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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전쟁사]러일 전쟁사 - 76. 쓰시마 해전(2)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2.07.01|조회수762 목록 댓글 5

10월 7일 군함들이 북극해에 진입했다. 근시일 내에 일본 함대의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접수한 로제스트벤스키와 그의 참모부는 공격대비명령을 하달하여 초조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결국 10월 9일 러시아 전함은 도거뱅크 근처에서 영국 국적의 어선단을 일본 수뢰정단으로 오인하여 포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결과 어선 1척이 침몰하고 5척이 파손되었으며, 어부 2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영국의 부상자가 승선해 있었던 순양함 오로라 호 역시 러시아군의 포탄에 의해 파손되었다. 이 사건으로 영국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면서 함대는 스페인의 비고 항에서 일주일을 지체했다.

1904년 10월 7일. 러시아 함대의 포격으로 피해를 입은 영국의 트롤어선. 러시아군은 이 배를 일본의 어뢰정으로 오인했다.

 

순양함 오로라호

 

함대는 10월 21일에 탕헤르 항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 흘수선의 차이에 따라 함대가 둘로 나뉘어졌다. 즉 흘수선이 깊은 전함으로 구성된 함대의 주력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순양함 및 운송선과 함께 아프리카를 우회하여 인도양으로 향하는 노선을 택했으며, 나머지 흘수선이 낮은 군함은 함대부사령관 펠케르잠 해군소장의 지휘 하에 수에즈로 향했다.

주력함대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항해했다. 카나리아 군도에 도착할 때까지 영국 군함이 경계 동행하면서 상당히 긴장된 상황이 형성되자 함대제독은 함포를 장전하여 공격에 대비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간혹 개방된 해상에서 정박하는 경우 석탄을 보충했다. 열대지방에서의 석탄 적재는 병사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석탄을 최대한 적재하려 했던 로제스트벤스키는 함포 주변이나 다양한 적재함, 심지어 일부 장교 선실에도 적재하도록 명령했다. 공간이 부족한 일부 군함은 명령에 따라 갑판에 직접 적재했다. 그 결과 새로운 전함의 석탄 예비적재량은 기준의 2배가 넘었다. 그렇지 않아도 선체의 안정성이 낮았던 군함이 이렇게 과적한 상태에서 폭풍우를 만나면 전복될 확률이 높았다. 따라서 풍랑 속에서 이동할 때는 군함이 전복되지 않도록 파도를 선수(船首) 정면으로 맞으면서 운항했다.

12월 27일 주력함대는 마다가스카르의 노시베 항에 도착했다. 펠케르잠 일행은 이미 12일 전에 도착해 있었다. 펠케르잠 편대에 소속된 군함들은 지름길로 왔음에도 불구하고 수리를 받아야 했다. 전함 나바린 호는 냉각장치가 고장났으며, 순양함 젬추그 호와 이줌루트 호는 구동장치와 보조장치가 고장났다. 수뢰정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서, 전체 수뢰정 중 단 2척만이 혼자서 항해할 수 있었다.

전함보다 모니터함쪽에 가까운 .. 나바린

 

순양함 이줌루트 호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펠케르잠과 합류하기 전에 이미 제1태평양분함대가 괴멸되었으며 뤼순도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저조했던 승조원의 사기가 이 소식으로 더욱 떨어졌다. 이에 로제스트벤스키는 페테르부르크로부터 새로운 지시가 하달될 것으로 기대했다. 즉 그는 일본 함대를 상대로 하여 제해권을 탈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일부 군함이라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파시키려면, 흑해함대의 일부를 태평양으로 증파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제독의 청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재차 발트 해로부터 제3태평양분함대를 극동으로 파견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으며, 구식 군함으로 구성된 제3태평양분함대의 제1차 편대가 1905년 2월 3일 리바바 항을 출항했다. 제1차 편대에 소속된 군함들은 전투력이 약했던 만큼, 일본 군함 중 일부를 자신에게 유인하여 적의 군사력을 분산시키는 것을 최선의 목표로 삼았다. 지휘관에는 네보가토프가 임명되었다.

제2태평양함대의 사기는 저조했다. 외해로 출동하기도 전에 지휘관에 대한 일반 사병과 장교의 평판이 좋지 않았다. 로제스트벤스키는 함대 이동중에 병사들의 면전에서 고의로 자신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행동을 했다. 러시아로 발송한 보고서의 대다수는 그가 무례하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장교를 박해하고 말 그대로 생트집을 잡아서 일부 전문가들을 지치게 만드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로제스트벤스키의 기함 수보로프호의 장교들. 1904년 9월 극동으로 출항하기 직전 러시아 레발 항에서 찍은 사진으로 사진 속 거의 전원이 9개월 뒤인 1905년 5월 쓰시마 해전에서 전사했다.

 

전함 수보로프 대공 호의 포병장교 블라디미르스키 중위는 “아마도 제독은 완전히 미친 것 같습니다…… 부하 장교에 대한 예우를 지키지 않아, 수뢰정의 함장인 모 해군중령의 목덜미를 휘어잡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조만간에 그를 먹어치울 것 같습니다.”라고 함대사령관을 비판했다. 븨루보프 해군중령의 편지에서도 그의 이상한 성격에 대한 서술이 보인다.

