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 에세이 '침묵하는 소수'의 일부내용
흥망성쇠에 대하여
가설이란 어디까지나 가정으로 삼은 이치다. 그것으로 모든 현상이 완전히 해석될지 어떨지는 모른다. 완전히 해석이 가능하다고 밝혀지면 이제 가설이 아니라 정설이 된다.
15년 동안 역사 이야기를 써온 나는 요즘 그간의 공부를 통해 몇 가지 가설로 장난을 하게 되었다. 장난이라고 쓴 것은 도저히 대대적으로 발표하기가 힘든 것이니, 그저 가슴 한구석에 품어왔다는 정도의 말이다. 오늘은 그 가운데 하나를 독자 여러분의 비판에 맡기고 싶다.
국가든 민족이든 각각 특유의 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국가나 민족의 성쇠는 근본적으로 이 혼에 기인한다. 성할 때에는 이 민족혼이 플러스로 움직이고, 쇠퇴기에는 같은 민족혼임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스로 작용한다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
수년 전에 발표한 베네치아 공화국 흥망사를 다룬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 나는 이 가설을 처음으로 공개한 셈이다.
역사가들은 한 나라의 쇠퇴를 그 나라 국민정신이 쇠한 까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왜 쇠했느냐에 대해서는 우리가 수긍할 만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고대 로마 흥망성쇠를 비롯한 수많은 역사서적을 읽어봐도 머리에 남는 것은 다음 구절을 넘는 것이 없다.
교만한 자 오래 누리지 못하니 오직 일장춘몽일 뿐.
어찌하여 교만을 부리게 된 것일까. 아니 실제로 과연 교만해졌던 것일까 하는 의문마저 떠올리게 된다.
성자필쇠(盛者必衰)는 나폴레옹에만 한한 일이 아니라 역사의 순리다.
멀리 옛 중국 왕조의 자취를 살펴보건대 진나라의 조고, 한나라의 왕망, 양나라의 주이, 당나라의 녹산, 이들은 모두 구주선황(舊主先皇)의 정치를 따르지 않고 그들에게 등을 돌려 향락에 빠져, 간하는 말을 깊이 생각지 않았다. 또한 천하가 흐트러질 것을 깨닫지 아니하고 백성의 근심을 모르고 지내다가 머지 않아 망한 자들이니.
역사적 사실이 이와 같다면 그들의 말로가 그러했던 것은 당연한 결과이니 납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로서는 적어도 베네치아 역사에 관한 한, 그와 같이 단순한 정신의 쇠함이나 타락만으로 설명하는 논의에는 아무래도 찬성할 수 없다. 왜냐하면 베네치아인은 구주선황의 정치에 따랐고, 향락에도 분수를 알았고, 간언을 들으면 깊이 생각할 줄 알았고, 천하가 흐트러질 조짐에 민감했고, 백성의 근심을 알고 있었는데도 성자필쇠의 예외가 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베네치아인의 특징은 자신들이 가진 힘을 주변 정세에 비추어가면서,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 것인가를 항상 추구해왔다는 것이다. 이것이 베네치아가 대성한 근본적인 요인이면서 동시에 쇠퇴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것에 이어, 어떻게 하면 가진 힘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지를 늘 추구해온 베네치아인의 민족혼이 어떻게 실제로 발휘되었는지. 그리고 해운업, 수공업, 농업으로 중점이 옮겨간 베네치아 경제를 서술함으로써 실증한 후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 결과 베네치아의 경제는 베네치아인들의 경제에 대한 합리적인 사고에 따라 투자대상이 차례로 바뀌었어도 총체적으로는 장기간에 걸쳐 부침이 적은 풍족함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베네치아인들의 이러한 성향은 의외의 부산물을 낳게 된다.
투자대상의 변이는 투자가 정착됨에 따라 그것을 행하는 자의 정신구조에도 변이나 전환을 반드시 일으키게 마련이다.
