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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실로 유쾌한 면이 있는 전한 시대 한나라 초기 군신들의 관계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3.01.04|조회수1,608 목록 댓글 17



유방은 중국 역사상 전례 없던 평민 출신 황제에


그 무리들도 전통적인 귀족들과는 백만광년 정도 차이가 있는 인물들이다 보니,


시행착오 과정에서 아무래도 웃긴 일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후대에는 좀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많은데,


몇가지만 예를 들자면, 경포가 모반을 일으켜 유방이 현재의 안휘성 숙현으로 나아가 전투를 벌일때, 유방이 반란의 연유를 물어봅니다. 무엇이 괴로워 모반하였는가, 하고 말입니다. 죄인 출신으로 왕까지 했는데, 거기서 더 무엇이 부족했는가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경포의 대답은


"제(帝)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구구절절하고 길게 시국에 대한 염려, 혼군에 대한 비판, 이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비분강개하게 일어난 자신의 포부 등등에 대한 이야기 따윈 없습니다. 그야말로,


"ㅆㅂ 황제 한번 해보고 싶어서 그랬다!"


그 말 그대로고, 유사 이래 일어난 거의 모든 반역자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황제, 천자, 그 자리에 오르고 싶은 이유에 무슨 구차한 말이 필요합니까. 황제가 되고 싶은 이유는, 그저 황제가 되고 싶어서 일 뿐입니다.


저 경포의 "황제가 한번 해보고 싶었다." 라는 말에 비교해서, 후대의 오삼계가 반란의 이유를 말한 격문의 내용을 보면 이렇게 됩니다.




 원래 산해관을 방어하는 총병관으로서, 지금 지(旨)를 받들어, 천하의 수륙 군대를 통솔하여 명나라를 부흥시키고 오랭캐를 토벌하려는 대장군 오삼계는, 천하의 문무 관리와 군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알리노라.


 본인은 외람되이 대대로 명나라의 작이를 차지하여 산해관을 통솔했다. 그러나 갑자기 역적 이자성이 난을 일으켜 백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천하를 횡행했다. 이어서 경사를 노략질하니 아프도다, 숭정 황제와 황후의 서거여, 참담하도다. 황태자와 여러 황자의 고꾸라짐이여, 문무가 와해되고 육궁(六宮)이 약탈되었으며 종묘가 순식간에 파괴되고 백성이 도탄에 빠지게 되었으니, 신민은 두려워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니 누구도 어찌할 수 없었다. 천하에 정의로운 군대를 일으켜, 황제를 보위하여 적을 토벌할 자가 없었으니 슬프다. 나라의 운명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산해관 밖에 머물면서 화살과 병력을 다 써 버려, 피눈물을 흘리고 마음속으로 애통해하면서도 어쩔 수없이 오랑캐와 혈맹을 맺고 번봉(藩封)을 허가했으며, 그 병사 10만을 잠시 빌려 스스로 앞장서서 입관했다. 이적(이자성)이 도망쳤으나, 돌아가신 선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불구대천의 원수를 값이 위해 반드시 스스로 적의 우두머리를 사로잡아 태묘(太廟)에서 머리를 베어 선제의 영혼에 사죄할 것을 맹세했다. 


 다행이 도적은 도망가고, 괴수의 머리를 베어, 황실의 후사를 세워 종사(宗社)를 계승하고 영토를 할양하여 오랑캐에게 사례하고자 했으나, 교활한 오랑캐가 하늘의 뜻을 거스르며 동맹을 어기고, 우리 내부가 허술한 틈을 타 연도(燕都 : 북경)을 점령하여 우리 선조의 황제의 자리를 도둑질하고, 우리 중국의 풍속을 바꾸었다.


 바야흐로 호랑이를 막기 위해 승냥이를 끌어들인 잘못으로, 땔나무를 지고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오류를 범했으니, 본인은 심장을 도려내고 피를 토하며 끝없는 후회를 했노라. 이에 병사들을 일으켜 북벌, 오랑캐들을 소탕하고자 한다. 마침 주규, 전홍우 두 황친이 왕(王) 태감에게 비밀 명령을 내려, 선제의 세 명의 황자를 안고 도망하도록 했다. 