 

우리는 제독에게 결정적으로 실망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현 체제의 결과입니다. 그는 아무 재능도 없는 고루한 사람으로서, 훌륭한 궁신(宮臣)일지는 모르나 지휘관으로서는 2카페이카(러시아의 최저 화폐 단위)의 가치뿐입니다.

 

1905년 3월 3일 마다가스카르에서의 오랜 정박 후에 제2태평양함대는 네보가토프 해군소장의 편대를 기다리지 않고 인도차이나의 연안을 따라 출항했다. 사소한 파손을 제외하면 아프리카에서 극동까지의 이동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수뢰정은 엔진을 보호하기 위해 예인된 상태로 운항했다. 3월 26일 분함대가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함대지휘부는 캄란(베트남 중남부의 항구) 항에서 군함을 정렬하려 했으나 프랑스 측의 압력으로 반퐁 만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정렬했다.

싱가폴에 나타난 러시아 발틱함대

 

4월 26일, 출항 2개월 보름이 넘어서야 네보가토프의 편대가 본대와 합류했다. 저내항성의 낡은 군함으로 단기간내에 본대와 합류한 승조원들의 운항술은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이로써 제2태평양분함대에 3척의 근해방어용 전함과 순양함 1척 그리고 몇 척의 운송선이 가세했다.

로제스트벤스키는 반퐁에서 서신을 발송하여 함대가 너무나 약해서 제해권을 장악할 수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보고하면서, 건강을 핑계삼아 자신을 송환하고 새로운 지휘관을 임명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에게 도달한 답신은 페테르부르크의 명령에 복종하여 일본 함대와 일전을 벌이라는 것이었다.

저기요? 제가 몸이 좀 안좋은데...  다른 사람 시키면 안될까요?

 

씨도 안멕히는 소리 그만하고 시킨 일이나 잘해!!!

 

5월 1일 러시아 분함대는 반퐁 만을 출발했다. 일본 함대와의 접전이 점차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찰은 실행되지 않았다. 각 군함은 심야에 충돌하지 않도록 특별한 항적사격을 실시했다.

함대사령관은 블라디보스토크로 돌파하는 것을 함대의 주 임무로 여겼는데, 그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한해협(부산과 쓰시마 섬 사이의 해협), 쓰가루 해협(일본 혼슈[本州]와 홋카이도[北海道] 사이의 해협) 또는 라페루즈 해협(러시아 연방 사할린 제도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사이에 있는 국제적인 해로. 일본어로는 소야[宗谷]해협이라고 한다) 중의 1개 항로를 선택해야만 했다. 운항속도 빠른 군함을 보유한 일본은 자신의 함대를 어느 곳에서건 전개할 수 있었다. 연료 부족을 걱정한 로제스트벤스키는 가장 짧은 항로인 대한해협을 택했는데, 이 경우 일본 함대와의 접전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로제스트벤스키는, 제1태평양분함대의 전투경험을 고려할 때, 해전으로 인한 군함의 손실은 일부에 불과할 것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안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로제스트벤스키는 5월 8~12일 황해와 태평양에서 무력시위를 하기 위해 지원순양함 드네프르, 쿠반, 체렉 호를 파견했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일본 함대의 군함 중 일부를 유인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으나, 너무나 적은 군함을 투입했기 때문에 그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그 정도의 군사력으로는 일본군 지휘부가 오해하도록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러시아 함대는 여러 가지 불리한 상황과 선례가 없었다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만 9천 ㎞에 걸친 이동을 완수했다. 5월 10일에 마지막으로 석탄을 적재한 함대는 5월 14일 밤 대한해협으로 접근했는데, 바로 그 날이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 기념일이었다.

발틱 함대의 이동로

 

러시아가 새로운 함대를 편성했음을 이미 알고 있었던 일본군은 3가지의 운용 가능한 대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했다.

 

첫째,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한 후 그곳을 기지로 삼아 일본 함대를 상대로 군사행동을 펼친다. 둘째, 중국의 중립을 위반한 채 남중국해로 이동한 후, 그곳을 거점으로 하여 남중국해 및 황해로부터 일본 함대를 점차 밀어낸다. 셋째, 대만 근처의 거점을 장악하거나 일본의 섬 중 한 곳을 점령한 후, 거기에 기지를 건설함으로써 함대교육과 제해권 쟁탈전을 준비한다.

 

이상의 세 가지 대안이 모두 전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 일본군 지휘부는 대한해협에 함대를 집결시키기로 결정했다. 일본 함대의 주력은 마산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첩보활동은 동해와 남중국해에서 이루어졌다.

일본 함대는 대한해협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즉 일본 함대의 위치에서는 러시아 함대가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경우는 물론, 황해에 머무를 경우에도 적의 항로를 차단할 수 있었다. 일본 함대는 일부의 해군력으로 뤼순과 러시아 제1태평양분함대 소속의 잔여 군함을 봉쇄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군함은 근처의 해군기지에서 수리중이었다. 일본 함대의 병사들은 전문적으로 잘 준비되었고 전투학교를 졸업했으며, 전투 결과가 성공적이어서 사기 또한 높았다.