베네치아인들은 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교만해진 결과가 아니다. 투자대상이 변하고 바뀜에 따라 그들의 정신도 바뀐 것뿐이다. 한 민족의 쇠퇴 워인을 그 민족의 정신적 타락의 결과로 돌리는 것보다 이렇게 보는 것이 더 무섭다.
그들이 교만해진 결과라면 사전에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민족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기인하니 이를 치유할 처방책도 없다. 성(盛)한 자는 필히 쇠(衰)한다. 그리고 이 투자대상의 변이는 베네치아 공화국 쇠퇴로 이어지게 된다.
이 뒤에는 정신의 변이가 어떠한 형태로 쇠퇴에 이르렀는지 사료에 의해 실증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단지 모두 합해 800쪽이 넘는 두 권에 걸친 이 작품 가운데 내가 독자에게 가장 말하고 싶었던 부분은 여기에 인용한 두 쪽도 안 되는 분량이다.
그래도 800쪽이나 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우선 역사란 복잡하고 세밀한 부분의 집합체이니, 그것을 참고서식으로 정리정돈해버려서는 역사를 읽는 즐거움을 버릴 위험이 있다. 더구나 대학 입시용도 아니니 말이다.
둘째.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근본적으로 그 나라의 민족혼에 기인한다는 나의 가설로는, 쇠퇴기를 아무리 상세히 서술해본 들 그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아무튼 그 민족 특유의 민족혼은 흥륭기에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흥륭기를 다루지 않은 멸망론에 대해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다.
단지 이 가설은 적어도 베네치아 공화국에 대해서는 설명이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지만, ‘가설’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민족의 경우도 해석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남에게 좀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내 지식의 범위, 즉 중세 르네상스에 한하여 말한다면 내 가설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베네치아와 어깨를 견주던 당시의 대표적인 도시국가 피렌체 공화국을 살펴보자. 피렌체인의 혼은 처참하리만큼 왕성한 비판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 몸조차도 흠을 낼 정도로 드셌으니, 이것이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정신을 폭발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그 작은 도시에서 겨우 200년이 못 되는 시기에 그렇게나 위대한 문명이 결실을 본 예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말고는 없다.
피렌체 공화국 정부가 어떤 일에 대한 해결책을 얻기 위해 조직한 위원회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 젤로, 보티첼리 같은 천재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름 하나만으로도 시대를 대표할 만한 이런 천재들이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 우글거리고 있었다.
더구나 이들은 에베레스트 정상과도 같은 존재로, 산자락을 이루는 수재들도 그 질과 양이 얼마나 굉장한지를 보면, 왜 그 시대 하필이면 피렌체라야 했나 하고 누구도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단한 민족혼이 어느 시점부터 반대로 향하게 된다. 베네치아도 피렌체도 가장 화려하게 문화가 꽃핀 시기는 1500년 전후가 되지만, 베네치아는 그로부터 300년은 더 수명을 유지할 수 있었음에 반해, 피렌체 공화국은 멸망까지 겨우 30년도 견디지 못했다.
또 다른 공화국인 제노바의 경우, 해양 도시국가였던 이 나라는 베네치아와는 정면에서 이익을 다투는 나라로, 같은 시대의 같은 민족이었으면서도 베네치아인과는 대조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야말로 개인주의의 도가니로 피렌체인의 개인주의가 문화 방면에서 개화한 것에 반해, 제노바의 경우는 항해와 통상기술 면에서 발휘되었다. 그들은 또 다른 면에서 라이벌인 베네치아에 비해서도 문자 그대로 천재라 할 만했다. 그 때문에 그들의 재능이 완전히 발휘된 때에 그 힘의 막강함이란 그야말로 누구 한 사람 맞서볼 상대가 없을 정도로, 관민합동 계획경제국 베네치아를 종종 괴롭혔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제노바식 민족혼이 그들의 쇠퇴와 또 관련을 맺는다. 제노바의 힘이 전성기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그렇다고 아직은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었던 15세기 말, 제노바인 콜럼버스는 제 땅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후원자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인적이나 물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도시국가였으니, 개개인의 ‘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양’으로 밀어붙이던 제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쓰기 위해, 멸망에 이르기까지 천년의 비잔틴제국 역사를 조사해보았다. 그러나 거기에 나타난 갖가지 요소를 통합할 기본 개념, 즉 동로마제국이라 불린 이 대국을 이끈 그들의 민족혼이 멸망 직전조차 참으로 정반대로 유지된 채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연해졌다.
