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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중세 유럽]비잔티움제국의 영원한 라이벌 사산조페르시아

작성자비잔틴제국의 후예|작성시간07.11.22|조회수1,377 목록 댓글 26
사산조페르시아
사산왕조 페르시아를 세운 아르다시르 1세는 오늘날 이란 남서부 파르스 지방에 있던 이스타크르의 조로아스터교 제사장인 사산의 손자이자, 이 파르스 지방의 실권자였던 파파크의 아들이다. 왕조의 명칭은 아르다시르 1세의 조부의 이름인 사산에서 유래한다. 이 왕조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를 계승하고, 그 중세적 재흥을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사산왕조 페르시아로 불렸다. 조로아스터교의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신정국가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이슬람 제국의 정복으로 멸망하기 이전까지 고도로 발달된 페르시아 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제국의 영토는 오늘날의 이란을 중심으로 하여, 이라크, 아르메니아, 코카서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북부, 터키 동부에 이르렀으며, 호스로 2세의 치세기에는 팔레스타인, 이집트 지역도 제국의 세력권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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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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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바르티겐 | 작성시간 07.11.23 그러고보니 이란의 이슬람화가 비교적 천천히 이루어졌다던데.
  • 작성자치우승천 | 작성시간 07.11.23 영원한 라이벌이라고 보기에는 좀... 사산조가 비잔티움보다 800년이나 빨리 멸망했는데.
  • 작성자카이사르 마그누스 | 작성시간 07.11.24 비잔틴제국,사산조 페르시아 두국가의 멸망중 가장큰 원인은 내부 분열이 아닐까요? 아무리 적의 침공에 큰타격을 입거 국가의 군대가 모조리 와해 되었다 하더라도 그 국가의 모든 사람들이 일치단결했더라면 그 국가의 멸망까지 초래했을까요? 물론 전투적인 성향으로 볼때 정규군이 많은 적의 군대가 유리하겠지만 국가를 지키겟다는 지도층과 백성들간의 의견이 서로 일치단결해서 결사항전으로 버텼다면 얘기가 달라질거 같은데요? 그래서 제말은 비잔틴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멸망원인은 내부분열이라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앨런비 | 작성시간 07.11.24 내부분열 보다는 그냥 전쟁으로 인한 약화입니다 ㅡㅡ; 당장 비잔틴의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만 해도 사산조에게 10여년간 빼았겼다가 탈환한지 얼마 안된 지역이었죠- 사산조의 경우는 조로아스터교의 성지까지 털리고 니네베전투에서 참패했던지라 ㅡㅡ; 뭐 그래도 비잔틴의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쪽은 분열도 심했다고는 봐야합니다- 유태인이나, 기독교 단성론자들 때문이죠-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너무 오랜 전쟁으로 인한 전력의 약화입니다- 당장 이슬람의 침공이 5~10년만 늦었어도 비잔틴을 정복하기 쉬웠을까? 하면 뭐라 답하기가 힘들어지죠- 물론 헤라클레이오스가 정신 오락가락하고, 그 이후도 별로 좆친 아니했지만
  • 작성자마법의활 | 작성시간 07.11.24 오히려 헤라클리우스 때의 상황이 포카스 때보다는 양호한 상태였죠. 문제는 이미 시리아 - 이집트의 신민들이 아주 제국을 단념했다는 데 근본 원인이 있습니다. 페르시아가 그 지역들을 먹어놓고도 뱉었던 이유는 헤라클리우스의 선전도 크지만, 페르시아 역시 개판 오분전의 통치를 하여 해당 지역들의 신민들이 비잔티움 쪽에 붙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의 침공이 설령 늦었어도 제국은 그 단성론파 지역들을 끝내 지키지 못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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