 나이 겨우 세 살로 넓적다리에 흔적을 내어 표시를 하고 목숨을 맡겨 종사를 잇도록 했다. 그러므로 눈물을 삼키고 인내하여 경거망동하지 않고 벽지의 빈궁한 곳에서 생활하며, 떄를 기다려 장수를 선발하고 병사를 훈련시키고 은밀히 회복을 기대했다. 창을 베개 삼아 빗소리를 듣고, 말을 단속하여 별을 바라보고, 조심하고 또 신중한 것이 30년이 되었다.


 저들 오랑캐의 군주는 무도하고 간사함이 넘쳐서 도의의 유가들은 모두 하급 관직에 있고, 어리석은 무리들은 모두 높은 관직에 있다. 군주는 혼미하고 신하는 몽매하며, 서리는 혹독하고 관리는 탐욕스러워, 산하는 비통해하고 부녀와 자제가 눈물을 흘린다. 혜성이 떨어지니 위로는 하늘이 원망하고, 산이 무너지고 땅이 흔들리니 아래로는 땅이 원망한다. 관리가 관직을 매매하니 조정에는 사신이 원망한다.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니 향촌에서 백성이 원망한다. 관세를 무겁게 물리니 길에서 상인이 원망한다. 요역을 빈번히 일으키니 점포에서 공인(工人)이 원망한다.


 본인은 위를 바라보고 아래를 굽어보니, 폭정을 벌하고 백성을 구하며 하늘에 순응하고 여망에 부응하는 날이 이제야 이르렀음을 알았다. 문무신공을 이끌고 모두 의거에 참여하여 갑인년 정월 원단 인각에 세 명의 황제를 추봉하여, 천지에 제사를 지내고 삼가 대보에 올라 주계(周啓)라는 연호를 세우고 격문을 반포하도록 했다. 종묘에 고하고 군대를 일으켜 길일을 택해 출병했다. 총통 병마 상장 경(경정충)과 초토 대장군 총통 세자 정(정경)에게 서신을 보내, 수륙 관병 360만 명을 모아 연산을 공격하게 하고, 노수로 말을 달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했다. 


 의로운 깃발을 올리니 사방에서 호응하여 신민의 마음이 크게 통쾌해하며, 천인(天人)의 분노를 같이 설욕하고자 했다. 우리의 신무(神武)를 진작하여 저들의 기운을 없애고, 증훙의 전략을 개발하여 맹위를 떨치며, 만전의 책략을 세워서 은택을 노래할 것이다. 시의를 잘 알고 있다면 바람이 불어도 순풍이 불고, 초목이 손상되지 않고 닭과 개도 놀라지 않는다. 감히 순리를 어기고 역적을 따르거나, 목전의 사사로운 은혜에 연연해하고, 중원의 원래 주인을 잊고 요충지에 거하여 우리 왕사에 저항하면, 철기를 독려하여 친히 소굴을 정복하고, 노유(老幼)를 남기지 않고 남녀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다.


 만일 병법에 정통한 유학자가 있어 암곡에서 분발하고 우리 군에 책략을 제시하면, 재주를 헤아려서 우대 발탁하고 고관의 직과 높은 봉작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각 성의 관원들은 백성을 사랑하고 청렴이 두드러진 자는 그대로 임명한다. 징수한 양곡을 창고에 넣어 두고 인신과 책적(호적 및 토지장부)을 우리 군에게 내놓으라. 아직 다 밝히지 못한 사항은 따로 조약을 낼 것이니 각기 조심하고 경계하여 피를 흘리지 않게 된다면 본인에게도 매우 다행이고, 천하도 매우 다행일 것이다.