쇠망을 논할 때 뺄 수 없는 고대 로마에 대해서도, 아직 지식이 부족하여 지금도 공부 중이니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나의 가설이 적용될지 어떨지를 알고 싶다.
아무튼 이러한 시각으로 논한 고대 로마 멸망기를 나는 아직 읽은 적이 없다.
단지 나의 가설로는 흥륭기에 선명히 나타나는 민족 특유의 민족혼을 발견하여 그것이 어떻게 발휘되었는지를 서술하고, 같은 성질이 어느 시기를 경계로 이번에는 어떻게 마이너스 방향으로 넘어가게 되었는지를 서술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저지할 수 있는 처방법은 제시할 수 없다. 어째서 마이너스로 발휘되었는지는 쓸 수 있다. 하지만 플러스인 채로 끝나게 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어떤 나라의 민족혼이란 그 민족을 그 민족답게 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시대가 변하여 마이너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해도 그것을 없앨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느 민족의 특질이 화합정신에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다가 이제 화합정신이 시대에 걸맞지 않는다고 버린다면 그 민족답지 않게 된다는 말과 비슷하다. 이것이 성자(盛者)는 필히 쇠(衰)한다는 내 생각의 근거다.
하지만 인간의 노력이 모두 헛일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흥륭기는 되도록 오래 유지하고, 쇠퇴기는 되도록 천천히 찾아오게끔 하는 노력은 인간의 건강관리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필히 찾아들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까지 될 수 있으면 건강한 삶을 꾸리는 것이 건강관리이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건강관리의 명수였다. 그것은 아마도 피렌체인이나 제노바인들에 비해 자신들은 천재의 집단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을 보통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인간은 이미 보통 사람이 아니다. 이것이 내가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쓴 이유다.
지금까지 쓴 것은 국가나 민족이라는 역사상의 단위로 잴 수 있는 것에만 한했지만, 이것을 조금 작게 하여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 대상으로 본 경우에는 어떨까? 기업이든 정당이든 조직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요즘 나는 이런 분석놀이를 즐기고 있다.
또 조직이 아니라 개인의 일생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물론 이 경우는 성쇠가 분명한 인물이 아니면 알기 힘들겠지만.
아무튼 나는 ‘교만한 자 오래 누리지 못하니’식의 멸망론이나, 그것을 바탕으로 한 위기의식의 유행에 아주 질려 있는 참이다.
좀더 논리적으로 이치를 따지는 논전을 구경하고 싶다. 쾌감 중에는 지적 쾌감이라는 것도 있다. 그리고 가설을 무기로 한 칼싸움이라니 생각만 해도 유쾌하다. 혹시나 찔리면 툭툭 털고 일어나 당당하게 패한 것을 인정하면 된다. 칼이야 새로 만들면 되고.
흥망성쇠에 대하여
가설이란 어디까지나 가정으로 삼은 이치다. 그것으로 모든 현상이 완전히 해석될지 어떨지는 모른다. 완전히 해석이 가능하다고 밝혀지면 이제 가설이 아니라 정설이 된다.
15년 동안 역사 이야기를 써온 나는 요즘 그간의 공부를 통해 몇 가지 가설로 장난을 하게 되었다. 장난이라고 쓴 것은 도저히 대대적으로 발표하기가 힘든 것이니, 그저 가슴 한구석에 품어왔다는 정도의 말이다. 오늘은 그 가운데 하나를 독자 여러분의 비판에 맡기고 싶다.