일본군 지휘부는 러시아 함대의 항로를 주의 깊게 추적했다. 반면 로제스트벤스키는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킬 우려가 있다며 정찰선을 파견하지 않았다. 3월 16일 일본군 사령부는 러시아 함대가 노시베에 정박중이라는 정보를 비롯하여, 3월 17일에는 인도양을 항해중이고 3월 27일에는 싱가포르를 통과했다는 사실들을 접수했다.

일본 함대는 동절기에 필요한 정비를 완료함으로써 전투준비를 마쳤다. 당시 일본은 러시아 함대와의 해전에 대비하여 함대를 3개의 분함대로 세분했다. 도고 장군의 제1분함대는 전함 4척, 장갑순양함 2척 및 4척의 경순양함으로 구성되었다. 제2분함대는 가미무라 히코노죠(上村彦之丞)의 지휘하에 6척의 장갑순양함, 경순양함 4척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제3분함대는 여러 척의 구식 전함과 경순양함으로 이루어졌다.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장군의 제1분함대와 제2분함대는 마산포에 정박중이었고, 제3분함대는 쓰시마에 부속된 오자키 섬에 위치하고 있었다. 순양함은 대한해협과 쓰가루 해협에서 순찰중이었다.

일본 제2함대 카미무라 제독

 

러시아 함대는 5월 12일 저녁부터 일본 함대의 무선을 감청했다. 일본 함대가 아직 자신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로제스트벤스키는 러시아의 무전교신이 일본 측에 의해 도청될 수 있다는 이유로 군함 사이의 무선교신을 금지시켰다. 그 결과 함대 지휘권에 일시적인 공백상태가 생겼다. 5월 14일 운무가 피어오른 아침 무선통신이 급속하게 늘어난 점으로 미루어 일본군이 러시아 함대의 존재와 위치를 파악했음이 명백했다. 로제스트벤스키는 이런 상황에서도 무선교신을 허락하지 않았다.

러시아 함대가 대한해협에 진입할 당시 일본 함대의 주력(제1, 제2 그리고 제4전투편대)은 도고 장군의 지휘하에 마산 만에 있었으며, 제5, 제6 그리고 제7전투편대는 쓰시마 근처에 있었다. 제3전투편대는 제주도와 주변을 순찰중이었다. 러시아 함대의 의도를 확인한 일본 함대는 러시아 함대의 항로였던 대한해협에 자신의 함선을 집결시키기 위해 전개하고 있었다.

5월 14일 02시 28분 지원순양함 시나노마루(信濃丸) 호는 병원선 오렐 호의 불빛을 발견한 직후, 전체 함대를 목격했다. 러시아 함대에게 발각되지 않은 지원순양함은 함대장에게 무선으로 보고한 후 적의 뒤를 추적했다. 적 함대가 접근중이라는 보고를 받은 일본 함대는 일전을 치르기 위해 출항했다.

드디어 오셨군. 얘들아! 손님 받아라!!!

 

로제스트벤스키가 해군성에 보고한 바와 같이 “새벽 07시에…… 우리와 동일한 항로를 따라 항해하는 군함이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양함 이즈모 호였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함대사령관은 적 순양함을 공격하지 않았으며, 최소한 그들의 자진 후퇴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일본의 첩보선은 러시아가 함대대열을 재편성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는데, 이런 모든 것이 일본의 주력함대가 전술적으로 용이하게 전개할 수 있었던 원인이 되었다.

장갑순양함 이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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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惡賭鬼 | 작성시간 12.07.03 부하함장의 목덜미를 잡았다고 "완전히 미친거 같다"는 말을 듣는다라.. 우리나라는 부하 빠따도 때리지 않남? 흠..
  • 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7.03 함장이면 대령급입니다. 다른 병사들이 보는데서 대령을 구타한다는 건 문제가 있죠.
  • 답댓글 작성자惡賭鬼 | 작성시간 12.07.03 넵, 물론 문제가 있는 일이죠. 다만 현대 러시아 군대의 인권 상황이 워낙 '헬'이고, 일본, 중국, 우리나라의 군대 인권 상황들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어와서...
  • 작성자지옥괭이 | 작성시간 12.07.03 그런데 어차피 수에즈운하를 이용하지 않을 바에는 대서양을 건너서 남아메리카 대륙 아래를 통과한 다음에 최대한 북상해서 러시아영토 가까이에서 항해해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 까 합니다. 그당시에는 미국 및 남미국가들은 아직 영국처럼 러시아와 경쟁 관계도 아니었으니 캐나다만 조심하면 될 거 같습니다. 러시아 영토에 인접한 만큼 보급면에서도 유리하고요
  • 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7.03 그렇게 하기엔 시간도 많이 걸리고, 중간에 석탄을 보급할 기지를 찾을 수 없다는 게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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