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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배교자 율리아누스

작성자loco43|작성시간06.11.06|조회수1,229 목록 댓글 19
참 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요즘 참 시간이 없군요.. 하루에 12시간 알바라니.ㅡ.,ㅡ;


뭐 그건 그렇고 요즘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있는데 이거 정말 명품이더군요.

우선 분량의 압박이 장난 아님...아우구스투스부터 비잔틴제국의 멸망까지..ㄷㄷㄷ

그런데 12권짜리 개판 번역이 아닌 완본 영어라는게 더 큰 메리트...얏호~! 가격도 얏호~! 교보문고가 미쳤는지 펭귄사나 옥스포드사의 영어책들을 내용이나 두께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매~우 저렴하게 팔아서 그중에서 "로마제국쇠망사"를 발견. 총3권이더군요.. 그림이 하나도 없고 글씨도 작아서 엄청난 내용이 3권에 압축되더군요...

자...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우선 네이버 블로그에서 퍼온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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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 전체 흐름을 바꾸거나 결정지어버린 인물 하면 일단 딱 떠오르는 것만해도,

'알렉산더 대왕'이나 '카이사르', 그리고 어쨌든 '예수', '콘스탄티누스' 등.

하지만, 흐름을 크게 바꾸거나 결정지어버릴 버리는데 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랬을 뻔 했던 인물이 있다.

4세기 초반, 쓰러져가는 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율리아누스'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후 이토록 안타깝고 동정이 가는 인물도 없다.

이 인물의 생애는 어떤 소설보다도 극적이고 큰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이미 소설로도 많이 나와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고어 비달' 이라는 작가가 쓴 '줄리안' 이라는 소설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이 율리아누스가 언급될 때는 거의 대부분 '배교자(背敎者)' 라는 호칭이 붙는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부를때 거의 모두 '대제(the great)' 라는 호칭을 붙이는 이유는,

그가 단지 기독교를 공인하고 기독교가 주류가 되는데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기 때문이고,

율리아누스 황제를 부를때 '배교자' 라는 경멸이 담긴 호칭을 붙이는 이유는

그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 이후, 로마의 전통 종교를 짖밟으며 대세가 되어가는 기독교를 박해하고, 다시 원래의 로마의 모습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3세기의 위기들을 겪은 로마는, 이제 더이상 로마답지 않게 변해버렸었다.

이름만 로마일뿐, 공정, 효율, 법치의 로마는 사라지고, 중세 기독교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국가에 가까웠다.

이런 로마를 다시 바로잡으려고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대책 중 하나가 예전 전통 종교를 되살리기 위해 기독교를 박해한 것이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율리아누스의 생애는 소설처럼 극적이다.

콘스탄티누스가 죽은 직후, 콘스탄티누스의 친아들 '콘스탄티우스(당시 20살)'가 권력쟁취를 위한 숙청으로 친족들을 몰살한다.

원래 '율리아누스' 와 그의 형 '갈루스' 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제거 대상이 되었었지만, 그 당시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그 둘은 겨우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황제 '콘스탄티우스'의 권력 경쟁자들이기 때문에 그대로 살려두는 건 위험했다.

어린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의 감시자 아래 유폐 생활이 시작되었다.

율리아누스는 철학에 관심이 많아서 그 시절을 그저 일개 철학도로 보내게 된다.

야만족의 침입이 아주 거셌던 그때, 콘스탄티우스는 혼자서 로마제국 전체를 방위하는 것은 무리라고 여겨 협력자의 필요성을 느낀다.

하지만 숙청으로 권력을 나누어 줄만한 인물은 모두 예전에 죽은 상태.

그제서야 그때 목숨을 남겨둔 '갈루스' 와 '율리아누스'가 떠올랐을 것이다.

율리아누스의 형 '갈루스' 를 유폐 상태에서 꺼내어 부제(제2인자) 자리로 앉혀서 통치를 분담하게 한다.

하지만 성장기를 유폐와 사실상의 감금으로 보낸 갈루스는, 통치에 필요한 능력과 자질을 가지기는 커녕,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 결국 이래저래 문제들을 일으키게 된다.

'부제'라지만 어디까지나 최고권력자 콘스탄티우스의 손바닥 위인 것은 그대로였었다. 눈 밖에 나면 부제든 친족이든 가차없이 죽이는 것은 콘스탄티우스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결국, 갈루스는 황제에게 반역을 꽤했다는 재판을 받고(누명이지만) 사형을 당하게 된다.

