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중국사]수신(水神) 정성공(1) ─ 세상으로 나가는 길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5.22|조회수1,438 목록 댓글 11

"오늘날에도 대만 곳곳에서는 주민들이 여전히 정성공에게 비를 내리게 해달리고 빌고 있다."

─ 조너선 클레멘츠, "해적왕 정성공"

 

 

 

 

 

정성공

 

 

정성공의 아버지 정지룡은 분명하게 성향을 알 수 있는 인물입니다. 사기꾼이고, 배반을 잘 하며, 영리하고, 기회주의적이면서 어떤 면에서는 범상치 않은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성공의 어머니 다가와(田川松)는 알기 힘든 인물입니다. 출신 기록이 불분명한 것입니다.

 

 

 

정지룡과 정성공을 폄하하는 쪽에서는 다가와를 일본의 고급 매춘부 또는 항구의 평범한 창녀, 술집 여자로 묘사하기도 하나 정지룡이 처음 그녀를 만난것은 지방 영주 마쓰라라는 사람의 연회에 참석 후 벌어진 일이라고 합니다. 지방 영주쯤이나 되는 사람이, 연회에 일반적인 매춘부를 데려와서 대접을 해주었다고 보기는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역으로 정지룡을 긍정적으로 보고 정성공을 높이 뛰어주려는 쪽에서는 다가와를 공주에 가까운 인물로 묘사한다고 하기도 하나, 이 역시 가능성은 그다지 많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보통 다가와의 아버지는 다가와 시치자에몬 (田川七左衛門)이라고 알려졌으며, 이 사람은 사무라이로서 마쓰라에게 봉사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시치자에몬으로부터 17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다이라노 시게모리(平重盛)라는 인물이 나오고, 시게모리의 아버지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가 나오는데 이 사람은 헤이자의 난 등을 진압하고 태정대신이 되었던 인물입니다. 이런 가계 때문에 다가와의 출생은 더욱 논란이 일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중국 민간의 노래나 다른 글에서는 다가와는 일본에서 성장했지만 조상은 중국인이라는 노래도 있는가 하면, 다가와는 중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난 혼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잇고, 아버지의 이름도 시차자에몬이 아니라 복건의 대장장이인 옹익황(翁翊皇)이라는 인물이 다가와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헌정(劉獻廷)이라는 17세기의 작가는 광양잡기(廣陽雜記)라는 책에서 이런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 정지룡은 젊은 시절에 일본으로 도망해서 재봉질을 해서 생활을 하였다. 하루는 그가 옷의 길을 달아주는 대가로 받은 동전 3 냥을 그만 길에다 흘리고 말았다. 잃어버린 돈을 찾아 사방을 헤멘 정지룡은 끝내 찾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때마침 남편과 사별한지 얼마 안 된 한 일본 여인이 집 문 앞에 나와 있었다. 여인은 주위를 헤매는 정지룡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그녀가 정지룡에게 말했다.

 

"당신의 뛰어난 재주는 잔디밭에서 풀잎 뽑듯 300만 냥의 동전도 쉽게 벌고 남을 터인데, 어찌 고작 3냥에 연연하시는거죠?"

 

그녀는 그날 밤을 정지룡과 함꼐 보냈다. 정지룡은 그녀와 결혼하였다.

 

 

 

정지룡이 일본에 도착을 했을때는 이단의 부하였을때고, 3냥 정도의 동전을 잃어버렸다고 울음을 터뜨리고 한다는것은 상상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다가와의 이름에 관해서는 어떤 의견도 별로 힘이 없습니다. 중국쪽에서는 문(文)이라는 기록이 있다는데, 일본쪽에서의 발음은 Fuku나 Aya, Fumi로 발음을 하기도 하지만 결론은 없습니다. Fuku같은 경우엔 정성공의 어린시절 이름이 후쿠마쓰(福松)라는 것 때문에 연관을 짓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Asa라고 확신하기도 한답니다.

 

 

 

 

 

무엇이 어찌되었건 정지룡은 곧 그녀를 떠났고, 안씨 부인과 중국에서 결혼을 했습니다. 정성공의 출생에 관하여서도 온갖 전설들이 윤색되어 있는데, 비천한 출신으로 몸을 일으켜 강대한 권력을 획득한 정지룡과는 또 다른 이야기들입니다. 대만외지에서는 정성공의 출생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폭풍우가 있었고, 파도가 들이닥치는데, 해변에 있던 사람들은 대양으로부터 옷아오른 거대한 바다 동물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그 바다 동물은 파도 위에서 춤을 치는듯 했고 두 눈은 어둠속에서 이글거렸습니다. 바로 고래로, 정성공은 고래를 수호령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다른 이야기로는 임신한 다가와가 잠자리에서 뒤척거릴때, 바다에서 거대한 동물이 그녀의 가슴으로 뛰어드는 꿈을 꾸었고, 그녀가 일어나서 해변을 걷고 있자니 폭풍우가 잠잠해졌으며, 갑자기 산기가 느껴져 해변에서 홀로 아들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아이(정성공)이 헛 숨을 세상에 내쉴 무렵, 히라도의 하늘에 황금색의 빛줄기가 퍼지고 축복의 북소리가 허공을 가득 채웠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실이건 간에 정성공은 유년시절 후쿠마쓰로 불렸고, 그 이름은 행운의 소나무라는 의미가 되는 동시에, '마쓰' 는 정지룡과 그의 패거리들이 가장 신봉하는 바다의 여진 마조(媽祖)와 발음이 같기도 합니다. 마조는 해신이자 여신이며, 천비낭낭(天妃娘娘)이라고도 불리면서 중국 동남부의 연해에서 항해를 관장하는 여신으로 불리었습니다.

