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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Re:비잔티움 제국의 둔전병제

작성자creios|작성시간05.08.05|조회수1,864 목록 댓글 8
서양의 둔전병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건 역시 비잔티움 제국의 둔전병제입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테마 제도"를 통해 제국 영토를 몇개의 "테마"라는 구역으로 나누고, 그 테마 내의 병사들에게 땅을 주고 농사를 짓게 하였고, 그 대신 그 병사가 무장할 무기를 그 땅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충당하게 합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 둔전병제를 실시한 이유는 "강력한 국내 군대"를 보유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동양 둔전병제와 차이가 있습니다.




둔전병제의 실시과정을 봅시다. 비잔티움 제국은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위기의 5세기에도 끝까지 살아남는데 성공합니다만, 비잔티움 제국 역시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 북부에서는 야만족들이 끈임없이 침략을 계속하고 있었고, 아나톨리아 방면으로는 계속해서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과 오리엔트인들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더더욱 문제였던 것은 당시 비잔티움 제국 군대를 구성하고 있던 자들은 대부분 야만족 출신 용병들이었던 데 있습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시민병으로 구성된 군단이 없어지고, 용병으로 채워진 군대가 대신하게 된 것을 꼽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 역시 제국에서 "시민"이 사라지면서 군대에 들어갈 국민이 줄어들게 되어, 야만족 출신 용병들이 이를 대신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당연히 이 용병들의 충성심은 (서로마 제국의 사례에서 증명되었듯이) 절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언제 적군과 손잡고 배신할지 모를 놈들이니...... 그래서 심지어는 야만족 출신 장군이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는 현상도 일어나기도 합니다.(제논 황제) 그래서 대혼란기 속에서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야만족 용병 대신 옛날과 같이 자국 국민으로 이루어진 군대의 필요성이 대두합니다.




그 결과 헤라클레이오스 황제(그 유명한 황제 말입니다. 제국의 구원자) 때 테마 제도가 실시되기 시작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제국 영토를 여러개의 테마로 나누어서, 그 지역 농민들에게 토지를 주는 대신 군복무를 시키는 겁니다. 이들은 비잔티움 제국의 국민이기에, 야만족 용병들보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훨씬 강했고 더 믿을 만 했습니다. 더구나 이 둔전병들은 그 테마 안에 자신의 집, 토지, 가족이 있기에, 적군이 쳐들어올 경우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웠습니다. 이 점에서 용병과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은 강합니다)



그래서 비잔티움 제국은 둔전병제를 통해 충성심이 의심스러운 용병 대신, 국민으로 이루어진 국내 군대를 보유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서 위기의 시대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동양의 둔전병제와 차이가 나는데, 동양 둔전병제의 실시 이유는 바로 "식량" 때문이었습니다. 조조가 둔전병제를 실시한 이유는 내전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식량 위기 때문에, 군인에게 땅을 주고 농사를 짓게 함으로서 식량을 구하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북위 왕조의 둔전병제 역시 마찬가지죠.



하지만 비잔티움 제국의 둔전병제는 "믿을 수 있는 병사"가 목적이었습니다.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튼튼했습니다. 상품화폐경제가 유지되고 있었으며 도시경제와 농업이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야만족의 침략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자국 병사를 가지기 위해 둔전병제가 실시된 겁니다. 그렇기에 동양과 서양의 둔전병제는 그 지향점이 다릅니다. (하긴..... 맹장 한사람이 날뛰면 수만명의 병사들이 싸워보지도 않고 모조리 도망가는게 당시의 중국군대였으니..... 믿을 수 있는 병사보다는 식량이라는 사고방식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지만......)



당연히 제국 황제들도 자국 군대의 강력함이 토지에 기반을 둔 견실한 둔전병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힘썻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귀족들이 자신들의 대토지를 늘리기 위해 둔전병들의 토지를 빼앗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많은 황제들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황제들과 대귀족들의 세력 다툼이 많았죠. 그중, 제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황제 가운데 하나였던 바실레이오스 2세는 정말 가혹할 정도로 대귀족들을 억누르면서 농민-둔전병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심지어는 "~~년 이후로 대귀족 너희들이 먹은 토지, 전부 다 뱉어내!"라는 칙명까지 내릴 정도.....(그래서 대귀족들은 바실레이오스 2세를 아주 아주 싫어했습니다. 하긴 일반 백성들도 모두 바실레이오스 2세를 싫어했지만.....)




하지만 바실레이오스 2세 이후, 무능한 황제들이 계속 즉위하면서 대귀족들은 둔전병-농민들의 소토지를 빼앗았고, 그 결과 비잔티움 제국 후반기에 이르면 둔전병제는 빠른 속도로 붕괴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둔전병들은 사라져 갔고, 당연히 비잔티움 제국의 군대 역시 빠른 속도로 약화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 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투르크 군대에게 비잔티움 군대가 격파되어, 그 결과 제국이 아나톨리아 전체를 잃어버리게 되자, 지금까지의 병력 공급원을 잃어버리고 맙니다.(그때까지 비잔티움 제국은 병력은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곡물은 발칸 반도 등의 남유럽 영토에서 얻었는데, 순식간에 아나톨리아 전체가 넘어가니) 당연히 그 결과 병력 부족..... 그래서 알렉세이오스 황제(제1차 십자군 전쟁때의 황제) 때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다른 나라 용병으로 군대를 구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용병군대는 엄청나게 돈을 잡아먹으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군대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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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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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마리에 | 작성시간 05.08.05 헤라클레이오스....아니 비잔틴..암 기구한 역사죠...페르시아와 전투에서 몇차례 승리로 거의 다이겼는데 남쪽의 아랍군이 쳐들오고...아랍을 막아내니 이번엔 페르시아가 다시 진군해오고....다시 막아내니..이번엔 아랍이 진열을 가다듬고 진격....결국엔 깨지고마는..
  • 작성자gkra1203 | 작성시간 05.08.05 개인적으로 알렉시우스 콤네누스 때 두라초 전투에서 바랑기안이 개관광당한게 아쉽다는-_-;;
  • 답댓글 작성자바랑기안농부 | 작성시간 05.08.06 what?
  • 답댓글 작성자gkra1203 | 작성시간 05.08.06 두라초 전투에서 바랑기안이 노르만에게 조낸 공격을 퍼부었다오. 그래서 그 닥치고 돌격과 정면 박치기의 본좌인 노르만 군대도 하마터면 무너질 뻔 했소. 그런데 발퀴리의 현신이라던 시겔가이타가 분전해서 전열이 복귀되고, 곧 지원병이 도착해 화살을 퍼부었다오...결국 바랑기안 거기서 전멸했소.
  • 답댓글 작성자gkra1203 | 작성시간 05.08.06 이후 바랑기안은 복귀됬지만 예전같지 않았다고 하오-_-;; 김태 아저씨의 십자군에서 조낸 강조된 알렉시우스 이마의 상처도 그 때 패배에서 나온거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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