─ 강희제 평전, 민음사, 장자오청



"황제가 되고 싶다." 라는 말을 저렇게 길게 늘여놓는것도 재주죠. 그런데, 그보다도 "그냥 황제가 되고 싶다." 라는 이유만으로, 군사를 일으키는게 가능할 만큼 당시가 후대의 명분등에 별 연관이 없는 시대라는 설명도 됩니다.






또다른 모습으로, 유방이 천하 통일을 한 후, 공신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대체로 나라를 세운 개국 공신들이라면, 신하들 중에서도 최고 중의 최고이고, 세상에 그보다 존귀한 신분도 찾기 힘들텐데, 이 한제국의 위풍당당한 공신들의 모습은,


고제는 가혹한 진나라 법을 폐하고 복잡한 의례를 간소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군신들이 연회석 상에서 서로 공을 다투다가 심지어는 술에 취해 망동하며 검을 뽑아들고 기둥을 내려치는 자들도 있었다. 고제가 보고 매우 근심했다. ─ 유경 숙손통 열전



그 엄청난 신분의 사람들이, 같이 술을 마시면서 마치 시장통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처럼 "내가 더 잘났음." "뭔 소리? 내가 더 잘싸웠음." "ㅆㅂ 놈아 한판 뜨자." 하면서 서로 욕짓거리 하고 술 먹고 검을 기둥에 쾅쾅 내리치면서 황제 앞에서 싸웠다는 말입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후대의 다른 왕조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그리하여, 아, 이 놈들 안되겠다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 하여 유방이 숙손통에게 예절을 정비하게 하라고 할때, 이때 유방의 태도 역시 이후의 군주들은 찾아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무릇 유자들과는 앞으로 달려가 무엇을 빼앗아 오는 일은 못하지만, 수성은 할 수 있디. 신에게는 노나라에서 데려온 유생들이 있다. 신의 제자들과 함께 조정의 의례를 일으켜보고 싶다." 

"만드는데 어렵지 않겠는가?"

"오제는 각기 다른 음악을 즐겼고 삼왕의 예는 서로 달랐다. 예란 시대와 사람들의 정서에 따라 간략하게 하기도 하고 화려하기도 하다. 고로 하은주(夏殷周) 삼대(三代)의 예는 빼기고 하고 더하기도 해서 서로 중복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신은 원컨대 고대의 예법과 진나라의 의례를 취해 한나라의 의례를 만들고자 한다." 

"시험삼아 만들어 보라. 그러나 사람들이 쉽게 알게 하고, 내가 능히 행할 수 있게 하라."



상투적인 표현대로라면 무너진 예절을 정비하고 옛것을 정비해야 할 고조가, "그거 어렵지 않음?" "ㅆㅂ 나 어려운거 모르고, 다른 사람들도 잘 모르니까, 좀 쉽게 만드셈. 내가 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드셈." 하면서 사정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에 이대로 시행해 보고 난 다음, 유방이 하는 소리도 "야, 내가 드디어 황제 귀한 줄 알겠다." 이 말입니다. 무슨 무너진 법도를 돌이켜 세우고 종묘를 정비하는 장엄한 광경 그런게 아니라 되려 코믹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선 유방이 부하들의 망나니같은 행패에 근심했다고 하는데, 

사실 유방도 별 다를건 없습니다.





주창이라는 위인은 힘이 세고 직언을 서슴치 않아 소하와 조참 같은 사람은 그를 두려워하여 멀리했다. 한 번은 주창이 고조가 연회를 열었을 때 일을 상주하려고 연회석상에 들어갔다. 그때 고조는 곁에 척희(戚姬)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주창이 보고 돌아서서 도망쳐 나오려고 했다. 고조가 뒤따라가 주창의 목덜미를 타고 올라가 물었다. 

“ 나는 누구와 같은 임금이냐?” 

주창이 고조를 우러러보며 말했다. 

“ 폐하께서는 걸주(桀紂)와 같은 폭군이십니다. ” 

고조가 웃으며 지나갔지만 그 후로는 고조는 주창을 매우 두려워했다. 

