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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기병에 대한 망상 몇가지 고치기.

작성자[★]kweassa|작성시간11.10.09|조회수1,493 목록 댓글 3

 

2) 기사들은 꾸준한 랜스 보급으로 재돌격을 꾀했다.

 

일단, 기사가 돌격후 옆으로 틀어 이탈후 재돌격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명제는 문제점이 하나 생깁니다.

"그럼 부러지거나 소모된 랜스 보급은 어떻게 하나?"

이 포럼의 누군가는 따라온 종자에게 가져오게 한다고 합니다. 가능성은 있습니다만,

(1) 이런 부유기사 계급이 일부였고, 또한 이렇게 따라온 (2) 종자의 주요 임무는 예비 군마를 데리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예비군마가 중요한 것이, 돌격후 접전이 펼쳐지거나 이탈시 군마가 희생될 수도 있죠.

실제로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윌리엄은 군마 3마리를 잃었습니다.

중세 기사계급 핵심중 하나가, 군마의 존재(플러스 기사의 주요 전술이 기마돌격)였단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죠.

 

(1) 기창은 본진에 바리바리 싸들고 다녀요.

(2) 종자의 임무는 기사의 소유물 및 그를 유지/보급하기 위한 일체를 관리하는 역할이에요. 기창도 거기에 포함되요.

 

 

 

또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본진에 가서 기창을 가지고 온다"

하지만, (1) 이탈 기동후 적이 진을 다시 추스르기 전에 다시 돌격하려는 기사에게 이것은 불가능하지요.

 

(1) 본진이 무슨 수 십 km 바깥에 위치해있나봐요.

(1-2) 그래서 기사대는 전체가 한덩이가 아니라 복수의 대열로 나누어 차례차례 돌격해 들어갔다고 했지요.

 

 

또한, (1) 상황이 시시각각 바뀌는 전장에서, 돌격/이탈후 유유히 말타고 느그적느그적 가서 랜스를 집어 오는 것은

기동력을 지닌 기병의 효율적인 사용이 아니며, 또한 (2) 달려서 가져오다간 말이 지칩니다 -_-ㅋ

더군다나 기병의 주요 무기는, 효과적인 충격으로 모랄을 깎아내고 진을 흐뜨리는데,

재돌격을 빨리 해야 합니다. 후발대나 예비대가 있으면 그 부대가 연쇄돌격을 할 수도 있겠지만요.

이렇게 때문에 중세 기병의 돌격은 콘로이의 재돌격 뿐만이 아니라 후발대나 예비대의 존재로 인한 연쇄돌격이 필수였죠 (3단 사격 전술이 개발된 이유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말그대로, 두드리는 "망치" 입니다. (랜스가 얼마나 효과적인 무기였나는 아래에 썰을 풀죠).

지친 말은 돌격시 효과적이지 못하여 보병진의 밥이 되기 쉽죠.

 

(1) 당시 전장에 요즘처럼 실시간으로 바로바로 진형이나 대열을 바꾸는 등 명령전달체계가 있었나봐효.

(2) 예비 군마를 관리하는 시종이 있다고 언급한게 누규?

 

 

그러면, 재돌격은 대체로 어떻게 하느냐?

간단합니다. 돌격/이탈 기동후, 부러지지 않은 기창을 든 놈들이 앞으로 나섭니다.

(1) 그러면 기창이 없는 넘들은 어케 돌격하냐?

간단합니다. 뒷열로 빠진 다음, 기병용 칼을 빼 들어서 찌르는 모션을 쓰는 겁니다.

 

(1) 중세에 기병용 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는데요.

(1-1) "기창의 재보급은 없다".. 는 자기만의 망상을 아예 기정사실화 한 후에 그 위에 덧붙여 소설을 쓰시네효.

 

 

기병이 기창만이 아닌 다른 무기로 돌격을 한 역사적인 증거가 있냐고요?

예. (1) 바셰야 강 전투 (Basheya River Battle, 1660)를 설명하던 폴란드인 파섹(Pasek)의 증언에 따르면,

이것이 수칙 (regulation) 이었습니다. 어떤 기병은 자기보다 높은 귀족 분에게 자기 후사르 랜스를 건네주는 예의범절 바르고 기특한 짓을 하기도 합니다 (뭐, 저라면 니가 내 대신 앞에서 방패로 있어라... 라는 식으로 줄 꺼지만요 헐.).