국가든 민족이든 각각 특유의 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국가나 민족의 성쇠는 근본적으로 이 혼에 기인한다. 성할 때에는 이 민족혼이 플러스로 움직이고, 쇠퇴기에는 같은 민족혼임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스로 작용한다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
수년 전에 발표한 베네치아 공화국 흥망사를 다룬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 나는 이 가설을 처음으로 공개한 셈이다.
역사가들은 한 나라의 쇠퇴를 그 나라 국민정신이 쇠한 까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왜 쇠했느냐에 대해서는 우리가 수긍할 만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고대 로마 흥망성쇠를 비롯한 수많은 역사서적을 읽어봐도 머리에 남는 것은 다음 구절을 넘는 것이 없다.
교만한 자 오래 누리지 못하니 오직 일장춘몽일 뿐.
어찌하여 교만을 부리게 된 것일까. 아니 실제로 과연 교만해졌던 것일까 하는 의문마저 떠올리게 된다.
성자필쇠(盛者必衰)는 나폴레옹에만 한한 일이 아니라 역사의 순리다.
멀리 옛 중국 왕조의 자취를 살펴보건대 진나라의 조고, 한나라의 왕망, 양나라의 주이, 당나라의 녹산, 이들은 모두 구주선황(舊主先皇)의 정치를 따르지 않고 그들에게 등을 돌려 향락에 빠져, 간하는 말을 깊이 생각지 않았다. 또한 천하가 흐트러질 것을 깨닫지 아니하고 백성의 근심을 모르고 지내다가 머지 않아 망한 자들이니.
역사적 사실이 이와 같다면 그들의 말로가 그러했던 것은 당연한 결과이니 납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로서는 적어도 베네치아 역사에 관한 한, 그와 같이 단순한 정신의 쇠함이나 타락만으로 설명하는 논의에는 아무래도 찬성할 수 없다. 왜냐하면 베네치아인은 구주선황의 정치에 따랐고, 향락에도 분수를 알았고, 간언을 들으면 깊이 생각할 줄 알았고, 천하가 흐트러질 조짐에 민감했고, 백성의 근심을 알고 있었는데도 성자필쇠의 예외가 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베네치아인의 특징은 자신들이 가진 힘을 주변 정세에 비추어가면서,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 것인가를 항상 추구해왔다는 것이다. 이것이 베네치아가 대성한 근본적인 요인이면서 동시에 쇠퇴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것에 이어, 어떻게 하면 가진 힘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지를 늘 추구해온 베네치아인의 민족혼이 어떻게 실제로 발휘되었는지. 그리고 해운업, 수공업, 농업으로 중점이 옮겨간 베네치아 경제를 서술함으로써 실증한 후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 결과 베네치아의 경제는 베네치아인들의 경제에 대한 합리적인 사고에 따라 투자대상이 차례로 바뀌었어도 총체적으로는 장기간에 걸쳐 부침이 적은 풍족함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베네치아인들의 이러한 성향은 의외의 부산물을 낳게 된다.
투자대상의 변이는 투자가 정착됨에 따라 그것을 행하는 자의 정신구조에도 변이나 전환을 반드시 일으키게 마련이다.
베네치아인들은 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교만해진 결과가 아니다. 투자대상이 변하고 바뀜에 따라 그들의 정신도 바뀐 것뿐이다. 한 민족의 쇠퇴 워인을 그 민족의 정신적 타락의 결과로 돌리는 것보다 이렇게 보는 것이 더 무섭다.
그들이 교만해진 결과라면 사전에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민족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기인하니 이를 치유할 처방책도 없다. 성(盛)한 자는 필히 쇠(衰)한다. 그리고 이 투자대상의 변이는 베네치아 공화국 쇠퇴로 이어지게 된다.
이 뒤에는 정신의 변이가 어떠한 형태로 쇠퇴에 이르렀는지 사료에 의해 실증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단지 모두 합해 800쪽이 넘는 두 권에 걸친 이 작품 가운데 내가 독자에게 가장 말하고 싶었던 부분은 여기에 인용한 두 쪽도 안 되는 분량이다.