─ 열전36 丞相張蒼外



연회석에서 유방이 자기 애첩을 끼고 있자,

그걸 보고 주창이라는 인물은 그냥 "못볼거 봤네." 하고 나와버리고,


그 모습을 본 유방은 난데없이 갑자기 나가버리는 사람에게 달려들어서 덮쳐서 자빠뜨리고

마치 프로레슬링 하듯이 목 위에 올라타서


" 야 임마! 나는 누구같은 임금이냐!" 하니까



그냥 왕도 아니고 황제(....) 밑에 깔린 부하가 황제에게


"너는 딱 하나라 걸왕하고 상나라 주왕이다 ㅆㅂ 놈아."


이러자 황제가 껄껄 웃고 관뒀다는 에피소드입니다.






초한쟁패기의 싸움 중에 장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보통 친구였다가 원수가 된 진여와 세트로 묶이는데, 유방의 천하통일 후에는 조나라 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장이의 아들은 장오라는 인물이었는데, 이 사람의 왕후가 유방의 딸입니다.



장이가 죽고, 당연히 장오가 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bc 200년 무렵, 유방은 평성에서 장안으로 들어가면서, 조나라 변경을 지나갔고, 당연히 장오도 헐레벌떡 나와서 유방을 대접했습니다. 황제를 대접하는 일이니 친히 음식을 올리면서 매우 신경을 썼죠.



하지만 유방은 딱히 악의가 없더라도 본래가 무례한 사람이라, 친절을 베푸는 장오에게 상당히 무례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기록된 그대로 보자면 의자에서 내려와서 발을 쭉 뻗고, 장오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장오는 그래도 명색이 조왕입니다. 


장오 자체는 유방의 태도에 별로 신경을 안썻지만, 장오의 부하중에 관고라는 인물이 이에 분개하여 일을 꾸미는데,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고







이외에 조참의 경우도 있습니다. 

사기 조상국세가를 보면, 조참은 정말 아무런 일도 안했습니다.
일을 안하는 정도가 아니라,


밑에 관리들은 말 별로 안하고 글재주도 없는 사람을 쓰고, 말 잘하는 사람은 내쫒고

맨날 술만 마시면서
다른 사람들이 보다 못해서 왜 일안하냐고 따지러 오면


곧바로 술먹여서 입 다물게 하고



매일매일이 술마시고 노는 파티
밑에 부하들도 같이 다 술마시고 에브리 바디 파티 데이


누가 잘못해도 됬어 됬어 하면서 넘기고


아들이 아버지 왜 이러심? 하니까 밑도 끝도 없이 두들겨 패고


3년을 이렇게 놀다가 사망


소하가 다 알아서 해놨는데 내가 할게 뭐냐는 식





물론 실제로도 그게 정답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후대의 경우라면, 아무리 상황이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하진 않았을 겁니다. 


혜제 2년, 소하가 죽었다. 조참은 그것을 듣고, 사인에게 알려 짐 꾸리기를 재촉하여 말하기를, “내가 장차 들어가 재상이 되리라.” 얼마 안 되어, 사자가 과연 조참을 소환했다. 조참은 떠나, 그 후임이 된 재상에게 맡겨 말하기를, “제나라의 감옥과 시장을 맡기니, 삼가 소란하게 하지 말라.” 후임 재상이 말하기를, “이것보다 크게 다스리지 말라는 것입니까?” 조참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무릇 감옥과 시장은, (그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함께 받아들여지는 바인데, 지금 공이 그것을 소란하게 하면, 간악한 사람이 어디에 받아들여질 곳이 있겠는가? 나는 그리하여 앞서 시행한 것이다.”


조참이 처음 미천했을 때, 소하와 더불어 친했는데, 장수와 재상이 되자, 틈이 생겼다. 소하가 장차 죽는 데 이르러, 현인을 추천하는 바가 오직 조참이었다. 조참은 소하를 대신하여 한나라 상국이 되어, 모든 일에 변경되는 바가 없게 하고, 일체 소하의 약속을 준수하였다.


