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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단편]누가 코끼리를 찔렀는가

작성자페르소나|작성시간06.06.19|조회수747 목록 댓글 12

켐페인 스토리라고 하긴 뭐하지만, 게임을 하다 얻은 착상으로 쓴 글이라, 한번 올려 봅니다.

게시판 성격과 맞지 않는다면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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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코끼리를 찔렀는가


 

  누가 코끼리를 찔렀는가


  BC 2세기 초엽 어느 날, 파르티아의 군대가 휴전협정을 깨고 시리아 왕국의 국경을 넘었다. 파르티아군의 목표는 시리아 왕국의 수도 안티오케이아였다.

  수가 6만에 달하는 파르티아군에는 수차례 전쟁을 경험한 정예보병들을 중심으로 파르티아 최정예 기병들인 카타프락토이와 발빠른 궁기병, 인도에서 수입해온 수십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들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세계 여기저기서 불러들인 베테랑 용병대들-크레타섬 출신의 궁병대, 그리스 도시국가 출신의 장창병대, 다키아 출신 보병대 따위들-이 그 위용을 뽐냈다. 용병대들은 그 합이 1만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파르티아군의 총사령관은 왕위계승자 아두마니쉬. 젊고 정력적인 그는 다른 경쟁자들을 확실히 제압하고 자신의 왕위계승권을 단단히 굳히기 위해서라도 이 전쟁에서의 승리가 절실히 필요했다.

  1만에 달하는 용병들은 그러한 이유 때문에 투입된 약간의 무리수였다. 시리아 왕국은 이집트와의 전쟁에 열을 쏟고 있었고 이는 시리아 왕국을 공격할 절호의 기회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강력한 시리아 왕국을 공격할 기회가 또 언제 올지 몰랐다. 가능한 힘을 모아 재빠르게 공격해야 했기에 그에겐 노련한 병사들이 최대한 많이 필요했다.

  용병대들은 일단 파르티아군의 지휘를 받고 있긴 했지만 워낙 여러 지역의 용병들을 끌어 모으다보니 이것저것 자잘한 문제들이 많이 발생했다. 아테네 용병들은 다른 용병대나 파르티아군에게 야만인이라고 비아냥거릴 때가 많았고 다른 용병대들 역시 나름의 이유로 불만이 많았다.

  그러한 불안함을 안고 출발한 파르티아군이었지만, 그래도 커다란 사건은 없이 안티오케이아로 진군하며 길을 막아서는 적군들을 차례차례 격파했다. 아두마니쉬의 군대는 그야말로 파르티아군 정예중의 정예였다. 그렇기에 시리아의 국경도시에서 벌어졌던 최초의 전투 외엔 제대로 된 전투랄 게 없었다. 아쉬운 대로 끌어 모은 잡병들이 폭풍같이 몰아치는 파르티아군을 상대한다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르티아군은 안티오케이아의 코앞까지 진군했다.

  그 무렵 시리아국왕은 친히 군대를 이끌고 이집트군과 싸우고 있었다. 당연히 수도엔 간신히 수도방위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병사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안티오케니아의 성주는 진땀을 흘리며 병사들을 있는 대로 징집해 숫자는 파르티아군과 얼추 비슷하게 맞췄지만 잘 훈련된 파르티아의 군대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성주가 급히 왕에게 전갈을 보냈지만 한창 전투 중인 왕의 본대가 쉽사리 회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주변 도시인 타르서스와 다마스커스에서 급히 지원군을 보내기는 했지만 며칠이 더 필요했다. 그 사이에 파르티아군은 성을 함락시킬 모든 준비를 유유히 갖춘 후 거센 불길처럼 공격해 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안티오케이아 성문 앞에 도착한 파르티아군은 수비군이 보는 앞에서 진지를 쌓았다. 파르티아의 병사들은 활의 사정거리 밖에서 함성과 야유를 보내며 수비군을 놀려댔다. 어중이떠중이들을 이끄느라 착잡한 심정이었던 성주는 성벽 위에서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주변 도시에서 지원군이 오고 있다는 것을 첩자를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아두마니쉬는 일부러 적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며칠 안으로 성을 점령하지 못하면 지원군에 의해 오히려 포위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지원군이 몰려왔다. 방어군의 총합은 약 10만 가량. 그렇지만 파르티아의 사령관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급하게 달려오느라 지쳐있었고, 마찬가지의 이유로 전투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저들 중 많은 숫자가 막 징집된 병사들이었다. 아두마니쉬로선 두려울 것이 없었다.