이 전투에서, 기창이 부러진 후의  후사르기병의 주무기는 바로 기병용 브로드소드 (Pallash) 였으며,

기창을 잃어버린 후로는 팔라쉬로 돌격하는 것이었습니다!

(2) 랜스가 다 떨어지면요? 까라면 까야죠, 팔라쉬 들고 돌격입니다 ㅅ ㅣㅂㅏㅇ ㅏㅇ ㅏㅇ ㅏㅇ ㅏ!!!

 

(1) 17세기가 중세인가봐효.

(2) 랜스가 안껄어지면요?

 

 

폴란드 후사르 기병의 경우 1704년6 적진에 60페이스쯤에 멈추고 전열을 가다듬고, 돌격전에 내린 명령은...

정숙!

모자를 꽉 매라! (금속 헬멧이 없는 기병들을 향해)

(서로의) 무릎과 무릎을 밀착시켜라!

(랜스가 있는 기병은) 세이버을 차라!

(랜스가 없는 기병은) 세이버를 빼들어라!

 

그런다음 서서히 접근하다가 반쯤 오면

기창을 내려라!

 

하고 최고조로 돌격하죠.

 

... 역시 간덩이가 부은 놈들이죠. 기창으로도 힘들 텐데 칼로 돌격할 생각을...

 

(1) 그리고, 랜스가 가격이 싸다고 하신 분들도 있는데, 이것도 실제로는 보급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2) 기사가 스페어 랜스를 들고 다닌 것도 연이은 전투에서 한계가 있는 법이죠.

 

(1) 6페니 밖에 안한다니까요

(2) 게다가 그 여분을 준비하는 역할이 종자들이라니까요

(2-1) 그 여분으로 준비한 것들이 바닥나는 정도 시점에 목표로 한 보병대열을 붕괴시키는게 기사들 본업이라니까요

 

 

물론, 스페어 랜스와 예비 군마를 전투중에서 보급받을 수는 있었죠.

종자들이 후군진을 형성한 중세도 그렇고,

폴란드 후사르도 본진의 하인들이 군진에서 몇백 페이스 떨어진  곳에서 스페어 랜스 (있으면) 와 예비 군마를

준비하고 대기하고 있었으며, 부상자를 돌보거나, 여차하면 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 이렇게 보급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은, 자신들의 부대가 이런 보급소와 가까워야 하고, (2) 중간에 적이 없어야 한고, (3) 자신들의 기마대가 필요치 않거나, 쉴 경우 정도에서밖에 없었습니다. 양측이 서로 밀고 당기는 치열한 공방전을 할 때는 여의치 않았죠.

 

(1) 종자라는 만능 심부름꾼이 왜 있는지를 생각해보길

(2) 말이라는 빠른 짐승에 왜 올라타있는지를 생각해보길

(2-1) 게다가, 이게 17~18세기에 들어가면서 군대의 규모와 접전의 스케일이 엄청 넓어지면서 무슨 수 십 km에 거쳐서 유군이 활보하는 그런 시대의 일이 아니라는 것부터 좀 생각해보길

(3) 중세 기사들의 역할이 다른 무엇도 아니고 오로지 그 보병캐발살에 집중되있고, 다른 역할을 하는 기병대는 따로 서젼트들이 이끌거나 했다는 것 좀 생각해보길

 

 

 

후사르 기병의 경우 한번 전투후 랜스들이 다 떨어졌으며, 켐페인 동안 이것이 내내 문제였습니다.

1577년 전투후 3주후 왕에게 이렇게 칭얼됩니다:

"우리 랜스 다 떨어졌음. 우리 정말 후사르 랜스가 필요한데 이 지역에선 구하기 힘들음"

1629년: "우리 랜스 다 부러졌음. [국왕]폐하께서 곧 다시 보급해 줄꺼라고 믿어 의심치 않음"

1656년: "리투아니아 후사르 중대 9마리는 랜스가 있는데 우린 없음ㅠ.ㅜ"

 

... 이탈을 통한 재돌격은 있었으되, 랜스의 재보급을 통한 지속적인 돌격엔 한계가 있었죠.

