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ROME: Forum

비잔틴 이야기 3

작성자겨울달|작성시간04.02.24|조회수231 목록 댓글 7

<황제의 출정>

한낮의 햇살은 따사로웠다. 아나톨리아 국경수비대에서 망을 보고 있던 필라레트는 교대를 기다리며 지루함과 싸우고 있었다. 곧 결혼을 앞둔 그로서는 태양신 아폴론의 마차가 너무도 더디게만 느껴졌다. 포도주, 치즈, 올리브와 양고기를 나누며 마을 사람들이 모두 웃고 떠들 정겨운 모습이 눈에 선했다. 자신의 결혼식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할 또 하나의 축제인 것이다.
문득 저 멀리서 짙은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희미했지만 모래먼지가 이는 것을 보아 메뚜기떼일지도 몰랐다. 국경수비대원은 자신의 눈에 힘을 모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은 확신으로, 확신은 공포로 변해갔다. 말을 탄 군사들. 그것도 녹색의 초승달을 치켜든....투르크! 그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는 투르크 군사였다. 필라레트는 떨리는 손으로 비상종을 울리며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투르크다! 투르크놈들이 쳐들어온다!!”
그날, 아폴론의 마차가 대지 밑으로 사라질 무렵에 비잔틴의 영토 아나톨리아의 방어군은 전멸하고 성은 약탈당했다. 그곳의 주인은 이제 투르크로 바뀌어버렸다.

말 위에 올라있는 황제의 심경은 복잡했다. 얼마 전 터키이슬람세력이 소 아르메니아, 트레비존드, 아나톨리아를 동시에 공격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동시에 세 곳을 공격하다니.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터키의 황제 슐레이만 2세가 자식들을 이끌고 직접 전쟁에 참가했다는 것이었다. 터키가 소아시아 지역을 차지하고 있어 비잔틴으로서는 등에 칼이 박힌 듯한 고민거리이긴 했다. 소아시아는 트레비존드, 소 아르메니아와 아나톨리아에 동시에 인접한 전략적 고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이렇게 파격적인 기습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아직 상비군을 양성시킬 기반이 마련되지 않아 기껏해야 트레비존드에서 용병을 고용하는데에 그쳤던 것이다. 전령에 의하면 소 아르메니아는 막 건축한 목조성에 들어가 농성을 하고 있었고 아나톨리아는 방어군이 몰살당한채 그대로 빼앗기고 말았다. 트레비존드는 많은 용병을 거느리고 있긴 했으나 일단 군사를 후퇴시켜 수도로부터의 구원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제는 시간이 없었다. 투르크가 쳐들어와 동시에 세 곳을 공격한다는 소식은 비잔틴 전역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었서 백성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게다가 프랑스에서는 ‘피터’와 ‘허밋’이 십자군 동참을 호소하여 프랑스 전체에서 수입의 10분의 1이 감소할만큼 많은 호응이 있었다는 보고도 받았다. 그 십자군이 투르크의 소식을 접하여 이교도축출을 명분으로 비잔틴으로 오게된다면.... 황제는 기민하게 대응했다. 자신이 직접 출병하기로 한 것이다. 동시에 세르비아에 주둔하고 있던 태자에게도 소환 명령을 내렸다. 주둔군은 최소의 병력으로 남기고 귀환하면서 각지의 군을 이끌고 황제를 지원하도록 하였다.

현지에 도착하여 합류한 트레비존드의 용병들은 생각보다 우수해 보였다.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에서 데려온 휘하의 병력과 용병들을 재편성하여 트레비존드 탈환을 준비했다. 어찌보면 전화위복, 황제는 1071년 만지트케르트 전투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고 싶기도 했다. 당시 투르크에게 패한 것은 비잔틴의 용병군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용병군의 주축이 투르크군이었던 반면, 지금은 이탈리아와 불가리아 약탈자, 바이킹 부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수도에서 온 군은 최정예 비잔틴 보병이었다. 재편을 끝낸 알렉시우스 1세는 곧바로 트레비존드로 진격하였다.