  아두마니쉬는 적 지원군을 궁기병으로 괴롭히며 평야로 유인, 회전(會戰)으로 유도했다. 수비군으로선 입장에선 이대로 있다가는 지원군들이 각개격파를 당할 처지였기에 뻔히 알면서도 출성(出城)하여 회전으로 말려들어가게 된다.

  중앙의 보병대가 맞붙었고 양익의 기병대 역시 맞붙었다. 전투의 흐름은 맞붙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파르티아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기병의 질에서부터 수비군은 열세였다. 궁기병과 카타프락토이의 혼합으로 구성된 파르티아군의 기병 전력은 수비군의 기병대를 압도했다. 수비군은 질의 떨어짐을 메워 줄 압도적인 숫자의 우위도 없었다.

  성주는 파르티아군의 보병대를 지치게 만들 생각으로 신참들을 선봉에 세워 사지로 내몰았다. 그러나 신참들은 그리스 장창보병대를 주축으로 한 파르티아 본진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한 채 후퇴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로 크레타 궁수들이 화살비를 쏟아 내렸다.

  그 뒤를 수비군의 정예창병들이 밀고 들어왔다. 사리사라는 이름의 일반 장창보다도 더 긴 장창을 사용하는 이들 보병대는 너무나 쉽게 무너진 신참들과는 달리 굳건히 버티며 전선을 교착상태로 만들었다. 개개의 압도적 능력차이가 없다면 누가 얼마나 더 오래 버티느냐가 승패를 가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수비군 양익의 기병이 무너진 뒤였다. 파르티아의 카타프락토이들은 말을 탄 병사는 물론 말까지도 온통 갑옷으로 둘러싼, 말 그대로 움직이는 갑주다. 웬만한 공격쯤은 무시해버릴 수 있는 것이 이들이었다. 그들이 보병대의 후방으로 밀고 들어오자 교착상태는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 아두마니쉬의 명령과 함께 보병대의 간격이 군데군데 넓어지는가 싶더니 그 사이로 거대한 코끼리들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수입해온 코끼리들이 전투에 투입된 것이다.

  약을 먹어 흥분상태에 빠진 코끼리들은 무턱대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두꺼운 철갑을 두른 채 서너 명의 병사를 태운 코끼리는 그야말로 난동을 부렸다. 수비군 가운데 일부는 난생 처음 본 코끼리에 얼이 빠져 코끼리가 밟고 지나갈 때까지 멍청하게 서있기까지 했다. 코끼리가 한번 머리를 휘저을 때마다 거대한 상아와 철퇴 같은 코에 얻어맞은 병사들이 하늘을 날았다. 코끼리들의 울부짖음에 겁에 질린 병사들은 같이 울부짖다가 코끼리 위에 올라탄 병사가 쏜 화살에 절명했다.

  코끼리의 난동은 그야말로 기가 질릴만한 것이었다. 코끼리의 효과는 기병들만 못했지만 코끼리가 불러일으킨 공포만큼은 확실했다. 그러한 난동은 아두마니쉬를 즐겁게 해주었다.

  성주는 이를 악물고 후퇴를 외쳤고 적의 추격으로부터 간신히 도망 나올 수 있었다. 그를 쫓아 성안으로 후퇴할 수 있었던 병력은 1만여 명. 파르티아군의 피해는 수비군에 비하면 매우 경미한 수준이었다. 계속된 승리로 파르티아군의 사기는 하늘 끝까지 솟아올랐다. 안티오케이아 점령이 눈앞이었다. 

  아두마니쉬는 도시를 포위하고 공성준비를 시작했다. 거대한 공성병기들이 수비군의 눈앞에서 만들어졌다. 수많은 사다리들이 제작되었고 성문을 부술 공성망치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며칠 뒤, 성을 함락시킬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여긴 아두마니쉬는 공격을 명령하였고 파상공세가 시작되었다. 거대한 공성망치들이 안티오케이아의 성문을 두들기기 시작했고 파르티아의 병사들은 수없이 많은 사다리를 성벽에 걸곤 개미 떼처럼 올랐다.

  이미 첩자를 통해 안티오케이아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아두마니쉬는 강한 승리의 예감에 도취되어 신들린 듯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그와는 정 반대로 성주는 수도를 빼앗기고 말 것이라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수도를 왕으로부터 위임받은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에 겁에 질린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공세는 성주의 절박한 지휘와 높다란 성벽, 그리고 수많은 안티오케이아 병사들의 죽음 덕분에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까지는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몇 배에 달하는 수적 열세는 극복할 수 없었다. 병사들은 절망했고 땅에 떨어진 사기는 일으킬 방법이 없었다.

