 카이사르군의 5분의1에 해당하는 전력을 그곳에 집중배치하고 있었습니다.

 

 갈리아군은 그곳에 6만병의 병력을 투입. 사령관으로는 베르킨게토릭스의 사촌인 베르카시벨라우누스가 맡게됩니다. 

 

 즉 지금까지 전쟁터가 되던 남쪽과 동쪽의 평원에서 나머지 병력이 공세를 펼치고 8만의 알레시아측 병력도 공격에 나설테니까 갈리아군은 3방면에서 동시에 공격을 펼치게 됩니다.

 

 이를 알아챈 카이사르는 위급하다고 판단되는 곳에 500명단위의 유격대를 편성해 우선지원하고,

군단장이나 장교가 몇개 대대를 이끌고 지원가는 방식으로 이 격전을 치뤄내게 됩니다.

 



 하지만 갈리아군의 공격목표가 북쪽 언덕임이 확실해진 것을 눈치챈 카이사르는 부장 라비에누스에게 6개대대를 주고 도저히 지킬수 없으면 반격으로 나서되 최후의 순간이 아니면 그방법을  택하라는 엄명을 내립니다.

 

 반면 이공격이 마지막임을 알고 잇는 베르킨게토릭스의 농성군도 맹렬하게 공격하여 이미 해자나 구덩이는 시체로 메워져 있었고, 이는 지원군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7겹의 방어막은 충분히 그역활을 제대로 해주었고, 유격대를 제때에 지원하여 곧 로마군이 적을 물리치는 추세로 바뀌어 갑니다.

 

 이제서야 카이사르는 라비에누스를 파견하였던 최대격전지인 북쪽언덕으로 갈수 있다고 생각하고,

 4개대대를 이끌고 격전지로 향하고, 기병대를 반으로 나누어, 절반은 자기를 따르고 나머지 절반은

포위망 밖으로 나가서 북쪽언덕을 공격하는 6만의 갈리아 배후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마침 라비에누스의 전령이 뛰어와 이제 더는 버틸수 없다는 말을 전하고, 지체없이 카이사르는 최대격전지로 향하게 됩니다.

로마 방어군은 카이사르가 직접 온것을 알고 더욱 분전하였고, 6만의 갈리아군을 지휘하는 베르카시벨라우누스도 카이사르가 도착한것을 알고, 전투는 한층더 치열해 지게 됩니다.

 

 한창 백병전이 벌어지고 있을즈음 카이사르가 배후로 보냈던 기병대가 적의 배후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앞뒤로 적을 맞게된 6만명의 갈리아군은 6만명의 위력을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포위되어

6만의 병력은 전멸하고,  대장인 베르카시벨라우누스는 생포됩니다.

 

 이에 기가눌린 8만의 베르킨게토릭스 알레시아군은 성으로 돌아가버립니다. 남쪽평원에서 돌파하려던 갈리아 구원군도 북쪽언덕의 대패를 알고,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이를 기마대가 추격하여 적의 후미를 습격하여 많은 병사가 죽거나 포로가 되죠...

 

 카이사르는 5만명도 안되는 병력으로 앞뒤로 33만명이나 되는 대병력을 격파하게 됩니다.  

앞뒤 양쪽으로 적을 맞아 승리로는 역사상 처음이였죠..

 

 이사실을 깨닫고 식량이 고갈된  베르킨게토릭스는 사절을 보내 항복의 뜻을 밝힙니다.

 


 항복을 받아들인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기에 이말을 남깁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자진해서 포로의 몸이 되었다."

 

  그후 6년후 베르킨게토릭스는 개선식에 이용되고 개선식이 끝나자 처형됩니다.

 

 

 

                                                                               <참고서적 : 로마인 이야기-4권- , 갈리아 정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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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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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평범한삶 | 작성시간 06.01.28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위험도가 큰 만큼 달성되면 그 대가도 크다. 제가 늘상 생각하는 말이지만 카이사르는 이 위험도가 큰일의 위험도를 낮추기보다는 성공률을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대가가 엄청나겠지요 카이사르는 엄청난 위험을 품었으니 말입니다.
  • 작성자치또 | 작성시간 06.01.28 ㅎㅎㅎ쌈싸먹은 1만 5천이 더 결사적이었을 듯...글구 테르모 필라이의 스파르타인처럼 싸웠다면 카이사르가 끝장났겠죠.
  • 작성자ROK_CompanionOfficer | 작성시간 06.01.29 규율이나 훈련이 잘 잡혀있지 않은 군대는 덩치가 커져버릴경우 오히려 그 사이즈가 역으로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ㅇㅅㅇ
  • 작성자움직여! | 작성시간 06.01.31 좋은글에 ㄳ
  • 작성자크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6.01.31 별말씀을.. ^^;;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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