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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수신(水神) 정성공(3) ─ 효와 충 사이의 이름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5.24|조회수683 목록 댓글 5

북경에 '사실상' 압송된 정지룡은 일단 겉으로는 황족이나 다름없이 호화롭게 지내고 있었지만, 실상은 새장안에 들어간 상황이나 다름없어 북경이라는 감옥 속에 유배된 상황이었습니다. 일반적인 투항자들은 나쁘지 않은 대접을 받고 새로운 지역으로 떠나거나, 위험한 투항자의 경우에는 변방의 국경에라도 떠났는데, 정지룡은 특별 취급 되어 북경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아는 사람을 만들어야 했던 정지룡은 예수회 사제들과 제법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가 포르투갈어 구사 능력이 있기도 하고, 예수회 사제들이라면 마카오에서 정지룡의 이름을 듣지 못했을리가 없습니다. 이 무렵 예수회 선교사들은 제법 높은 위치를 청조정에서 차지하고 있었으나 그들도 정지룡의 상황을 호전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정지룡이 만났을 예수회 사제 중에서는 아담 샬이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일단 둘은 대면한 기록은 없지만 정지룡이 무려 10년여 가량을 북경에서 머물었는데, 아담 샬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것이 더 의아한 일일 것일 겁니다. 아담 샬의 수학적 능력과 외교적 수완등은 청나라 조정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었습니다.



명나라 조정에서도 여러가지 일을 했던 아담 샬이었는데, 청 왕조도 일식, 월식, 유성우 등과 행성들의 궤적에 관한 역법을 만드는데 아담 샬의 협조를 구했습니다. 청 왕조는 그를 황실의 천문대장인 흠천감감정(欽天監監正)에 임명했습니다. 아담 샬 개인으로 말하자면 이 직책을 맡을 의사는 전혀 없었지만, 여러 차례 황제의 특사들이 파견되어 그를 설득하자 동료들과 이야기해보고 60세의 나이에 이를 승낙하게 됩니다. 이 당시의 황제는 순치제였습니다.


순치제는 나이가 들면서 예수회 사제들을 가까이 했고, 아담 샬의 자문에 도움을 받음에 따라 청조 내에서 아담 샬의 위상은 더욱더 높아졌습니다. 그는 나이가 어려 불안정한 순치제의 황권에 가장 큰 지지자 중에 한명이었던 것입니다.


하루는, 강대한 권력을 지닌 도르곤이 북경이 아닌 새로운 도읍을 구상하며 자문을 구하자 아담 샬은 도르래 공법을 소개하는등 자문 자체에는 성실하게 대응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오자 아담 샬은 반대하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천문대장인 그만 할 수 있는 반박이었습니다.


"별들의 신호가 모두 이 일에 대해 경고하고 있소이다."


도르곤은 화를 냈지만, 결국 아담 샬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도르곤도 결국 급사했고, 순치제가 전면에 나서면서 아담 샬의 입김은 더 커지게 됩니다. 또한 궁정 내에서 아담 샬은 인기있는 인물이었는데, 의학적 재능을 갖춘데다 이국적인 크리스트 교의 예법을 가지고 있으면서 중국식 전통 예절에 능한 그는 일종의 신사로 통해 황태후도 그를 신임했습니다. 순치제는 일부일처제 등 여러가지 이유로 크리스트교에 대해선 흥미가 전혀 없었지만, 아담 샬의 조언은 꾸준하게 들었습니다.



아담 샬에 대한 순치제의 신임은 더 공고해져, 아담 샬은 황제를 만날때마다 번거로운 예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어 무릎을 꿇지 않게 되었고, 허가 없이 황제를 만나러 갈수도 있었으며 이는 대단한 권한으로, 심지어 생전의 도르곤조차 순치제에게 몸을 굽혀 예를 취해야 했습니다. 아담 샬은 순치제의 잔에 직접 술을 따라주었고, 순치제는 자신이 사냥한 토끼나 외투를 벗어 주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이 늙은 예수회 사제와 어린 대청제국의 황제는 공식 석상에서 실없는 농담을 서로 스스럼없이 주고 받을 수 있었던 관계였던 것입니다.   