  아두마니쉬는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안티오케이아 병사들에게 조롱 섞인 경의를 표했다. 그는 이제 때가 왔음을 느끼고 파르티아 전군에 총공격을 명령했다.

  또다시 밀려들어오는 파르티아군을 막기엔 안티오케이아의 병사들은 너무 적었고 너무 지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벽 위를 파르티아군이 점령하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안티오케이아의 성문이 그 입을 열었다.

  안티오케이아의 거대한 성문이 뚫리자마자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파르티아의 군대가 성문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거대한 코끼리들과 기병들은 그들의 길을 가로막는 안티오케이아의 병사들을 짓밟으며 나아갔다. 젊고 용맹한 아두마니쉬는 앞장서서 적들을 유린하며 아군을 격려했다. 뒤이어 들어온 그리스 출신 용병대들은 밀집방진을 짜고 창을 고슴도치 가시처럼 내놓은 채 양떼를 몰 듯 적군을 사지로 내몰았다. 궁수들은 마치 짐승들을 사냥하듯 활을 겨눴으며 다키아인들은 팔크스라는 역초승달 모양의 날카로운 칼로 적의 수족을 잘라내었다.

  성주는 적과 아군의 피로 붉게 물든 갑옷을 입고선,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 완전히 가버린 목소리를 쥐어짜내며 잔존병력에게 후퇴를 명했다. 그들은 내성으로 후퇴해 마지막 바리케이드를 쌓고 자신들 최후의 순간을 기다렸다. 남은 병사들의 숫자는 기껏 3천 남짓.

  파르티아군은 완전히 승리 분위기에 도취되어 환호성을 질렀다. 비록 성문을 돌파하느라 적지 않은 수의 병사들을 희생시키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적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제 이 도시를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두마니쉬 또한 확정되다시피 한 승리로 인해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것은 승리가 손아귀에 들어왔음을 느끼는 사령관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만한 감정이었다. 내성에 틀어박힌 적은 이미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시리아 왕국의 보물들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그 누구도 자신의 왕위계승권에 위협이 될 수 없으리라.

  그런데 용병대 쪽에서 말썽이 생겼다. 일단의 용병대가 허락도 없이 도시를 약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전쟁에 있어 약탈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병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적은 내성 안에 틀어박혀 있는 상태였고 이집트와 전쟁 중이던 시리아 왕국의 본대가 어떻게든 휴전을 맺고 북상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수도를 방패삼아 적의 본대를 막아내기 위해선 잠시 동안이라도 성안 주민들을 자극하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내부 봉기가 일어나 앞뒤로 공격당하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두마니쉬의 부관은 그들을 달래야 한다고 진언했지만 계속된 승리로 자신감에 가득 차있던 아두마니쉬는 허락 없이 날뛴 자들을 모두 효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한 결정은 약탈에 참여하지 않았던 용병대들마저 분노케 할 것이라는 부관의 말은 묵살되었다.

  약탈에 참여했던 병사들의 목이 달아난 후, 부관의 걱정대로 용병대 사이에선 위험한 동요가 일었다. 부관은 용병대 대장들에게 개인적으로 보화를 가득 안겨주며 내성을 점령한 뒤엔 더 많은 보물을 안겨주겠노라 약속하며 동요를 막아보려 애썼다.

  그러한 동요와는 별개로 마지막으로 남은 내성을 공략하기 위해 병사들은 다시금 진군하기 시작했다. 가장 선두엔 스스로를 투신의 화신이라고 착각한 것이 아닌가싶은 아두마니쉬가 호위병과 함께 섰고 그 뒤를 수많은 병사들이 따랐다.

  크게 번영한 왕국의 수도답게 도시는 복잡했고 길은 좁았다. 코끼리가 진군할 수 있는 길은 한정되어 있었다. 몇몇 장군들이 코끼리는 도시 외곽에 두자고 건의했지만 아두마니쉬는 듣지 않았다. 자신의 위대함에는 그런 거대한 동물이 어울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도취된 인간의 귀란 도대체 열리지가 않는 법이다.

  그리고 그 좁은 길에서 사건은 일이 터졌다.

  선두에서 말에 올라탄 채 앞으로의 계획-적의 본대 따위는 온데간데없는 장밋빛 미래-을 머릿속으로 그리던 아두마니쉬의 귀에 무언가 쿵쾅거리며 뛰어오는 소리가 거대한 울음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다. 뒤를 돌아보니 무언가 거대한 물체들이 병사들을 짓밟으며 내달리고 있었다.