한편 율리아누스는 그동안 이전과 별 다름없이 아테네에서 철학공부를 하며 20살을 맞이했지만, 자신의 형이 반역죄인이 된 이상 무사할 수는 없었다.

콘스탄티우스의 명령을 받고 소환된 율리아누스도 여차하면 형과 같은 운명을 맞이 할수도 있었지만,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는 되었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 콘스탄티우스는 이제 율리아누스를 부제로 임명한다.

혼자서 제국 전체 방위를 맡기엔 너무나 힘든일이어서 협력자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율리아누스에게 방위를 맡긴 라인강 방어선은 형편없는 상황이었다.

콘스탄티우스의 권력 싸움때 3만명이 넘는 정예병이 사망하고, 싸움에서 이긴 콘스탄티우스가 우두머리들을 거의 다 살해해버렸기 때문에, 말하자면 알맹이가 없는 상태였다.

이런데에 그저 툭 내던져지다시피 한 율리아누스.



하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일개 철학도였을 뿐인 율리아누스는 엄청난 노력과 재능을 발휘하며, 라인강 방어선을 탄탄하게 하고 재정비하는 데 성공한다.

처음에 율리아누스가 파견되었을 당시만해도 그를 무시하고 차갑게 대하던 장병들도 이제는 진심으로 믿고 충성을 다하게 된다.

그 후 콘스탄티우스의 어떤 강제 명령을 계기로 불만을 가진 병사들이 율리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율리아누스는 병사들의 황제 추대에 놀라며 절대 사양했지만, 그들의 요구를 계속 무시하다간 불만이 터져 결국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상황에서, 율리아누스는 반란의 불씨를 끄기 위해 황제 자리를 일단 수락하고는, 몰래 황제인 콘스탄티우스에게 현 상황을 알린다.

하지만 콘스탄티우스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율리아누스를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나선다.



이렇게 된 이상 율리아누스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게 되었다.

황제자리를 거부했다가는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고, 그 반대로 수락하면 콘스탄티우스에게 목숨을 잃게 된다.

마침내 율리아누스도 군대를 이끌고 나선다.



또다시 로마군끼리의 싸움이 일어나려는 순간.

불과 얼마전 내전으로 6만명의 가까운 정예병사들이 전사하여, 방위에 큰 구멍이 생겨 버린터에 또다시 그런 출혈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군대를 이끌고 중동에서 서방으로 가던 콘스탄티우스는 갑자기 병사하고 만다.

그리고 유언으로 율리아누스를 정식 황제로 승인한다.



이제 로마제국의 정식 단독 황제가 된 율리아누스.



그는 로마를 정말로 '로마다운' 로마를 만들기 위해 모든 힘을 퍼붇는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제 로마의 정식종교로 자리매김 해버리려는 기독교를 몰아내고 다시 로마의 전통 종교를 부활시키려는 노력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율리아누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 중 갑자기 전사하고 만다. 당시 31세.

그 죽음엔 많은 의혹들이 있어서, 암살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율리아누스의 죽음으로 그의 시도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버리고 다시 기독교는 힘을 얻기 시작한다.



그후, 결국 로마제국은 멸망하고, 기독교가 지배하는 중세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에 율리아누스가 더욱 오래살아서 그의 신념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면,

기독교는 세력이 아주 약해져 결국 도태되어 버렸을 것이고,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그렇게 우대하지 않았다면 내부 분열로 수많은 다른 종교처럼 저절로 도태되었을 거라는 얘기를 듣는 기독교다.)

그후 암흑기라고 불리는 중세도 달랐을 것이고, 중세 뒤를 읻는 모든 인류 역사도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시오노 나나미의 글을 덧붙이면서 마무리해본다.



'종교가 현세까지 지배하는 데 반대한 율리아누스는 고대에는 유일하게 일신교의 폐해를 깨달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 . . .

원수정 시대의 로마 유식자들도 깨닫지 못한 일신교의 폐해를 율리아누스가 깨달은 것은 그가 기독교 진흥을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친족이고, 그 아들인 콘스탄티우스의 정치를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근친자였기 때문에 그는 남들이 볼 수 없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까지도 율리아누스에게 던져지는 '배교지' 라는 경멸은 깊은 의미가 담긴 통칭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어쩌면 그 것은 31세에 요절한 이 반역자에게 바쳐진 가장 빛나는 시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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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유언.

나나미할멈이 많이 잘라내고 편집했더군요.. 에드워드 기번이 소개하는 내용을 전면 번역?의역? 해보았습니다.

"친구들과 전우들이여, 이제 작별을 할 때가 온것 같소.
나는 기쁘게 자연의 부름을 받아들이오.