군국의 관리로서 문장이 질박하고 말이 적은 자를 택하여, 장자를 귀중하고 후하게 대하고, 곧 불러서 승상사를 제수했다. 관리의 말과 문장이 엄하고 심하여, 명성을 날리는 데 힘쓰고자 하면, 즉시 그를 배척하여 내쫓았다. 밤낮으로 진한 술을 마셨다. 경과 대부 이하 관리들과 빈객들이 조참이 일을 수행하지 않는 것을 보니, 내왕한 사람들이 모두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다. (조참의 관사에) 이르면, 조참은 즉시 독한 술을 들이키고, (온 사람이) 그 사이에,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다시 그에게 (술을) 먹여, 취하여 뒤에 물러가니, 끝내 입을 열어 유세할 수가 없게 한 것을, 항상 그렇게 하였다.


재상의 관사 후원이 관리의 관사에 가까웠는데, 관리의 관사에서는 날마다 마시고 노래불렀다. 따르는 관리가 그것을 싫어하였으나, 그것을 어찌할 수 없어서, 이에 정원 안에서 노는 조참을 청하여, 관리들이 취하여 노래부르는 것을 듣게 하니, 따르는 관리에게 다행스럽게도 상국이 그를 불러 살폈다. 그러나 도리어 술에 취하여 늘어져 앉아 술을 마시고, 역시 노래를 부르며 상국과 더불어 호응하여 화답하게 되었다.


조참은 다른 사람이 작은 잘못이 있는 것을 보면, 오로지 그것을 가리고 숨기며 덮어두니, 관청 안이 무사했다.


조참의 아들 줄은 중대부였다. 혜제는 상국이 업무를 다스리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어찌 나를 업신여기는가?’하고 생각했다. 이에 조줄에게 일러 말하기를, “그대가 돌아오면, 시험삼아 사석에서 가만히 부친에게 질문하여 말하기를, ‘고제께서 새로이 여러 신하들을 멀리하였고, (지금) 황제께서는 나이가 어린데, 아버님은 상국이면서, 날마다 술을 드시며, 일을 청하는 바가 없으니, 무슨 이유로 천하를 걱정하게 합니까?’라고 말하고, 내가 그대에게 말하였다고 하지 말라.” 


조줄은 씻고 목욕한 뒤에 돌아와서, 그 사이에 (부친의) 시중을 들며, 스스로 그 (말한) 바를 따라 조참을 간하였다. 조참은 노하여, 조줄에게 2백 대를 때리고, 말하기를, “어서 (조정에) 들어가 (폐하를) 모시라, 천하의 일 가운데 네가 마땅히 말할 바는 없다.” 


조회를 할 때에 이르러, 혜제는 조참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어찌 조줄을 (죄를 주어) 다스렸소? 그것은 내가 공에게 간하게 한 것이오.” 조참은 관을 벗고 사죄하며 말하기를, “폐하께서 스스로 살피시건대 인덕과 무예에서 고제와 더불어 누가 낫습니까?” 상이 말하기를, “짐이 어찌 감히 선제를 바라보겠소!” 말하기를, “폐하께서 신을 보시기에 능력이 소하와 더불어 누가 현명합니까?” 상이 말하기를, “공은 (소하와) 비슷하나 미치지는 못하오.” 조참이 말하기를, “폐하께서 그것을 말씀하신 것이 옳습니다. 또한 고제와 소하가 천하를 평정했고, 법령이 이미 명백한데, 지금 폐하께서 팔짱을 끼고 내버려두며, 저 등도 직분을 지키고 있으니, (소하의 법을) 준수하며 실수하지 않음이, 또한 가하지 않습니까?” 혜제가 말하기를, “옳소. 공께서는 쉬시오!”



조참은 한나라 상국이 되어, 출입하기를 3년이었다. 죽으니, 시호를 의후라 올렸다. 아들 조줄이 제후 자리를 대신했다. 백성이 그를 노래하여 말하기를, “소하가 법을 만드니, 올바름이 줄을 친 듯 가지런하며, 조참이 그것을 대신하니, 지키면서 실수가 없었네. 그 맑고 고요함을 업으니, 백성들이 한결같이 평안하네.”