만주족은 정지룡을 본격적으로 이용했습니다. 우선 낮은 작위를 부여한뒤, 정성공을 구슬리는것이 성공하면 높은 지위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만주족의 노리개 신세인 정지룡에게는 상당한 협박이 가해졌을 것입니다. 만주족들 사이에서 '대체 왜 정지룡이라는 자를 성가시게 살려두는가' 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정지룡은 공들여서 편지를 써야 했습니다.



편지에서 그는 만주족이 정성공에게 평화 협상에 응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썻습니다. 이에 대해 정성공은 의례적인 짦은 답신을 보내, 자신이 최근 남쪽에서 행하고 있는 행동은 단지 만주족의 침략에 대한 대응일 뿐이라고 답했습니다.



몇달이 지난 후, 정지룡은 보다 분명한 내용의 편지를 두번째로 보내었습니다.

"청조는 화평의 보답으로 영토를 내리고자 한다. 조정에서는 네게 해징공(海澄公)의 작위와 공훈 교지를 전할 것이고, 너를 따르는 자들이 너의 영토에서 거주하는것을 허락할 것이란다."


이 시점의 정성공은 해징을 장악했고, 정성공이 이 제안을 따른다면 더 이상의 파병은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만약 정성공이 이 시점에서 이를 수용한다면 정성공은 해징공이 될테고, 만주족은 귀찮은 싸움이 없을 테니 좋을것이고, 정지룡은 자유의 몸이 될 것이며, 정씨 가문은 하나가 되어 이전처럼 돌아가는 모두가 행복한 결말로 끝날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성공은 정지룡의 어리석은 기대를 배반했습니다. 정지룡이 집요하게 가르킨 유가의 경전들은 정성공에게 '효' 보다는 '충'을 더 앞세운 가치로 내걸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정성공은 일전에 충효백이라는 작위를 하사받았습니다.



정성공의 대답은, 차라리 저주에 가까웠습니다.


"지난 8년 동안……아버님께서는 소자를 아들로 여기시지 않았는데, 감회가 새롭습니다. 연락이 끊겨 아버님과 소자는 그 동안 단 한마디도 주고 받지 못했습니다. 예로부터 정신이 바른 사내들은 가문의 효보다는 나라의 충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소자도 춘추를 읽으면서 처음 그 사실을 배운 이래 그것이 도리라고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소자는 아버님께서 떠나셨을 때를 잊지 못합니다. 그 때 소자는 결심했습니다."


"이제 갑작스럽게 아버님께서는 소자에게 충을 가르치시고자 하시는군요. 저들 만주 오랑캐들의 앞잡이가 되신 아버님께서 소자에게 전보다 높은 훈작이 내려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저들이 아버님께 거짓을 일삼고 있는데, 무슨 일로 아버님께서는 저들이 소자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겁니까?"


"보로가 쳐들어 올때, 아버님께서는 이미 도주하시던 중이었습니다. 사신이랍시고 아첨과 배반을 일삼는 무리들이 아버님을 설득하고자 10여 차례나 배를 타고 찾아와……3개의 성의 도독 직을 제안한 바 가 있습니다. 그것이 불과 몇년 전의 일입니다만, 아버님의 봉토는 어디에 있습니까? 군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아버님께서는 고향으로 돌아오실 수 조차 없는 신세입니다. 그럼에도, 저들이 믿을 만한 자들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정성공은, 분명 여러가지로 다른 점은 있긴 해도 그 기질은 분명 정지룡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못지 않게 남을 조롱하거나 서한을 보내는데 재주를 지녔던 것입니다. 그는 '만주족의 믿지 못할 행위와 악행' 을 거론했으며, 이 안에는 정지룡의 건강을 알아보기 위해 보낸 정씨 가문의 사절을 잔인하게 처리한것, 명나라 왕조로부터는 공으로 책봉당한 정지룡이 만주족 정권에서 후로 강등된 일등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정성공은 그 '만주족의 악행' 에 어머니 다가와의 죽음은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곳에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정성공에게 있어 커다란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정성공은 악행을 언급하는데서 끝나지 않고 청나라 조정과 군대의 어리석음을 조롱하면서, 자신의 휘하 병력이 일본과 인도차이나 등지에서 엄청난 기세로 증원되고 있으며 숫자가 수십만에 달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성공은, 마지막으로 조건을 내세우려면 해징공 따위가 아니라 3개 성을 관할하는 왕의 권한과 영토를 말했습니다.



