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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예송논쟁, 대례(大禮)의 의(議)

작성자신불해| 작성시간12.05.06| 조회수679|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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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2.05.06 이런 논의는 송나라 영종 때도 있었습니다...^^; [복의]라고 하죠.
  • 작성자 오로쿠트 작성시간12.05.06 조선에서도 예송논쟁이 아니라 대례의와 똑같은 구조의 논쟁이 인조때 있었습니다. 원종 추숭논쟁이라고 하여 이 경우에도 예기의 '위인후 예설爲人後 禮說'에 기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승계한 인조의 친부 정원군을 백부로, 할아버지인 선조를 아버지로 고쳐야 하는가, 아니면 역시 정원군을 친부로 하여 임금으로 추승해야 하는가, 의 논쟁이었죠. 이 사건의 경우에도 임금과 백성의 예가 같아야 하는가(천하동례설), 아니면 왕의 예법은 달라야 하는가(왕자례부동사서)의 충돌이라 볼 수 있는데, 이런 기본적인 골조는 1, 2차 예송논쟁의 시초적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인조는 이 추승논쟁을 10년 가까히 끌며 결국 의지를 관철, 왕권강화에
  • 작성자 오로쿠트 작성시간12.05.06 성공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만 가정제 시기의 대례의와 달리 상당히 고생하면서 뜻을 관철하는 모습을 보이니 조선은 명의 전제황권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공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봐야겠죠. 그리고 중국사에선 송나라 영종때 뿐 아니라 전한 애제때도 비슷한 추숭 논쟁이 있었습니다.
  • 작성자 배달민족 작성시간12.05.07 역시 이 카페의 내공이란 ㅎㄷㄷ
  • 작성자 papepo 작성시간12.05.08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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