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대통령은 전 세계적으로 공산주의의 팽창위협에 대비하는 트루먼 독트린에 의하여 프랑스의 베트남전 전비를 부담하였고,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봉쇄정책의 일환으로 베트남의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하여 남베트남에 경제원조와 군사 고문단을 파견하여 남베트남을 지원하였다.
젊고 패기만만한 케네디 대통령은 ‘인민혁명전쟁의 시험장’인 베트남에 본격 개입을 서둘렀고 비밀작전인 OPLAN 34-A로 미군이 직접 개입하게 되자 북베트남도 미군시설을 공격하기 시작하여 급기야 통킹만 사건이 일어나 미국과 북베트남의 직접 대결이 시작되었다.
남베트남의 정국이 혼란되고 북베트남의 군사적 압력이 증가하여 남베트남이 붕괴 위기에 직면하게 되자 미국은 점진적으로 북폭을 강화하여 미국의 지원의지를 북베트남에 인식시켜 북베트남이 미국과 대결해서는 승리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 협상에 응할 것으로 판단하여 북폭을 시작하였다.
북폭을 하기 위해서 비행장 경계는 필수적이어서 경계부대인 지상 전투부대가 남베트남에 상륙하였고 남베트남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5개의 전략 요충지만이라도 방어하여야 할 필요성에 따라 필요한 병력이 증원되었다.
그러나 남베트남을 중부 고원지대에서 양분하여 남베트남을 붕괴시킨다는 북베트남의 총공세 기도에 대처하기 위해 전투사단이 급파되었고 이후 계속 증파되어 미군의 병력만도 40만~54만 명이 투입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우방국가의 연합군도 68,900명까지 참전하였다.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목표는 주베트남 미 군사지원 사령부(MACV)의 임무에 명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군사적인 목표로서 ‘남베트남 정부 및 남베트남군을 지원하여 외부의 지령과 지원을 받아 수행하고 있는 공산주의자들의 활동 및 침략을 격퇴하는 것’이며 정치적인 목표로 ‘안정된 환경 하에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독립된 남베트남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주베트남 미 군사지원 사령부(MACV)의 마크
탄손누트에 위치한 MACV 사령부 건물
이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상군을 대거 투입하였다면 지상 작전은 당연히 다음과 같은 3단계로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1단계로는 차기작전을 수행하기위한 기지를 확보하고 2단계로 이 기지를 발판으로 하여 기동력, 화력이 우세한 이점을 이용하여 적의 작전기지를 공격함으로써 적에게 전투를 강요하여 주도권을 확보한 다음 3단계로는 국경선, 휴전선에 구애되지 않고 적을 추격하여 군사적 승리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수행하려 하는 제한전쟁은 이 같은 정상적인 지상 작전에 반하여 한국전쟁 시와 마찬가지로 군사작전 지역을 철저히 제한하여 현지 야전사령관의 발목을 묶어 버렸다.
즉 미국은 북베트남의 군사적 패배를 원하지 않았고 북베트남이 무력으로 남베트남을 통일하는 것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여 이를 중지하거나 또는 협상으로 해결한다는 정치적 목표 때문에 중, 소의 개입을 야기하고 전면전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17도선 이북 즉 북베트남에 대한 지상공격을 제한하였고 해, 공군 작전만 실시하였다.
또한 라오스, 캄보디아의 국경선을 넘는 지상공격도 제한하였다. 한국전쟁 시 만주에 대한 폭격을 일체 허가하지 않았던 것과 같이 베트남과 인접한 라오스, 캄보디아도 중립국가 침범이라는 명분 때문에 지상공격을 완전히 제한하여 북베트남군의 성역이 되었다.
호치민 루트가 이 지역을 연하여 개설되어 북베트남의 보급로로 활용되고 남베트남 영내에서 패퇴한 북베트남군은 이 성역에서 재편성 및 휴식을 취하고 자기네들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공격을 재개하여 항상 작전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데도 남베트남군, 미군, 연합군 등 130만이 넘는 군대는 북베트남군을 국경선 넘어 추격하지 못하고 영내에서 하잘 것 없는 지방 베트콩을 상대로 과도한 전력을 소진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책이 있을 수 없었다.
클라우제비츠(Clausewitz)는 ‘전쟁이 적을 굴복시킴으로서 자기의지에 다르게 하기 위하여 행사되는 폭력행위라고 한다면, 그 유일의 목적은 적을 격파하는 것 즉 적으로부터 저항력을 박탈하는 것이며 적의 저항력을 박탈하는 3개 요소는 적군의 격멸, 적 영토의 점령, 적의 저항의지 분쇄’라고 하였다.