그래도 800쪽이나 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우선 역사란 복잡하고 세밀한 부분의 집합체이니, 그것을 참고서식으로 정리정돈해버려서는 역사를 읽는 즐거움을 버릴 위험이 있다. 더구나 대학 입시용도 아니니 말이다.
둘째.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근본적으로 그 나라의 민족혼에 기인한다는 나의 가설로는, 쇠퇴기를 아무리 상세히 서술해본 들 그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아무튼 그 민족 특유의 민족혼은 흥륭기에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흥륭기를 다루지 않은 멸망론에 대해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다.
단지 이 가설은 적어도 베네치아 공화국에 대해서는 설명이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지만, ‘가설’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민족의 경우도 해석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남에게 좀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내 지식의 범위, 즉 중세 르네상스에 한하여 말한다면 내 가설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베네치아와 어깨를 견주던 당시의 대표적인 도시국가 피렌체 공화국을 살펴보자. 피렌체인의 혼은 처참하리만큼 왕성한 비판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 몸조차도 흠을 낼 정도로 드셌으니, 이것이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정신을 폭발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그 작은 도시에서 겨우 200년이 못 되는 시기에 그렇게나 위대한 문명이 결실을 본 예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말고는 없다.
피렌체 공화국 정부가 어떤 일에 대한 해결책을 얻기 위해 조직한 위원회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 젤로, 보티첼리 같은 천재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름 하나만으로도 시대를 대표할 만한 이런 천재들이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 우글거리고 있었다.
더구나 이들은 에베레스트 정상과도 같은 존재로, 산자락을 이루는 수재들도 그 질과 양이 얼마나 굉장한지를 보면, 왜 그 시대 하필이면 피렌체라야 했나 하고 누구도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단한 민족혼이 어느 시점부터 반대로 향하게 된다. 베네치아도 피렌체도 가장 화려하게 문화가 꽃핀 시기는 1500년 전후가 되지만, 베네치아는 그로부터 300년은 더 수명을 유지할 수 있었음에 반해, 피렌체 공화국은 멸망까지 겨우 30년도 견디지 못했다.
또 다른 공화국인 제노바의 경우, 해양 도시국가였던 이 나라는 베네치아와는 정면에서 이익을 다투는 나라로, 같은 시대의 같은 민족이었으면서도 베네치아인과는 대조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야말로 개인주의의 도가니로 피렌체인의 개인주의가 문화 방면에서 개화한 것에 반해, 제노바의 경우는 항해와 통상기술 면에서 발휘되었다. 그들은 또 다른 면에서 라이벌인 베네치아에 비해서도 문자 그대로 천재라 할 만했다. 그 때문에 그들의 재능이 완전히 발휘된 때에 그 힘의 막강함이란 그야말로 누구 한 사람 맞서볼 상대가 없을 정도로, 관민합동 계획경제국 베네치아를 종종 괴롭혔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제노바식 민족혼이 그들의 쇠퇴와 또 관련을 맺는다. 제노바의 힘이 전성기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그렇다고 아직은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었던 15세기 말, 제노바인 콜럼버스는 제 땅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후원자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인적이나 물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도시국가였으니, 개개인의 ‘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양’으로 밀어붙이던 제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쓰기 위해, 멸망에 이르기까지 천년의 비잔틴제국 역사를 조사해보았다. 그러나 거기에 나타난 갖가지 요소를 통합할 기본 개념, 즉 동로마제국이라 불린 이 대국을 이끈 그들의 민족혼이 멸망 직전조차 참으로 정반대로 유지된 채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연해졌다.
쇠망을 논할 때 뺄 수 없는 고대 로마에 대해서도, 아직 지식이 부족하여 지금도 공부 중이니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나의 가설이 적용될지 어떨지를 알고 싶다.
아무튼 이러한 시각으로 논한 고대 로마 멸망기를 나는 아직 읽은 적이 없다.
