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서양사

[스크랩] [퍼옴]무서운 헝가리의 미녀귀족 엘리자베스 바토리의 이야기.

작성자내삶의방식|작성시간05.04.22|조회수881 목록 댓글 12

출처는 대한민국 지아이죠 사이트의 닌자님글 발췌

위의 사진은 엘리자베스 바토리의 초상화이며 밑의 사진은 장난감 피겨입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Elizabeth Bathory, 1560~1614]

마녀 혹은 흡혈귀라 불리우는 바토리 가의 여백작.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1560년 트란실바니아(현재 루마니아 서북부의 고원지방)에서 가장 유서깊고 부유하며 영향력있는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바토리 가는 유럽제일의 합스부르크 가와 비견될 정도의 명문가로 집안엔 군주나 추기경도 있었고, 사촌은 헝가리 왕국의 수상이었다. 가장 유명한 친척은 트란실바니아의 군주이며 폴란드의 왕도 있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4~5살 경 심한 발작을 일으켰었다고 한다. 일종의 간질 발작이거나 기타 다른 신경 계통 질환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훗날 그녀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 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바토리 가는 막대한 재산과 영지를 잃지 않기 위해 근친 결혼을 많이 했는데, 때문에 집안에 유명인을 많이 배출한 만큼 정신이상자가 많았다.

15살 때 바토리는 페렌츠 나다스디 백작과 결혼을 하는데, 백작은 당시 26살이었고, 남편이 아내의 성을 따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부부는 체터성에 살았으며, 백작이 워낙 전쟁을 좋아했던 관계로 거의 떨어져 지냈다. 그때문인지 남편 페렌츠 백작은 헝가리의 검은 영웅이란 별명을 얻었다.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있는 동안 바토리는 백모가 가르쳐준 채찍 다루는 기술을 연마하고 도루코라는 하인이 바토리에게 신비주의, 악마숭배 등등의 것을 전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군의 아내로 엄격하게 처신하라는 시어머니의 강압과 압제로 감옥이나 다름없는 규제속에서 그녀는 점차 말이 없고, 냉담하고, 음습한 여인으로 변모했다. 여기에 더하여 "바토리 가"의 유전병인 간질 발작 증세도 그녀를 정신적으로 돌아버리게 하는데 크게 일조하는데 바토리 가는 근친상간에 의한 유전병으로 유명해 숙부는 간질로 죽었고, 숙모는 황음에 빠져 남편 세명을 먼저 보낸 가문이었다고 한다.

바토리는 언젠가 낯선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했다가 한참 후에나 성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백작은 이를 용서했다고 한다. 거의 남편과 같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도 갖지 못 했고, 결혼한지 10년이 지난 1585년에 첫 딸을 낳았고, 다음 9년 동안엔 두 딸을, 그리고 1598년에야 비로소 외아들 파울을 낳았는데 바로 이 기나긴 기간 동안 바토리는 유모, 집사, 하인, 숲에 사는 두 마녀 등과 함께 수시로 젊은 하녀들을 고문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것이 진짜 끔찍한 행위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남편의 죽음이었던 것 같다.

남편 페렌츠 백작은 1604년 51세의 나이로 전장에서 전사했고, 이것이 큰 충격이었던지 바토리는 끔찍한 괴물로 돌변해 버린다.

자신에게 너무나 강압적이었던 시어머니를 성에서 쫓아내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악마숭배에 빠져들어 처음엔 말이나 기타 동물들을 제물로 사용했지만, 나중엔 인간 제물을 바쳤다고 하는데, 끔찍한 고문과 살인의 진정한 목적은 젊음을 되찾는 것이었다. 마흔이 넘으면서 곱고 아름다운 얼굴과 피부가 삭아들어가고 있음을 개탄한 바토리는 젊은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하여 예전의 미모를 되찾으려 했다.

어느날 머리를 빗겨주던 하녀가 실수를 하여 머리가 심하게 당겨지자, 바토리는 하녀의 따귀를 때렸고, 하녀의 뺨이 손톱에 긁혀서 피가 났다. 그런데 그 피가 바토리의 손에 떨어졌고, 바토리는 순간적으로 손의 피부가 탱탱하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젊은 처녀의 피가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비밀"이라 생각한 그녀는 그 이후 수시로 처녀를 잡아다 죽여서, 그 피로 목욕을 했다.