나는 철학으로부터 영혼이 육체보다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잘 알게 되었소.

이제 그 숭고한 물체가 육신을 떠나는것은 기뻐하야 할 일이지 슬퍼해야 할 일이 아니오.
나는 종교로 부터 이른 죽음은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덕망과 미덕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신들이 내려준 축복이라는것을 알고 있소.

나는 죄를 짓지 않음으로 죄책감에 시달리지도 않고 신들의 권위가 내손을 지켜졌음을 확신하고 있소.

전제군주의 폭정을 깊이 혐오하면서 정부의 진정한 목표는 만인의 행복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소. 나의 모든 행동은 절제,신중, 정의의 법률에 의거했었고 나머지 모든 가변적인 사건은 운명에 맡겼소.

평화는 나의 궁극적 목표였고, 만인의 번영을 지키자고 했었소. 그러나 국가의 부름이 있었던 때는 나는 무력을 사용했어야만 했고, 전쟁의 위험에 항상 노출됬었던 나는 이러한 결말을 항상 예측하고 있었소.

그러나 나는 영원한 존재에게 감사하고 있소, 나는 폭군의 잔혹함이나, 불명예스러운 모반이나, 길고 고통스러운 병에 죽는것이 아니기 때문이오. 신은 오히려 나에게 매우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이별을 허용해준 것 같소.

운명을 거스르는 것은 어리석고 무모한 일이오. 또한 매우 많은 것을 이야기 하고 싶지만, 힘이 따라주지 않고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구료.

그리고 나는 새로운 황제에 대한 유언은 하지 않겠소. 나의 선택은 신중하지 못할것이고 분별이 없을것이오. 그리고 설령 선택하더라도 레기온의 승인이 없으면 선택 받은자가 불행하게 될것이오. 나는 단지 좋은 로마시민으로써 로마와 로마인들이 총명하고 덕망있는 자의 축복을 받기를 빌 뿐이오."

그리고 율리아누스는 숨을 거두었다.

많은 이들이 율리아누스는 적이 아니라 아군의 기독교병사의 창에 죽었다고 추측한다.

이렇게 생각하는것은 무리가 아닐것이다

심지어 율리아누스의 덕망을 인정한 당시 적군의 영웅이자 군주인 페르시아의 왕 샤푸르 또한 그렇게 생각하였다.

이렇게 통치 19개월만에 율리아누스는 역사의 무대에서 장렬하게 퇴장했다.

나나미 할멈 말마따나 율리아누스의 통치가 19개월이 아니라 19년이었다면 망해가는 로마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였을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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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Aniston | 작성시간 06.11.09 현재 로마사 정설과는 틀린 부분이 영문원본에는 아주 많죠...영문판도 각주달려서 설명해주는 책이있는데.. 제가 보기에 님이 사신 책은 페이퍼백으로된 3권짜리같네요^^;차라리 영문원판보단 지금 11권자리로된 번역본이 좋을듯싶어요^^; 영문판도 해설(주)달린것도 괜찮구요^^
  • 작성자RougeEtNoir | 작성시간 06.11.11 배교자 율리아누스 를 라틴어나 영어로 쓰면 어떻게 쓰나요?
  • 작성자이스 | 작성시간 06.11.15 본문을 쓰신분이나 언급한 사람들이나 기독교에 반감을 가지고 계신분들 같군요 ^^; 마치 기독교가 탄압받아야하고 사라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듯 말씀하시네요. 더구나 본문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율리아누스가 19년만 더 살았더라도 기독교가 도태되었을 것이다? 기독교는 당시 3세기 동안에 가까운 탄압을 받으며 지속되던 종교였습니다. 무시무시한 네로의 박해에도 살아남았죠. 겨우 19년으로... 비근한 예로 유대교는 수십세기에 이르러 존속되고 있습니다. 종교란 그렇게 쉬운게 아닙니다. 덧붙여 기존 종교는 짧은 시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시저/욱동 | 작성시간 06.12.14 기독교가 국교화 되면서 토속 종교를 탄압했기 때문이죠.
  • 작성자이스 | 작성시간 06.11.15 기존 종교가 더 이상 당대인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도태되었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일요일은 사실 태양신을 기리기 위한 날입니다. 기독교도들이 일요일 새벽에 집회를 가졌기 때문에 휴일이 된 것이지만 아폴론 제사장들도 의식이 있는 날이기에 동의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알고 있는데 그렇게 탄압받지는 않은 것 같네요. 그 동안의 혜택이 사라졌다고 보아야 옳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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