 

 

3) 중세시대 중기병들이 얼마나 재돌격할 수 있었나 

 

(1) 그 지구성 좋고 해외로 수출 금지하던 (F-14냐...) 폴란드 군마를 쓰고 장비도 비교적 경량화를 한 후사르도

재돌격 횟수가 8-10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지만, 이는 아주 드문 경우였고,

스웨덴 자료에 따르면 몇몇은 3-4번 돌격했다고도 합니다.

즉, 중세 기병이나 후사르 기병이나 실재로 재돌격은 몇번 못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70파운드 (31킬로그램) 무게의 마갑을 입히기 시작한 시점에서요.

물론, 스위스, 이탈리아의 자료들을 보면 많은 (혹은 다수) 의 기병들은 마갑을 쓰지 않았으며,

마갑을 입히지 않은 기병대중 몇몇은 머리보호대를 입혔던 증거도 있습니다.

이렇게 중무장한 기사는 전투중 자주 쉬지 않고는 하루 종일 전투를 못하죠.

아마도 마갑을 입힌 경우는 격렬한 접전이 예상되는 경우이거나 여유가 있을 때 입힌 것 같습니다.

 

(1) 그러니까 예비군마라는게 왜 있는지?

 

 

물론, 스위스-프랑스의 마리냐노 (Marignano) 전투처럼, 프랑스 왕이 자기 어머니한테 "우리 프랑스 중기병이 30번 절라 파인한 돌격을 해서 이겼어요! 중기병 아직 쌩쌩해요!"

(1) (사실 이건 중기병의 돌격이 적을 죽였다기 보다는 중기병의 돌격이 스위스 파이크방진을 움직이지 못하게 견제하고, 대포로 공략한 경우지요... 프랑스 중기병의 돌격이 스위스 팔랑크스 방진에게 한 돌격들은 성과가 없었습니다)

라고 쓴 문헌도 있습니다만, 이는 물론, 프랑스 각각 기병단의 돌격횟수를 합친 것이겠죠.

 

(1) 전투를 아예 창작 하시네효

 

 

 

4) 랜스가 얼마나 효과적인 무기였나

 

어느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기사들이 돌격창을 내지르면 돌격창을 맞은 충격으로 앞열의 병사들이 후두둑 쓰러진다구요"

그후 바로 직후의 회피 기동. 이렇게  콕콕 찔러주는 식으로 1열-2열-3열-4열등의 보병진의 점진적인 붕괴 및 사기 저하.

하지만... 이 논리로는 설명이 안되는 게 하나 있습니다.

 

"4미터의 랜스를 든 중기병이 어떻게 1.5-1.8미터를 든 할버드병한테 발리누?"

 

스위스의 할버드병. 용맹이 대단했죠. 라우펜 전투에서 부르군디 기병을 상대로 선전,

젬파흐 (Sempach) 전투에선 레오폴드 공작이 지형의 불리함에다가 "우리 기창이 쟤네 할버드보다 뛰어나지롱" 을 증명겸 기사들을 하마시키고 공략 (실제로 할버드병을 상대로 전과를 거둡니다)

아르베도 전투에서도 밀란 기병대가 할버드 공략 못하자 레오폴드공처럼 말에서 내려서 리치가 더 긴 기창으로 스위스 할버드병을 괜찮게 발라줌 (덕분에 스위스도 이걸로 배워서 + 대기병력을 높일겸 "우쒸 이젠 장창좀 써야지" 라고 결심하고 다음 전투에서는 25%가 장창으로 무장합니다).

 

즉, 보병무기로써 기창을 썼을 때는, 이렇게 스위스 할버드병이 꼼짝을 못했는데,

중기병이 기창을 썼을 때는 왜 스위스 할버드 병이 어느정도 선전할 수 있었는지요?

 

 

스위스 할버드병의 대기병진. 짧당!