발목을 밧줄로 묶어 거꾸로 매단 다음 목을 따서 그 피를 받아 목욕을 했으며, 가끔 진짜 예쁜 처녀가 잡혀오면 "특별 메뉴"로 피를 마시기도 했는데, 처음엔 잔에 받아마셨지만, 마지막엔 직접 목을 물어뜯어 생피를 그냥 받아마셨다고도 전한다.

그녀의 잔혹한 성품을 말해주는 것 중에 배나무 사건이 있다. 그녀의 영지에 사는 농부의 딸 하나가 배가 고픈 나머지 배를 하나 훔쳐먹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토리의 하인들이 이 소녀를 밀고했고, 바토리는 소녀를 잡아다가 고문하기로 했다. 그러나 소녀는 고문을 하기도 전에 배를 훔쳐 먹은 일을 자백하고 말았다.

바토리는 소녀를 용서하기가 싫었으나 많은 농부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관대한 처분을 내린다며 배나무에 하룻동안 묶어놓게 했다. 그 대신 그녀는 하녀에게 시켜 이 소녀의 전신에 꿀을 발라놓도록 했다. 꿀 냄새를 맡은 벌들이 사방에서 날아오기 시작했고 소녀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으나 소용이 없었다.

수천, 수만 마리의 벌들에게 쏘인 소녀는 온몸이 퉁퉁 부어서 죽었다. 그래도 벌들은 그치지 않고 날아와 그녀의 몸에 달라붙은 꿀을 먹으려고 아우성이었다. 그녀가 죽자 이번에는 개미와 구더기가 달려들어 그녀의 시체를 파먹었다. 농부들은 그녀의 잔인한 처사에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그녀는 권력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농부들은 감히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바토리가 즐겨 사용한 고문 도구-

철의 처녀(iron maiden)

독일의 유명한 기술자에게 특별 주문 제작한 것으로 실제 사람처럼 아주 정교하게 만든 철제 인형. 고뇌에 찬 성모마리아라고도 불렸다.

사람 키만한 크기의 벌거벗은 인형으로 피부는 사람과 똑같은 색이고, 기계장치로 눈과 입이 열리고 머리카락도 있었다. 여자를 벌거벗겨 인형 앞에 놓으면 톱니바퀴가 움직여 인형은 두 팔을 올려 여자를 감싸안는다. 다음에 인형의 가슴이 열리는데 그 안은 비어있다. 좌우로 펼처진 문에 다섯 개의 칼날이 있다. 인형의 몸안에 갇힌 여자는 칼로 전신을 찔려 뼈가 부서지고 인형은 처녀의 온몸을 사정없이 찌르면서 피를 뽑아낸다. 그 피는 인형안의 홈을 따라 흘러 바토리의 욕조로 쏟아지게 되어있다.

철의 새장

철창으로 만든 새장 같은 곳에 처녀를 가둬 놓고 도르래로 천정까지 들어 올린 뒤 버튼을 누르면 철창안에서 날이 선 칼날들이 튀어 나와 처녀의 몸을 꽉 조이며 난자한다. 새장 아래에 있던 바토리는 그 쏟아지는 피를 맞으며 샤워를 했다.

바토리의 잔혹한 성품을 말해주는 예

금화를 훔치다 들키면 불에 달군 금화를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바토리의 옷을 잘못 다렷을시엔 시뻘건 인두로 얼굴을 지져 놓는다. 어쩌다 수다라도 떨면 굵은 바늘로 입을 꿰매 놓는다. 과일을 훔치다 들키면 온몸에 꿀을 발라 벌레들의 먹이로 만든다.(배나무 사건) 심심하면 처녀의 알몸을 꽁꽁 묶은 뒤 얼음 위에 굴린다

