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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현대사]미국이 참전하자 오히려 매우 신나고 기뻐했던 히틀러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8.22|조회수1,514 목록 댓글 15



Bundesarchiv Bild 183

(중략)미국이 중립을 지키는 시기에는 히틀러 역시 미국이 자신과 전쟁을 벌이도록 자극할지 모를 행위를 자제해왔다. 그는 일본이 주사위를 던져버렸기 때문에 서둘러 뒤따랐다. 리벤트로프가 삼국협약의 조건에 따른다면, 일본이 직접 공격을 받을 경우에만 독일이 나서서 일본을 도울 의무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히틀러는 지주만 기습소식을 듣자마자 당장 요들과 카이텔에게 달라가서 그 소식을 말하고는 환호작약하며


 "이제 우리는 질 리가 없다. 이제 우리에겐 3,000년 동안 한 번도 패한 적 없는 동맹국이 생겼다." 고 외쳤다.(처칠은 같은 소식을 듣고 동일하지만 상반된 결론에 도달해서 "그렇다면 우리가 이겼군" 이라고 말했다)


 히틀러는 12월 11일 국회를 소집해서 꼭두각시 의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가 먼저 치겠습니다!(루스벨트는) 전쟁을 부추기고는 대의를 날조한 다음, 구역질나게도 자기 자신을 기독교적인 위선으로 가려고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인류를 전쟁으로 이끕니다…… 이런 작자와 여러 해 동안 협상을 벌여오던 일본 정부가 드디어 그 자에게서 그토록 시답지 않은 조롱을 당하는 데 신물이 나버렸다는 사실에 우리 독일 민족 모두가,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세계의 품위 있는 다른 민족 모두 다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날 늦게 독일과 이탈리아와 일본이 단독강화를 맺지 않고, "미국과 영국에 대항한 합동 전쟁이 성공적인 결말에 이를 때까지 무기를 내려놓' 지 않겠다는 협정을 맺으면서 삼국협약을 갱신했다. 리벤트로프는 히틀러와 단 둘이서만 만나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우리는 딱 한 해 안에 군수 보급품이 무르만스크와 페르시아 만을 거쳐 러시아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차단해야 합니다. 일본이 블라디보스톡을 맡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성공하지 못해서 미국의 군수 잠재력이 러시아의 인력 잠재력과 결합한다면, 전쟁은 우리가 어렵사리 겨우겨우 이길 수 있게 딜 국면으로 접어들 것입니다."


존 키건 - 2차 세계대전 사 中 도조 히데키의 전략전 딜레마





1930년대 미국




"각하께서는 이 나라에서 보고 들으신 것중 어느 것이 가장 흥미있으십니까."

"내가 미국에서 본 것은 모두 마음에 들고, 모든 일들이 다 즐겁다. 가장 나를 놀라게 한 것은 20층 또는 더 높은 마천루이다. 청나라와 유럽에서는 이런 높은 건물을 본 적이 없다. 이런 건물은 보기에 아주 튼튼히 지은 것같은데, 바람이 세게 불어도 괜찮을 것인가?"

1896년, 유럽을 순회한뒤 미국을 방문한 이홍장과 뉴욕 타임스의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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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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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무장공비 | 작성시간 12.08.25 루즈벨트가 죽었을때 프리드리히 대왕 엔딩 플레그 떳다고 좋아하고
    베를린 사수 이벤트를 승리하면 [콩산주의의 방패] 엔딩 볼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한테 뭘 바라세요.

    현실은 그저 [아 ㅆㅂ 이 미치광이...] 아무도 안놀아주는 베드엔딩.

    이쯤되면 풍Q급으로 가끔 불쌍한 생각은 들긴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데스사이즈 | 작성시간 12.08.25 1차 대전의 전례 때문에 미국은 어지간하면 유럽 쪽 전쟁에 끼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진주만 기습 나기 전까지만 해도 국민 여론도 남의 전쟁에 끼어들지 말자가 대세였고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 이걸 무시하고 직접 전쟁에 참여할 수 없죠. 그런데 일본이 싸우기 싫어서 잠자는 사자를 깨우고 히틀러는 그렇게 깨어난 사자한테 덤빈거고. 진주만 기습 안터졌으면 미국이 직접 군대를 동원해 참전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Che_GueVaRa | 작성시간 12.08.25 데스사이즈님// 1941년 9월쯤인가? 이미 미국은 영국한테 군수지원을 시작했던 걸로 압니다.
  • 답댓글 작성자Che_GueVaRa | 작성시간 12.08.25 무장공비님// 그 때쯤이면 이미 히틀러는 무당이라도 찾아봐야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때라.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건 히틀러도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은 합니다만. --> 이 양반이 무뇌아 백치는 아니었거든요. 일례로 스탈린그라드 패배시점부터 이 양반 기가 완전 꺾이기 시작하죠. --> 개인적으로는 이때부터 이기기 힘들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을 거라 봅니다만.)

    그러나 이 양반은 자기가 졌다는 건 죽어도 인정 못할 사람이라서. 독일은 완전 패망으로.
  • 답댓글 작성자데스사이즈 | 작성시간 12.08.25 Che_GueVaRa//후방에서 계속 군수지원만 해주고 직접 전투부대를 파병하는 것은 꺼렸죠. 당시 국민 여론도 그랬고. 그걸 한 방에 반전시킨게 진주만. 저기 폭격당하니까 미국 애들이 폭발해서 우리도 군대 파병해서 다 때려잡자는 쪽으로 가고 루스벨트는 옳다꾸나 하고 양쪽 전선에 직접 참전하기로 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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