 

 

 

이유는 간단합니다. 보병을 상대시, 중기병의 돌격은 속도와 중량으로 꼬라박기 위해 있는 거거든요 . 

적에게 60-100페이스 정도 접근하면 돌격전 멈추어 열을 가다듬고, 서서히 다가가다가, 반쯤 접근하면

최고속력으로 보병진한테 갖다 박는게 중세이든 고대이든 후사르든 거의 모든 중기병대의 "충격요법 (shock)" "발사무기 (projectile)" 돌격이었거든요.

이렇게 전속력을 오는 말은 멈추기도 힘들죠.  게다가, 멈춘다 한들, 보병대에 아주 근접해 있겠지요.

40킬로로 달리는 현대의 자동차를 벽에서 2~3미터  앞에 대고 브레이크를 밣아 보세요. 참고로 말은 브레이크가 달려 있지 않습니다!

 

(카우치드 랜스 전술이라던가 등자의 발명에 큰 비중을 두시는 분들도 있는데,

1) 카우치드 랜스 전술은 유럽에서 비잔틴 기병대가 유럽에서 쓰기 전에 1세기 정도 일찍 쓰고 있었고,

2) 등자의 발명은, 요즘에 이르러서는, 기창의 돌격력을 높이는 측면보다는, 기수가 측면으로 낙마하는 것을 막아주고,

접전시 검, 철퇴등의 무기를 쓰기 더 쉽게 해 준다고 합니다. 물론, 카우치드 랜스 전술시, 돌격전 일어서서 창을 쭈욱 내밀어 최대한 기창의 리치를 크게 하는 법도 있지만, 중세에서는 시대에 가면 등자의 높이가 낮아지면서, 안장에 사타구니를 얹으면 마치 거의 일어서는 것처럼 해서 피로도를 낮춥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둘격을 위해 최고속력으로 나아갈 때 최대한 밀집 (서로의 무릎이 맞닿을 정도) 진열을 유지해서 한 시점에 주는 충격을 최대한 높이고 (각각 튀어나가다는 각개격파 당하죠) 

또한 재돌격을 위한 이탈 기동시 필요한 고도의 기마술과 군율, 훈련도입니다. 노르만 기사단이 아주 높은 명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의 이유중의 하나는 이런, 고도의 기마술 때문이었습니다.

중세의 기사단이 이런 전법을 아주 잘 구사한 것은, 대게 5세때부터 시작하는 영재 군사교육, 기사단 최소단위 콘로이 중에서 서로를 "형제"로 삼아 철저한 팀워크를 훈련하는 것이 그 주요 이유중 하나입니다.

중세에서 한 기사에게 있어서 자기가 속한 "기사단," 특히 콘로이의 존재는, 단지 자기가 속한 부대만이 아닌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스파르타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이는, 중세 영국의 군마에게 [적을] 무는 법과 차는 법을 훈련시키는 것에도 알 수 있고,

무식하게 장창병 숲으로 꼬라박아 전멸한 폴커크/배녹번 전투에서도 알 수 있죠.

또한, 후사르 기병도, 돌격후 적진이 와해되지 않으면, 부러진 랜스를 버리거나, 랜스가 부러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랜스를 버린 후 

보조무기를 찾아야 했을 정도로 적과 아주 가까이 있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많은 수의 후사르가 꺼낸 보조무기가 세이버였습니다. 피스톨은 시간 걸리고, 팔라쉬 (기병대의 브로드소드) 는 꺼내기 걸거처서요. 일단, 적진이 와해되지 않았으면 돌격후 보병이 몰려올 껀데, 빠져나갈려면 뭔가를 빨리 꺼내서 휘두르며 빠져나가야죠. 이때 비교적 리치가 높은 무기이면서도 창보다는 짧아 돌려서 찌르거나 찍기 쉬운 할버드가 이렇게 멈춘 기마병에게 효과가 좋았던 것이죠.

 

콕 찌르고 내빼기가 그렇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예요... 돌격후, 생각보다 기마병은 보병에 근접해 있었습니다.

특히 멈춘후, 빨리 이탈기동을 하지 않으면 보병의 밥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랜스가 돌격해서 내질러서 앞열이 후두둑 쓰러질 정도로 원샷 원킬의 무기였냐고 하면... 아닙니다.