─ 사기 조상국세가





대체로 모든 일이 의례와 형식, 그리고 권력자가 된 당사자들의 태도 변화 들이 있을텐데,


여지껏 중국에 여러 왕조가 있었어도, 평민 출신들이 지도자가 된것은 가히 전한이 최초다 보니,


온갖 일들이 다 정착되기 전에 패현 건달 출신 유방과 그 칭구들이 난리 치고 좌충우돌하고 
하는 모습들이 다 사관들의 윤색 없이,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전달이 됩니다.

 

다 엄숙해지고 심심하면 사람 죽어나가는 한무제 시대 때 이르게 되도, 이런 모습들은 약간은 남아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무제는 똥 누면서 -_- 위청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대장군 위청은 비록 귀하기는 하나, 때로는 궁중에서 모시고 있으니, 황상은 측간에 있으면서도 그를 만나 보았고, 승상 공손홍은 편하게 만나면서, 때로는 황상이 관을 쓰지 않았다. ─ 자치통감




물론 똥누면서 만났다는 -_- 이야기는 약간 과장한 이야기로, 이 당시의 측간이라는것이 규모도 작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 황제가 사람 눈을 피해 회담을 나눌 수 있는 밀실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해당되는 부분의 언급을 보면, 무제가 "비밀스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위청을 소환" 한게 아니라,

"측간에 있을때조차도" "위청과 만났다." 로 해석하는편이 나을 것입니다(원문은 안봐서 모르겠습니다. 번역은 권중달 교수의 번역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면으로 보았을때, 유방과 그 칭구들의 대두는
본래 피지배층에 가까울 인물들이, 긴 시간을 거치며 지배층의 습성과 비슷해져 대두된것 조차도 아닌,


피지배층의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채, 지배층이 된 사례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모든 면에서 주, 더 나아가면 상에서부터 이어질 수백년간의 제후들과는 모든면에서 다른 존재들입니다. 


그 맞수였던 항우는 이에 반대로 전국시대 사람 그 자체였고 말입니다.




신하에게 달려들어 넘어뜨리는 황제,

황제의 앞에서 술에 취해서 칼을 휘두르며 서로의 공적을 자랑하는 부하들,

술만 마시는 재상,



바로 여기서부터, 진정한 의미의 중화(中華)가 시작되었다는것은,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유쾌한 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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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텟신 | 작성시간 13.01.05 3년간 술만 퍼마셨다는건 아마도 조참 나름의 처세술이 아닌가 합니다. 불만이 있어 찾아온 관리들은 술을 먹여 돌려보내고 잘못을 저지른 관리는 잘못을 덮어주고 약점을 잡아 누르고... 아마도 다음 재상에게 소하의 유산을 온건하게 물려주는 것을 본인의 역할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오로쿠트 | 작성시간 13.01.07 잇다른 전란으로 인구 규모는 작은데 반해 철기의 개발로 개척할 공간은 넓었던 초기 왕조라 하부구조에서부터 여력이 남아돌았던게 아닌가도 생각됩니다. 인구밀도가 높아지고 빈부의 차로 계층이 분리되는 후대로 갈수록 중국의 정부가 맡아야 할 일은 그야말로 복잡했죠. 하지만 저때는 한국전쟁 이후의 한국처럼 고대의 지배층도 대부분 몰락하고 인구는 작은데 땅은 넓으니 백성의 부담도 크지 않았고 아직 초기라 번잡스런 관료기구의 폐단도 적었을 때니 작은 재정과 정부로도 충분히 국가를 운영할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문경지치가 가능했겠죠.
  • 작성자papepo | 작성시간 13.01.05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Kweassarius 1세 | 작성시간 13.01.06 나도... 나도 황제할거야..!
  • 작성자☆싸이코 투투★ | 작성시간 13.01.08 주창 꽤 재미있는 인물이 었네요. 임금에게 걸주와 같다고 하다니.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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