클라우제비츠
이러한 3개 요소 중 가장 신속하고 확실한 방법은 적군을 격멸하거나 적의 영토를 점령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불가능할 경우에는 클라우제비츠가 말하는 ‘소모전’으로 적의 영토를 황폐하게 하고 적의 고통을 증가시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적을 지치게 함으로써 전쟁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하여야 한다. 또 하나의 다른 방법으로는 ‘직접적인 정치적 압박’을 일으키는 작전을 수행하여 적의 전쟁의지를 상실시켜야 한다.
미국은 정치적인 제한으로, 북베트남은 군사적인 능력의 제한으로 쌍방이 적군을 격멸하거나 적의 영토를 점령할 수 없기 때문에 소모전으로 상대방의 저항의지를 분쇄하는 대결로 승패가 가름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소모전에서 미군이 수행할 수 있는 군사작전은 남베트남에 있는 베트콩의 격멸과 북베트남에 대한 북폭이었다. 남베트남의 국경선은 900마일로서 병력으로 적의 침투를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였고, 베트콩의 격멸은 북베트남군의 보충능력(남베트남 주민의 모병+북베트남군의 침투)을 초과하여야 하는데 북베트남군의 성역을 만들어주어 이것도 불가능하였다.
북폭도 워싱턴의 철저한 통제 하에 북베트남의 전략적 목표나 전쟁지도 본부, 지휘소 등의 핵심 표적에 대한 집중강타가 아니라 보급로나 DMZ 바로 북방에 위치한 군사시설 등에 대한 폭격이 고작으로서, 북베트남의 전쟁의지에 영향을 주지도 못하였고 병력이나 보급의 침투를 차단하지도 못하였다.
DMZ
미국이 남베트남에서의 지상 작전과 북폭으로 북베트남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손실’을 주어야 개입목적 달성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지상 작전과 북폭으로는 북베트남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손실을 줄 수 없게 되었다. 이 받아들일 수 없는 손실의 기준은 전쟁의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미국이 북베트남에 받아들일 수 없는 손실을 줄 수 있도록 전략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받아들일 수 없는 손실의 기준이 전쟁의 관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규모의 지상군 개입으로 베트남전은 북베트남군에 대한 견제는 가능하게 되었으나 북베트남군의 제거는 불가능하게 되어 장기적인 소모전이 불가피하게 되어 버렸다. 미국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각종 제한 때문에 다른 대안은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를 감내하는 양측의 전쟁의지였다.
이 기간 동안의 미국의 전략을 소모 전략이라고도 하나 소모는 전략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기에 미국은 뚜렷한 전략도 없이 전쟁을 치루고 있는 셈이다.
혹자는 이러한 미 전략을 지칭하여 승리할 수 없는 전략 혹은 웨스트모얼랜드 전략이라고 부르기도 하였고 베트남전은 미국 국민들이 원하여 수행하는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은근히 나타내기 위하여 웨스트모얼랜드의 전쟁이라고 격을 낮추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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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3.10 대놓고 군사지원만 안했지 실제로는 북베트남이 필요한 것을 모두 해주는 우방국가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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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Vv아마게돈vV 작성시간 13.03.11 왜 이렇게 미국은 중,소의 개입을 두려워 했을까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전면전으로 전개 되면 100% 소,중의 패배고 그걸 중,소도 잘 인지하고 있어서 개입 하긴 힘들건데....
사실 냉전 자체가 미국의 공포로 인해 만들어진 측면이 조금 있기는 했죠.
님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
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3.11 중,소의 개입 그 자체보다는 그로 인한 여론의 악화와 국내 지지율 저하가 더 두려웠겠죠. 베트남 전쟁 자체가 정식으로 선전포고가 있거나 한국전쟁처럼 국제연합의 지지를 얻어 벌이는 전쟁이 아니었기에 언제든지 여론이 악화되고 의회가 등을 돌리면 바로 손털고 나와야 했거든요. 또 중,소와 맞짱을 뜨게 되면 최소한 지지는 않겠지만 가장 중요한 지역인 서부유럽과 동남 아시아 중에서 한 곳은 포기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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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카이사르 마그누스 작성시간 13.03.11 미군부와 행정부는 어째서 라오스나 캄보디아에 압박을가하지 않은걸까요 결국 그러한 행동이 중,소의 개입을 야기시킬까바 못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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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3.11 나중에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압박을 가하고 군대도 투입하지만 그 결과가 매우 실망스러웠죠. 당시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북베트남 견제는 고사하고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처지였거든요. 그리고 그런 압박을 가할 경우 이것이 여론 악화와 반전운동 격화에 영향을 주어 베트남 전쟁 수행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