물론 청나라 조정은 이 따위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고, 정성공 역시 들어주리라 기대하고 쓴 말은 아니었습니다. 정성공의 의도는 청나라에 모욕을 주는 것이었고, 이는 정지룡의 입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정성공이 단박에 청측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터무니없는 요구조건을 제시하면서, 약하게나마 협상의 기미를 보인 이유는 순전히 병력과 물자를 확보하기 위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청측에서는 정성공의 요구를 못들은척 무시하며 일방적으로 그를 해징공에 삼고자 관리를 보냈습니다. 순치제의 칙령은 정성공이 어찌 그렇게 아버지에게 무례할 수 있냐며 짐짓 꾸짖는 한편, 그전까지 생긴 트러블은 순전히 도르곤의 악행 때문이며 이제 도르곤도 죽고 없으니 정성공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대사면을 내릴 것이라며 장황하게 말했스빈다.

清 佚名 《清世祖顺治皇帝朝服像》.jpg
청나라 순치제


"해안 지역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해도, 우리로서는 여전히 더욱 충실한 방어 조직이 필요하도다. 다른 자들을 찾기보다 그대가 이상적인 후보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대의 아비는 제 일가붙이에 대해 확신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대를 강력하게 천거했도다……그대는 그대의 적들을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도 좋으며, 감찰과 해상 화물 징세의 권한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그대가 바다의 평화를 이룩해야 하리라! 그러니 그대는 우리의 명을 거역하지 말지어다."



청나라의 조서는 정성공을 그들의 사략함대로 만들고자 했고, 이는 (북경 정권이 건재하던) 명나라 조정 시기에 정지룡의 위치와 유사합니다. 하지만 정성공은 계속 복주 지역에서 소규모 교전을 개시하며 복건 도독을 무시했습니다. 다만 여러곳을 공격하던 정성공은 천주 지역만은 피했습니다. 천주(촨저우)의 '천'은 하문 방언으로 '벽돌(촨)'과 유사했기에, 어린 시절의 예언을 조심스레 떠올렸던 것입니다.



복건 도독은 정성공에게 '결국 절망적인 상황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환기시키면서, 만약 정성공이 군사적 도발을 계속한다면 조상들의 무덤이 무사하지 못할것이라고 넌지시 협박했습니다. 하지만 정성공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결국 정씨 집잔의 묘역은 파헤쳐졌습니다. 그리고 만주족 특사들이 정지룡의 정실 부인 안씨 부인과, 그녀의 아들이자 정성공의 이복 형제인 정세도, 정세음을 데리고 현장으로 도착했습니다. 변발을 하기만 한다면, 해징공에 봉하겠다는것입니다.


정성공은 시니컬하게 대답했습니다.


"과연, 누가 상상이나 할 법한 일인가? 내 조상의 무덤이 욕을 본 바로 직후에 대규모의 사절단이 비단을 잔뜩 짊어지고는 경건한 마음으로 찾아올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어찌 그 같은 제안을 거절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대들을 기다릴 것이다. 선물은 조금이면 족하다."


특사들은 화를 꾹꾹 눌러참으며 정성공에게 변발을 하고 오라고 통보했습니다. 그러면 해징공을 준다는 것입니다.물론 정성공은 변발 따윈 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정지룡이 북경에 머문지 10년이 가까워지자, 정성공이 도발을 하면 할수록 그들을 바라보는 주위의 눈초리는 견디기 힘든 수준이 되었습니다. 결국 정지룡의 아들이자 정성공의 이복 동생 정세도는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개인적으로 정성공을 만나러 와 무릎을 꿇고 흐느꼈습니다.


"제발 만주족의 명을 받아들여주십시오. 가문의 안위를 지켜주십시오!"


하지만 정성공은 격양된 감정으로 대응했습니다.