단지 나의 가설로는 흥륭기에 선명히 나타나는 민족 특유의 민족혼을 발견하여 그것이 어떻게 발휘되었는지를 서술하고, 같은 성질이 어느 시기를 경계로 이번에는 어떻게 마이너스 방향으로 넘어가게 되었는지를 서술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저지할 수 있는 처방법은 제시할 수 없다. 어째서 마이너스로 발휘되었는지는 쓸 수 있다. 하지만 플러스인 채로 끝나게 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어떤 나라의 민족혼이란 그 민족을 그 민족답게 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시대가 변하여 마이너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해도 그것을 없앨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느 민족의 특질이 화합정신에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다가 이제 화합정신이 시대에 걸맞지 않는다고 버린다면 그 민족답지 않게 된다는 말과 비슷하다. 이것이 성자(盛者)는 필히 쇠(衰)한다는 내 생각의 근거다.
하지만 인간의 노력이 모두 헛일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흥륭기는 되도록 오래 유지하고, 쇠퇴기는 되도록 천천히 찾아오게끔 하는 노력은 인간의 건강관리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필히 찾아들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까지 될 수 있으면 건강한 삶을 꾸리는 것이 건강관리이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건강관리의 명수였다. 그것은 아마도 피렌체인이나 제노바인들에 비해 자신들은 천재의 집단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을 보통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인간은 이미 보통 사람이 아니다. 이것이 내가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쓴 이유다.
지금까지 쓴 것은 국가나 민족이라는 역사상의 단위로 잴 수 있는 것에만 한했지만, 이것을 조금 작게 하여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 대상으로 본 경우에는 어떨까? 기업이든 정당이든 조직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요즘 나는 이런 분석놀이를 즐기고 있다.
또 조직이 아니라 개인의 일생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물론 이 경우는 성쇠가 분명한 인물이 아니면 알기 힘들겠지만.
아무튼 나는 ‘교만한 자 오래 누리지 못하니’식의 멸망론이나, 그것을 바탕으로 한 위기의식의 유행에 아주 질려 있는 참이다.
좀더 논리적으로 이치를 따지는 논전을 구경하고 싶다. 쾌감 중에는 지적 쾌감이라는 것도 있다. 그리고 가설을 무기로 한 칼싸움이라니 생각만 해도 유쾌하다. 혹시나 찔리면 툭툭 털고 일어나 당당하게 패한 것을 인정하면 된다. 칼이야 새로 만들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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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움쿰재 작성시간 04.12.16 전 마직막 글귀에서 칼로 비유한걸 보고 일본인답다고 말했을 뿐,비난하지 않았습니다.오해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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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로쿠트 작성시간 04.12.17 시오노 나나미....저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웅중심, 엘리트 중심은 개인적으로 싫어하고...역사학자로서도 꽝이죠. 세상에 어느 역사가가 사료 조작을 당당하게 생각합니까? 하지만 일본인 어쩌구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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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치우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4.12.17 칼과 관련된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의 글입니다-돌팔이 의사에게-전에는 안과의사를 하더니, 지금은 검투사를 직업으로 삼고 있구나. 하기야 그대가 지금 경기장에서 하고 있는 일은 과거에 진료실에서 했던 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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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치우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4.12.17 로마인은 스파르타처럼 혹독한 훈련을 견뎌낸 군인이긴 해도, 결코 인간미가 전혀 없지 않았음. 로마인의 왕성한 비판정신과 유쾌한 유머감각..실질강건했던 로마인도 역사의 순리대로 천년을 헤아리는 동안 온갖 극적인 장면들을 연출하며 발흥하고 몰락했으니..서양인의 지혜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건 부인할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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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치우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4.12.17 자기 아들에게 유골을 지중해에 뿌려달라고 할 만큼 지중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버린 시오노는 역사에 관해 아마추어이며, 작가일 뿐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사람입니다. 전'로마인 이야기' 덕분에 로마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서양에 대한 동양인의 열등감보다는 허심탄회하게 서양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