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무슬림 군대가 이라크와 시리아, 이집트를 정복한 지 100여년 정도 지난 8세기부터 이슬람 문화권은 화려한 학문의 꽃을 피우게 됩니다. 시리아어, 그리스어, 고대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되어 있는 수학, 자연과학, 의학, 철학 등의 서적이 압바스조의 칼리프 알 마으문의 후원에 의해 번역되고 연구가 이루어지죠.
대수학의 창시자 알 콰레즈미, 혈액은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순환한다고 주장한 안 나피스, 우리가 어떻게 사물을 볼 수 있는지 실험을 통해 밝혀낸 이븐 알 하이쌈, 이슬람 의학의 두 왕자 이븐 시나와 자카리야 알 라지,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신라)를 담은 지도를 그린 알 이드리시, 1년의 숫자를 정확히 계산해 낸 알 비타니, 기도 시 메카 방향을 찾아내는 방법에 삼각법을 적용한 알 네이리지와 삼각법의 토대를 세운 아불 와파, 아라비아 숫자와 십진법의 사용을 결합한 알 유클리디시, 플라톤을 바탕으로 이슬람 이상국가론을 세운 알 파라비, 수학과 시 양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든 오마르 하이얌 등등....
그런데 이렇게 활동적이었던 이슬람의 지적 활동이 어느 순간 크게 감소합니다. 실제로 몽골의 바그다드 점령 이후(1258) 널리 알려진 이슬람이 배출한 학자는 중세 유럽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 받은 이븐 루쉬드(아베로에스), 사회과학과 역사학의 새 방법론을 제기한 이븐 할둔,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을 대대적으로 비판한 나시룻딘 투시 정도로 줄어듭니다. 의학에 있어서는 새로운 학자들과 학설들이 나타나기 보다는 기존의 연구 결과를 답습하는 정도에 그쳤고, 자연 과학은 더더욱 인기가 없어졌죠. 17세기 사파비 페르시아의 마드라사에서는 문법과 수사학, 이슬람 법학, 논리학, 철학, 수학 등을 가르쳤는데, 수학 교재는 6 종류에 불과했습니다만(나시룻딘 투시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를 포함해서) 문법과 수사학 교재는 13종, 이슬람 법학과 관련된 교재는 20종이 넘었습니다.
왜 이랬는지는 정말 앞으로도 이슬람 문명을 연구하는 연구가들이 끝없이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저는 여기서 그 이유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으렵니다. 제 지식을 훨씬 뛰어넘는 질문이거든요.
그러나 몇몇 게으른 사람들은 여기서 굉장히 간단한 답을 찾아내고 싶어하죠. '이슬람 때문이다'

이와 함께 나오는 사람이 바로 알 가잘리입니다. 그는 원래 정통 신학자였지만 점차 환멸을 느끼고 방랑하다가 신비주의에 눈을 뜨게 되죠. 이 환멸을 느끼는 과정에서 그가 쓴 저술 중 하나가 '철학자들의 자멸'(Tahafut Al-Falasifa) 였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철학자들의 모순이라고 생각되는 점을 신랄하게 공박하지요.
그렇다면 이 책으로 이슬람 학문의 지적 흐름이 타격을 입었을까요? 하지만 알 가잘리가 저 책을 쓰고 생각을 전개하는 과정 자체에서 논리학과 합리적 이성의 흐름을 이용했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바로 이러한 점을 알 가잘리를 비판한 이븐 루쉬드가 '자멸의 자멸'(Tahafut Al-Tahafut) 이라는 책에서 이용합니다. 즉 알 가잘리는 진리에 도달하는 데에 있어 이성의 무력성을 주장하는데, 그런 주장을 펼치는데 이성적인 추론을 이용하는건 무슨 짓거리냐 라고 그를 비판한거죠. 이런 점에서 보면 알 가잘리의 저서와 논쟁 역시 이슬람 철학의 한 흐름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요?(훗날 이븐 루쉬드의 저작이 태워진 건 그가 알 가잘리를 비판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슬람의 원리 자체를 공격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철학자에 대한 비판이 있건 말건, 동방 이슬람 세계였던 이란에서는 16세기가 넘어서까지 쉬아 이슬람의 신비주의와 그리스 철학이 결합한 독특한 형태의 철학이 발전하고 있었구요.
또다른 알 가잘리의 주요 저서는 '종교학의 부활' 입니다. 제목만 봐서는 딱 원리주의 책 같아요. 그러나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은 '어떻게 하면 신비주의(느끼는 신앙)과 신학(아는 신앙)을 합치시킬 수 있을까' 에 대한 내용입니다. 알 가잘리는 당연히 이슬람 율법과 코란의 가르침을 무슬림이 지켜야 할 제 1 원칙으로 생각했습니다만, 그것을 어떻게 지켜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원리주의자'의 가르침과는 동떨어져 있었죠.
사실 오직 신과 코란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고, 이성보다는 계시의 지식을 더 중요하게 여긴 사람은 알 가잘리가 아닌 13세기의 이븐 타이미야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전 이슬람 세계를 휩쓴 것도 아니었고, 기존에 존재하던 '이성과 계시의 조화만이 진정한 신의 뜻을 아는 길이다' 라는 순니파의 주장은 여전히 살아남아 있었죠. (이 사람이 주장한 '타크피르-거짓 이슬람' 이론은 훗날 오사마 빈 라덴의 이론의 기반이 됩니다...)

