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철학]새로운 건국론자들의 논리. 그리고 반박할 논점들. / 국가란 무엇인가, 주권의 de jure와 de facto.
작성자cjs5x5작성시간24.08.18조회수408 목록 댓글 32https://youtu.be/FYd0axjDP1U?si=pAgnFyGA34iL-SyJ
// 주권은 없지만 나라는 유지된다. 그런게 있습니까, 여러분? //
지난 8월 15일 강원도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강원도지사 깁진태씨의 발언입니다.
이처럼 최근 건국론자들이 새로운 논리를 가져왔습니다.
// 학교에서 배우듯이 국가의 3대 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이나 일제강점기에는 한일병합조약으로 인해 우리국민에게 주권이 탈락되었으므로 <대한민국>은 1948년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 아니라 주권을 다시 되찾고 <대한민국>이 건립된 1948년이야말로 우리가 기념할 날이다. //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주요 보수인사들과 대통령실이 일맥상통한 이야기들을 들고 오기도 하였고, 언뜻 들으면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래 상술할 두 지점에서 보면 오히려 너무 나이브한 논지라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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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가란 무엇인가?
우리는 '국가'니 '나라'니 하는 단어들을 자주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같은 단어(기표)라도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기의)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기표에도 다양한 기의가 뒤섞여 있기도 합니다.
'국가'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진태씨가 말하고 우리가 세개의 구성요소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 배우는 국가는 입법, 행정, 사법의 기능을 수행하는 <일련의 행정기관 및 관료조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국가'니 '나라'니하는 단어는 <행정기관과 관료조직>이라는 범위로만 한정되진 않습니다.
편하게 쓰자면 <우리나라 사람들>, 고상하게 쓰자면 <겨례>내지 <같은 소속감을 공유하는 민족집단 혹은 그 정체성>이라는 의미도 담기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장 3초 뒤에 나라가 망해서 행정기관과 관료조직들을 잃는다해도, 우리 자신이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정체성과 그로 인한 사회적 현상과 지위는 그대로 남습니다.
마치 영토도 정부도 없지만 중동 일대에서 자신들만의 자치권까지 행사하고 있는 쿠르드족처럼 말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국가의 3요소'라는 <일련의 행정기관 및 관료조직>이라는 차원에서 우리나라는 일본제국의 강압에 의해 주권을 잃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하였기에 공출, 징집, 징용 등의 침탈행위들을 당했고요.
그래도 우리나라라는 '국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민족은 '국적'은 잃었어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므로 우리 겨례는 온갖 사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위해 함께 투쟁하였고, 끝내 독립을 쟁취한 역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국가'라는 단어의 차원은 생각보다 깊으며 건국론자들의 용례와 같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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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권 그리고 de jure와 de facto.
법인격의 지위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사용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법률상'을 의미하는 de jure와 '사실상'을 의미하는 de facto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에게 돈을 떼이고 받지 못하는 사람 B의 처지를 이런 문장으로도 바꿔쓸 수 있습니다.
// B는 A에 대하여 법률상(de jure) 금전 1,000,000원의 청구권을 가지고 있으나, XX한 상황으로 인해 사실상(de facto) 상술한 청구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
저는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나라 국민의 주권을 묘사하기 위해선 de jure와 de facto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상술하였듯이 <일련의 행정기관 및 관료조직>이라는 차원에서 우리나라는 일본제국의 강압에 의해 주권을 잃은 것은 사실의 영역에 속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의 적시에 그쳐서는 '국가'의 또다른 차원과 우리가 국권을 상실한 불법적 과정을 반영되지 못한 서술이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주권은 없지만 나라는 유지된다. 그런게 있습니까, 여러분?"이라는 김진태씨의 문장을 이렇게 바꿔서 쓰고자 합니다.
//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의 주권은 de facto상 발현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정체성과 그 주권이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주권은 일본제국의 무력에 의해 불법적으로 침해당했을 뿐, de jure상 우리의 주권은 여전히 잔존해왔다고 보는 것이 올바릅니다. //
그런데 이 지점에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주권을 일본제국에게 이양한 사건인 '한일병합조약'은 그 뒷이야기가 어찌하건 간에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고 국제사회에서 수용된 바 있었습니다(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일본과 미국은 필리핀과 한반도에 대한 점유권을 서로 맞교환하였고, 주변국들은 이를 묵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de jure상으로도 우리의 주권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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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현재의 국제법을 기준으로 따지자면, 일본제국은 무력을 동원하여 de facto상 우리의 주권을 침해함으로써 국제법을 저촉하였습니다.