  약 열 마리의 코끼리들이 일제히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며 사방으로 달려 나갔다. 그들의 쿵쾅거리는 발소리 따라 재앙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도시 내부로 진입한터라 좁은 통로를 적지 않은 병사들이 밀집한 채 진군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친 듯이 내달리는 코끼리 한 마리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렇게 내달리는 코끼리는 한두 마리가 아니라 열 마리가 이르렀다. 잔뜩 밀집 되어있던 병사들의 진형은 완전히 무너지며 박살이 났고 겁에 질린 병사들은 대열을 이탈해 이리저리 흩어졌다. 그 와중에 병사들이 발에 밟히고 대열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미친 듯이 내달리던 코끼리 중 몇 마리가 파르티아 군 총사령관의 기마대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아두마니쉬가 승리에 도취되어 않았더라면, 혹은 싸움을 좋아하지 않고 용맹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면 전군의 가장 안전한 곳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승리를 만끽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그가 진군하던 바로 그곳이 시가지의 통로가 아니었다면 안티오케이아의 왕좌에 앉아 거드름을 피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중 그 어느 것 하나 충족시키지 못하였기에 그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차라리 옛날 황금 옥좌에 앉아 전투를 관망하기만 했던 옛날의 어떤 왕처럼 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 왕은 대패를 당하긴 했어도 그와 그의 왕국은 건재했다.

  아두마니쉬의 눈에 커다란 귀를 그에 걸맞은 크기로 펄럭이며 달려오는 코끼리 떼가 보였다. 코끼리가 미친 듯이 달려오던 그 순간, 아두마니쉬는 기가 막히는 상황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얼이 빠져 있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아두마니쉬 바로 옆에 있던 호위병이었다. 그는 멍하게 멈춰있는 그들의 총사령관을 무례할 정도로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만든 후 필사적으로 앞으로 내달렸다. 기마병들이 대열을 갖추고 지나가기에도 좁은 길이었기에 달려갈 길은 앞쪽밖에 없었다.

  무거운 갑옷을 입고 말에는 마갑까지 씌운 중장기병들은 완전히 통제 불능 상태로 혼신을 다해 내달리는 코끼리를 따돌릴 정도로 빠르지 않다. 무엇보다 코끼리는 그 육중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만큼 느린 동물이 아니었다.

  코끼리에 쫓겨 달리던 아두마니쉬와 그 호위병들은 안티오케이아 잔존병이 있는 내성으로 접근하게 된다.

  성벽 뒤에서 잔뜩 움츠려있던 성주는 내성을 향해 달려드는 기병들과 코끼리 떼에 기겁했다. 그가 만약 제정신이었다면 멀쩡한 성벽에 돌격하는 기병과 코끼리를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지만, 계속된 패배로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던 그는 이것을 최후의 공세로 보고 화살을 쏟아 부으라고 악을 내질렀다. 자연 화살은 가장 선두에서 내달리고 있던 아두마니쉬에게 집중되었다.

  아두마니쉬는 수십 여발의 화살을 맞고 말과 함께 쓰러졌다. 그리고 그 위를 뒤쫓아 달려오던 코끼리가 깨끗하게 짓이겨 확인사살을 했다. 파르티아의 제 1 왕위 계승자이자 안티오케이아의 정복자가 될 뻔 했던 그는 그다지 장렬하다고 볼 수 없는 최후를 이렇게 맞이하였다.

  소수의 호위병들은 간신히 방향을 틀어 성벽을 피해 다른 길로 본대로 돌아가는데 성공한다.  총사령관의 시체도 건지지 못했지만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 무렵 본대 쪽으로 내달려 본대를 흐트러트리던 코끼리들은 가까스로 진정되거나 병사들이 수없이 던진 창에 맞아 죽었다. 그 와중에 수백 명의 인명피해가 나긴 했지만. 코끼리의 난동에서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와중에 총사령관의 죽음이 전해졌다. 병사들은 술렁거렸고 군대를 진정시키던 파르티아의 장군들은 당황했다. 총사령관을 보필했던 장군들은 일단 전군에 대기 명령을 내린 뒤, 자기들끼리 모여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장군들이 당황 속에서 회의를 하는 동안 파르티아 군 어디에선가 왜 코끼리가 갑자기 미쳐 날뛰게 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파르티아군 잠깐의 웅성거림이 있더니 누군가 용병 중 한명이 코끼리를 창으로 찌르는 걸 보았다고 물음에 답했다. 그 웅성거림은 파르티아 군사들 입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가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장교들을 포함해 모든 군에 퍼졌다. 파르티아 군 여기저기서-심지어 일부 장교들에게서마저- 멍청한 야만인들과 문명인이라고 항상 거들먹거리는 그리스 용병들에 대한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이야기가 파르티아 군에만 돌았던 것은 아니다. 파르티아 군을 넘어 용병들에게도 전해졌다. 당연히 용병 쪽 병사들에게선 우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거냐는 감정 섞인 반응이 나왔다. 오히려 코끼리 조련사가 실수를 저질렀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이야기가 용병들 사이에서 회구되었다.