 

 

 

이야기가 이렇게 되자 불한당 해적 정지룡이 관계를 맺은 대상이 다가와가 아니라 고귀한 바다의 여신이 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됩니다. 정성공을 낳은 사람은 다가와가 맡지만, 진정한 어머니는 마조라는 전설이 생긴 것입니다. 바다의 여신 마조가 정성공이 태어나던 날 아침에 폭풍우의 정령과 거대한 고래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그 후 정성공의 평생에 걸쳐 그의 항해를 보살펴 주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휘황찬란한 이야기들이 정성공의 앞에 놓여있고 각종 전설들이 그를 치장해주었지만, 어린 시절의 후쿠마쓰는 히라도에서 어머니와 같이 살았고 어찌 살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다가와는 사실상 정지룡과는 별개로 후쿠마쓰를 키웠습니다. 간혹 정지룡이 다가와를 찾아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 무렵의 정지룡은 정실부인이 있는데다 대만과 네덜란드, 이단의 후계자 문제 등으로 정말 바쁘게 지내던 때입니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간간히 돈을 보내주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린 시절 정성공이 일본에서 무술을 배웠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나이가 워낙 어린지라 만약 그럤다고 하더라도 거창한 수준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1629년, 다가와는 (아마도 정지룡이 아버지는 아닐) 둘째 아들을 낳았는데, 하필이면 그때 정지룡의 동생 정지연이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그 당시 정지룡은 사실상 남중국해의 왕이자 복건의 지배자로 지내던 절정기였고, 정지연은 정지룡의 편지를 다가와에게 주면서 중국으로 오라고 권유했습니다. 정지룡은 다가와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오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다가와는 거절했는데, 다시 한번 정지룡의 동생 정지아가 형의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확실히 안씨 부인이 있으니 다가와는 중국에 오면 처지가 묘해질 수도 있지만은, 아들을 위해서라면 중국으로 가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다가와는 중국으로 가질 않았지만, 후쿠마쓰를 그들의 배에 태워 보냈습니다. 7살때의 일이었습니다.

 

 

 

어린 소년 정성공은 열흘에 걸친 항해동안 마음에 상처를 입었고, 어머니가 계실 동쪽을 바라보며 울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 도착하자, 정지룡은 자신의 아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였습니다. 더이상 후쿠마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일은 없었고, 소년은 "정삼"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큰 나무로 대성하기를 바라며 대목(大木)이라는 자를 지어주었습니다. 이제 모험의 시기를 끝내고 정착한 정지룡은, 자신의 후계자로 정성공을 낙점하고 키우려고 마음 먹었던 것입니다.

 

 

 

정지룡은 정성공이 알지 못했을 이복 형제들을 소개해주었고, 안해성을 구경시켜주었습니다. 이 당시 정지룡의 부는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분수와 물고기가 노니는 연못과 서화, 옥, 금등으로 가득찬 정자나 정원은 조그만 소년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심지어 조그마한 동물원까지 있었던 판국입니다. 정성공은 궁궐같은 집에서 새 어머니와 이복 형제들과 지내게 되었습니다. 안해에서 정성공은 15세가 넘을 때까지 지내게 됩니다.

 

 

 

바로 이 무렵이 정지룡이 명 조정의 부름을 받고 내륙으로 임무를 수행하러 떠나던 시기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정성공의 눈에 비친 정지룡은 교활한 해적이 아니라 명 왕조에 충성을 당하는 수군 제독이자 엄청난 지역을 다스리는 책임감 있는 지배자로 보였습니다.

 

 

 

조그맣고 귀여운 조카 소년에게 정지룡만큼이나 거칠고 모험을 겪었던 삼촌들은 친근감 있게 다가와 정지룡과 그들 형제의 모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붉은 머리 오랑캐'들의 악행과 그들을 물리치는 아버지 정지룡의 신나는 모험과 정의감 넘치는 이야기, 숭정제에 충성을 바치는 아버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또 이 시기에 정지룡은 VOC의 대만 총독 푸트만스를 상대로 완벽하게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정지룡은 바다의 여신 마조가 "우리 가족의 편" 에 서서 싸웠다며 아들에게 서양 오랑캐를 물리친 무용담을 들려주었습니다.