트레비존드에 들어서자 투르크군도 이미 전열을 갖춰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기마궁수와 보병으로 이루어진 적군도 유능한 장군의 지휘를 받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알렉시우스 황제역시 5성의 기량을 가진 뛰어난 장군이기도 했다. 만인의 최고지위인 동로마 황제의 지위는 그 이면으로 수없는 암투와 음모가 점철되어 있기도 했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군사적 재능은 필수였고 알렉시우스 1세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명예로운 비잔틴의 병사들이여! 진격! 적을 섬멸하라!!”
비잔틴보병과 이탈리아보병이 혼성된 제 1열은 기마궁수의 사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적을 향해 진격했다. 그 뒤로는 적 기병의 측면공격을 대비하여 비잔틴 보병이 2열을 이루어 뒤따르고 있었다. 적군과의 거리가 가까워올수록 병사들의 눈이 충혈되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부풀어오른 전의가 협소한 공간을 견디지 못해 폭발하면서 양군의 전열끼리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검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고 방패가 깨어지면서 처절한 아비규환의 지옥이 펼쳐졌다. 고함과 비명이 교차되고 군사들은 자신들이 아는 모든 욕설과 저주를 상대방에게 퍼부었다. 목에 칼이 꽂힌 투르크 병사는 바닥에 누워 피거품을 일으키며 꿈틀대었고 그의 배로 비잔틴보병 하나가 칼을 찔러넣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방금 칼을 찔러넣은 병사의 등에 박혔고 비명을 지르는 그의 옆구리로 투르크의 검이 날아들었다. 첫 일격에 죽은 병사들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팔다리가 잘리고, 갈라진 배 밖으로 내장이 나오지 않도록 상처를 움켜쥐고 쓰러져있는 병사들처럼 치명상을 입은 자들은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신과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살인의 광기와 죽음의 공포는 단말마적인 비명이 되어 하늘을 울리고 대지는 피에 젖어 축축해지고 있었다. 신의 가호는 어디에도 없었다. 땅위에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짐승의 포효와 호전적인 금속의 충격음만이 피의 축제를 즐기는 악마의 웃음소리처럼 울려퍼지고 있었다.

혼전의 상황을 변화시킨 것은 비잔틴의 나프타 투척병들이었다. 제 1열과 2열 사이로 뛰어든 나프타 투척병은 투르크군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그들의 공격은 살상력과 더불어 심리적으로도 효과가 컸다. 투르크군 전열 중앙을 집중적으로 공격한 나프타병들 덕에 충격을 받은 투르군의 전열이 조금씩 얇아지고 있었다. 전장을 주시하던 황제는 주저없이 대기하던 비잔틴 보병 1개 부대를 그 곳으로 진격시켰다. 명을 받은 보병대는 쐐기대형을 이루어 맹렬히 진격했다. 투르크 대열에 작은 균열이 생기자 비잔틴군은 더욱 거세게 밀어부쳤다. 새로 투입된 보병대에 의해 마침내 팽팽하던 줄이 끊어지자 둑이 터지듯 투르크의 전선이 깨지고 초승달의 군대는 밀려나기 시작했다. 제 2열까지 투입한 비잔틴군은 이제 투르크군을 각개격파하고 있었다. 조금전까지 대등해 보였던 양군의 병사들은 이제 일방적인 살육자와 피해자로 변했다. 투르크군은 거의 완패하여 대형조차 갖추지 못하고 사분오열되어 전력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폐하, 추적대를 조직하여 저들을 도살하도록 명하여 주옵소서.”
“아닐세, 전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성이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도주하고 있잖은가. 그보다는 전장을 수습하는데 주력하라. 우리는 곧바로 성을 향해 갈 것이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폐하.”
병사들은 승리의 환희를 맘껏 표출하며 기뻐하였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었다. 황제는 터키 술탄의 직속부대가 나타나지 않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너무 쉽게 후퇴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서둘러 대오를 정렬하라. 성을 탈환하러 갈 것이다.”
황제는 첫 전투를 승리로 장식했다. 그러나 터키와의 전쟁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겨울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02.24 그러게요....지금 투르크와 싸우느라 각지의 병력이 형편없는데 다른 곳에서 또 딴지걸까봐 걱정입니다....^^: 그리고 HotPoket님의 전술을 읽고 허접하게나마 응용해봤는데 의외로 효과가 크군요. 포켓님과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려요. 너무 어설프게 써가지고서리....민망....ㅡㅡ;;;
  • 작성자신격카이사르 | 작성시간 04.02.24 -_-ㅋ 그리고 저는 국경지대에만 군사를 배치한다죠-_-ㅋ 일단은 그리스주변의 병사들가지고 몰다비아까지 나가고 아시아쪽의 군사들로는 원년3년후에 투르크작살내기프로젝트개시하고-_- 대략 투르크일찍못작살내면 머리아퍼질듯-_- 수입도 좋고-_-ㅋ 그러다가 또 이집트가 전쟁걸면 전쟁하고-_-;;;
  • 작성자신격카이사르 | 작성시간 04.02.24 하지만 대략 글은 아주 잘 쓰십니다^^
  • 작성자신격카이사르 | 작성시간 04.02.24 -_-그로고 보니 저는 용병을 아예않썻더군요-_-; 돈 많이든다는 의견들 때문에-_-;
  • 작성자나베싱 | 작성시간 04.02.24 음....투르크...비잔틴 입장에선 꽤 골치아픈 존재죠...-_-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