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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타타르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폴란드의 경무장 창기병 - 울란(Uhlan)

작성자왕마귀|작성시간06.10.14|조회수3,244 목록 댓글 8
울란(Uhlan)은 원래 기병창, 사브르, 피스톨, 라이플 등으로 무장한 폴란드 경기병을 가리키는 말이며, 이들은 나중에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 군대에서도 복무하게 된다. 다른 유럽 군대에도 이와 비슷한 부대가 존재했으나 그들은 그저 '창기병(Lancers)'로 알려져있다.







울란 기병은 앞에 색깔있는 천을 붙인 두 줄 단추가 달린 상의와 색깔 장식띠, 사각형으로 각이 진 폴란드 창기병 모자를 착용했다. 이 창기병들은 창날 밑에 제비꼬리 모양의 작은 깃발을 달고 다녔다.


울란(Uhlan)의 기원


울란이라는 이름은 '용감한 전사'를 의미하는 몽골이나 타타르어 오글란(Oglan) 또는 우후안(Uhuan)에서 유래했으며, 터키어 오흘란(oghlan)은 '젊은이' 를 의미하기도 한다. (크림 타타르 칸국이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 되면서 대부분 이 소수 민족중에서 징집된 타타르 신병들은 유럽의 무슬림 문화를 선도했고 칭기즈칸의 몽골 군단의 침공 이래 엄청난 군사적 도전을 가져왔다.)





1. 날개달린 울란(Uhlan) 타타르 기병, 1656년

2. 타타르 기수, 17세기 후반

3. 일반적인 타타르, 17세기





크리미아 타타르 기병(왼쪽)과 싸우는 폴란드 - 리투아니아 병사(오른쪽)





훗사르





판케르니



타타르 병사들이 14세기 후반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 정착하면서, 폴란드는 타타르인들의 군사 용어와 전술, 전략과 함께 그들의 전통 중 상당 부분을 받아들였다. 이 중에는 경기병 부대의 대형도 포함됬다. 내부적으로 대부분 타타르와 리투아니아인으로 구성된 울란 부대는 처음에는 중세 후반의 다양한 전투에서 척후병 역할을 맡았다. 그들은 중기병(훗사르와 판케르니)보다 앞에서 정찰 임무를 실행했으며, 적의 방어능력을 시험해 보기도 했다.





최초의 울란 연대는 18세기 초에 만들어졌다. 화기의 발달로 중장갑은 시대에 뒤떨어졌고 경무장 부대가 군의 핵심이 되어갔다. 폴란드 왕실은 다양한 부대를 지원할 정치적 능력이나 재원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폴란드가 분할 되기 전까지 울란 부대는 대부분 주변 국가들의 지원에 의해 만들어진 폴란드인 또는 폴란드 타타르 병사들로 구성되었다. 울란 기병의 인기 뒤에는 이들의 민첩성과 기동성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존재했다.


나폴레옹 전쟁이 시작된 후 바르샤바 공국은 많은 숫자의 울란 부대를 만들어낸다. 비스툴라(Vistula) 군단과 프랑스 제국군에 소속된 창기병 군 부대같은 폴란드 원정 군단은 프랑스편에서 에스파냐와 독일에 맞서 싸웠으며 폴란드 방식의 경기병은 유럽 전역으로 유행처럼 퍼져 나갔다. 소모시에라(Somosierra) 전투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폴란드 기병이 프랑스 군인의 열배는 뛰어나다고 말했다. 16세기부터 1815년까지 이어지던 프랑스 경기병은 울란을 모델로 삼았다. 1807년의 탈지트 조약 이후 울란은 프러시아군에 다시 소개되었다.









나폴레옹의 군대에 소속된 기병들 중 가장 두려움을 주는 존재는 비스툴라 울란(Vistula Uhlans)에 속하는 폴란드 창기병들이었다. 에스파냐인들이 지옥의 피카도르(Hell's Picador), 로스 디아블로스 폴라코스(Los Diablos Polacos) - 폴란드 악마 - 라고 부르는 이 기병들은 가벼운 중간 크기의 말에 타고 훗사르에 맞먹는 속도로 질주했으며, 흉갑 기병만큼 엄청난 돌파력을 보여줬고, 용기병 만큼이나 다재다능한 능력을 보여줬다. 폴란드 창기병은 이름이 보여주듯이 창과 함께 사브르와 피스톨로 무장했다. 창기병들의 기병창은 길이에서 보병의 총검을 압도했으므로 방진을 구성한 보병을 공격하는데 적합한 최고의 기병들이었으며 - 이와 같은 사례가 1811년의 알부에라(Albuera) 전투에서 콜본( Colborne)의 영국군 여단에 일어났다. - 행군중인 적들을 사냥하는데에도 적합했다. 워털루 전투에서 잘 증명된 윌리암 폰손비(William Ponsonby)경과 그의 용기병 부대 스코츠 그레이(Scots Greys)의 운명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울란 창기병은 다른 방식의 기병들에 대해서도 치명적이었다. 근위대에 소속된 창기병 부대들 말고도, 나폴레옹 부대에는 9개의 창기병 연대가 존재했다.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은 폴란드 창기병의 위력에 깊은 인상을 받아서 자신들도 창기병 연대를 설립하게 된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 영국, 이탈리아, 에스파냐, 포르투갈, 러시아와 스웨덴을 포함한 유럽 전역의 많은 국가에 울란 창기병과 비슷한 병과가 생겨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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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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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yhn217 | 작성시간 06.10.14 폴란드 여행...
  • 작성자다크킬러 | 작성시간 06.10.14 역시 최강간지는 뭐니뭐니해도 윙드 훗사르~.ㅠ
  • 작성자아르타 | 작성시간 06.10.15 하지만 폴란드도 치명적인 실수를 한적이 있죠. 독일의 탱크를 창으로 찔러보는 무모함+ㅁ+
  • 작성자다크킬러 | 작성시간 06.10.15 실수라기보단...폴란드는 당시 독일에 대항할 기갑부대가 없었고 이에 조국의 이름을 걸고 영광의 돌격을 한 것입니다. 뭐..이거;; 알아보면 감동적인 이야기인데;; 생각해보십시오. 수백대의 전차 앞으로 기사들의 돌격이라.........ㅠ.ㅠ 캐안쓰죠.
  • 작성자바르카스 | 작성시간 06.10.15 현재 전혀 사실확인이 안되어 학설이 구구한 영역입니다. 개인적으로 인간이 닭이 아닌다음에야 그런 코미디는 생사를 가름하는 전장터에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유력설은 독일의 보병을 측면기습하는 와중에 전장에 제때 당도한 기갑부대에 의해 격퇴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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