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베트남 전쟁사]베트남 전쟁사 - 46. 마지막 카드, 지상군 개입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3.03.03|조회수1,042 목록 댓글 7

남베트남 정부 및 남베트남군의 분열과 북베트남의 기도로 볼 때 남베트남을 지탱시키기 위해서는 미 지상군의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은 이미 통킹 만 사건 이후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 각각 여단 규모의 군수지원 부대와 공병부대 파견을 요청한 바 있고 1964년 12월과 1965년 2월에도 계속 요청한 바 있었다. 군수지원 시설, 보급로 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전준비의 결여가 미 지상군이 개입한 이후에 전투력을 발휘하는 데 많은 지장을 주었다.

베트남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은 근본적으로 북베트남으로부터의 침투를 봉쇄하여야 하기 때문에 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의 이상적인 방안은 북위 17도선의 비무장지대와 태국 국경까지의 라오스 회랑에 연합군 5개 사단을 배치하여 북베트남의 지원과 침투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하여 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은 주베트남 미 부(副)대사 알렉시스 존슨(Alexis Johnson)과 합동으로 17도선 근방의 9번 도로로부터 태국국경까지의 도로 건설을 1964년 말부터 추진하였으나 워싱턴 당국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주베트남 미 부(副)대사 알렉시스 존슨

 

1964년 12월부터 미국과 우방국가의 전투부대 파견의 필요성에 대하여 사이공에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역사적으로 외국인 혐오감정이 강한 베트남인들은 이에 대하여 냉담하였으나 1965년 3월에 들어서면서 북베트남의 위협이 증가하자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롤링 썬더(Rolling Thunder) 작전의 성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자 존슨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은 초조하기 시작하였다. 존슨 대통령은 지금까지 베트남전의 확전에 대하여 가장 반대 의사를 가지고 있는 육군 참모총장 해롤드 존슨(Harold K. Johnson) 장군을 보내어 상황을 파악하여 건의하라고 하였다. “육군 참모총장은 지금까지 저 조그만 나라의 문제에 대하여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모두 한결같이 북폭이나 하라는 그런 장군들은 필요 없다. 어떤 해결책이 필요하다.”

육군 참모총장 해롤드 존슨

 

당시 남베트남의 군사적 정세는 심각한 징후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할 때였다. 가장 북부인 1군단 지역에 적의 활동이 급격히 증가하였고, 2군단 지역인 중부 고원지대에 북베트남군 325사단 예하 1개 연대가 1964년 말에 침투하였다는 정보가 포착되었다. 3월 말에는 콘툼(Kontum) 성 닥 토(Dak To)의 남베트남군 전진기지는 북베트남군 2개 대대의 공격으로 유린되고 연대장까지 전사하였다. 이제는 북베트남군인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라 규모와 그들의 의도가 문제였다. 짚차에 폭탄을 장치한 베트콩들이 미 대사관 건물을 폭파하여 미국인 사망 2명, 부상 54명, 길거리에 있던 남베트남인 15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하였다.(미국은 이 사고 후 남베트남 독립궁 근처의 미 대사관 건물을 새로 건축하였다.)

남베트남의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의 복안을 수긍한 존슨 장군은 북위 17도선과 라오스 회랑을 연하여 북베트남의 침투를 차단해야할 필요성과 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미군 1개 사단의 파견을 대통령에게 건의하였다. 1965년 4월초의 안보회의에서 합참도 미군 2개 사단을 파견하고 한국에게 1개 사단 파견을 요청하자고 건의하였으나 존슨 대통령은 잠정조치로 비행장 경계를 위한 해병 2개 대대의 추가 파견만을 승인하였다.

점점 악화되는 베트남사태에 대한 대책을 숙의하기 위해 1965년 4월 20일 호놀루루에 국방장관 맥나마라(McNamara), 합참의장 휠러(Wheeler) 장군, 태평양 사령관 샤프(Sharp) 제독, 국방 차관보 맥노튼(McNaughton), 국무 차관보 윌리엄(William), 테일러 대사, 웨스트모얼랜드 장군 등이 모여 회합을 가졌다.

