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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7-관구검의 침략, 평양성의 진실

작성자푸른 장미| 작성시간10.10.01| 조회수1005|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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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0.10.01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관구검이 이끌고 침략한 위나라군의 수는 [1만 이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구려가 2만을 동원했는데 침략군이 그보다 소수인 것은 납득하기 힘들고, 2차에 걸쳐 위군 6천을 죽인 고구려군이 달아나는 위군을 추격하면서 무려 '철기 5천'을 내보내는데요...ㄷㄷ
    또한 관구검은 고구려를 치기 전에 부여에 현토태수 왕기를 보내 '군량'을 얻었고, 20세기 초에 발견된 관구검 기공비에는 또렷하게 [오환선우(烏桓單于)]라는 글자가 나옵니다.
    이로 미루어 관구검의 1만군은 그가 직할하던 위군의 수효만을 전하는 것 같고, 여기에 오환선비의 군사가 합류했으며- 부여에서 군량을 지원했던 것 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0.10.01 그러니까 고구려는 당시 주변의 쟁쟁한 국가인 위, 선비, 부여의 '집단다굴?'을 당했기 때문에 그렇게 털렸다고 보아야할 것 같네요...-_-;
  • 답댓글 작성자 havoc 작성시간10.10.01 그, 그런 복잡한 사연이... 동천왕 불쌍햌....ㅜㅜ
  • 작성자 havoc 작성시간10.10.01 그러고 보니깐 넵어 웹툰에서 동천왕을 주제로한 웹툰을 연재하고 있던데, 거기서 나오는 내용들이 어느정도 현실적인가염? 내용이야 고구려에 어떤 현자가 나타나서 역사의 전개를 바꾼다는 내용이지만, 배경상 가능한 일인지...
  • 작성자 bookmark 작성시간10.10.01 삼국사기의 위군 피해가 중앙군이라 일컬을 수 있는 부대에게서 있었다면 관구검은 이기고 돌아간다 해도 생명이 무사하기 쉽지 않다는 건 저시기 각국의 군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입니다만. 중국이 기록을 왜곡했을 것이다... 라고 하기엔 지나침이 많습니다. 이 정벌 이후 관구검은 승진했거든요.
  • 작성자 hannibal 작성시간10.10.02 두번째 줄 3천원 -> 3천명
  • 답댓글 작성자 havoc 작성시간10.10.0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작성자 centurion 작성시간10.10.02 동아시아 고대전투는 사관탓인지 사가들의 잘못인지 전쟁 기록자체가 두루뭉실하게 쓰여진 탓에 병력동원에 관해 불투명한게 많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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