  누가 코끼리를 찔렀는가에 대한 말들이 계속되면서 감정이 점점 더 격해졌다. 욕설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고 위협적인 함성들이 서로를 향했다. 파르티아의 장군들이 자신들의 부관들로부터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쯤엔 사태가 심각해질 대로 심각해져 있었다.

  한 장군이 사정을 알아보러 이곳저곳 돌기 시작했을 때는 누가 코끼리를 찔렀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용병들에겐 용병들 입맛에 맞게, 파르티아의 군사들에겐 군사들 입맛에 맞게 각색되어 있었다.

  용병들에게서 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 성벽을 점령하고 도시의 외곽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에서 코끼리 조련사가 완전히 긴장을 풀게 된 것이 그 발단이었다. 코끼리의 주 역할은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적의 진열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공성전에선 별다른 쓸모가 없었다. 후방에서 코끼리 위에 타고만 있었으니 조련사로선 심심한 노릇이었다. 따분함에 지쳐 군기가 빠져있던 한 조련사가 손에 들고 있던 화살을 실수로 코끼리의 눈에 떨어뜨려 코끼리가 놀라 이 모든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잘못은 파르티아의 얼빠진 코끼리 조련사에게 있었다.

  반면 파르티아 군사들 사이에서 도는 이야기는 용병들 사이에서 도는 이야기와 다른 식으로 흘러갔다 : 파르티아 군사들은 왕국의 충성스런 정예군답게 전투가 끝난 상황에서도 항상 긴장을 놓지 않고 전열을 짜 진군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투가 끝난 후 완전히 긴장이 풀어진 오합지졸 용병들은 자신들의 천박한 속성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방자하게 군 것이다. 그러다 어느 정신 나간 용병이-과장을 늘어놓으며 구수한 입담을 풀어놓던 파르티아 병사는 그 용병이 엄동설한에도 벗고 다니는 멍청한 다키아 출신 야만인이 틀림없다고 장담을 했다-처음 보는 코끼리를 보고 신기해하며 창끝으로 찌르다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양측에 어떤 이야기가 어떻게 돌고 있든 간에 그 이야기들이 서로의 결속에 도움이 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란 건 분명했다. 이야기에 심취한 병사들일수록 상대방 보기를 찢어죽일 놈 보듯 하며 으르렁거렸다.

  완전히 편을 가른 채 싸움 직전의 투견들처럼 으르렁거리고 있는 군을 보고 일을 알아보러 나갔던 장군은 완전히 당황했다. 사태의 심각함을 전하려 서둘러 사령부로 돌아와 군회의에 참석했다. 그런데 장군들마저도 의견이 갈려있었다. 한쪽은 일단 화의를 맺고 돌아가자고 했고 다른 한쪽은 마저 점령을 끝내고 왕의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자의 의견은 적의 본대가 점점 북상하고 있는데 총사령관도 죽은 대다가 군은 내분이 되어있는 상태이니 물러나자는 것이었고 후자의 의견은 실질적으로 점령한 상태에서 성을 버리고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장군들마저 의견이 분분한 시점에서 문제가 하나 더 발생하였다. 전날까지 화창했던 날씨가 갑작스레 바뀌어 폭우가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신의 번개가 전장을 강타했으며 천둥소리는 귀를 찢을 듯 했다. 여전히 장군들의 의견이 하나로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군의 사기는 떨어질 때까지 떨어졌다.

  늦은 밤부터 시작된 폭우는 다음날도 계속되었다. 장군들은 이제 대립의 조짐까지 보이기 시작했고 이해관계로 뭉쳐있던 용병들은 자기네 대장들끼리 모여 자신들의 향방에 대해 비밀스럽게 의논이 오고갔다. 그중엔 셀레우코스 수비군 편에 서는 말도 있었다. 비록 그것은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해-그렇게 되면 아직도 많은 숫자가 남은 파르티아 군을 적으로 돌릴 뿐만 아니라 수비군이 받아준다는 확답도 없으므로- 묵살당하고 말았지만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줬다.

