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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s5x5의 штрафбат

[사일런트헌터3]XLVIII. 베저위붕 그리고 블뤼허의 운명.

작성자cjs5x5|작성시간22.01.11|조회수91 목록 댓글 2

지난 이야기

 

 

 

 

전에 받은 느닷없는 귀항명령의 의도가 드러났습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침공을 의미하는 베저위붕 작전이었습니다.

 

잠수함사령부는 1940년 9월 5일 '베저위붕'이라는 음어를 3번 반복하여 송신하였고, 독일해군 기동부대들이 일제히 작전지역을 향해 출동했습니다.

 

저의 U-53과 승조원들은 노르웨이 오슬로를 공략할 5기동부대 '블뤼허'를 기다리며 3일간 스카게락에서 대기했습니다.

-

 

 

대기하는 동안 또다시 심상치 않은 징후가 보였습니다. 아마도 전에 오슬로 인근에 있던 적 TF인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측의 기동부대(TF)들도 일제히 기동에 나섰습니다.

 

 

대기하는 동안 날씨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구름 잔뜩, 안개 약간, 풍속은 13m/s로 파고가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함포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5기동부대 '블뤼허'가 드디어 킬에서 출항했습니다.

 

 

아측의 기동부대가 일제히 각자의 작전구역을 향해 1940년 4월 9일인 작전일시에 맞춰 기동중입니다.

 

 

실제 베저위붕 작전당시 영국해군과 독일해군의 기동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파란색이 영국해군, 검은색이 독일해군)

 

 

드디어 시간이 되었습니다.

 

1940년 4월 8일 2100시경에 저의 U-53은 오슬로 피요르드를 향해 약간 여유를 두고 기동에 나섰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일찍 전문에서 지시한 등대선(lightship)에 도착했습니다.

 

블뤼허가 나타날때까지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작전일시를 1시간 30분 남기고 노르웨이 상선과 접촉했습니다.

 

하지만 작전에 차질을 빚을수도 있다고 판단해서 그냥 보내주었습니다.

 

 

다시 한번 임무내용을 상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3) 발틱해 서쪽, 독일만, 스카게락에 위치한 유보트들은 1940년 4월 9일 0700시까지 오슬로 피요르드의 등대선(lightship) 근처에서 대기하라. 5기동부대(TF) '블뤼허'를 기다리다가 중순양함 블뤼허를 호위하라.

 

 

드디어 약속된 작전일시인 1940년 9월 4일 0700시가 되었습니다.

 

심상치 않은 실루엣의 선박과 접촉했습니다.

 

 

그리고...

 

약간 더 기다리니 거대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로 중순양함 블뤼허(Blücher)였습니다.

 

 

블뤼허는 어드미럴 히퍼급 2번함이었고, 직접 식별해보아도 어드미럴 히퍼급으로 나왔습니다.

 

 

저는 블뤼허와 충분히 거리를 두며 기동부대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한편으로 기동부대의 구축함 1척이 해안포 1문과 교전을 벌였습니다.

 

이게 오슬로 공략중에 일어난 최초의 교전이었습니다.

 

 

사실 5기동부대가 맡은 오슬로 공략작전의 내용은 매우 간단합니다.

 

오슬로 피요르드로 진입하여 노르웨이 해안요새를 돌파하여 오슬로에 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네, 내용 자체는 간단했습니다. 내용 자체는.

 

 

그나저나 이 등대선은 정말 희한하게 보였습니다.

 

여태껏 저는 등대는 부둣가 끝쪽에 붙어있는 탑 모양의 구조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노르웨이는 등대를 물에 띄우더라구요.

 

 

궁금해서 구글에 'lightship'이라고 쳐보니 이런 등대선이 실제로 있나 봅니다.

 

 

등대선과 블뤼허의 모습.

 

 

베저위붕 작전 당시 오슬로 공략작전과 중순양함 블뤼허의 모습도 영상으로 담아봤습니다.