사슬갑옷을 입은 기사를 상대로, 관통도 했지만, 밀쳐서 낙마시키는 경우도 많았으며,

특히 판금갑옷이 사용되기 시작한 후로는 통하지 않기 시작합니다.

 

1570년대 프랑스에서 기창기병 중대를 지휘한 프랑코와 드 라 누 (Francois De La Noue) 는 기창 돌격이 효과보다는 허세라고 생각하죠,

"[충격시] 아무도 못 죽였네. 아무라두 죽었으면 기적이지. 말들이나 상처 입히겠지"

 

서유럽의 중량 랜스를 쓰던 프랑스 지휘관도 이렇게 말했는데, 후사르 랜스는 더 약했죠.

 

1627년, 단지그 (Danzig)의 서기관 요한 쳄닛츠 (Johann Chemnitz) 는 이렇게 말합니다.

"[후사르] 기창은 [스웨덴] 흉갑을 상대로 뭣도 못함. 오히려 다시 [돌격하러] 올 때 [부러진 랜스에서 온] 나무땜시 막혔기만 했음."

 

스웨덴 대령 클라스 디드리히 (Clas Diedrich) 에게 붙은 명예스런 별명은, "창기병"인데, 적어도 3개 이상의 후사르 랜스가 그의 갑옷에 부딫혀 부러졌기 때문입니다! (비꼬는 조크성 별명이죠)

후사르  랜스는, 경량화를 위해, 속이 텅 비어, 서양의 무거운 랜스보다 내구력이 떨어지며, 충격을 받으면 부러지게 설계되었으며, 폴란드인은 이를 두고 Kruszyc (잘게 부러지거나 [흙처럼[] 무너지다) 라고 합니다.

후사르 랜스는, 따라서, 죽이기 위한 도구라기 보다는, 모랄을 무너뜨리기 위한 심리적인 무기였다고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그럼 플레이트가 보편화 되기 전에는요?

할버드를 상대로 고전한 밀란 기병대의 예도 있듯이, 실제로 충격시 죽이지 못한 것은 얼마 안되며 (안되겠다 싶어서 밀란 기병대가 하마해서 기창을 장창삼아 씁니다),

헤이스팅스처럼, 정면돌격시 방패로 막으면 병진되죠.

물론, 헤이스팅스에서 속력을 얻지 못한 이유도 있죠. 그래서 그리스 홉라이트처럼 창을 잡아 방패 위쪽 찔러 보지만, 이것도 실패.

 

파이크병을 상대해 이긴 경우는, 아무 갑옷을 입지 않고 훈련과 군율도 개판이었던 당나라 장창병의 스웨덴을 상대로 폴란드군이 이긴 키르홀름 (1605) 전투등 아주 드물었죠. 사실, 이건 폴란드군대도 전투후 벙쩌 있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들[후사르들]은 장창병들에게 떨어졌으며 (fall), 당연하게도, 적을 분쇄 (broke through-이는 돌파하다는 뜻도 내포합니다)했지만, 그들 자신도 데미지를 입었다." 라고 합니다.  즉, 상대방의 진에 "떨어졌다" 란 단어를 쓰고, 돌파했다와 비슷한 문구를 쓴 것만을 봐도, 돌격후 기병대가 보병대에 "뭍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중 폴란드의 왕의 아버지가 되는 야쿱 조비에스키 (Jakub Sobieski)는 "미래에 이 승리는 경탄받을 것이지만, [사람들이] 믿지는 않을 껄" 이라고 말할 정도로, 폴란드인들에게도 장창병을 승리로 상대를 거둔 후사르 기병의 예는 의외였습니다.

 

또한, 이는, 왜 중세기가 후기로 가면서 마갑을 입혔는지에 대한 간접적인 이유도 줍니다.