  그 와중에 낙뢰 하나가 안티오케이아의 거대한 청동 신상(神像)에 떨어졌다. 신상은 매우 높은 위치에 세워져있을 뿐만 아니라 온통 금속으로 만들어졌기에 이때처럼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낙뢰가 떨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다만 청동상이 제우스의 신상이었다는 것과 그 시기가 문제였을 뿐이다.

  번개를 높다랗게 들고 바닥의 인간들을 굽어보던 제우스 신상에 떨어진 낙뢰. 낙뢰는 청동 신상을 번쩍거리게 만들며 그 빛을 사방에 튀겼다. 사방으로 튀는 그 빛은 제우스를 섬기는 그리스 병사들뿐만 아니라 제우스가 뭔지도 모르는 파르티아의 병졸들마저 겁에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시점에서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한번 변화되었다. 파르티아 군과 용병대 각각에서 도는 이야기는 여전히 달랐으나 몇 가지 공통되는 점이 있었다.

  첫 째, 총사령관이 신들린 듯이 전장에 나서다 죽은 것이 바로 신의 역사(役事)라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그리스 출신 용병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는 신의 역사 때문에 자신의 신중함을 버리고 아킬레스와 결투를 벌였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총사령관 역시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한 신의 계획 때문에 열광적인 전투 끝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그 신은 번개로 찬란한 광휘를 드러내는 저 제우스가 틀림없을 것이다.

  둘 째, 이곳은 신이 보살피는 도시다. 신이 살피는 도시를 함부로 침략한 것에 신이 분노하셨다. 그리하여 코끼리를 친히 사용하셔 우리를 벌하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코끼리떼가 그렇게 미쳐 날뛰었겠는가. 저 번개가 그 모든 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하루 빨리 신의 성스러운 도시로부터 후퇴해야만 한다.

  파르티아 장군들은 이 시점에서 실수를 하나 더 저지르고 만다. 자꾸 군이 분열되자 아예 용병대 대장들을 지도부에서 제외시켜버렸다. 냉철한 이성을 갖추고 병사들을 진정시키던 대장들이라도 화가 치밀어오를 짓이었다. 그러나 총사령관을 잃고 의견조차 수렴이 안 되는 파르티아 장군들에게 그런 것을 따져 생각해볼만한 여유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여전히 제정신이었던 소수의 장군들의 이성적 반대는 제정신이 아닌 다른 장군들에 의해 묵살되었다. 적의 본대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고 잘못하다간 앞뒤로 포위당할 판이었다.

  참다못한 용병대 대장 하나가 파르티아 장군들에게 항의하러 갔다가 사령부 입구를 막아서는 호위병과 말다툼을 벌이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그렇잖아도 감정이 격해있던 이 용병대 대장은 그 병사를 홧김에 칼로 베어버렸다. 그리고 그 역시 다른 파르티아 병사의 칼에 찔려 숨졌다. 자신들의 대장이 칼에 찔려 죽자 용병들은 격분해 들고 일어섰다.

  아직까지는 시리아 왕국의 수도인 안티오케이아 성 안에서 파르티아의 군사들과 각지에서 온 병정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각각 거점을 두고선 시가전을 벌였다. 수적으론 용병들이 열세였지만 그들은 전부 전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이었고 전투는 점점 더 과격해졌다.

  그들이 서로 다투는 동안 시리아 왕의 본대가 도착했다. 그제야 자신들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파르티아군과 용병대는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파르티아 군은 전혀 수리가 되어있지 않은 성문을 대충 막아서며 성벽 위에서 적군과 대치했고 용병들 역시 대열을 재정비했다. 하지만 자신들끼리 싸우느라 전혀 쉬지도 못한 채 앞뒤로 적을 맞이한 상황은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이 성을 빼앗았던 시간보다도 더 빨리 성을 내주며 간신히 후퇴하였다. 성내의 상황을 잘 모르던 적군이 성을 탈환하는 데에만 신경 쓰느라 퇴로를 열어줘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6만으로 출발했던 병사들은 용병들을 합쳐도 처음의 반도 못 미치게 줄어 있었다. 처음의 위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총사령관은 사망하였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승리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인가.