"너 같은 아이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 것이냐, 후한 광무제야 예외일 것이다만은, 예로부터 변절하여 잘 된 사람이 있다더냐? 내가 덫에 빠져야 하느냐? 단지 내 아버지가 나보다 덫에 먼저 걸려들었다는 그 사실 하나 때문에 말이다! 매일 같이 나는 저들의 제안을 물리치고 있고, 네 아버지는 만주족들의 궁중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계신다. 만약 내가 변발을 순순히 한다손 쳐도, 아버지이든 아들들이든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아라! 그런 말은 더 이상 꺼내지도 말아라. 너는 나를 비정하다고 여기겠지만, 나는 너를 낳아주신 아버지를 잊은 지 오래되었다!"


"이렇게 하기가 쉽겠느냐? 쉽겠느냐는 말이다!"


결국 정세도는 한동안 머물다가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떠나기전 울면서 그는 말했습니다.


"특사로 파견된 저희는 빈손으로 돌아가고, 저희들의 임무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저희는 보고를 마치는 순간에 죽게 되겠지요."


하지만 정성공은 여전히 얼음장같은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너희들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짓을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내 결심은 이미 섰으니, 그만 입을 다물어라."



정지룡은 이런 아들의 태도에 탄식하며 정지봉에게 편지를 썻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주고, 정지봉이 정성공을 설득해줄것을 기대하는 눈치였으나 정지봉은 은근히 정성공을 편드는 답신을 보냈습니다. 사실 그는 이전에 정지룡에게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고 충고한 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걷기도 힘들지만 정성공에게 가서 변호는 시도해봤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쏙 빼닮은것을 비난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조카가 형님의 말도 따르지 않는데, 하물며 형님의 동생인 제 말을 듣겠습니까?"



정세도 일행이 돌아오고 난뒤, 1655년 무렵 정지룡은 만주족 몰래 정성공에게 편지를 썻습니다. 비밀리에 정성공에게 전해질 이 편지는 정씨 가문의 심복들을 통해 북경 밖으로 반출될 에정이었지만, 만주족 관리들의 수중에 들어가버리고 맙니다. 정지룡의 시대는 이제 완전히 몰락하여, 만주족에게 받은 모든 작위를 박탈당하고 나머지 가족들과 투옥되고 맙니다.



이 편지의 내용이 단지 만주족의 트집거리인지,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꾼 실제 정지룡의 언급일지는 모를 일이지만,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고 합니다.


아들은 싸움을 계속하라고. 비밀리에 아버지가 지원해주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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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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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차로아침을 | 작성시간 12.05.25 마음을 바꾼건지 아닌지는 영원히 모르겠지만 아마 바꾼건 아닌듯.저 사람 기질이나 평생 경험하고 만들어진 사상과 습관은 충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데요.아마 모든게 끝나서 전혀 희망이 없다는걸 알고 차라리 이름이라도 약간 좋게 남기자는 뜻이었을듯.근데 진심으로 바뀐건 아니라서 저런 글을 쓰고도 정성공이 항복하면 되게 기뻐했을듯ㅋㅋㅋ
  • 작성자BACCANO | 작성시간 12.05.25 걍 항복하고 청나라에 붙으면 엄청난 권세가가 될수 있었을텐데 ㅋㅋ
    정지룡이 아들을 그렇게 키웠지만 나중에 엄청나게 후회했겠네요 ㅋㅋ
    그런데 정성공의 어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 설명 좀 해주실수 있나요?
  • 답댓글 작성자신불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5.25 정지룡이 배반을 한 직후에, 청나라 장군 보로가 복건으로 쳐들어왔고, 한개 부대를 때어서 안평 지역으로 보냈습니다. 이 지역에 정씨 세력 일부와 정성공의 어머니 다가와가 머물고 있었는데, 정성공이 군대를 끌고 바람같이 달려왔지만 이미 청군이 포위해서 소용이 없었고, 폐허 속에서 죽었습니다. 이야기에 따라선 앞장 서서 군사를 격려하다가 죽었다고도 하고
  • 답댓글 작성자차로아침을 | 작성시간 12.05.26 청나라에 붙었으면 삼번의 난때 오삼계탕등과 함께 처리됬을듯요.
  • 작성자배달민족 | 작성시간 12.05.25 꿈해몽때문에 천주를 피했다라...... 하긴 뭐 지금 정치가들 중에도 점술사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판국에 옛날에는 더했겠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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