UN헌장 제2조 4항. '무력사용금지 원칙'에 따르면 UN회원국 간에는 타국에 대해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금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UN헌장은 국제사회에서 국제형법과 그 판단의 근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로썬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제국은 국제법을 위반하였으므로, 아무리 주권의 이양이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었어도 법적 정당성에 위배되었으므로, de jure상 우리의 주권은 소멸한 것이 아닌 침해당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주권이 de jure상 소멸이 아닌 존재하다고 주장해야, 주권의 침해로 인해 발생한 우리 국민의 손해에 대한 청구권도 일본을 대상으로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존재하지 않는 권리에 대하여 침해를 주장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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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해보자면, 저는 위의 두 지점에서 고찰하였을때, 일제강점기 당시 입법, 사법, 행정의 기관과 관료조직이 일본제국에게 넘어갔다고 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1948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에는 어폐가 있다고 서술하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법통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에 의해 단절되었다가 1948년에야 회복된 것이 아니라고도 서술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법통이 어디서 연원하였는지는 이미 초대 헌법에 적시되어 있습니다.
https://www.law.go.kr/lsInfoP.do?lsiSeq=53081#0000
1948년 7월 17일. 헌법 제1호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써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단기 4281년 7월 12일
대한민국국회의장 이 승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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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보시다시피 우리나라 제헌 헌법은 <대한민국>의 연원을 1948년이 아니라 "기미 삼일운동"임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개정 헌법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연원을 3ㆍ1운동내지 "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현행 88년 제10호 헌법)라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헌법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질서도 '자유민주주의'라는 건국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그냥 민주주의제제도(= 민주주의의 여러 제도)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우리 헌법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신체제가 성립되면서 1972년 12월 27일에 개정된 '유신헌법'이었습니다.
유신체제 당시에 우리나라의 국시(國是, National Motto)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반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전에 서술하였듯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 혹은 Liberal Democracy의 보편적 용례가 아니라 북한의 거울상으로서의 'Anti-Communism'에 불과합니다.
자유로운 민주주의라는 질서를 어떤 특정한 상태로 고정시켜버리니, 도리어 자유로운 민주주의에서 멀어져버린 아이러니가 발생한 겁니다.
우리나라 '보수'의 언어를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선 이 지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https://cafe.daum.net/shogun/TAp/104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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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건국론자들의 새로운 주장과 그에 반박할 두 가지 논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두 논점에 대한 설명은 매우 불충분합니다. 저는 솔직히 그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저는 쓰고 싶었습니다. 아예 쓰지 않는것보다는 쓰는 것이 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건, 아니면 이 글을 읽으신 다른 분들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드리는 차원에서건 말입니다.
이제 밤이 깊었고 저도 더위에 지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의 의견과 생각과 반박까지도 일단 적어주시며 모두와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 우리가 지금 독립하여 살 수 있게 해주신 그 분들을 위하고 기리며 위로해드리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너무나도 부끄러운 8월 15일을 보낸 후손으로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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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cjs5x5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8.18 덧글 감사합니다. 토착민이라는 키워드가 무척이나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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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Krieg 작성시간 24.08.18 한·일 기본 조약과 부속 협정
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levelId=hm_150_0040
제2조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
식민지배가 어쩌고 저쩌고 합병이 어쩌고 저쩌고를 떠나서, 65년도 한일기본협정에서 한국과 일본은 한일합병은 물론 그 이전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과 협정을 무효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식민지배가 정당한 법적 절차를 거쳤는지, 친일파가 매국이 아니라 일제 입장에서 애국한 것인지를 논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65년도에 다 무효고 그딴 거 없다고 했거든요. -
답댓글 작성자cjs5x5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4.08.18 애초부터 없던 일이 되었으니 자연스레 한국의 일본에 대한 청구권도 없다는 해석으로 이어지게 되는거군요.
그렇다면 제가 본문에서 가장 문제시 삼은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에게 주권은 상실했다'는 문장도 한일기본조약 제2조에 의해 없었던 일(한국은 주권을 상실한 적이 없다)로 해석되어 질 수 있을까요?
아니면 주권의 유무 여부를 떠나 다른 시각으로 이 사안에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
답댓글 작성자Krieg 작성시간 24.08.18 cjs5x5 일단 전 법학을 공부하거나 이 분야에 정통한 건 아니니 제 생각일 뿐 일반설이나 학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그닥 없습니다만, 토왜나 일본 극우들이야 일본이 조약이나 협정이라는 절차적, 법적 정당성을 거쳤으니 식민지배나 합병이 정당했다고 말하지만 2조를 통해 무효화 했다면 불법적으로 침략, 불법적으로 식민지를 했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불법으로 침략해서 식민지를 했던 피해에 관한 청구권도 가질 수 있겠죠. 문제는 박정희가 그걸 요상하게 처리했다보니 쟁점과 논란이 있고요. 여튼, 주권의 상실은 있었지만, 그게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일이기에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가 되어야 맞지 않나 싶습니다. 가령 섬노예로 부림 받는 사람에게 자유에 대한 권리, 자신에 대한 주권은 있지만 위력과 폭력에 의해 실질적으로 타인에 의해 좌우된다면 생득권으로서의 주권은 분명 본인에게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불법적으로 타인에 의해 행사되는 것이니 그에 따른 법적 처벌과 배상을 요구하는 건 합당한 것처럼요. 상실보다는 침해라고나 할까요. 물론 실질적으로는 상실이겠지만, 말이야 아 다르고 어 다른 거죠. 이런 분야에선 더더욱 중요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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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밸틴1 작성시간 24.08.19 좋은정보, 좋은견해 감사합니다. :)