  파르티아의 한 장군은 본국으로 돌아가는 동안 생각에 잠겼다. 왜 코끼리가 미쳐 날뛰었는가? 정말 용병들 사이에서 돌던 이야기처럼 신이 코끼리를 이용해 역사한 것일까? 아니면 어떤 멍청한 야만인이 코끼리를 자극했던 것일까?

  그 장군의 의문은 살아남은 코끼리 떼 근처에서 일어난 사건이 풀어주었다. 계속 풀리지 않는 의문을 붙잡고선 생각 속에 잠겨 있던 그에게 병사 하나가 문제가 생겼다며 달려왔다. 문제라면 이제 지긋지긋한 그였지만 장군으로서 무시할 수도 없었기에 그 병사를 쫓아갔다.

  문제가 일어난 곳으로 가보니 웬 그리스 병사 하나가 코끼리 조련사들한테 얻어맞고 그것 때문에 또다시 그리스 병사들과 험악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물으니 저 병사가 자꾸 코끼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며 귀찮게 굴기에 홧김에 한대 친 것이 발단이라고 근처에 있던 병사가 말했다.

  시리아왕의 본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라도 힘을 뭉칠 필요가 있었기에 용병대와 파르티아군은 힘을 합치기는 했지만 그렇게 죽기 살기로 싸워놓곤 사이가 다시 좋아질 리가 없다. 그리고 도망치느라 피곤에 찌들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병사들은 쉽게 난폭해지기 마련이다.

  장군은 한숨을 쉬며 문제의 그리스 병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병사는 말썽을 피웠으면서도 여전히 얼빠진 눈으로 코끼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병사의 태도에 화가 난 장군은 고함을 지르려다가 문득 가장 처음에 돌았던 소문이 머리를 스쳤다.

  그 장군은 잠시 동안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다른 병사들을 시켜 그를 포박해 막사로 데려오라고 명했다. 자신의 막사에서 장군은 병사들을 시켜 그 그리스 병사를 다짜고짜 패며 코끼리가 왜 미쳐 날뛴 이유에 대해 아는 대로 실토하라고 말했다.

  처음엔 무슨 말이냐고 둘러대던 병사는 몽둥이찜질에 뼈가 두어 개 부러지자 울면서 코끼리가 미쳐 날뛰게 된 전말을 이야기했다.

  병사에 말에 따르면 병사는 그리스 아테네 출신으로서 아카데메이아에서 수학한 젊은이였다. 그곳에서 철학과 자연과학에 심취하였던 이 젊은이는 더 넓은 세계를 돌아보며 더 많은 것을 알기를 원했다. 이 때 마침 파르티아와 그리스 도시들 간의 비밀스런 거래가 있었고 그리스 군이 파르티아군의 편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스 도시들로서는 이러한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과거 페르시아 시절 왕위쟁탈전이 벌어졌을 때도 아테네 시민들은 용병으로 참여하여 많은 돈을 손아귀에 넣었다. 그리스 인들에게 있어 이번 전쟁 역시 국가만 바뀌었을 뿐 과거 용병으로 참여했던 전쟁들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 없었다. 이 젊은이는 이것이 큰 돈과 색다른 이국의 문물을 한번에 손아귀에 넣을 절호의 기회라 여기고 용병대에 자원하였다.

  문제는 이 젊은 아테네 출신 병사의 학구열이었다. 그는 안티오케이아로 행군하는 동안에도 그에게 매우 이질적인 이국의 모습들을 기록하느라 바빴고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사람들에게 질문하며 귀찮게 굴었다. 그것 때문에 몇 번이고 싸움이 날 뻔한 적도 있었다. 물론 그러한 일들이 학구열에 불타는 아카데메이아 출신 젊은 병사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이 젊은이가 소속된 부대가 밀집방진을 유지한 채 대열을 유지하고 있을 때였다. 젊은이의 부대 바로 옆을 코끼리들이 둘씩 짝을 지어 지나쳤다. 일반적인 아테네인이라면 코끼리라는 동물에 대해선 한번 쯤 이름을 들어본 것 이상은 아는 게 없어야 당연한 일이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있는 발칸반도엔 코끼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 젊은이 역시 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기 전까진 코끼리에 대한 지식수준이 일반적인 아테네인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 동안 몇 번의 전투에서 코끼리들을 보며 저런 생물이 세상에 있구나 하고 대단히 감탄하긴 했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고 무엇보다 전투의 와중에 정신을 팔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물론 아카데메이아 청년으로서 코끼리를 가까이서 직접 조사해보고 싶었지만 군대라는 조직에 속해있는 이상 자신의 뜻대로 코끼리를 찾아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런 코끼리가 젊은이의 옆을 지나가는 것이다. 진군하는 와중에도 사물의 이치와 근본에 대해서 사유하고 있었던 이 젊은이는 바로 근처에서 울리는 코끼리 발자국 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어 옆을 바라보게 된다. 코끼리의 거대한 몸뚱이를 몸소 체험하게 된 이 젊은이가 느낀 충격이란 아르테미스 여신이 현신해 자신에게 입맞춤 해줄 때 느끼는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젊은이가 황홀하다시피 한 충격에 휩싸여있을 때 바로 옆을 느릿느릿 지나가던 코끼리 한 마리가 날벌레가 꼬이기라도 한 건지 독수리의 날개처럼 거대한 귀를 펄럭였다. 그것에 정신이 든 젊은이에게 엉뚱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저 귀를 찔러보면 저 거대한 짐승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도대체 저 거대한 짐승이 반응을 하긴 하는 걸까?