적에게 꼬라박고 이탈할때 칼침 최대한 안 받을려구요. 특히 보병들이 귀하신 기사님들을 상대로 할버드나 장창 등 기병대에 상당히 치명적인 날붙이를 내밀어드는 건방진 짓들을 하니까," 이 뜨바, 이젠 말도 보호안하면 못 빠져나오겠네"  라고 생각끝에 다다른 것이, 마갑이고, 특히 치열한 접전이 예상될 때 이를 장착한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마갑을 장착 안한 폴란드 후사르병의 경우, 승리시 기수의 피해는 크지 않지만, 기마의 피해는 기수의 약 2배였죠 (게다가 기마의 엄청난 가격을 생각하면, 폴란드 후사르 기병은 워해머의 시스터오브배틀같은 돈먹는 하마였죠. 후사르 기병의 몰락의 한 원인입니다).

 

물론, 사슬 갑옷이나 가중 갑옷, 또는 갑웃을 입지 않은 경우에는 기창에 뚫릴 수도 있겠지요.

후사르 기창도 흉갑을 뚫지 못했으며 (덤으로 그렇게 큰 부상을 입히지도 못한 거 같습니다...  어떤 분은 3번 맞고도 살아 남아 "기창병"이라는 별명까지 붙는 것을 보면요), 후사르보다 무겁고 견고한 기창을 쓰던 프랑스 기창기병의 지휘관도 "쓸모없다" 고 말했는데, 정면에서 방패를 상대로 기창이 얼마나 효과있었는지는... -_-ㅋ

 

역시 중세 기병대의 정석은, 패주하거나 와해되거나 산개한 보병진 공략, 척탄병등의 경보병 공략, 밀집된 보병진에 측면이나 후면에 꼬라박음으로써 재돌격과 후발대/예비대의 연쇄돌격을 통한 (약간의 살상과) 모랄의 저하를 통한 패주 유발. 실제로도 전투들의 양상을 보시면, 보병들의 사망은 상당한 다수가 패주시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중세 기병대나 후사르 기병대의 전투능력이 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정도 과장되 있다고 봐요.

 

 

추신1: 물론, 제 글의 주장은, 중세 기병대와 후사르 기병대가 본질적으로 같았다는 의견을 채택해서 쓴 글입니다.

 

 

(1) 중세 천년의 역사 중에서 스위스 할버디어들이 나온 것은 언제?

(2) 중세 천년의 역사 중에서 패주가 유발되지 않을만큼 높은 사기를 지닌 보병들과 기사들이 싸워야 했던 시점은 언제?

(3) "중세"의 보병이 어떤지에 대한 인식이 있심?

(4) 아니, 애초에 어디까지가 "중세"인지에 대한 인식은?

 

 

참고문헌:

 

Osprey Campaign 013 Hastings 1066

Osprey Elite 009 The Normans

Osprey Warrior 094 Polish Winged Hussar 1576 - 1775

Oxford  The Art of War In The Middle Ages 378-1515 저자 CWC Oman

Cambridge Bannockburn 저자 John E Morris

Osprey  Medieval Soldier

Osprey Men-at-Arms 094 The Swiss At War 1300-1500

Osprey Warrior 068 English Medieval Knight 1400-1500

Osprey Men-at-Arms 231 French Medieval Armies 100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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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bookmark | 작성시간 11.10.09 사과하면서 끝난줄 알았더니만 뒷통수를 치더군요. 지난번 왜성과 어제까지. 그리고 오늘 다시. 벌써 세번째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유문기 | 작성시간 11.10.09 왜성에서야 그렇다고 해도, 서양사는 이거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군요. 왜성은 그나마 일본쪽 사료, 중국사료, 조선실록을 인용할 있어서, 오로지 한쪽만을 인용하시는 분께-그것도 오스프리 책을 '사료'라고 하시는- 뭐라고 할 수 잇엇는데, 중세 유럽 쪽은 1차 사료를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더 힘들겠군요. 서양사는 한 700개 리플 갈까 합니다.
  • 작성자흑풍 | 작성시간 11.10.09 세상은 넓고 기병의 역사도 긴데, 멀티님 같은 생각을 하는 기병이 아무려면 없었을까요? (정확히는 기병 지휘관) 단, 그 생각을 행동에 옮긴 결과가 머리를 가격하는 몽둥이라던가, 목젓을 찔러오는 단검이라던가, 인정사정없는 매타작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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