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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전한 공신 중 '해연' 이라는 정체 불명의 인물에 대해 정보를 찾습니다.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3.05.31|조회수728 목록 댓글 4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第六) 후제(侯第)
6위 곡주후(曲周侯) 역상7위 노후(魯侯) 해연8위 여음후(汝陰侯) 하후영

奚涓

중국 초한쟁패기 시대 활약한 인물……임은 분명 한데, 수수께끼 같은 인물.

고조공신후자연표의 순위가 7위나 될 정도의 인물임에 불구하고, 사기 열전 등에 전혀 기록이 없다. 사기 표(表)에서는 일단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인으로서 패(沛)에서 고조를 좇아 기병하여 함양에 이르러 낭중이 되고, 한에 들어와 장군으로서 제후를 평정하고 사천팔백 호의 후(年)가 되다. 공이 무양후 번쾌에 비견되다. 유방의 대업을 위해 전사하였기에, 그의 어머니가 후(年) 를 대신하다.


그리고는 이후 봉국에 대한 연표에서 모후(母侯) 자(疵) 원년 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즉, 이 인물의 어머니 - 여자가 제후에 봉해진 것이다.[1] 이후 그 '모후' 가 사망하자 후손이 없어 봉국이 끊어졌다고 한다.

4800호 정도를 받고, 유방의 고향 부근인 패 땅에서 부터 유방을 따른데다, 번쾌에 버금가는 공을 세우고 유방을 대업을 위해 목숨을 바쳤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인데, 관련된 기록이 전혀 없는 것이다.

유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공신이라면 기신(紀信)이 있다. 기신을 잘못 표기했나 싶기도 한데, 그런데 양평후 기통(紀通)이라는 인물이 전사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봉해졌는데, 이 인물이 기신이라고 하니 기신도 아니다.[2][3][4] 

위키를 보는 인물 중에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수정바람(……) 만약 기신하고 전혀 별개의 인물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기록이 없는게 대단히 이상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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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말 드문 일이지만 여씨들이 날뛰던 전한 초기에는 정말 가끔 그런 케이스가 보인다.
[2] 그런데 조선 중기때 활약한 인물인 장유(張維)는 한조불록기신논(漢祖不錄紀信論)이라는 글에서 유방이 기신을 제후로 봉해주지 않았다면서 깠다. 그리고 기통이 기신의 아들이라는 이야기에 대해선, 자기가 살펴보니 기통은 기성(紀成)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기신이 기통의 아버지라는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기신은 해연일 수도 있다.
[3] 일단 김원중 역 사기 표에서는 문제의 양평후에 대해서 '기성' 에서 '거병'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성이 사람 이름이 아니라 성이라는 것이다.
[4] 그런데 또 중국어 위키백과 등에서는 기성(紀成)으로 검색하면 아예 그냥 기신(紀信)이 뜬다. 즉 기성은 기신이지, 기성이 사람 이름이 아닌 '기' 라는 '성' 은 아니라는것. 그렇다면 김원중의 오역인가...





엔하위키에 전한 공신들의 후제를 정리하다 여기서 막혀버리는데

이 사람 정체가 뭐지 대체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 전에 '해연' 이라는 이름이 맡긴 한지도 모르겠네요. 김원중 역 사기 표 에서는 바로 이름을 표시하지 않고 이후 연표에서 '장후 여마동 원년' 이라는 식으로 해서 나오는지라, 본인이 제후가 된게 아니라 어머니가 제후가 되어 '모후 원년' 이라고 나오는 이 인물은 이름도 안나옵니다. 


해연이라는 인물은 인터넷 상의 제후 순위 이런것에서 본 이름인데, '한서' 에서 나오는 이름인지...


기신 - 기통 - 기성 여기에 대해서도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그냥 기신 - 기성이면 그렇구나 싶은데 김원중 역 표에서는 '졸병으로서 기성에서 처음 거병하여 장군으로 고조를 좇아..' 이런 식으로 나와서 더 헷갈리게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김원중 역에서 제후의 이름을 설명하지 않는지라, 이 인물이 이후 연표에서 본인이 아닌 아들인 '양평후 기통 원년' 이런 식이라 본명도 모르겠고



기통의 아버지가 기신이 아니면 개인적으로는 이 '해연' 이라는 인물이 기신 같은데, 그게 아니면 정말 저 정도 인물이 왜 그렇게 기록이 없는지 이상하네요. 별 행적이 없어 보이는 주설 같은 인물도 열전이 있는데, 4800호에 유방을 위해 죽었다는 사람이 언급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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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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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jyni | 작성시간 13.05.31 한자로 검색해서 나온 중국사이트에 나온 내용도 모두 위의 것과 같은걸보니, 잘못된건 아닌데, 그 이상의 기록이 없는 것 같네요.

    由於劉疵在史書中無記載?多數學者從同時出土的錢幣?以及3把鐵劍?2件銅弩機推斷?墓主人劉疵是西漢早期的一位列侯。有學者猜測?墓主人可能是奚涓之母“疵”?根據《史記?高祖功臣侯者年錶》和《漢書?高惠高後文功臣表》記載?奚涓為漢高祖劉邦舍人?隨劉邦起兵于沛?入咸陽後?官拜郎中。劉邦封漢王後?奚涓為將軍?漢高帝六年(前201年)?以軍功封魯侯?食邑4800戶?功比舞陽侯(樊噲)。奚涓死後?因無子?封其母疵為侯。疵在位10年?呂后五年(前183年)薨?封除
  • 답댓글 작성자신불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5.31 그럼 정말 미래에서 유방을 돕기 위해서 날아온 천군이라도 되는지..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신불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6.01 아,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기성은 사람 이름이 맞습니까?

    김원중 역 사기 표에서는 '졸병으로서 기성에서 처음 거병하여 장군으로서 [고조를] 좇아 진을 공격하여 격파하다. 한에 들어와 삼진을 평정하니 공이 평정후에 비견되다. 호치에서 싸우다가 죽다. 아들 기통이 아버지의 공을 계승하여 후가 되다.' 라고 적혀 있어서 기성이 '인물' 이 아니라 '지명' 처럼 나오는데, 김원중의 오역일까요?
  • 작성자타마네 | 작성시간 13.05.31 근데 기통이 기신의 아들이 아닌가요? 화설중국(중국을 말한다)에서도 기신의 아들이라 쓰여 있던데.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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