 

1080p로 보시려면 링크를 직접 누르시면 됩니다. 분량은 8분입니다.

https://youtu.be/HHhPYtQw1Rc

 

 

생각보다 긴 시간동안 블뤼허와 동조기동했습니다.

 

게임이지만 뭔가 굉장한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마치 온라인RPG에서 레이드뛰는 기분보다 더 굉장한 느낌일까요.

 

 

정말 한참동안 동조기동하다보니 슬슬 육지가 보였습니다. 피요르드는 상당히 좁은 협수로였습니다.

 

 

그렇게 한참동안 피요르드속으로 들어가다가...

 

 

안개속에서 해안포대 4문이 희끄무레하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이내 블뤼허도 모든 주포와 부포를 발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안포대들과 블뤼허는 사력을 다해 포화를 주고받았는데...

 

 

갑자기 블뤼허에서 화염과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블뤼허도 피해를 입었거니 생각했는데...

 

갑자기 블뤼허가 대폭발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판단해야했습니다.

 

호위해야할 블뤼허가 이미 침몰당한 상황에서 오슬로를 향해 계속 가야할지, 아니면 후퇴해야할지.

 

일단 U-53은 해안포대를 상대할만한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피요르드의 수심도 불과 15m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단 후퇴하되 블뤼허와 같이 왔던 구축함들과 합류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뒤로 물러나서 다른 구축함들의 동태를 보니 그 구축함들도 후퇴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저는 완전히 후퇴하기로 결심하고 피요르드를 벗어나 스카게락으로 향했습니다.

-

 

 

게임 속에서의 블뤼허는 해안포대와 교전하다가 얼마못가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게 게임에서 파라미터를 잘못 넣어서 연출이 이상하게 되었고, 중순양함이 허무하게 격침당한걸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습니다.

 

정말 블뤼허가 이렇게 허무하게 격침당했는지 궁금해서 구글에서 블뤼허의 함생을 검색해봤는데,

 

실제로 블뤼허는 오슬로 침공작전중에 노르웨이측 해안포대와 육상에서 발사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산 어뢰 2발에 맞아 격침당했습니다(!)

 

실제 이 사건의 전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German_cruiser_Bl%C3%BCcher#Operation_Weser%C3%BCbung

-

 

 

어드미럴 히퍼급 2번함이었던 블뤼허는 1939년 9월 20일에 취역하였습니다. 베저위붕 작전 당시에는 게임처럼 5기동부대의 기함으로써 오슬로 침공작전을 이끌었습니다.

 

1940년 4월 8일. 블뤼허는 800명의 163보병사단 분견대를 승함시킨채로 슈바인뮌데(Swinemünde, 현재는 폴란드의 Świnoujście)에서 출항했습니다.

 

그리고 5기동부대를 구성한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뤼초프(Lützow, 본래 함명은 도이칠란트), 경순양함 엠덴(Emden, 되니츠 제독이 한때 함장으로 근무했던 훈련함), 그외의 호위함들과 합류하여 오슬로 피요르드로 진입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국 잠수함 Triton과 노르웨이 PT보트인 Pol III에게 발각당하였습니다. 독일 어뢰정이 Pol III에 화재를 일으켰으나 Pol III는 이미 자신이 미상군함에게 공격당했음을 보고했습니다.

 

4월 8일 2330시에 5기동부대는 노르웨이측 해안포대의 경고 및 조준사격을 받았으나, 시계가 불량하여 5기동부대는 별일없이 화망에서 벗어났습니다. 4월 9일 0030시에서 0200시까지 5기동부대는 블뤼허와 엠덴에 승함중이던 보병들을 다른 보조함에 옮겨태우기 위해 잠시 정지했습니다.