<타크피르Takfir-진정한 이슬람(즉 자기네들이 주장하는 이슬람)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다 가짜 무슬림이고, 따라서 이들에 대한 공격은 합법이다... 라는 주장은 오사마 빈 라덴이 사우디 왕정이나 다른 아랍 정권을 공격하는 데 그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이론은 몽골인들의 일 칸국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나타난 이론이었습니다>
13세기든 12세기든 어느 순간부터 이슬람 사회가 지적 역동성을 잃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버나드 루이스가 '무엇이 잘못 되었나?'에서 지적하듯이, 만약 그 문제를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돌려버리면 초기 이슬람 문명 시기에 있어서의 발전은 무엇으로 설명을 해야 할까요? 만약 이슬람이 13세기 이후 과학 발전을 가로막았다면, 대체 8~11세기까지의 그 화려한 발전시기 중동의 사람들이 믿었던 종교는 무엇이었을까요? 천문학과 지리학, 수학 등이 발전하게 된 배경에는 정확한 예배시간을 알고, 메카의 방향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종교적 이유가 있었습니다. 압바스 칼리프들이 학자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학자들도 열정적으로 나섰던 것은 '신의 피조물인 세계를 이해함으로써 신의 뜻을 조금 더 잘 이해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종교가 어느 때에는 발전의 동기가 되지만, 어느 때에는 가로막기도 합니다. 이 두 사실 중 어느 하나라도 빼놓는 것은 결국 자기 주장을 위해 편한 내용만 쏙 빼가는 그런 행동이 아닐까요?
몇몇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슬람이 개방적이었으나, 이후로 가서 원리적이 되었다! 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위에 언급한 이븐 타이미야의 윗계보에 있는 이븐 한발은 엄연히 이슬람 지적 활동의 황금기의 인물이었고, 그의 이론을 따르는 한발리 학파는 이미 그 황금기에 순니파의 4대 법학파로 공공연히 인정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슬람 역사에서 최초의 '종교재판'이 등장한 건 8~9세기의 압바스 왕조 시대였고, 이 때의 종교재판의 '피고'들은 '합리주의자'들이 아닌 '원리주의자'들이었죠. 그리고 13세기 이후의 이슬람 왕조들이 압바스 왕조나 파티마조, 후 우마이야조에 비해 원리주의적 이슬람을 받아들였다는 근거는 그리 충분하지도 않구요.
종교도 더 이상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비판을 전개한다고 다 쿨해 보이는건 아니죠.
ps : Tahafut는 아랍어 동사 중 6형 동사의 동명사입니다. 6형 동사는 재귀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따라서 이 단어를 단순히 '붕괴'가 아닌 스스로 무너지는 것 즉 '자멸'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참고도서 :
이슬람 철학사, 앙리 코르뱅, 1964
아랍인의 역사, 앨버트 후라니, 1991
잃어버린 역사-이슬람, 마이클 모건,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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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hyhn217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1.04 세계를 지배하는 건 돈과 귀차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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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롱기누스 작성시간 11.01.04 제 생각입니다만 13세기 경의 정치적 상황에 이슬람교의 보수화가 어우러진게 아닐까 합니다. 페르시아와 메소포타미아, 중앙아시아는 몽골군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이집트는 맘루크들이 장악한 후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워집니다.(군주가 자주 바뀌는 초막장상황) 거기에 흑사병까지 겹치고요. 스페인의 경우 라스 나바 데 톨로사 전투 패배 이후 이슬람 세력이 급속도로 몰락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슬람 교가 보수화되는 경향까지 보이면서 그동안의 성과는 어찌어찌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든 상황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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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왕마귀 작성시간 11.01.04 신의 섭리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다보면 궁극적으로는 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거든요. 이슬람 국가들은 아직 서구 기독교 사회가 경험했던 거대한 회의주의의 사상적 흐름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그래도 "나는 왜 무슬림이 아닌가"라는 책이 출간되고 소말리아 출신의 무신론자인 하야신 알리같이 이슬람 자체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속속 등장하는걸 보면 무슬림 출신 무신론자들도 하나둘씩 컴잉아웃하는 것 같은 조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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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백숙의왕 작성시간 11.01.20 먹고 살기 힘들어져서 보수화됨. 한줄설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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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절망 작성시간 11.01.20 이슬람까들은 이슬람 문명 초기의 발전에 대해서 '이슬람 세계 내 유대교도/크리스트교도들의 활동이 활발했기 때문이라능. 그러나 결국 이슬람세력의 탄압으로 인해 유대교/크리스트교 세력이 축출되면서 이슬람 세계 전체가 침체에 빠졌다능!'이라고 아주아주 간편하게 설명합디다. 또한 그렇다면 왜 기독교가 주류인 동시기 크리스트교세계는 왜 이슬람세계에 비해 뒤쳐졌다는 질문에 대해선 그것도 이슬람세력의 방해 탓으로 돌립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