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의 역사가운데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사람들은 널리고 널려있습니다.
아마 그렇지않은 사람들을 열거하는게 더 쉬울 지경일겁니다.그러나 그 사람들 가운데서 정말 인생전체가 고난을 넘어 숨조차도 쉬기 힘들정도로 고통스럽게 여겨질 사람은 거의 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그 주인공은 로마제국의 마지막 황가인 팔레올로고스조의 요안니스 8세 팔레올로고스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황제가 태어나던시기 비잔티움은 이미 요안니스 5-6세기 내전으로 인해 제국은 트라키아일대 영토를 잃었고 결국 외로이 콘스탄티노플을 위주로 사실상 도시국가가 되어버린채로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오스만에 의해 언제든지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할 가능성이 있었죠.실제로도 마누엘 2세때에 포위당했었고.. 콘스탄티노스 11세때에도 메흐메드 2세의 강제적인 공격에 속수무책이였죠.(일명 루멜리 히사르[로마땅의 요새]라 불린 계획)
이러한 상황속에 요안니스 8세의 일생은 망해가는 제국의 상황에 영향을 받았습니다.일생일대 결혼을 3번 치뤘지만 첫번째 부인과 두번째 부인사이는 정략결혼이라는 이유때문인지 그리 좋지못하였으며 특히나 둘째부인은 애정을 주지않아 결국 두번째 부인이 도망을(...)쳐서 헤어지고 말았습니다.그래도 3번째 결혼은 사랑하는 이와 결혼에 성공하여 어느정도 행복은 누리지만 서방의 구원을 받기 위해 이탈리아로 간 사이 세번째 아내는 전염병에 그만 목숨을 잃고 맙니다.
그리고 망해가는 제국을 어찌어찌 살리려고 이때 당시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간에 사이를 매듭지으려 노력하였고 이는 결국 국내외로 분열을 야기시키고 맙니다.이 과정속에서 황제는 정말 죽을위기를 넘겨가며 이탈리아로 갔으며 이 와중에 투르크인들로부터 공격당하는등(.....)에 위기를 겪게 됩니다.
더욱이 황제의 고질병인 통풍이 이때 재발되어 황제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데 이때 요안니스 8세는 거의 움직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찌어찌해서 로마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로마가톨릭과 정교회의 논쟁에 논의하려 하지만 의전 및 양측간의 의견차이로 엄청난 시간을 소비합니다.그리고 그 와중에 황제의 통풍이 또 재발되어 이 시기 심장병을 앓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침대를 같이 놓아서(.......) 이 논쟁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할지 논의하였습니다.
이시기 정교회와 가톨릭간의 논의사항 중 가장 주된 것은 바로
로마교황의 우월한 지위를 인정하는 조항이였습니다.비잔티움측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고 한마디로 로마교황이 으뜸인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우월한 지위를 인정할 순 없단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국력이 약한 비잔티움이기에 결국 엄청난 논쟁을 통해 로마교황의 우월함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 요안니스 8세의 서명문을 보면 강제로 쥐어진듯한 느낌이 있는지라 당시 요안니스 8세가 자의로 했는지에 대해서 의심이 있긴 합니다.
어찌됬든 서방의 구원군을 받을 수 있는 합의에 서명하여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잔인했습니다.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온 이후 그는 비잔티움인들의 증오를 온 몸으로 받아내었고 더욱이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까지 들었습니다.아마 이 시기 그의 마음은 정말 피폐해졌으리라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그가 얼마나 경멸을 받았냐면은 그의 어머니 헬레나 드라가세스는 그를 증오하였고 정교회 사제들은 그에 대한 증오를 계속 표출했습니다.모든 교회에서 그에 대한 기도는 없어졌고
후일 비잔티움 멸망이후 오스만의 메흐메드 2세로부터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직을 승계받는 겐다니오스는 노골적으로 비잔티움의 멸망을 부르짖는 팜플렛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서방의 구원군은 잔인한 운명이 요안니스의 노력을 비웃듯이 오스만에게 패하여 결국 요안니스는 강제로 오스만의 술탄에게 승리를 축하하는 신세로 떨어지고 맙니다.
결국 그는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자국에서 제일 증오스러운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수없이 노력한 결실들에 비해 처절하리만큼 잔인한 대가를 치루었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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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스아스터 작성시간 20.09.01 어떤 소설에서는 아내가 동생이랑 읍읍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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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커넬 샌더스 작성시간 20.09.02 모든 망국의 군주들이 다 짠하죠 ㅠ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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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사탕찌개 작성시간 20.09.02 겐나디오스 저 사람은 나중에 메흐메트 2세에게 총주교직을 수여받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오스만 제국내의 기독교인들의 신세를 탓하며 총주교직을 여러번 사임하려 했던것으로도 알고 있습니다. 그럴거면 왜 비잔틴 제국에게 그리 쓴소리를 했는지.
비잔틴 제국의 멸망은 참... 비극적인데 한편으로는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툭하면 내전이 일어나고, 배신자들과 매국노들이 넘쳐나며, 심지어는 황제들도 자기 자리 지킨다고 외세에 손을 벌리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나라가 멀쩡할리가 없지요. 사실 그런 나라들이 한두개가 아니었겠지만, 비잔틴 제국은 그런 국력낭비를 용납할 상황이 되지가 않았지요. -
답댓글 작성자배달민족 작성시간 20.09.02 그래도 역사는 너무 매력적(?)이어서 빠가 많지요 ㅎㅎ 미디블토탈워하면 처음에는 무조건 비잔틴부터 고른다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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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yuso 작성시간 20.09.09
코짤리고도 복위에 성공한 유스티아노스2세가 개인적으론 가장 좋더군요.
결국 비참하게 몰락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