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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임진왜란에 대해...

작성자카탁프락트|작성시간04.01.12|조회수339 목록 댓글 71
밑에 글이 무려 꼬리가 99개나 달렸더군요..

저도 간략하게 조선에 대해 한말씀 올리고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네임리스원님의 경우 조선이 약했다고 하시는데 절대 약한것은 아니라고봅니다.

율곡이이 선생께서 10만양병설을 주장하셨다 무시 당하셨지만..

하지만 여기서 잘 짚고 넘어가면.

일본군 선발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선발대 약 1만 8000명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제2군 2만 2000명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제3군 1만 1000명

구키 요시다카[九鬼嘉隆] ·도토 다카토라[藤堂高虎] 등의 9,000여 수군(水軍)

합계 6만여 정도..

이 임란 발발당시 조선군의 병력이고

규슈와 일본내의 총병력을 따지면 20만에 이르럿다고 합니다.


그런데 율곡 선생께서는 왜 10만이면 왜적을 능히 무찌를수 있었다고 할까요..

두배에 가까운 대군인데 말이죠...


저의 짧은 식견보다...율곡선생님의 식견으로 보아서는 10만이면 일본군

20만이 침입해와도 능히 막을수 잇다고 판단하신겁니다.


즉 조선군의 전투력은 다른 주변국가에 비해서 그리 뒤떨어 지지 않다는걸

확인할수 있는 대목 입니다.


사실 조선군이 초기 일본군에게 고전한것역시 전술상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수한 활과 험한 산지에 잘 쌓아진 견고한 산성을 바탕으로 농성하는것이

조선군의 주 장기인데.... 신립장군은 배수에 진을 치고 기병전술로

맞선것이지요... 일본의 야리와 일본도..그리고 신무기 조총을

전혀 모른체... 곧이 곧대로의 전략대로 싸우는 바람에 너무나도 쉽게

무너 진것입니다.



조선의 기병은 언월도...활...갑주로 무장했는데 이들기병은 물론 뛰어난

기병들이지만... 이미 일본은 대기병전술에 능한데다가 무기체계 자체도

접근전을 벌이면 매우 불리하지요..


만일 조선군이 주요산성을 거점으로 농성을 벌였다면 서울까지의 진격시간을

매우 지연시킬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명의 참전이전에도 조선군은 반격을 개시합니다.

의병이 도처에 봉기한데다 일본군과의 싸움에 대한 요령이 생기면서

전세를 역전시켜 나갑니다.


정유재란떄의 병력은 무려 14만에 이르렀지만.. 일본은 경상도 이북으로

올라 오질 못합니다. 일본도 혼신을 다하여 경상도 지방에 왜성을 축조한것도

아무리 썩어빠진 나라의군대라고는 하나 조선군을 절대 얕잡아 볼수 없기때문

이었지요.



그리고

정치와 조정이 썩었다 할지라도

결코 조선의 의병들은 약하지 않았습니다.

일도류니 이도류니... 저마다 전쟁기술을 갈고 닦아온 사무라이들도

자손과 땅과...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선 의병들을 쉬이 막지 못했던 것이죠..




뭐 쓰다 보니 주저리 주저리 되었는데..ㅡㅡ;;;


암튼 우리 한민족은 옆나라 일본과 중국에 비해 절대 열등한 민족이 아닙니다.

동양인 치고는 상당히 체구도 큰편이며 강건한 기상을 가진 민족입니다.

지배하기 어려운 민족이지요... 일제강점기에서도 끊임없는 독립운동과

의병활동... 통치방식을 세번이나 바꿀만큼 우리민족을 지배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는 거지요...


제가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은것은 조선을 망친것은 사림입니다.

무능한 왕이 혈세를 탕진하며 주색잡기에 빠져있을때도

그왕이 죽으면 그 이유만으로도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는 어린백성들...


그런왕을 보필하기는 커녕 무능한 왕을 더욱무능하게 만들고

서원을 세워 각가지 폐단을 자행해서 농민들을 착취한 그들..


고려시대 전성을 이루던 무역과 국가적 차원에서 생산되던 예술품 공업과

활판인쇄 사업.. 모든걸 도태되게 만든 집단입니다.

자신들의 세력유지와 권력을 챙기기에 급급해서 왕을 바보로 만들고

농민을 착취한 결과 그들은 자신의 허수아비왕을 부리며 500년동안

그 세력을 유지해올수 잇었던 것이구요...

우리의 한글... 역법서 칠정산... 등등..우수한 과학기술서의 편찬도 모두

조선 초기 이루어진겁니다.. 아마도 이 훈구세력이 집권했었다면

적어도 정치에 어느정도 참여라도 가능했더라면....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조선의 방어적 자세와 같은 질문은 적어도 국내사정이 해외로의 진출이나

팽창이 가능한 여건이엇다면 모르지만....


조선시대 사림이 집권하고 나서 부터는 이러한 여건 자체가 마련이 안되었기

때문에 저는 이 논재에 대하여 논란의 여지 없이 결론을 내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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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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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네임리스원 | 작성시간 04.01.15 이건 저희학교 사학과 교수가 한말인데..... 글고 어차피 그 정도의 포상을 걸지 않고서 누가 가서 싸우는지....
  • 작성자초딩사냥꾼 | 작성시간 04.01.15 광교산전투에서 5만에 가까운 조선군이 양반직위 준다고 모았다구요? 제가 알기론 그런증거는 전혀 없는걸로 알고있는데요. 노비는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았지만 양민은 당연히 병역의 의무가 있었지요.
  • 작성자삽들고기병잡기 | 작성시간 04.01.15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만, 병력을 모으는 과정에서 면천(양반까지는 아니고..천민을 양인으로 올려주는 정도)도 언급했을 수는 있지 않을까 하네요. 양민만으로는 수적으로 부족했을테고..그렇다고 공식적으로 확약해준건 아니고 구두로 슬쩍 언급한 수준이 아닐까하네요. "~ 수도 있을 것이니라~" 라고 -_
  • 작성자aefdsvd | 작성시간 04.01.25 신립장군의 초반 배수진은 별루 좋지 않을것 같은데... 아무리 우리군이 뒤떨어 지지 않았다고 해도 조총에는 이기지 못할것 같습니다. 또 우리군이 진것은 부패정권으로 변방에 군사준비를 제대로 하지도 않았고 백성들의 민심도 결코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농성의 펼치며 지구력으로 버티어도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은
  • 작성자aefdsvd | 작성시간 04.01.25 성은 쉽사리 함락될것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도 저의 민족을 우습게 보는것 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과 혼을 존경하는 사람에 한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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