 

4월 9일 0420시에 블뤼허는 오슬로 피요르드에 더 깊숙히 들어간 상황이었습니다. 노르웨이측은 블뤼허에 서치라이트를 조사하고 오스카스보르그 해안요새(Oscarsborg festning)의 해안포들을 매우 근거리에서 발사했습니다. 블뤼허는 좌현에 2발을 맞았습니다. 이 2발중의 1발이 정찰기 격납고 근처에서 큰 규모의 화재를 일으켰습니다.

 

이 화재가 승함중인 보병들의 탄약에 옮겨붙어 폭발을 일으켰고, 이 폭발과 화염으로 인해 아라도 정찰기 2대에 불이 붙었고 기관에도 손상이 가해졌습니다.

 

블뤼허의 승조원들은 공격원점을 특정지을 수 없었기에 32knot까지 가속하여 포대의 화망을 그대로 지나치려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약 370m 거리에서 노르웨이 해안포가 블뤼허의 우현을 명중시켰습니다. 블뤼허는 누적된 피해에 점차 속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0434시에 오스카스보르그 해안요새의 미상위치에서 2발의 어뢰가 발사되어 블뤼허에 격돌했습니다. 이 공격으로 인해 기관에 피해가 누적된 블뤼허는 증기터빈 1번의 출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안포대의 화망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으나 이미 배는 18도까지 기울어버렸고, 화재가 10.5cm 함포 탄약에 옮겨붙어 격렬한 유폭을 일으켰습니다. 이 유폭으로 인해 연료저장실에도 불이 옮겨붙고 말았습니다.

 

 

0730시에 블뤼허는 완전히 전복되어 침몰하였고 상당한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사상자의 규모는 학자마다 다르게 산정되고 있습니다.

 

블뤼허는 취역한지 불과 반년만에 격침당한 셈입니다.

 

블뤼허가 침몰하고 뤼초프도 손상되자 5기동부대는 후퇴하였습니다. 승함하던 보병들은 피요르드 동쪽에서 상륙하였고 오스카스보르그 해안요새를 4월 10일 0900시에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후속부대들과 함께 오슬로를 향해 진격했습니다.

 

결국 오슬로는 4월 10일 1400시에 완전히 점령당했습니다.

 

5기동부대의 후퇴로 인해 발생한 지연으로 노르웨이 정부구성원들과 왕가구성원들은 수도였던 오슬로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

 

 

여기까지가 1940년 4월에 있었던 독일측 오슬로 공략작전의 실제 전말이었습니다.

 

역시 가장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왜 진작에 보병들을 상륙시켜서 해안포대를 제압하지 않았는가?'일 것입니다.

 

아마 이 부분은 해군과 최고 사령부사이에 무언가 알력이 있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 해군의 최고 사령부에 대한 혹은 최고 사령부의 해군에 대한 - 정치적 의도가 작전의 무결성을 해쳤다라고 쓸 수 있을듯 합니다.

 

아무튼, 무척이나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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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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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bamdori | 작성시간 22.01.12 아니 블뤼허 격침이 구현되어 있다니!!!

    나르비크나 오슬로 등 동시에 침공이 이뤄진 다른 노르웨이 도시들은 크릭스마리네의 지원을 받으며 보병과 산악병을 상륙시킨 점을 보면, 블뤼허 함대의 경우 중순양함이 뒈짓(..) 해버린 점이 후퇴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담으로 노르웨이 영화 "The King's Choice(영제)"에 저 블뤼허 격침 장면이 있습니다. 유튜브에 클립도 있지용. 시원하게 불타는 낙지 중순이 일품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cjs5x5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1.12 가뜩이나 배 없는 독일해군이었는데 취역한지 반년밖에 안된 중순양함을 날려먹었으니 정말 큰 전력손실이었을 겁니다.

    결국 약간 후퇴해서 보병들을 내렸고, 보병들이 해안포대와 오슬로까지 점령해냈습니다. 그 좁은 피요르드에 중순양함을 밀어넣었어야 했는지 의문이네요.

    한번 유튜브 영상 찾아봐야겠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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