1600년 부터 1610년 까지 바토리는 연속적으로 젊은 처녀를 살해하여 모종의 악마적 종교 의식을 거친 후 그들의 피로 목욕을 했다고 하는데, 죽은 이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는지, 시체를 근처 교회로 보내 신부로 하여금 장례를 치르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원인모를 죽음"을 당한 처녀의 수가 너무나 많아지자 그 신부는 더 이상 장례를 치뤄주지 않았고, 소문이 날까 두려운 나머지 바토리는 신부를 불러다가 누구에게도 비밀을 발설하지 못하도록 협박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처녀의 피는 처음 만큼 효과가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이에 측근들은 천한 농촌 처녀가 아니라 귀족 처녀의 피라야 더 효과가 있다고 부추기고 이에 바토리는 성내에 귀족적 소양을 가르치는 "귀족 여학교"를 설립해 한번에 25명 씩 학생을 받았다. 물론 이들도 농촌 처녀들 처럼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피를 빨렸는데 이때쯤부터 바토리는 조심성을 잃었던 것 같다. 시체는 들판이나 헛간, 성 바로 옆 창가, 근처 채소밭 등에 아무렇게나 묻고 시체 네 구를 성벽 밑으로 그냥 떨어뜨린 적도 있다하니 당연히 꼬리를 잡혀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던중 희생자 하나가 극적으로 탈출해 당국에 신고했고, 왕은 바토리의 사촌이며 그 지방 영주인 기오르기 투르조 백작에게 명하여 진상을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1610년 12월 30일 백작이 일단의 군인과 기병대를 이끌고 그 성에 도착했다. 성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간 백작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몸에 피가 모두 빠져버린 젊은 여자 시체가 있었고, 꼬챙이에 찔린 채 아직 살아있는 여자도 몇 명 있었으며, 지하실에 내려가보니 온갖 종류의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젊은 처녀들이 수두룩했다. 곳곳에서 피가 말라붙은 칼, 송곳 등의 고문 도구들이 발견되고 게다가 성 주변을 파보니 여자 시체가 50여구나 나왔다.

재판은 1611년에 열렸지만, 정작 바토리는 재판에 참석하지도 않았으며, 유무죄에 관해서도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재판에서 집사인 우즈베리는 처녀 37명을 살해했으며, 그중 여섯은 일자리를 찾아 성에 들어왔던 여자였다고 자백했는데, 대개는 몇주일 심지어는 몇 달 동안이나 고문을 당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자백은 그러했지만, 실은 총 612명을 죽였다고 한다. 바토리는 모든 것을 일기에 써서 기록에 남겼고, 숫자는 이를 근거로 한 것이다.

고문은 대개 수하들이 담당했지만, 가끔은 백작 부인이 직접 처녀들을 고문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 끔찍한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모두 목이 잘린 후 화형을 당했고, 수뇌급 두명은 손가락을 잘린 후 산채로 불에 타죽었지만, 바토리만은 오로지 귀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목숨을 건졌다.(법적으로도 귀족은 처형할 수 없다고 한다)

바토리는 그대신 높은 탑 꼭대기에 감금되었는데, 음식을 넣어주는 작은 구멍 이외에는 창문 하나 없는 어두운 방이었다고 한다.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로 연명하면서도 그녀는 참회의 말 한 마디 없었다. 감금 4년만인 1614년 8월 말, 54세의 나이로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어두운 감방에서 세상을 떠난다.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그녀의 시신은 그곳에 묻힐 수 없었고 헝가리 동북부 지역의 엑시드에 묻혔다.

1585년의 엘리자베스 바토리 여백작의 원본 초상화는 분실되었다(1990년대에 행방불명). 하지만 아마도 16세기 후반에 그려진 이 그림은 그 원본의 동시대의 완전한 복사본이다. 원본 초상화(유일하게 알려진 그녀의 모습)가 그려질 당시 그녀는 25세였다.

흠..내용이 좀 잔혹하긴 한데.심의에 걸린다 생각하면 삭제해주세요.

정말 무서운여자군요.저 피겨 너무 잘만든거 같아서 퍼왔습니다.

드라큐라백작보다 더무서운여자.

NpD_불꽃남자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디아블로2 멀티플레이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DarkGuardian | 작성시간 05.04.23 예전에 지식인에서 놀다가 봤었는데...사진은 처음보네요.(가스펠~쾅)
  • 작성자qwrwr | 작성시간 05.04.26 바소리에 더가깝습니다. 역사 운운하고 싶으면 로마인 이야기 같이 깊이 없는 책이나 읽지 말고 라틴어라도 하셔서 원문을 읽어보시죠. 깊이도 뭣도 없는 이런 사이트...
  • 작성자스피어스 | 작성시간 05.04.27 피빨아먹고 그러는 이야기는 트란실바니아 지방이 많은 것 같네요..
  • 작성자Ckorn | 작성시간 05.04.28 잊혀진 탑이 무슨 퀘였지.. -.- 그 Act 1 의 룬 노가다를 하는 거기 말씀하시는 건가.. 한때 백만 El로 Zod 만들기를 하던 즐거운 기억이 있는 그.. ㅎㅎㅎ
  • 작성자hyhn217 | 작성시간 05.04.28 서양사학자 전문가만 배우는 라틴어를 일반인이 배워서 뭣하게? 아하, 역사는 라틴어를 아는 사람의 전유물이렷다? 낄낄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