존슨 정부 당시의 맥나마라(오른쪽)

 

합참의장 얼 휠러

 

 

국방차관보 존 맥노튼

 

태평양 사령관 샤프 제독

 

 

시찰에 나선 태평양 사령관 샤프

 

북베트남의 승리를 거부함으로써 북베트남이 전쟁을 계속하려는 그 의지를 꺾는다는 전쟁목표는 변함이 없고 이제 어떻게 효과적으로 제한된 지상군 개입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느냐는 것이 이 회합의 목적이었다.

이 회합에서는 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이 요청한대로 비엔 호아(Bien Hoa), 붕 타우(Vung Tau) 일대 및 비행장 경계를 위하여 육군 1개 여단(3개 대대), 퀴논(Qui Nhon)과 나트랑(Nha Trang) 일대의 방어를 위해서 육군 1개 여단(3개 대대), 추 라이(Chu Lai) 지역 일대 방어를 위해서 해병 3개 대대, 기타 군수지원부대 등을 포함하여 총 병력을 82,000명으로 증가시키고 추가병력은 추후 상황에 따라 결정하기로 하였다.

이번의 병력증원은 전략 요충지 방어전략 개념에 의한 것이었다. 즉 롤링 썬더 작전과 이를 수행하기 위한 기지 경계만으로는 남베트남의 붕괴를 막을 수 없다. 따라서 사이공, 다낭(Da Nang), 추 라이, 퀴논, 나트랑 일대의 5개 전략요충지를 방어하여 남베트남의 붕괴를 방지하고 북폭을 강화하여 북베트남의 전쟁 계속 의지에 영향을 주어 협상 테이블로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의 병력증원 조치로 173공정여단, 503보병여단 등이 5월에 들어서 남베트남에 상륙하였고, 이 부대는 요충지 방어임무를 수행하면서 적의 위협이 있을 때에는 워싱턴 승인 하에 50마일 이내에서 공격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사이공 지역의 방어는 남베트남인들의 자존심과 배타심을 고려하여 스스로 방어토록 하고 긴급 시에는 비엔 호아 지역의 미군을 전용토록 하였다.

173공정여단의 패치

 

1965년 베트남에 도착하는 173공정여단

 

이와 같이 미 지상군 개입은 북폭 카드와 유사하게 점진적으로 개입을 확대해가는 식으로 마지막 카드를 뽑아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략요충지 방어 전략은 현재의 상황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는 방책이라고 판단한 웨스트모얼랜드는 이의 무용성을 주장하고 워싱턴 당국에 50마일 이내의 작전제한을 철폐하도록 건의하였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3.03 일단 미국과 공산측의 지원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차이가 납니다. 단순 금액 지원만 해도 1965년까지 공산측에서 매년 3억 달러 정도 수준이라면 미국의 베트남 지원은 금액만 해도 그 몇배에 해당됩니다. 거기에다 인적 지원도 미국은 최대 60만에 달하는 병력이 지원되었지만 공산측에서는 비공식적인 소수의 인원만 지원됩니다. 중,소의 지원은 실질적인 의미보다는 혼자가 아니라는 심리적 지원과 미국이 북베트남을 직접 공격할 때 중,소가 개입할 수 있다는 존재의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초기에 강력하게 미국이 대응한다면 그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아마 많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3.03 아마 북베트남이 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미국은 프랑스처럼 베트남 전체가 아니라 남베트남만이라도 건지자는 거니까요. 그리고 중, 소의 개입은 아마 없었을 겁니다. 중국과 소련은 당시 미국과 직접 대결할 의사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중국도 한국전에 참전한 이후 많은 피해를 입었고 그와 같은 피해를 다시 입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한국은 중국의 수도 베이징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소련과도 접경한 나라이지만 베트남은 중국과 소련의 입장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에 불과하죠. 물자나 비공식적인 인력 지원은 해줄 수 있지만 베트남을 위해서 나라의 운명을 걸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마 베트남이 통일되지 않고 우리처럼 계속 분단되
  • 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3.03 나 아니면 베트남의 통일이 약 10~20년 늦춰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베트남청춘 | 작성시간 14.11.27 푸른 장미 님의 탁월한 식견에 동의를 표합니다.
    모얼랜드장군의 건의에 의한 신속한 대응이 이루어 졌다면 많은 양상이 달라졌으리라...
    분단국가쪽으로 무게를 두고 싶네요...
  • 작성자카이사르 마그누스 | 작성시간 13.03.04 정말 전쟁을꺼려하긴했네요 이렇게 느긋느긋하게투입하다니...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