  놀라운 경이를 마주하게 된 젊은이는 자신의 처지와 주변 상황들은 하나도 인식하지 못한 채 오로지 제어할 수 없는 호기심에 자신을 내놓았다. 더 이상 적도 아군도 전쟁도 그에겐 무의미했고 오로지 눈앞에서 펄럭이는 코끼리의 귀만이 그를 사로잡았다. 안티오케이아의 거대한 구조물들이 사라지고 바로 옆에 전우가 사라지고 코끼리의 귀를 제외한 몸뚱이와 청년 자신마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코끼리의 귀와 자신의 창끝 뿐. 그의 존재는 마치 코끼리의 귀만을 바라보기 위해서 태어난 것 같았고 행동은 모든 것은 머리 속을 울리는 하나의 명령-코끼리의 귀를 찌르라는 명령-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리하여 그 맹목적인 호기심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결국 이 젊은이는 자신의 창으로 코끼리의 귀를 찌르고야 만다. 코끼리의 귀는 코끼리에 있어 가장 민감한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으로 치자면 목만큼이나 민감한 부분인 것이다. 그런 부분을 날카로운 창으로 찔렀으니 코끼리가 크게 놀라 요동을 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혀 예기치 못한 코끼리의 요동으로 인해 그 위에 올라타고 있던 조련사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굴러 떨어지고 만다. 귀를 찔린 그 코끼리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크게 머리를 흔드는 과정에서 옆에 있던 코끼리를 상아로 받아버리고 만다. 상아에 받힌 코끼리는 또 옆에 코끼리를 받고 그 코끼리는 또 앞에 코끼리를 들이받고… 이 과정에서 조련사들은 통제 불능의 코끼리 위에 간신히 매달려 있거나 운이 좀 더 나쁜 경우엔 굴러 떨어져 코끼리 발에 밟히고 만다.

  코끼리가 언제 적의 화살에 맞아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될지 모르는 긴박한 전투 중이었다면 조련사들은 언제라도 날뛰는 코끼리들의 급소를 찔러 즉사시킬 수 있는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들 승리의 예감에 도취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학구열에 불타는 청년 하나가 코끼리의 귀를 찌르는 정신 나간 짓을 할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학구열에 불타는 젊은이가 찌른 코끼리는 젊은이를 포함해 그 근처에 있던 병사들을 공중으로 날려 보냈다. 젊은이는 다행스럽게도 근처 평평한 지붕에 떨어져 목숨을 부지하지만 다른 병사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하여 코끼리는 발광하고, 사령관은 죽고, 군은 분열되고, 다 이긴 전투는 패배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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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신격카이사르 | 작성시간 06.06.18 ㅇㅅㅇ)b 정말 잘쓰신 글입니다. 다른 단편들도 기대를 -_-)/
  • 작성자Libris | 작성시간 06.06.19 페르소나면 도갤의 페르소나님.?
  • 작성자Libris | 작성시간 06.06.19 아니면 죄송하고요 ^^; 잘쓰셨네요. 재밌게봤습니다.
  • 작성자안세 | 작성시간 06.06.20 하핫! 교수님 심하게 말해서 죄송.. 근데 이런 류의 글 쓰지 말라는 것도 심하네요. 어쨋든 글이란거 많이 써 보는게 좋을 것 같은데.. 하여튼 심한 발언은 용서를..
  • 작성자MoonWind | 작성시간 06.07.20 더헛 아테네에선 용병사지 말아야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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