 

 

 

어린 시절 정지룡은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하라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해적질로 성공했지만, 정작 나이가 들고 보니 그 역시 돈보다 더 높은 명성과 출신 계급에 대한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아들 정성공은 그런 정지룡의 소망을 이루어줄 수 있는 존재였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정성공은 (정지룡은 읽은 적도 없을) "춘추"나 유교 경전, 역사서들을 배웠습니다. 무술 역시 배웠는데, 용맹한 삼촌 정지봉이 그의 무술 스승이었습니다. 정성공의 검술 실력은 상당히 뛰어났습니다.

 

 

 

정지룡은 자신의 계획의 일환이자 희망인 정성공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정지룡의 아들을 납치하고픈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정지룡은 적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중국인, 일본인, 네덜란드인 등등.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정지룡이 선택한 경호대는 정말 뜻밖의 존재였는데,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용사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규모는 무려 500여명 정도였고, 본래 포르투갈인들의 노예였으나 정지룡이 마카오 등지에서 그들을 구입하고는 자유를 주었습니다. 자유민으로 풀어준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호대로 고용했습니다. 아프리카 흑인들은 자유민이 되긴 했으나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은 전혀 없었고, 무시 당하지 않으면서도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제한적이었기에 기꺼이 정지룡의 경호대에 고용이 되었습니다.

 

 

 

이 흑인들이라면 어떤 나라나 사람들과도 무방하니, 능히 정성공을 지켜줄만 했습니다. 포르투갈 말 밖에 모르는 흑인들이었지만 정지룡은 마카오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포르투갈 어 쯤은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인물입니다. 정지룡은 이들을 굉장히 신뢰해서, 어떤 중국인들보다도 가장 가까이 옆에 있게 했습니다.

 

 

 

곱슬머리에 검은 피부의 거한들은 갑옷을 입고 그 위에 비단옷을 입어 안그래도 거대한 체구는 더커보였고, 얼마 안 있어 "정지룡의 악마 부대"에 관한 소문은 멀리 퍼져 흑인 부대가 나서기만 해도 적들은 겁에 질렸습니다. 그들은 어쩌면 가장 순수한 가톨릭 신자들이었고, 공격에 나설때마다 수호성인인 성 야고보를 외쳤는데, 그 소리만 듣고도 상대는 오금에 저렸습니다. 정성공은 이 용사들이 대체 어디서 온 사람들이냐고 물었는데, 정지룡도 이렇게 밖에 대답해줄 수 없었습니다.

 

 

 

"바다 너머에서."

 

 

 

이렇게 흑인 경호대의 철통같은 보호 아래, 정성공은 세상의 어려움 따윈 전혀 모르며 안해성의 정원에서 학문을 읽혔습니다. 15세가 지나자 더욱 고등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었던 정성공은 가족에게 인사를 하고 남경으로 떠났습니다. 태학(太學)에 입학하고, 그 유명한 전겸익의 문하에서 공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무렵, 정성공의 가족 중 한명인 과연 이 소년이 어떻게 자랄까 싶어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점쟁이는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습니다.

 

 

"첨으로 놀라운 소년입니다. 용모부터가 범상치 않군요! 장차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니, 고관대작은 아무것도 아니며 특별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 점쟁이는 태학에 입학하는 부자 소년들에 대해서 모두 이런식으로 떠들었을 것입니다. 다만 특별한 덧붙임이 있었습니다.

 

 

 

"벽돌로 지어진 도성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이 시점에선 먼 이야기지만, 20년쯤이 지난 후의 대만, 정성공은 천신만고 끝에 네덜란드의 제란디아 요새에 입성했습니다. 그리고 샤캄 마을에 위치한 프로빈샤 요새를 자신의 관저로 정했습니다. 현지 주민들은 이 마을의 이름이 샤캄 말고도 다른 이름도 있다고 말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요새는 외국에서 들여온 건축 자재로 지어서 독특하죠. 그래서 벽돌로 지어진 성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정성공은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있다 비감에 젖어서 읆조렸습니다.

 

 

"운명을 벗어나기가, 이토록 어렵단 말인가."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신불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5.23 있었습니다 안씨부인 사이에서아들들이 있었죠. 다만 정성공이 맏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BACCANO | 작성시간 12.05.23 맏이라서 그랬군요 그런데 보통은 정실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첩의 자식이 남편의 후계자로 지목되면 해하려고 하는데 그런점이 없었나요?
  • 작성자차로아침을 | 작성시간 12.05.23 차라리 위소보가 정지룡아들이었으면 부자간에 매사에 의기투합했겠다
  • 작성자보한재 | 작성시간 12.05.23 국성야!
  • 작성자북리의 음곡 | 작성시간 12.05.23 잘 읽고 갑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